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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al Paik - 6.25 전쟁의 파워 리더 백선엽을 말한다
유광종 지음 / 책밭(늘품플러스)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한반도에서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난 지 61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사회에서는 6.25전쟁을 북침이라고 주장을 하는 일부 친북좌파와 정치인들로 인하여 큰 혼돈에 빠져있다. 6.25당시 소련의 문서, 중국과 소련의 참전자들의 증언, 그 당시 38선 주위에 살았던 양쪽 국민들의 증언과, 심지어 북한군으로 참전했던 자들까지도 6.25는 김일성이 소련과 중국을 등에 업고 한국을 공산화 하기위하여 일으킨 전쟁이란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1950년 6월 25일 새벽4시에 인민군 11만, 240대 전차를 가지고 38선 전역에 남침함으로 전쟁이 시작되어 9시30분에 개성이 점령된 것으로 보면 남침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또한 6.25당시 남한에 배치되어있는 전방군인 3분의1이 모내기 휴가를 갔을 때이다. 어떤사람이 전쟁을 한다고 하면서 군인을 휴가 보내는 자들이 있겠는가. 그리고 전쟁전력상 남한은 전차도, 화력도 없는 허약한 상태에서 전차 240대를 보유한 북한인민군을 밀어내고 북침할 수 있겠는가.
이 책은 일제 강점기 시절 평양사범학교와 만주군관학교를 나온 후 대한민국 최초의 4성 장군이 된 백선엽(91) 예비역 대장의 평전이다. 1920년대 어린 시절부터 1950년 6월 25일 김일성 군대의 남침으로 발발한 6·25의 3년 전쟁과 대한민국 건국 및 발전의 거센 흐름 속에서, 꿋꿋이 군인의 길을 택한 그의 삶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엿볼 수 있다. 백선엽은 6·25전쟁 3년 동안 모든 전투와 국면(局面)에 등장한다. 김일성 적화야욕을 결정적으로 꺾은 다부동 전투, 북진과 평양 입성, 중공군과의 첫 전투, 중공군의 기습을 분쇄한 대관령 전투, 빨치산 토벌작전, 휴전회담 한국대표 등에 빠짐없이 등장한다.
백선엽은 독립운동가 조만식 선생의 비서실에서 근무하면서 30대 초반의 동족상잔의 피바람으로 몰아넣었던 김일성과 마주쳤던 일화, 6·25 전투 과정, 남로당으로 몰려 처형대의 이슬로 사라질 뻔 했던 박정희를 구한 일화, 지리산에서의 빨치산 전투, 한국과 미국의 갈등 상황에서 이승만과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설득했던 일화 등이 소개된다.
백선엽은 한국 현대사의 거인이다. 61년 전 한국전쟁의 격렬했던 전투에서 수많은 승리를 거두었다. 국가의 존명이 달린 역사의 현장에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며 ‘자유에 공짜는 없다’는 말을 몸으로 보여주었다.
그는 다부동 전투에서 1대대 장병들을 앉게 하고 “지금까지 정말 잘 싸웠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물러설 곳이 없다. 여기서 밀린다면 우리는 바다에 빠져야 한다. 저 아래에 미군들이 있다. 우리가 밀리면 저들도 철수한다. 그러면 대한민국은 끝이다. 내가 앞장서겠다. 내가 두려움에 밀려 후퇴하면 너희들이 나를 쏴라. 나를 믿고 앞으로 나가서 싸우자.”는 연설을 했다.
그리고 백선엽은 허리춤에 있던 권총을 빼들어 그는 땅바닥에 11연대 1대대 장병들의 중간을 가르면서 앞으로 달려 나갔다. 산 위로 수많은 적들이 넘어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뒤 따라오던 부하들이 따르는 “사단장님, 이제 그만 나오세요. 우리가 앞장서겠습니다.” 사단장을 제치고 부하들이 거센 함성을 외치면서 11연대 1대대 장병들이 다시 진격했다. 산등성이를 넘어오던 적들은 그런 기세에 밀려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고 있었다. 그는 전쟁 영웅이었으나 결코 정치 바닥에는 눈길을 주지 않고 군인의 길을 끝까지 지켰다.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대한민국, 미국을 대한민국의 주적(主敵)이요, 6.25 전쟁을 ‘북한이 남한을 침략한 전쟁’이 아니라 ‘미국과 소련을 대신한 전쟁’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바른 역사관을 정립해 주고 정신무장을 시킬 수 있는 교제로 활용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