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와인에 빠져들다
로저 스크루턴 지음, 류점석 옮김 / 아우라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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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넓고 와인의 종류는 많다. 맛도 가격도 천차만별, 이름만으로도 모든 애호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전설적인 와인 로마네 콩티, 헤밍웨이가 너무나 사랑해서 손녀딸에게도 그 이름을 붙여주었다는 와인의 여왕 샤또 마고, ‘케네디 와인’이란 별명으로 미국 상류사회의 인기 와인이 된 샤또 페트뤼스, 세계인이 사랑하는 와인 속에 문화와 예술이 있다.

이 책은 와인 마시는 법이나 와인 종류에 대한 안내서가 아니다. 철학자가 각종 와인을 마시며 연상한 온갖 종류의 지적유희가 담겨 있으므로 ‘와인을 곁들인 사색’으로 이끄는 길잡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와인 한 병에도 갖가지 스토리가 있고 또 사색거리가 농익어 있다는 것을 다양한 인문학적 지식으로 펼쳐 놓는다.

저자는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철학자로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했다. 문학·음악·미학 등 다방면에서 재능을 보인 저자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미학을 강의하고 있다. 옥스퍼드대의 미학 교수답게 매끄럽고 절제된 문장으로 서술했다.

이 책은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미국의 와인들을 충실히 소개하는데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와인을 통해 철학적 지혜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철학자 개인들이 가졌던 소소한 관심사도 소개한다.

성경에 보면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농업을 시작하면서 포도나무를 심었다. 자신이 수확한 포도로 빚은 와인을 마시고 취하여 장막 안에서 벌거벗고 잠에 취했다. 노아의 세 아들 중 둘째 함은 아버지의 치부를 셈과 야벳에게 드러내 희롱한 죄로 그의 자식 가나안은 셈과 야벳의 종이 되길 원한다는 노아의 저주를 받았다(창세기 9:20~25).

이 책은 모두 2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나는 마신다’에서는 자신이 와인에 입문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레바논, 그리스, 미국, 호주, 뉴질랜드, 남아공, 이탈리아, 루마니아, 스페인 와인의 기원과 역사, 프랑스 및 여타 나라의 와인에 대해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소개한다.

제2부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에서는 와인의 의미를 탐구하며 정신과 육체의 조화, 아가페적 사랑과 에로스적 사랑, 흥분제의 유형들, 와인의 효능 등의 주제를 다룬다. 또한 청교도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술에 대한 태도, 술의 도덕적인 활용 등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책 앞머리의 부록 ‘철학자와 와인’에서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키케로, 성아우구스티누스, 이븐 시나, 이븐 루시드, 아퀴나스, 마이모니데스, 베이컨,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로크, 버클리, 흄, 칸트, 피히테, 헤겔, 쇼펜하우어, 키에르케고르, 니체, 러셀 등 다양한 철학자를 소개하는데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한 철학자들의 저서를 읽을 때 어떤 와인을 곁들여 마시면 좋을까를 이야기한 부분이 흥미롭다. 철학자들에 대한 나름의 비평도 곁들였다.

이백(李白)의 월하독작(月下獨酌) 1수에 보면 “꽃 사이의 한 병 술을 혼자 마시는데 친구라곤 없네 / 잔 들어 밝은 달 맞이하니 그림자 이루어 세 사람이 되었네 / 달은 본디 술 마실 줄을 모르고 그림자는 다만 내 몸을 따라다닐 뿐이네 / 잠시나마 달과 그림자를 데리고 봄철에 마음껏 놀아 보세 / 내가 노래하니 달이 어정이고 내가 춤추니 그림자는 멋대로이네 / 취하지 않을 때는 함께 서로 즐기다가 취한 뒤에는 각기 서로 흩어지네 / 영원히 무정의 교유를 맺어 아득한 은하수를 두고 서로 기약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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