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등척기 - 정민 교수가 풀어 읽은
안재홍 지음, 정민 풀어씀 / 해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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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몇 년 전에 금강산을 다녀온 후 백두산이 가고 싶어서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중국의 북경으로 갔다. 북경에서 다시 비행기를 타고 연길로 가서 대우호텔에서 잠을 자고 아침 일찍 백두산으로 향했다. 연길에서 용정으로 가는 길목에는 혜란강이 흐르고 그 앞으로 우뚝 선 봉우리 위에는 일송정(一松亭)이 서 있다. 용정시를 거쳐 다시 화룡시를 지나 청산령을 넘어가면 안도현의 송강진에 이르고 이곳에서부터 백두산까지는 다시 포장도로가 이어진다. 백두산 밑의 마지막마을이 ‘이도백하’ 인데 여기에 식당, 온천, 여관이 있어서 백두산을 찾는 모든 관광객은 이곳을 경유해야 한다. 중턱에 오를 제 햇볕이 쨍쨍해도 정상에는 안개가 자옥하여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천지를 보는 것은 열번 올라서 두 번이 어렵다고 하는데 마침 날씨가 좋아서 백두산을 볼 수 있었다.

'신선한 겨레의 숨소리 살아 뛰는' 그곳에 올라 '만주 벌판 말을 달리던 투사들의 마음의 고향'을 만나고, 천지에 서서 ‘백두에서 한라, 한라에서 백두’를 고래고래 외치며 눈물을 절절 흘렸다.

<백두산 등척기>는 민세 안재홍이 1930년 7월 23일 밤 11시 경성역을 출발해 백두산 산행을 마치고 8월 7일 오후 5시 기차로 북청역을 떠나기까지 16일간의 여정에 대한 기록이다. 이 기록은 이후 1931년에 <조선일보>에 34회에 걸쳐 연재되며 많은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민세 안재홍을 살펴보면서 참으로 복잡한 인생을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제에 의한 아홉 차례의 투옥과정에서 7년이 넘는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일제에 결코 굴하지 않았던 민세 안재홍(1891~1965)은 백두산 천지의 신비경을 이렇게 노래했다.

‘선연(仙緣)’이 아니고서는 호반에 내려가서 천지의 자애로운 아름다움을 맛보기가 어렵다. 그러나 민세는 그 진경을 맛보았다. 하지만 그도 “비바람이 바깥 둘레의 산을 흔들고, 구름 안개가 호수 어귀의 한 면을 잠기게 하여 소용돌이치는 상서로운 구름 안개가 잠깐씩 열리는 틈으로 영롱한 수면을 겨우 보는” 숭엄한 아름다움까지 마주하지는 못했다.

이 책은 1931년 간행된 [백두산 등척기]를 풀어쓴 것이다. 당시 일간지에 연재되었던 난해한 한문투의 글은 한글세대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에 대해 풀어 읽은 정민 교수는 “근대 시기의 글이 오늘의 독자와 만나기 위해서는 번역의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저 한자어를 풀이하거나 주석을 다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문장의 결까지 바꿔 그 알맹이를 알차게 소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번『백두산 등척기』를 풀어 읽기 위해 내용은 빼거나 보태지 않고, 한자말은 풀어쓰고, 긴 글은 짧게 끊고, 구문은 현대어법에 맞게 바꾸고, 한 문장도 남김없이 다 바꾸고 하나도 빠뜨림 없이 그대로 실어 80년 시간의 장벽을 뛰어넘어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었다.

이 책은 백두산의 아름답고 장엄한 풍경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저자의 역사에 대한 해박한 식견과 통찰을 바탕으로 백두산 정계비에 얽힌 국경문제, 간도를 둘러싼 분쟁, 변경 곳곳의 각종 전설과 풍문, 동식물의 생태 등을 간결하면서도 힘 있는 문체 안에 균형감 있게 담아내 기행문으로서의 감동뿐 아니라 사료적인 가치도 큰 작품이다. 부록으로 작가의 연보와 주요 활동 및 업적을 기록하여 좌우합작의 민족통일국가 수립에 헌신한 정치가 민세 안재홍 선생을 오늘 우리들에게 부각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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