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일까? 1
김인호 그림, 남지은 글 / 홍익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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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함, 쓸쓸함, 그리움, 추억, 반가움, 첫 사랑은 <우연일까?>를 읽으며 내가 느낀 감정들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설렘으로 바라보던 첫사랑의 기억이 오래된 사진처럼 색이 바래질 때쯤 우연히 재회하게 된다. 지금도 그때를 회상하며 어렸고, 순수했고, 철없던 시절이라고 가볍게 웃어넘기며 말하지만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몇 컷, 첫사랑의 기억만은 여전히 생각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스물여덟 살 된 ‘홍주’는 어느 날, 소개팅 자리에서 중학교 친구 ‘혜지’의 첫사랑 ‘후영’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홍주는 중학교를 다닐적에 혜지가 후영에게 쓴 편지를 전해주며, 마음을 대신 전하는 우편배달부 역할을 했던 어린 날의 추억을 가지고 있다. 홍주 때문에 후영과 다시 만나게 된 혜지는 짝사랑 했던 후영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을 운명으로 여기지만 후영을 볼 때마다 자신과는 어긋난 시선을 느끼게 된다. 한편 혜지를 짝사랑하는 과장 ‘경택’은 소심한 성격 때문에 마음을 고백하지 못한 채 그녀를 바라보고, ‘준호’는 대학후배 홍주와 5년 만에 재회하게 된다. 이들 다섯 명의 인물들은 자신이 간절히 바랐던 것과는 전혀 다른 실체들과 마주하는데, 그들의 만남은 모두가 우연일까? 아니면 운명일까?

 

이 책은 남지은ㆍ김인호의 카툰 에세이 <우연일까> 제1권으로 <이것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네이버에를 통해 인기리에 연재되었던 이 카툰은 우연히 만난 첫사랑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서는 스물여덟 청춘들의 이야기를 섬세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마음 한쪽 소중하게 간직된 추억이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 의미없이 지나가버린 기억일 수도 있다는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어렸을적 나의 첫사랑은 3년간의 짝사랑으로 기억된다. 수줍고도 부끄러워 제대로 말 한번 건네보지 못한채 헤어져 버렸다. 그 여인은 지금쯤 어디서 무얼하며 살고있을까... 누군가를 몰래 혼자서 좋아하는 일은 여간 힘든게 아니다. 그러나 조건 없이 상대를 좋아하고 맘껏 그 여인을 바라볼 수 있으니 어쩜 축복된 사랑이 아닐까. 둘이 만나서 하는 사랑은 시작은 행복하고 좋을지 몰라도 함께하는 시간이 반복되다보면 힘겨운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상대에게 자꾸만 내가 주는 만큼, 혹은 무언가를 더 바라게 되고, 그것이 충족되지 못할 땐 마음이 상하게 된다. 그러나 짝사랑인 내 첫사랑의 기억은 그저 바라만 봐도 행복했고, 마음 설렜던 기억뿐이다.

 

세상에는 많은 우연이 있지만 왠지 내게 일어난 일은 운명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그 사람을 다시 만난 이 순간만큼은 그와 내가 우연이 아닌 운명처럼 느껴진다. 톨스토이는 말하기를 “사랑이란 자기희생이다. 이것은 우연에 의존하지 않는 유일한 행복이다”라고 했다.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찾아온다. 그 첫사랑과 함께했던 추억의 장소나 음악은 잊고 살다가도 문득문득 어느 순간 내 가슴을 두드린다. 그 순간 봄바람 속에 실려 오는 꽃향기처럼 은근하면서도 아련한 추억이 새록새록 밀려온다. <우연일까?>에서 만난 첫사랑들은 어딘가 낯설면서도 내 주위에서, 혹은 누군가에게서 들었음직한 이야기들이고, 그러면서도 매우 소설적인 이야기들이다. 어찌보면 나의 첫사랑에 대한 기억이 아름답게 포장되어 간직되듯 이 책 속 첫사랑들도 아련하며 추억 저편으로 물러나있다. 오랜만에 한번쯤 보고 싶은 친구의 기억을 되찾아준 고마운 시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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