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경계
조정현 지음 / 도모북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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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극화되고 있는 왕이기도 한 조선 제10대 왕인 연산군은 폭군의 대명사로 불려진다. 연산군은 중신들의 세력 다툼에 시달리고 거기에 생모인 폐비 윤씨와 관련된 사실을 알고 난 후에는 정치에서 손을 놓고 향락에만 몰두하다가 결국 폐위됐다.

 

연산군을 역사상 가장 유명한 폭군으로 만든 사람은 바로 연산군의 할머니 ‘인수대비 한 씨’이다. 소혜왕후(昭惠王后)라는 시호 보다 인수대비(仁粹大妃)로 유명한 한씨는 실로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다간 왕실여성이며, 여성 지식인이다. 조선 제9대왕 성종의 어머니이자, 폭군으로 알려진 연산군의 할머니로서 더욱 유명한 인수대비는 시아버지 세조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몸소 지켜보았고, 남편의 죽음으로 잃어버렸던 왕비 자리를 대신해 자신의 어린 둘째 아들을 왕으로 만들면서 대비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여성이다.

 

인수대비의 아버지 한 확은 조선 초 명나라와의 관계에 큰 공을 세운 외교관이었다. 하지만 그는 당시 몰락한 양반가의 집안이었기 때문에 끼니 걱정을 하며 살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랬던 집안이 어떻게 단 몇 년 만에 왕가와 혼인을 맺을 정도로 대단 한 명문가가 되었을까?

 

그 배경에는 조선 초, 명나라와의 굴욕적인 외교사가 숨어 있었는데 바로 명나라에 바쳐진 ‘공녀(貢女)’ 때문에 그 집안의 번성은 인수대비의 고모이자 한 확의 두 누이 한규란과 계란 자매로 그 당시 명나라에 바쳐진 공녀였으나 그 집안의 번성은 바로 이 두 자매의 힘이 결정적이었다. 한확의 누나인 ‘한규란’은 영락제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여인이었다.

 

한확은 아름다운 누이를 둔 덕에 조선 왕실에서 승승장구 하였고, 조선의 실세가 되고, 결국 왕자였던 수양대군의 맏아들에게 자신의 막내딸을 시집보내게 된다. 그녀가 바로 인수대비이다.

 

포악한 영락제가 황제에 올랐다가 죽자 한확의 누이는 24세의 나이에 산채로 순장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한확은 영락제의 손자인 선덕제가 즉위하자, 자신의 하나뿐인 여동생 ‘한계란’을 또 다시 공녀로 보냈다. 이 여동생이 인수대비의 고모, 명나라 역사에도 이름이 남은 ‘한계란’이다.

 

고려시대에 공녀는 한 해에 두 번이나 두 해에 한번 꼴로 많은 때는 50여 명씩 보냈다고 한다. 먼저 많은 처녀를 잡아들여 공녀를 선발하는 데 예쁜 처녀는 사신에게 바쳐서 하룻밤을 보내면 놓아주고 다른 처녀로 수를 채웠다. 공녀로 뽑히면 온 가족과 친척이 모여 밤낮으로 통곡하는 소리가 며칠 동안이나 이어졌다.

 

공녀로 가는 여인들은 억지로 떠밀려 수레에 오르면 기절하는 사람이 태반이었고, 대동강과 압록강을 건너면서는 하염없이 통곡하고 몸부림쳤다. 공녀들은 향수병에 걸려 정신이 온전치 못한 경우도 있었고, 종처럼 학대를 받는 사람도 있었으나 하소연할 곳이라고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 책의 저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공녀에 대해 남아있는 사료는 별로 찾을 수가 없다. 이 책을 읽고 ‘공녀(貢女)’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한줄 한 줄 읽어나가면서 얼마나 화가 나던지... 일제시대의 정신대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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