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9.11테러 이후의 세계 뉴아카이브 총서 4
슬라보예 지젝 지음, 이현우.김희진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장을 구하지 못한 젊은이들이 주축이 되어 미국 뉴욕의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시위가 미국 전역으로 확산돼 세력을 키워가던 지난 10월 9일 시위대가 점령한 뉴욕 맨해튼의 주코티 공원에 슬로베니아 출신의 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슬라보예 지젝이 나타났다. 붉은 티셔츠 차림으로 1000명의 시위대들 앞에서 연설을 시작한 지젝은 “이 시위가 미국 자본가 사회에 감춰진 거짓을 드러냈다”라는 평가로 ‘자본주의 시스템’의 자멸을 통렬하게 지적했다. 그는 시위대를 향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저항해 나갈 것을, 원하고 욕망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월러스틴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한계를 드러낸’ 시위에 미국의 유명 아이스크림 회사 ‘벤 앤드 제리스’는 점령자들에게 ‘우리는 당신들을 지지합니다.’라는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이사회가 동의를 표한 시위대의 주장들은 미국에서 현존하는 계급 간의 불평등은 비도덕적이다.미국은 실업 위기를 겪고 있다. 1억4000만 미국인이, 흑인의 20%가, 젊은이들의 25%가 실업자다. 단지 먹고살기 위해 많은 노동자들이 2~3개의 일자리를 가져야 한다. 빚을 지지 않고 대학 교육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업들은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무제한적으로 돈을 쓸 수 있는 반면, 고용은 늘리지 않고 수 조 달러의 돈을 쌓아만 두고 있다.

이 책은 세계화 자본주의와 미국 패권주의의 폐해를 지적하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해 온 ‘위험한 철학자’ 지젝이 9ㆍ11테러와 관련해서 쓴 논문 다섯 편을 엮은 책이다. 2002년에 이미 한국에 소개됐던 글들을 재번역해 정리한 것인데, 지젝은 책을 통해 9ㆍ11 테러에서 우리가 읽어내야 할 ‘진짜 현실’에 대해 말한다.

평소 지젝의 철학에 깊은 관심을 두고 연구해온 인터넷 서평꾼 ‘로쟈’로 이름을 알린 이현우 한림대 연구교수가 지젝이 자주 쓰는 복잡한 용어들을 최대한 한국어에 맞게 번역했다.

사실 9ㆍ11 테러 이후 우리는 ‘악의 축’, ‘무한한 정의’ 같은 다분히 미국적 입장을 반영한 말들에 길들여졌다. 그리고 어느 사이 ‘테러리즘’에 이슬람의 이미지를 덧씌웠다. 하지만 지젝은 “우리가 9ㆍ11 테러를 통해 진정으로 알아야 했던 것은 승자 독식의 안온한 자본주의 체제의 균열 그 자체”라고 주장한다. 지젝이 보기에 9.11테러는 우리의 ‘안온한 삶’을 깨뜨리는 ‘악’이 아니었다. 그는 워쇼스키 형제의 영화 ‘매트릭스’에 안온한 자본주의를 비유하며 9ㆍ11사건은 외부에 의한 테러를 넘어 19세기 산업사회의 몰락을 드러내는 ‘타이타닉호’의 침몰처럼, 자본주의가 스스로의 한계를 드러낸 자기 파괴적이고 상징적인 사건임을 재차 강조한다.

사람들은 세계 경제위기를 맞아 자본주의의 핵심인 ‘실물경제’를 되살려야 한다고 말한다. 지젝은 이것도 우리가 믿는 ‘현실’에 불과하다고 본다. 자본주의의 ‘실재’ 그 자체가 오히려 경제위기를 불러온 금융순환이라고 분석한다. 이 교수는 “지젝은 현재 자본주의 위기의 처방으로 나오는 일명 ‘박애적 자본주의’, 워런 버핏이나 안철수와 같은 사회환원식이 아니라 공산주의를 추구한다”고 말했다.

지젝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는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처럼 처럼 안전하지만 통제되는 삶에서 용기 있게 걸어 나와 자신이 주인인 삶을 살아보라고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