닳아지는 것들
가재산 지음 / 작가와비평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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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아마도 이 말을 한 사람은 살만큼 살면서 극한을 경험한 사람일 것이다. 극한을 경험한 사람에게서는 뭔가가 나온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얻는 성과물은 제 몸과 마음을 닳게 한 보수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수명을 다한다는 것은 그렇게 자신을 닳게 해 앙상하게 끝을 드러낸 모습일 뿐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은 물론이요 중요한 것들을 하나씩 잃어버린다는 의미란 생각이 든다. 어떤 이는 사람이 나이를 먹는 것은 늙어가는 게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아마도 이런 표현은 사람이 나이를 먹는 것은 경륜이 쌓여, 원숙하고 지혜로워진다는 의미인 듯싶다.

 

이 책은 25년 동안 삼성물산과 회장 비서실, 여러 계열사에 몸담으면서 경리, 관리에서부터 인사 교육을 거쳐 경영혁신 업무를 수행하였고, 현재 한류경영연구원원장으로 활동하는 가재산씨가 하루하루 서서히 녹슬어 가기보다 닳아 없어지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인간적인 다짐과 바람을 담고 있다.

 

이 책의 닳아지는 것들에서 저자는 편리한 전자식 기계로 대체되거나 삶의 방식이 달라져 중고시장이나 민속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골동품들인데, 숫돌, 맷돌, 빨래판, 고무래, 부지깽이 같은 것들은 닳아 없어지거나 얇아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간의 육체도 닳는다고 했다.

 

복음에 대한 열정만을 가지고 56년이라는 짧은 인생을 살았던 조지 휫필드는 좀 쉬면서 하라는 사람들의 말에 녹슬어서 없어지느니, 차라리 닳아서 없어지는 것이 더 낫다. 나는 닳아서 없어지는 망치가 되지, 녹슨 망치가 되고 싶지 않다고 한 말이 생각난다.

 

육신은 무리하여 닳을지라도 정신은 녹슬지 않는 거룩한 마모로 삶을 산 이태석 신부, 법정스님이 부럽다. 오래된 것은 새것, 어린 것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이 있다. 잘 늙어야 한다는 것은 세월 가는 대로 나이만 먹는다고 잘 늙는 것은 아니다. 잘 늙었다는 것은 비바람 속에서도 비뚤어지지 않고 꼿꼿하다는 말이다.

 

이 책은 316페이지로 52편의 수필이 담겨 있는데, 모두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마음의 문에서는 추억의 부지깽이, 마음의 문, 사랑의 거리두기 등에 대해 이야기 한다. 2삶의 터닝 포인트에서는 내 삶을 바꾼 한 권의 책, 살아서 치르는 장례식 등을 다루고 있다. 3닳아지는 것들에서는 쓰면 닳아지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4마음의 날개에서는 가정교사의 추억, 디지털 세계로 떠나는 마지막 열차에 대해서 다룬다. 5낯선 삼미三味여행에서는 삼미三味 찾아 떠나는 여행, 인생 후반을 사는 333 법칙, GPT 세상 생존법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6추억의 두레박에서는 아버지의 호통, 빛 바랜 사진 한 장에 대해서 알려 준다.

 

10년 만의 폭염이라는 찜통 같은 더위에 계곡이나 바다로 휴가를 떠나지 않고 방에서 박혀 지내는 방콕족들처럼 간이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재미가 솔솔하다. 책장을 넘기면서 나 자신도 하루하루 서서히 녹슬어 가기보다 닳아 없어지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고 결심해 본다. 삶의 방향을 잃은 채 어느 길로 가야할지 막막한 분들에게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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