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쪽

 

    그 몇 해 전 초파일에는 사람들과 함께 분황사 탑돌이를 하고 스님의 인도로 캄캄한 황룡사지를 등으로 밝히며 경을 외우고 목탑지를 돌았다. 어둠에 묻힌 빈 들판에서서 목탁

리를 들으며 아스라한 별을 바라보니 문득 신라로 돌아간 듯했고, 나는 감동에 몸을 맡기고 경덕왕 한기리의 여자 희명처럼 소원을 빌었다. 다섯 살의 아이가 눈이 멀자 아이를 시켜 노래를 지어 분황사의 천수대비 앞에서 빌었더니 드디어 눈을 뜨게 되었다지.

 

    모든 진심은 천심에 닿으소서."

 

 

 

 

 

 

 

 

 

 

 

 

 

 

 

 

 

 

 

 

 

55쪽.

 

    경내만 이만 사천여 평이 되는 드 넓은 터를 신라인이 지름 칠 센티미터의 봉으로

  일일이 다진 자국이 드러났는데, 불심의 봉 자국으로 덮인 땅이라니, 황룡사지에 서

  있으면 경건하기까지 한다. 나는 영혼을 얼마나 다졌던가?

 

 

 

    팔십 미터가 넘는 황룡사 구층 목탑의 기단부. 기단부만 방 한칸은 족히 넘겠다. 초석

  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저 넓이에 팔십 미터...... .표현력이 모자라 아쉽다.. 목탑만해

  도 이정도니 금당과 회랑 제대로 갖춘 황룡사지는...... . 작가의 말대로 보고만 있었도

  경건해진다. 

 

  황룡사지에서 분황사로 들어가는 길.

 

 

  황하코스모스를 본 기억이 없다. 경주에서 처음 봤다. 계림 옆은 황하 코스모스 밭.

 

 

 

  한밤의 첨성대와 계림

 

 

 

 

 

      빈틈이 많은 곳, 그 빈틈이 그대로 비워져 있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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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성에 봄이 무르익으면 맨발로 걸으리라'

  

     산이라기엔 낮은 반월성 둔덕을 오르내리며 늘 가던 오솔길을 따라가니 억새잎들이 내 키만

   큼 자라서 시야를 가린다.

  

     늘 그렇듯이 월성에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상수리 나무 숲에 앉아 있다가 왕궁터를 나선다.

 

     반월성을 경계짓는 둔덕을 따라가니 아래로 남천이 보인다.

 

 

 

      구불구불한 소나무들이 하늘을 가린 계림. 

      개울소리를 들으며 금궤가 걸린 소나무가 어느 나무였을까?  궁금해졌다.

 

      계림을 나오니 월성 둔덕이 보이길래 걸어가 본다. 안내판을 보니 초승달처럼 휘어있다. 둔 

    덕 바깥쪽의 길을 따라 걷다보니 숲이 나온다. 드리워진 나뭇가지들 사이로 맑은 하늘이 보이

    고 햇빛이 내리쬔다. 새벽 안개가 내렸을 때 걸어도 좋겠구나. 내일 새벽에 다시 와야겠다.

    고향에서 학교 다닐 때, 상강 무렵 쌩한 바람을 맞으며 서리가 내린 길을 걸을 때가 생각난다.

    그때만큼의 상쾌함은 아니겠지만 여기에서 새벽의 상쾌함을 느끼고 싶었다.

 

       좀더 일찍 나왔어야 하는데 때를 놓쳤다. 이미 해가 떠올라 공기의 상쾌함은 조금 덜했지만

      아침 햇빛의 신선함이 좋다.

   

 

 

 

 

 

 

     월성에 와서 관광객들은 "아무 것도 없네"하고 발길을 돌리지만 비어 있기에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는 신랑 왕궁터를 나는 즐겨 산책한다.

 

 

      작가의 말처럼 이 곳은 비어있는 아름다움이 있다. 비어있는 왕궁터, 사라진 궁궐들이 어떤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사람들의 발길을 저절로 불러들일 것 같다.

 

      도심에 이런 곳이 있다니 이곳 사람들에게는 행운이 아닐까? 

 

      벚꽃 만개한 봄도 아니고 단풍이 화려한 가을도 아닌 어정쩡한 때라서인지 관광객들이 많지

    않아서 낮에도 한가로이 편히 걸을 수 있었다. 경주에 다시 온다면 아마도 이날 아침 때문인지

    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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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도를 사랑한다 - 경주 걸어본다 2
강석경 지음, 김성호 그림 / 난다 / 201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근원적"

 

   

    '도심 한가운데 솟아 있는 능은 나의 뇌리에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겼다. 대부분의 묘역이 산

   이나 들판 등 주거지와 멀리 떨어진 곳에 조성돼 있지만 경주의 거대 능들은 월성 가까이 도심

   인 황남동과 노서동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인류의 가족으로 더불어 있다니.

   고분들은 인고의 시간을 견디며 이지러지기도 하고 주검은 어느덧 대지로 돌아가 둔덕 같은 자

   연자체가 되어 있었다. 생멸의 순환과 우주의 질서를 보여주는 풍경은 근원적이어서 강렬하게

   가슴에 다가왔다.

 

    

     시내에 있는 공원이라 시민들이 오가는 휴식처인데 오랜만에 들렀더니 나무가 많이 자란 것

   같다. 어린 왕자가 그린 보아뱀- 뱃속에 코끼리가 들어 있는 - 같은 쌍분에 사람들 발길로 하얗

   게 가르마가 난 풍경이야말로 공원답다. 고분공원에서 아이들이 쌍분에 오르내리는 광경은 흔

   히 볼 수 있지만 뜬금없이 관리인이 나타나 목청을 높이며 저지할 때는 우스꽝스럽기까지 하

   다.

 

 

 

 

  작가님은 인도에서 삶의 본질을 보고 경주로 향했고, 경주 도심에 솟아 있는 고분들의 풍경은 근원적이었다고 한다. 처음부터 작가님이 말하는 '근원적 풍경' 뭘까 궁금했다.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는 것, 죽음도 삶의 과정 중에 하나라는 것일까?  죽음이라는 과정이 끝나면 또 다른 과정이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주 만물을 삶과 죽음으로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대릉원, 계림, 노서동의 고분들을 쳐다보면서 여기에 사는 사람들이 과연 땅의 주인이라고 자리를 잡은 시기만도 천년 전인데 ..... 삶과 죽음의 구분이 의미가 없는데 주인을 논하다니 어리석다.

 

  경주 도심의 고분들은 정겨웠다. 고분 하나 하나의 능선은 물론, 고분들이 겹치면서 만들어 내는 능선도 아름다웠다. 그리고 사람들의 발길 때문인지 정겨웠다. 노서동 고분군인가? 큰 고분 앞에 앉아서 책을 읽는 어르신, 고분 옆에서 천막을 치고 동작을 맞춰가며 줄다리기 줄을 만드는 아저씨들, 내물왕릉 옆에서 공놀이를 하는 아이와 아빠가 정겨웠다. 이들에게 고분은 신기하거나 무서움의 대상이 아니라 동네 가로수 같은 것이 아닐까? 이런 풍경들이 근원적인 풍경이 아닐까?

 

  천오백년 전에 고분이 완성되었을 때 능 주변에 울타리를 만들고, 일부러 나무를 심었을까? 그런 것들이 없었을 것 같다. 길을 오가면서 자연스럽게 두손 모으고 허리를 조아리지 않았을까?

 

  고분 30기가 모여있는 대릉원을 산책하며, 고분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풍경을 곳곳의 조경수들이 망치고 있었다.

  대릉원을 관람객을 받기 위해 공원으로 만들면서 심은 것이라면, 처음으로 되돌리는 것이 어떨까? 그렇게 치울 수없다면 몇 그루라도 뽑아내면 좋겠다.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이라면 할 수 없지만......나만의 생각인가?

 

 

 

 

 

 

 

 

    이 나무 세 그루의 사연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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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석경 작가님은 '그분'이 아니었다면 이름만 아는 작가였을 것이다.

 

 

    2008년 5월,

 

    하관을 한뒤 흙을 덮고 달구질이 시작되었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어  달구질

   을 함께 한다. 그 중에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었다.

   

     머리를 스카프로 감싸고, 어두운 정장이 아닌, 파란색 이었나 그런 색 웃도리를 입고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6년 전이라 선명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차림새와 몸짓이 좀 남달랐다. 보고

   있자니 동행했던 분이 '강석경 작가 아니야?' 한다. 아...... . 여기서 저렇게..... 그분과 남다른 

   인연이 있나 하는 생각은 잠시, 몇분간 바라 보았다.

     가시는 분에 대한 애통함이 아니라 훨훨 가시라고, 훌훌 벗어던지고 넓은 창공으로 훨훨 가시

   라는 기원 같은 몸짓이었다. 동행도 강석경 작가일 거라고 말했을 뿐인데 왜 이 분을 강석경 작

   가님이라고 믿었을까?

 

     다음달, 그분에 대한 글이 잡지에 실렸다. 그 글 중에 강석경 작가님의 글이 있었다. 글 끝에

   그날 그 시간의 광경이 나온다. 그리고 그분과의 인연이 실려있었다. 

 

 

   "처음 뵈었던 30여 년 전 그날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그 존재만으로 가슴을 흔드는 이,

   내 생에서 이처럼 흠모한 사람도 없고, 이처럼 전적으로 한 인간을 좋아한 적도 없다."

 

   "그날 기억나는 것은 겁없이 문학의 세계에 들어선 내게 엄정하면서도 연민에 찬 표정

   과 선생이 손수 마당에 깔아 만들었다는 돌길이다. 널직한 돌을 딛고 고즈넉한

   마당으로 들어서면 동산으로 이어지는데......"

 

   "오리나무숲 바람 소리와 개울 물소리 들리는 외딴집. 스스로 택한 유배지 같은 이곳

   에서 그 얼마 뒤 선생은 더 멀리 더 깊이 터를 옮겼고, 나는 우연치 않게 이곳으로 이

   사 갔다. 선생이 이미 떠난 뒤지만 그 집 앞을 그냥 지나지 못하고 대문 틈으로 큰돌이

   깔린 마당을 들여다보곤 했다."

 

 

      이곳이 그분 손수 돌을 깔았다는 그집, 작가님이 들여다보곤 했다는 곳이다. 30년전과는 전

    혀 다른 모습이겠지.

 

       

          

 

     작가님은 어느날 이후,  가장 부러워했던 사람이 그분의 딸이었다고 했다.

     그 글을 읽은 이후, 내가 가장 부러워했던 사람은 작가님이었다.

 

 

     그후에 그분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이나 알 수 있을까 싶어 작가님의 책을 찾기 시작했다. 그

    래서 읽은 책이 '능으로 가는 길'과 '경주 산책'이다. 이 책에 몇 구절 그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단 몇 구절이지만 울컥했다. 그 부분만 읽고 또 읽었다. 이달에 나온 '이 고도를 사랑

    한다'에도 나온다. 아직도 이렇게...... . 고맙고 고마울 따름이다. 책을 들고 경주를 찾아갈

    이유가 생겼다.

 

 

     '경주산책'과 '능으로 가는 길', '이 고도를 사랑한다'를 읽다보니 작가님이 왜 그분을 그리 흠

    모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세상과 사람들과의 대면, 자신과의 싸움에서 자기를 지

    키고, 자신의 예술혼을 지켜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생명에 대한 연민과 사랑 때문에 그분

    을 흠모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이런 예술혼과 생명에 대한 사랑은 작가님의 작품에서도 느

    껴진다. 그런 느낌들이  묻어나는 구절들은 필사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이럴때마다 생각

    한다

     

       "좋아하는 작가들의 마지막 글을 읽을 수 있을까?"

    

       이게 안되면 너무 억울할 것 같다.

     

      아는 동생때문에 작가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언니, 그 작가님 볼 수 있어요. 올래요?" 했을 때 흥분되었다. 그분과의 인연으로 시작되었

     지만 작가님의 작품을 읽으면서 특히 작년에 출간된 '신성한 봄'을 읽고는 한번 뵙고 싶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느끼고 싶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

     가? ... 너무 간절해서 그랬는지 취소되고 말았다.

 

       그때 작가님에게 전하려고 사진  한 장을 준비했었다. 내가 직접 찍은 그분의 사진. 활짝 웃

     고 계신다. 역광이라 색은 선명하지 않지만 환하게 웃고 계시는 그분의 모습이 좋다. 보는 분

     들이 좋다고 한다. 기회가 닿는다면 작가님에게 전하고 싶다.

 

     다음주에 경주에 갈때 책에 끼워서 가야겠다. 어느 고분 앞에서 우연히 뵐지도 모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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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스톤갭의 작은 책방 - 우정, 공동체, 그리고 좋은 책을 발견하는 드문 기쁨에 관하여
웬디 웰치 지음, 허형은 옮김 / 책세상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헌책방으로 시작해서 빅스톤갭의 사랑방이 되어가는 과정을 재밌게 들려준다. 책이 사람의 이야기이듯, 책방도 사람으로 인해 훈기가 가득해진다. 책으로 시작했지만 사람으로 끝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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