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할 필요 없는 삶에 대하여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노윤기 옮김, 로빈 워터필드 편역 / 푸른숲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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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명상록의 지혜를 선별해 엮은 이 책을 읽으며 그동안 내가 스토아 철학을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마음 편한 삶이 최선이란 말인가?' 하는 질문을 떠올리며, 속 편하게 내면의 평온을 추구하는 철학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상황은 버려두고, 현실에 자족하며 통제할 수 있는 내면을 수양하라는 철학은 체념이 아니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무려 로마 제국의 황제였다. 그는 19년을 통치하며 대부분을 전쟁터에서 지냈다.


반란과 사투가 반복되는 전장에서 단지 마음 편하게 살고자 매일 밤 일기를 썼을 리 없다. 내가 무언가를 놓친 게 분명했다.



현대 철학이 '나는 누구인가' 정체성을 묻는 것과 달리 고대 철학은 '어떻게 올바르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한다. 정체성은 이미 정해져있었다. 우주는 이성적 질서로 이루어져 있고, 인간은 그 안에서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다. 우주의 질서에 합당하게 사는 것이 인간의 의무였다.


"우리는 진심을 다하여 옳은 일을 하고,
옳은 말을 해야 한다."
- 69면

"고귀한 인격을 가진 사람은 이러하니,
매일을 마지막 날처럼 살고,
매사에 우왕좌왕하지 않고,
일상에서 게으르지 않고,
헛된 꾸밈이 없는 삶을 산다."
- 71면


우주의 질서를 믿고 덕 있게 사는 것이 인간의 길이라면 평안은 목표가 될 수 없다. 쓸데없는 감정으로 에너지가 소비되는 것을 막고 통제력을 발휘해 정의로운 선택, 곧 "올바르게 행동" 하는 것을 중시했다. 개인의 인생을 중심에 두지 않고, 우주적 관점으로 인간을 바라보며 자연의 일부로 정의한 것이다.


"사물을 바라볼 때는 언제나 그것이
우주라는 거대한 체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 78면


관점을 바꾸자 스토아 사상이 용기와 겸손으로 읽히기 시작했다. 인간의 한계를 겸허히 인정하고, 죽음과 고통마저도 자연의 수많은 이치 중 하나로 여기며 당연한 과정으로 담담히 받아들인다. "우리 삶이 끝나는 것도 결코 우리에게 해롭지 않다. 삶이 끝나는 일은 적당한 우주의 시간에 일어나는 선하고 조화로운 일이다." (49면)


어찌할 수 없는 폭풍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질서를 잡고,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묵묵히 이행하는 것, 그것이 스토아적 삶의 정수였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 세상 일을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을 버릴 때 진정한 자유가 시작되고, 그렇게 올바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동이 모이면 현실은 변할 수밖에 없다.


"하루를 시작할 때 이렇게 다짐해라.
나는 오늘 오만한 사람과 불충한 사람과
비열한 사람과 배신하는 사람과 사악한 사람과
이기적인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이 그러한 사람이 된 이유는
선과 악에 무지했기 때문이다."
- 147면


황제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매일 자신을 성찰하며 멘탈을 훈련했다. 모든 권력과 부를 가졌음에도 선하고 성실하고 너그러운 사람의 눈빛을 떠올렸을 그의 밤을 상상해 본다. "오늘 나는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는가?"의 기준을 그는 이성과 덕에서 찾았고, 이는 AI 시대에 혼란과 고통 속을 헤매는 우리에게 고전의 지혜로 남았다.


"너의 믿음과 행위가 이성의 길 위에
머물러 있다면, 그래서 올바른 길로 계속해서
나아간다면, 언제나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 201면


목표 달성, 성장, 성공, 도전을 강조하는 현대에 스토아 철학이 계속 읽히는 이유를 깨닫는다. 불확실성이 큰 시대일수록 통제감이 절실하다. 태도를 다스리고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라는 조언들은 큰 안정감을 준다. 결과보다 성품과 행동의 올바름을 더 중시하는 태도는 성과 중심의 사고가 일으키는 피로를 씻어낸다.


로마의 황제이자 철학가인 아우렐리우스조차 스스로를 일깨우기 위해 매일 기록했다. 우리도 이 고귀한 문장들을 가까이 두자. 스토아의 가르침은 한 번 읽고 이해하는 지식이 아니라, 매일 흐트러진 마음의 질서를 바로잡아 다시 세워주는 오래된 지혜다.


폭풍 같은 세상에서 중심을 잃지 않으려면 지혜를 끊임없이 복구해야 한다. 매일 밤 나의 일기와 황제의 기록을 콜라보해 새로운 명상록을 써보는 건 어떨까.


"너는 지금껏 무수히 많은 고초를 겪었고
그것을 당당히 이겨 냈다는 사실을 기억해라.
이제 네 삶의 서사는 결말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으며,
너에게 주어진 임무도 마무리되고 있다.
네가 목격한 누군가의 훌륭한 행위들을 기억해라.
네가 이겨 낸 허다한 고난들을 기억해라.
네가 고사한 헛된 명예들을 기억해라.
그리고 너에게 무례했던 이들에게 예를 다한
수많은 일을 기억해라."
-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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