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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의 하루 - 오늘, 일본 황궁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요네쿠보 아케미 지음, 정순분 옮김 / 김영사 / 2012년 12월
평점 :
혼란이 극에 달한 광해군 8년.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으로 점점 난폭해져 가던 왕 '광해'는 자신의 대역을 찾고, 궁에 끌려간 하선은 광해군이 자리를 비운 하룻밤 가슴 조이며 왕의 대역을 하게 되는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왕이 욕하는 모습, 왕의 변기인 ‘매화틀’을 사용하는 모습 등에 관객들은 ‘신격화된 왕’이 아닌 ‘인간 왕’을 마주하며 즐거워했다.
이 책은 일본 근대 궁정의 의식과 예법을 연구해온 저자 요네쿠보 아케미가 일왕을 직접 보좌한 사람들의 회상록과 수기 등을 토대로 일본인들이 가장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메이지(明治) 시대를 연 메이지 일왕의 하루를 생생하게 되살려냈다.
특히 저자는 메이지 유신을 통해 일본의 근대화를 성공시킨 메이지 천황의 기상부터 취침까지 베일에 가려진 일왕(日王)의 하루 일상을 자세하게 소개한다. 하루 종일 인사를 하는 시종들을 피해 다녔던 천황, 전통 화장법을 버리고 서양식 화장법을 도입한 황후, 병약하고 마음까지 여렸던 황태자, 나이 어린 시종들을 무시한 천황의 애완견 등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천황은 일본의 최고 권력자 겸 신적인 존재로 받들어졌고, 이들의 삶은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막부의 시대가 끝나고 천황의 절대적 권력이 공고해지며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 일본의 천황은 어떤 고민을 했을까. 저자는 황궁의 시스템은 어떻게 되어 있고, 그 시스템 속에서 황궁 사람들은 어떻게 움직였는지, 서양 문물의 유입으로 혼란스러운 일본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다스릴 수 있었는지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묘사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은 나이가 들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게 되는데 메이지 천황은 맘대로 일어날 수가 없다. 천황이 아침 6시에 ‘오히루’를 하면 여관들뿐만 아니라 시의나 정원사, 궁내성 직원까지도 모두 두 시간을 앞당겨서 하루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저자는 “메이지 천황이 단 5분도 가만히 있지 않았던 것은 비단 성격 때문만은 아니었다”며 “신하가 천황 앞을 지나갈 때 반드시 한 번 앉았다가 다시 일어나서 가야 하는 관례 때문에 천황은 상대방이 앉지 않아도 되게끔 스스로 자리를 비켜주었던 것”이라고 설명한다.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궁전 생활 탓에 일찍 일어나지도, 늦게 일어나지도 못하며 침대에서 머뭇거리는 일왕을 상상하노라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항상 몸을 움직이는 천황과 대조적으로 황후 하루코는 거의 움직임이 없었다. 저자는 “황후는 그곳에 앉아 온종일 꼼짝하지 않았다”며, “아침부터 각종 업무를 지시하는 천황과 달리 황후는 담배 상자에서 은으로 된 담뱃대를 꺼내 담배에 불을 붙이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는 등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흥미롭게 묘사해 놓았다.
메이지 일왕은 조선침략의 원흉으로 우리 민족에게 막대한 피해를 안긴 장본인이며, 아시아 국가에서도 침략의 원흉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일본 왕실 구조를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읽어볼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