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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파범 ㅣ 여기자 안니카 시리즈 1
리자 마르클룬드 지음, 한정아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나는 <폭파범>하면 KAL기 폭파 사건이 떠오른다. 1987년 11월 29일 바그다드에서 서울로 가던 대한항공(KAL) 858편 보잉 707기가 미얀마 근해에서 북한공작원 김승일과 김현희에 의해 탑승객 115명 전원이 죽은 공중 폭파된 사건이다. 이 사건의 정치적 목적은 북한의 노동당 최고지도부의 지령에 의해 직접적으로 ‘서울 88올림픽’의 개최를 저지·방해하고, 한국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한국내의 사회·정치적 불안과 혼란을 심화시키는 것이었다. 북한이 중동의 국제선 KAL858기를 테러목표로 설정한 것은 해외취업 근로자들이 가장 많이 진출해 있는 중동지역을 선정함으로써 한국의 사회적 혼란과 불안을 야기시키고, 올림픽 참가선수들에게 한국행 항공기에 대한 공포와 위협감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 책 <폭파범>은 스웨덴에서 가장 인기 높은 작가이자 북유럽 최고의 추리 작가 중 하나로 꼽히는 리사 마르클룬드의 작품으로, 범죄 전문 여기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특종을 잡기 위해 시간을 다투는 기자들의 모습과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사회의 모순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은 그녀를 세계적인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여기자 안니카 벵트손」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다.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둔 얼어붙을 듯 추운 12월의 새벽 3시 22분, 곤하게 잠을 자고 있던 안니카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올림픽 준비가 한창인 스타디움에서 폭발 사건이 발생했으니 어서 현장으로 달려가라는 편집장의 말에 안니카는 따뜻한 침대와 사랑하는 남편의 품을 뒤로 하고 취재를 위해 현장으로 달려간다. 폭파 현장에서는 수십 조각으로 찢겨나간 시신이 발견되면서 도시는 올림픽에 대한 테러의 공포에 시달리지만, 안니카는 테러에 의한 폭발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사건을 접근, 기사화한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또 하나의 경기장 폭발 사고와 그로 인한 피해자가 속출하자 안나카는 큰 충격에 빠지게 된다.
이 작품은 언론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이 자세하게 소개된다. 작가는 긴박하게 돌아가는 신문사의 모습과 함께 특종을 잡기 위해 시간을 다투며 조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정치적, 사회적 구조의 모순을 흥미롭게 그려낼 뿐만 아니라 직장 내 남녀 차별에 대해서도 비중 있게 다루어 여성들이 감내해야 하는 부분들을 이해하도록 하고 우리의 삶을 다양하게 조명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영하권의 혹독한 날씨와 고립된 지형 탓일까, 이야기에서 특유의 냉기가 흐른다. 북유럽 추리소설은 고전적인 방식의 경찰 추리물보다 사건을 둘러싼 인물의 심리 추리가 많다. 북유럽 특유의 섬세한 심리묘사가 펼쳐지면서 사회구조 문제도 짚고 넘어간다. 후반부에 들어서야 범인이 밝혀지는 영미권 미스터리와 달리 중반부에 이미 범인의 실체가 드러나고 그때부터 진정한 추리가 시작되는 것도 백미다.
북유럽 미스터리는 낮은 지명과 인명으로 한국독자들에게는 아직 낯설다. 하지만 이 책이 30개국 이상 출간되고 전 세계 900만부 이상 판매기록을 세우므로 각국에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으므로 북유럽발 초대형 미스터리 소설이 더욱 인기가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을 통해 북유럽만이 가지고 있는 아주 독특한 스릴러 맛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은 가무른 땅에 단비가 내린 것처럼 기분 좋은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