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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 - 9.11 이후 달라진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ㅣ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7
이현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1월
평점 :
탐욕으로 물든 금융업계를 규탄하고 고실업, 빈부 격차에 항의하는 ‘월가 점령 시위’가 지구촌 곳곳으로 번져나갔다. 82개국 1000여 개 도시에서 성난 시위대가 물밀듯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이탈리아 로마 등 일부 지역에서는 과격 시위로 비화하기도 했다. 서울에서도 여의도와 서울역 광장 등에 시민 1000여 명이 참여해 ‘1%에 맞선 99%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국제연대집회에 동참했다.
이처럼 전 지구적으로 부패한 금융업계를 규탄하던 그 시각 ‘이 시대의 가장 위험한 철학자’ 슬로베니아 출신의 석학 슬라보예 지젝이 뉴욕에서 벌어지고 있는 ‘월가 점령 시위’에 나와 연설을 했다.
“그들은 우리가 모두 루저라고 말한다. 그러나 진정한 루저들은 저곳 월스트리트에 있다. 우리가 낸 돈으로 수십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은 것은 그들이 아닌가. 그들은 우리가 사회주의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부자들을 위한 사회주의는 언제나 존재해왔다. 그들은 우리가 사유재산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밤낮으로 몇 주 동안 사유재산을 파괴한다고 해도 2008년의 금융시장 붕괴 당시 파괴된 사유재산의 양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지젝의 연설은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로 퍼졌지만, 현장의 육성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확장됐다.
이 책은 슬라보예 지젝의 전문가이며 인터넷 인기 서평꾼으로서 ‘로쟈’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인문학자 이현우 한림대 연구교수가 슬라보예 지젝이 쓴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를 해설한 책이다. 후기 자본주의 체제의 비판서다. 저자는 “지젝 읽기는 자기 자신의 타성과 기득권과 편의주의와 무사 안일주의에 대한 저항”이라고 했다. 2002년 첫 출간된 ‘실재의 사막’에서 지젝은 9·11 테러를 통해 진정으로 읽어내야 했던 것은 “승자 독식의 안온한 자본주의 체제(지젝은 이것을 매트릭스에 비유했다)의 균열 그 자체”라고 강조한다. 초심자가 접근하기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이한 이 책은 이현우의 지젝 철학에 관한 결과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저자는 “이대로는 곤란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지젝 읽기’를 권한다.
저자는 이 책의 서문에서 “자신이 가진 게 많다고 믿는 ‘대한민국 1%’는 지젝을 읽을 필요가 없다. 자신이 세상을 너무도 잘 안다고 생각하는 ‘도인’들도 읽을 필요가 없다. ‘이대로!’가 생활신념이자 정치적 신념인 위인들도 지젝을 읽을 필요가 없다. 읽을 이유도 없다. 하지만 ‘이대로는 곤란하다!’는 절박함에 더하여 ‘제대로 생각을 해야 한다!’는 강박감에까지 시달리며 뭔가 제대로 알고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분들은 한번쯤 지젝을 읽으셔도 좋겠다.”고 말한다. 지젝과 거리를 둬서는, 자기 자신의 타성과 기득권, 편의주의, 무사안일주의 등에 대한 저항인 ‘지젝 읽기’를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1%의 독식에 분노하는 99%에 드는 사람이라면 지젝이 건네는 ‘빨간 약’을 삼키고 깨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지젝이란 이 시대의 철학자를 ‘나꼼수’처럼 대중과 눈높이를 맞추는 방식으로 알리는 것이 서평꾼 ‘로쟈’의 역할이라는 이야기다. 소수 지식인이 지젝의 철학을 이해하기보다는 대중이 그의 문제의식을 공유할 때 세상이 바뀐다는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미래를 읽는 것이다. 미래를 준비하는 분들의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