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초록은 즐겁다 - 테마파크 식물 총감독의 정원 이야기
이준규 지음 / 시공사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원을 정원답게,
에버랜드의 조경 디자이너가 풀어놓는
정원의 성장 에세이.


이상하다.
에버랜드의 정원이라면 대규모 공원과 맞먹는데 왜 '조경'이 아닐까? 저자는 조경을 전공했지만 정원을 공부하고 싶은 열망으로 영국 유학을 떠났다. 현재 그는 정원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 에버랜드를 '대형 정원 프로젝트'로 이끌고 있다. 그 흥미진진한 변화가 고스란히 책에 담겼다.


책장을 넘기면서 '정원'이라는 다정한 이름이 왜 테마파크와 어울리는지 깨달았다. 저자는 시종일관 정원사의 마음이었다. 거대한 테마파크를 관리하는 엄격함보다 계절의 변화를 예민하게 살피고, 사람과 자연이 함께 자라는 소통의 철학을 중시했다. 그는 영락없이 '정원 가꾸는 사람'이었다.


"시인이 쓴 시구절을 읽으며
각자의 감성을 통해 다른 감정을 느끼듯이
정원사가 고른 식물을 통해 각자가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다양함을 상실한 정원,
과정을 보여 주지 못하는 정원,
성장하지 않는 정원은
정원다움을 잃어버린 그냥 공간에 불과한 것이다."
- 프롤로그


저자가 만드는 "정원은 멋진 것을 소유하는 게 아니라 즐거운 문화를 만들어 가는 곳(16면)"이다. 가장 자극적인 공간이라 할 수 있는 테마파크는, 정원이 가장 정적이지만 살아 성장하는 즐거운 문화일 수 있음을 대중이 체험할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장소였다.


"순간의 쾌락을 위해 강렬하게 소비되고 장렬히 사라지는(15면)" 식물이 아닌, 함께 성장하고 오래 동행하는 생명의 즐거움을 이 책은 가르친다.


"꽃도 사람이 있어야 꽃이다"
정원 콘셉트를 고민하던 저자에게 김용택의 시구절이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는 울타리를 제거하고 경계를 허물어 액자에 갇혀있던 공간을 사람과 꽃이 가까이에서 소통하는 정원으로 바꾼다. 우려하던 화단의 훼손은 크지 않았고 관리비 증가나 컴플레인도 없었다. 오히려 사람들은 꽃을 가까이서 보게 되자 더욱 조심해서 사진을 찍고 산책을 했다. 정원의 혁신이었다.


"정원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정원의 본질은 한철 아름다움이 아니라 과정의 아름다움에 있었다. 정원은 멈춰 있는 물건이 아니라 움직이는 생명체다. 씨앗에서 싹이 트고 잎이 무성해져 꽃이 피고 시드는 모든 모습이 아름다운 것이었다.


330일 넘게 이로움을 주는 은행나무를 고작 한 달 남짓 열매에서 고약한 냄새가 난다고 흉물로 여겼다. 길어야 한 달도 안 되는 꽃에만 집중하고, 잎과 줄기의 아름다움은 볼 줄 모르던 지난 날을 반성했다. 누렇게 바랜 잔디의 생동감, 말라버린 겨울의 나무 줄기와 잎, 시든 꽃이 주는 겨울의 색감과 질감에 눈뜨게 됐다.


"분명 시들었는데 아름답고,
화려하지 않지만 매혹적이었으며,
모노톤이면서도 매우 선명한 느낌의
겨울 경관을 만드는 요소였다.
이렇게 영국의 겨울은 나에게
식물이 가진 아름다움의 영역을 넓혀 주었다."
- 79면



"모래 한 알에서 세상을 보고
들꽃 한 송이에서 천국을 보려면,
그대의 손바닥에 무한을 쥐고
한 시간 속에 영원을 담아라."
- 윌리엄 블레이크


식물을 돌보는 이야기 같지만 사실 이 책은 세상을 보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대개 화려한 결과만 보지만 정원이 비춰주는 세상은 나고 자라서 죽는 모든 과정 그 자체였다.


정원이 곧 자연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정원은 흙과 미생물, 식물과 곤충, 정원사와 가꾼 정원을 즐기는 자가 모두 연결되어 협업한 관계의 결과였다.



​손바닥 위에 무한을 쥐어본다. 한 시간 속에서 영원을 발견하라는 시구처럼, 오늘 내 곁에 가만히 싹튼 초록을 들여다본다. 세상 모든 초록은 즐겁다. 그 즐거움을 발견할 줄 안다면 우리는 이미 천국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동사'로 활기차게 움직이는
우리의 정원에 봄이 오고 있다.
이 봄은 분명 더 눈부실 것이다.


#서평단 #이준규 #세상모든초록은즐겁다 #시공사 #정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죄책감 내려놓기
도리스 볼프 지음, 장혜경 옮김 / 생각의집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당신의 마음을 짓누르는 돌 하나가 있다면"

내 마음에도 돌이 있다. 그릇된 마음을 품고 있는 내가 나를 짓누른다. 무겁고 버겁지만 버려지지 않는 돌을 짊어지고 살다 보면, 죄책감이 올라올 때마다 내가 얼마나 나쁜 인간인지를 확인한다. 그 컴컴한 자리에서 나는 스스로를 처벌하며 고통받아 마땅한 사람으로 굳어간다.


"그들의 마음 저 깊은 곳에는
자신은 문제가 많은 나쁜 사람이기에
사랑을 못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 39면


이 책은 "특정 가치관이 우리를 단죄하기 때문에" 죄책감이 생긴다고 설명하며 기준이 된 가치관의 정당성을 되짚는다.


그것들은 대개 부모와 어른들, 종교와 사회에서 왔다. "고맙습니다! 해야지. 인사 안 하면 엄마 창피해." 부모들은 죄책감을 교육의 수단으로 이용한다. "몇 학년인데 아직 이것도 몰라?" 교사들 역시 죄책감으로 공부를 독려한다. 법, 광고나 매체, 문화 규범까지 온갖 규칙들이 우리 안에 넘쳐난다.


세상에 일조하는 사회 일원이 되려면 규칙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완벽할 수 없다. 실수하고 잘못한다. 그 행동은 수억만 가지 행동 중 하나에 불과하다. 옳지 못한 '행동'을 했다고 인간으로서의 '자기 가치'와 '정체성'까지 훼손해서는 안 된다.


오랫동안 그걸 몰랐다. 행동과 정체성을 분리하지 못했다. 죄책감은 '나'라는 존재 자체를 부끄러워하는 수치심으로 변질됐고, 자기비난을 일삼는 열등감이 되었다. 이 일련의 과정을 직시하니 죄책감의 무용함을 분명히 깨닫는다.


죄책감을 가진 덕분에 현재의 문제를 외면했다. 마음껏 나를 미워하며 용서하지 않아도 됐다. 스스로 벌하니 잘못된 행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도덕적이고 선한 인간이라는 증거로 삼으며 자기 연민에도 빠질 수 있었다. 타인의 규칙을 따르면 되니 나만의 규범을 만들려 애쓸 필요도 없었다. 이 얼마나 아늑하게 정체된 삶인가.


저자는 "자기 대화"를 바꾸라 강조한다. 말에는 놀라운 힘이 있다. 나 자신에게 들려준 말대로 내가 된다. 죄책감은 우리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자신과 나누는 부정적 대화의 결과이다. 상황을 잘못 평가하고 결론 내린 탓이다. 그러니 자신과의 대화를 새롭게 고쳐야 한다.




정말 어느 정도 죄책감을 내려놓은 것 같다.
객관적인 눈으로 죄책감의 부정적 파급력을 확인한 덕분이다. 자기연민으로 무턱대고 나를 두둔하는 대신 내 잘못인지 아닌지를 구분하게 되자 왠지 자신감이 생겼다.


그것은 곧 죄책감으로부터의 해방이며, 개선과 해결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자, 무엇보다 자기 용서와 자기 사랑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보다 깊이 박혀있는 수치심과 열등감, 생각의 오류들을 발견할 수 있어 기뻤다. 알게 되자 뽑아내고 싶었고, 책을 여러 번 읽으며 내 생각으로 바꿀 수 있었다.




돌은 여전히 곁에 있다. 다만 예전처럼 나를 짓누르진 않는다. 돌의 무게가 줄어서가 아니라 내 시선이 달라진 덕분이다. 죄책감이 치밀 때마다 묻는다. '이것은 진짜 내 목소리인가, 오래전 누군가가 심어놓은 목소리인가. 나를 나아가게 하는가, 제자리에 붙잡아 두는가' 이 질문만으로도 돌이 더 가벼워진 것 같다.


돌이 놓인 자리에도 햇빛이 비친다. 돌 곁에 용서와 사랑의 싹이 돋아난다. 이 봄에 참으로 어울리는 장면이다.



​#도서지원 #죄책감내려놓기 #도리스볼프 #모스그린출판사 #죄책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려워할 필요 없는 삶에 대하여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노윤기 옮김, 로빈 워터필드 편역 / 푸른숲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평단

명상록의 지혜를 선별해 엮은 이 책을 읽으며 그동안 내가 스토아 철학을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마음 편한 삶이 최선이란 말인가?' 하는 질문을 떠올리며, 속 편하게 내면의 평온을 추구하는 철학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상황은 버려두고, 현실에 자족하며 통제할 수 있는 내면을 수양하라는 철학은 체념이 아니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무려 로마 제국의 황제였다. 그는 19년을 통치하며 대부분을 전쟁터에서 지냈다.


반란과 사투가 반복되는 전장에서 단지 마음 편하게 살고자 매일 밤 일기를 썼을 리 없다. 내가 무언가를 놓친 게 분명했다.



현대 철학이 '나는 누구인가' 정체성을 묻는 것과 달리 고대 철학은 '어떻게 올바르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한다. 정체성은 이미 정해져있었다. 우주는 이성적 질서로 이루어져 있고, 인간은 그 안에서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다. 우주의 질서에 합당하게 사는 것이 인간의 의무였다.


"우리는 진심을 다하여 옳은 일을 하고,
옳은 말을 해야 한다."
- 69면

"고귀한 인격을 가진 사람은 이러하니,
매일을 마지막 날처럼 살고,
매사에 우왕좌왕하지 않고,
일상에서 게으르지 않고,
헛된 꾸밈이 없는 삶을 산다."
- 71면


우주의 질서를 믿고 덕 있게 사는 것이 인간의 길이라면 평안은 목표가 될 수 없다. 쓸데없는 감정으로 에너지가 소비되는 것을 막고 통제력을 발휘해 정의로운 선택, 곧 "올바르게 행동" 하는 것을 중시했다. 개인의 인생을 중심에 두지 않고, 우주적 관점으로 인간을 바라보며 자연의 일부로 정의한 것이다.


"사물을 바라볼 때는 언제나 그것이
우주라는 거대한 체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 78면


관점을 바꾸자 스토아 사상이 용기와 겸손으로 읽히기 시작했다. 인간의 한계를 겸허히 인정하고, 죽음과 고통마저도 자연의 수많은 이치 중 하나로 여기며 당연한 과정으로 담담히 받아들인다. "우리 삶이 끝나는 것도 결코 우리에게 해롭지 않다. 삶이 끝나는 일은 적당한 우주의 시간에 일어나는 선하고 조화로운 일이다." (49면)


어찌할 수 없는 폭풍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질서를 잡고,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묵묵히 이행하는 것, 그것이 스토아적 삶의 정수였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 세상 일을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을 버릴 때 진정한 자유가 시작되고, 그렇게 올바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동이 모이면 현실은 변할 수밖에 없다.


"하루를 시작할 때 이렇게 다짐해라.
나는 오늘 오만한 사람과 불충한 사람과
비열한 사람과 배신하는 사람과 사악한 사람과
이기적인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이 그러한 사람이 된 이유는
선과 악에 무지했기 때문이다."
- 147면


황제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매일 자신을 성찰하며 멘탈을 훈련했다. 모든 권력과 부를 가졌음에도 선하고 성실하고 너그러운 사람의 눈빛을 떠올렸을 그의 밤을 상상해 본다. "오늘 나는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는가?"의 기준을 그는 이성과 덕에서 찾았고, 이는 AI 시대에 혼란과 고통 속을 헤매는 우리에게 고전의 지혜로 남았다.


"너의 믿음과 행위가 이성의 길 위에
머물러 있다면, 그래서 올바른 길로 계속해서
나아간다면, 언제나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 201면


목표 달성, 성장, 성공, 도전을 강조하는 현대에 스토아 철학이 계속 읽히는 이유를 깨닫는다. 불확실성이 큰 시대일수록 통제감이 절실하다. 태도를 다스리고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라는 조언들은 큰 안정감을 준다. 결과보다 성품과 행동의 올바름을 더 중시하는 태도는 성과 중심의 사고가 일으키는 피로를 씻어낸다.


로마의 황제이자 철학가인 아우렐리우스조차 스스로를 일깨우기 위해 매일 기록했다. 우리도 이 고귀한 문장들을 가까이 두자. 스토아의 가르침은 한 번 읽고 이해하는 지식이 아니라, 매일 흐트러진 마음의 질서를 바로잡아 다시 세워주는 오래된 지혜다.


폭풍 같은 세상에서 중심을 잃지 않으려면 지혜를 끊임없이 복구해야 한다. 매일 밤 나의 일기와 황제의 기록을 콜라보해 새로운 명상록을 써보는 건 어떨까.


"너는 지금껏 무수히 많은 고초를 겪었고
그것을 당당히 이겨 냈다는 사실을 기억해라.
이제 네 삶의 서사는 결말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으며,
너에게 주어진 임무도 마무리되고 있다.
네가 목격한 누군가의 훌륭한 행위들을 기억해라.
네가 이겨 낸 허다한 고난들을 기억해라.
네가 고사한 헛된 명예들을 기억해라.
그리고 너에게 무례했던 이들에게 예를 다한
수많은 일을 기억해라."
- 39면


#도서지원 #두려워할필요없는삶에대하여 #명상록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 #스토아학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케임브리지 뇌과학 박사의 천재적 공부법 - 뇌를 알면 공부는 기술이 된다!
줄리오 데안젤리 지음, 김지우 옮김 / 생각의힘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식과 학문,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삶을 향한 나의 사랑이
그만큼 깊었기 때문이다."
-15면

《케임브리지 뇌과학 박사의 천재적 공부법》은
공부와 세상,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뇌과학자가 바치는 '세레나데'다. 저자는 공부의 사랑스러운 진면목을 일깨운다. 그는 진정으로 공부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새벽 1시, 기숙사 지하 회의실에서 가상의 청중을 가르치듯 설명하며 밤을 지새우던 시간은 그에게 천국이었다. 플래시 카드를 셔츠 주머니에 잔뜩 꽂은 채, 강둑을 걸으며 혼잣말로 고성능 분자나 수학 공식을 외우며 20킬로씩 걷기도 했다. "아름다움을 눈으로 마시고, 지식을 소리내어 흡수하는 그 시간은 단순한 공부가 아니라, 삶 그 자체였다." 오페라 <보이지 않는 도시 키테시의 전설>의 달콤한 노래를 들으며 해부학을 공부했던 밤은 잊을 수 없는 황홀한 기억으로 남았다.


공부밖에 모르는 돌연변이의 고백으로 들리는가. 처음엔 나도 그랬다. 하지만 그가 공부한 수많은 날들을 지켜보는 동안 생각이 바뀌었다.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24시간을 사는 똑같은 지구인인데 전혀 다른 차원을 사는 저자의 삶은 작은 충격이었다.(그처럼 살 수는 없기에 큰 타격은 없었다. ^^;;)


공부로 풍성한 즐거움을 누리는 저자의 인생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궁금했다. 그는 어떻게 이토록 순전하게 공부에 빠졌을까?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한다. 저자는 이를 넘어 "知彼知己 百知百愛 (지피지기 백지백애),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경지에 도달한 듯하다. 뇌를 알고, 뇌가 좋아하는 공부법으로 지성을 쌓으며 학습의 진정한 가치를 깨달은 것이다.


나는 이 세상이 프랙털로 보인다. 전체를 이루는 작은 구조는 전체의 구조와 빼닮았다. 뇌에 적용되는 원리가 인간과 세상, 우주로 흐른다. 뇌가 하나의 메타포로서 세상과 우주를 투영한다면, 뇌를 알수록 자신과 세상의 본질을 꿰뚫을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공부의 핵심은 제대로 이해하고
지적 연결 고리를 생성하고 습득한 정보를
자신에게 맞게 재가공하는 것이다.
이런 행위야말로 지성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고,
언젠가는 남들보다 더 멀리 볼 수 있는 시각을 갖게 해 줄 것이다."
-268면


저자는 공부의 재미를 명확히 알고 있었다. 공부의 핵심은 기억해서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접근성", 곧 인출이다. 정보는 뇌에 저장돼 있지만, 꺼내 쓰는 훈련이 부족해 정작 필요할 때 우리가 잘 사용하지 못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기존 지식에 연결고리를 만들어, 단서와 경로를 확장하는 능동성을 저자는 매우 강조한다.



관계적 패러다임으로 작동하는 두뇌의 뉴런처럼, 지식이 복잡한 네트워크로 이어지면 세상이 이해된다. 그 순간 공부는 노동이 아닌 탐험으로 변모한다. 왜 역사가 이런 방향으로 흘렀는지 이해되고, 세상의 패턴이 보이며 인간의 본성을 깨달아질 때 지적 기쁨이 충만해지는 것이다.


공부가 성장의 경험이 되고, 내부 동기로 작동한다면? 공부는 취미이자 삶 자체가 되어 버린다. 공부하는 자로서의 정체성이 세워진다면 그는 평생을 무한히 발전하는 자가 될 것이다.


경험과 기존 지식 위에 고리를 만들어 새로운 정보와 연결하며 나만의 결과를 생산하는 공부를 할 것, 쉬고 싶을 때 쉬어야지 멍청한 타이머가 울릴 때 쉬어야 할 이유는 없으니 포모도로 기법을 따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복습은 매일 하지 말고 전체 공부기간의 10~20%에 해당하는 간격으로 할 것, 온전히 자기 것이 되는 재처리 과정인 "강화"는 무의식적으로 이뤄지기에 쉴 때는 푹 쉴 것, 운동 직후 1~2시간이 기억형성의 골든타임이라는 것까지! 이 책에서 공부에 관해 많은 것을 배웠다. (줄리오 데안젤리 님, 감사합니다!)


평소에 자기 설명과 대화식으로 공부하는 습관 덕분인지 이 책 역시 저자는 독자에게 계속 말을 걸며 대화하듯 서술한다. 방대한 내용이지만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그는 절대 공붓벌레 샌님이 아니었다. 인생의 궁극적 의미는 세상을 떠난 후에 남길 영향에 있다고 믿고, 죽음 이후를 내다보며 최선을 다하는, 그릇이 큰 사람이었다.


많은 독자의 학습에 큰 전환점을 선사할 《케임브리지 뇌과학 박사의 천재적 공부법》을 적극 추천합니다.



#도서지원 #케임브리지뇌과학박사의천재적공부법 #공부법 #학습법 #책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구원에게
정영욱 지음 / 부크럼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영욱의 《구원에게》는 에세이지만 읽다 보면 누군가의 비밀스러운 대화를 몰래 들여다보는 기분이 든다. 사건을 나열하기보다 대화체 구성을 채택해 감정을 요약하지도, 해설하지도 않고, 거의 그대로 펼쳐 놓는다.


""오빠는 언제 가장 행복했어?"
안락한 카페 소파에서 마치 고문당하는 죄수처럼
목을 획 젖히며 수가 물었다.
"음... 세상의 언어로 행복이라 하면 벅참에 가까운 거니까,
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때."
"뭐가 그렇게 복잡해. 그냥 행복할 때가 언제였냐고."
.... (중략)
"감정이 뭔지 배우는 인공 지능 같아. 귀여워."
"그게 너의 언어로는 사랑한다는 말이지?"
- 78, 79면


1인칭 시점의 고백과 관계 속 상처, 성찰이 이어진다. 짧고 직관적인 문장은 감정을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고 장면으로 보여주어 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가 있었다. 스타일리시한 정영욱의 문체는 스테디셀러 에세이스트답게 유려하고 감각적이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그 언제라도
나는 발가벗은 채 누워 있는 완전한 타인의 옆에서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를 사랑하진 않아.
단지 헤어질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숨을 나누는 거야."
- 174면


이 책은 저자의 감정을 공유하는 일에 집중한다. 독자를 안전한 거리의 관찰자로 두지 않고 바로 옆자리에 앉힌다. 감정을 예쁘게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펼쳐 보이기 때문에 목격자가 된 기분이었다.


특히 눈에 띄었던 책의 특징이 또 있다. 변화의 도전이었다.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될 것이다>, <잔잔하게 그러나 단단하게>, <참 애썼다 그것으로 되었다> 등의 전작에서 보인 글과 이번 글은 사뭇 달랐다.


위로와 힐링을 키워드로 대중적인 감성을 선사해온 작가가 이 책으로 더 내밀하고 깊은 사적 세계를 과감하게 공개했다. 팔릴 글을 쓰는 단계에서 호불호를 감수하며 쓰고 싶은 글을 쓰는 단계로 방향 전환을 한 시도가 새롭고 흥미로웠다. 이미 팬을 확보한 작가만이 낼 수 있는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부족한 삶 속에서, 어느샌가
책을 팔아 성공해야 한다는 집착이 생겼다.
그래서 작가와 출판업을 겸하며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기 좋은 위로의 글을 썼다.
......
그러나 그것이 긍정적인 영향만을 남기진 않았다.
그렇게 나에게 글쓰기는 조리나 숙성의 과정 없이
곧장 뜯어 시장에 내다 팔며 연명하는 일로
전락해 버렸다."
- 120면


《구원에게》는 사랑의 기록인 동시에 한 사람이 자기 목소리를 더 치밀하게 파고든 결과물 같았다. 우리는 왜 누군가의 사랑 이야기를 읽는가. 공감이나 호기심 때문일 수도, 혹은 잊고 있던 자신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이 책은 질문을 던지지는 않지만 읽는 동안 지나간 사랑을 떠올리게 만든다. 사랑 이야기에 예전처럼 설렐 나이는 지났어도, 복잡다단한 감정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집요한 문장은 사랑하며 좌충우돌하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게 했다.


"나는 나를 보기 위해 타인 앞에 선다.
나 아닌 이를 마주하는 일은 언젠가의 나를
다시 발견하는 행위이자, 나를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누군가의 언행과 눈빛은 언젠가의 나였고,
또 언젠가의 내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타인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 140면


누군가에게는 낯선 고백일 수 있지만, 사랑의 민낯을 마주해본 이들에게는 이보다 선명한 위로가 없을 것이다. 저자의 변화가 반가운 만큼, 정영욱이라는 작가의 다음 행보가 더욱 궁금해진다.


#도서지원 #정영욱 #구원에게 #망한사랑 #이별극복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