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머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수학에 대한 모든 고정관념을 뒤집는 학습의 과학
조 볼러 지음, 고현석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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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math-ish>는 '대략 수학적'이라는 개념이다. "ish"는 "거의"라는 뜻으로 《수학 머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수학 교육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딱 떨어지는 정확한 정답 하나를 찾는 수학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도구로서의 수학을 말한다.


"수학적 다양성과 대략적인 수학을 경험한다면 훨씬 더 성공하고 더 몰입할 수 있다. ....... 수학적 다양성과 아름다움에 영감을 받아, 마주치는 모든 상황에서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것을 배우며, 다른 사람들을 자신이 도달할 수 있으리라 생각조차 못 했던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
-342면


저자 조 볼러는 뇌과학, 심리학, 교육학의 최신 아이디어를 수학 교육에 적용해 "오늘날 가장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교육자"라 평가받는다. 영국교육연구협회에서 수여하는 최고 교육학 박사 학위 논문상을 받았다.


실생활에서 수학적 사고를 적용하는 데 초점을 둔 교육 철학을 《수학 머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서 집대성했다. 메타인지와 수학적 전략으로 학습하는 방법, 애씀을 포용하고 편안하게 인지하는 전략을 전한다. 학습과 삶에서 대략적 수와 도형의 가치, 각 사례들을 통해 시각적 수학의 힘에 대해서도 알린다. 수학을 개념적이고 연결성이 강한 과목으로 유연하게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지적하며 수학적 연습, 평가 및 피드백의 다양성까지 수학을 중심에 둔 공부법을 폭넓게 살폈다.


《수학 머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수학 교육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그래서 흥미로운 지점들이 많았다. 그 메시지들은 수학을 어려워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큰 희망이 되어준다. 수학 머리가 따로 있다는 오해는 노력과 올바른 학습 방법으로 풀어주고, 메타인지와 마인드셋으로 수학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로 만들 수 있게 도와준다.


저자는 수학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시각 자료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루스 파커의 증가하는 정사각형 모델"이다. 일반적인 수학 문제라면 10번째, 100번째 케이스에서는 어떻게 될지 답을 써내야 한다. 하지만 조 볼러는 다른 질문을 한다. "패턴이 어떻게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나요? 전체 모양에서 네모들이 어느 부분에 추가됐지요?"


다음 페이지에서 패턴 성장에 대해 기술하는 다양한 방식을 보여준다. 수학적인 문제를 보는 방식이 여러 가지일 수 있으며, 수학적 필터로 수치, 공간 또는 데이터와 관련된 모든 상황에서 통찰력을 주는 수학의 힘을 맛보게 했다.


나도 깜짝 놀랐다. 함수 방정식을 세워 숫자로서의 답을 찾아야 하는 내가 알던 수학이 아니었다. "수학"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기발하고 다양한 수학의 재미있는 면모를 체감할 수 있어 무척 흥미로웠다.


《수학 머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수학적 다양성을 매우 중요시한다. 수학에 대해 생각하고 배우는 다양한 방식을 구체적인 예시로 입증한다. 오랜만에 만나는 도형과 도표가 쉽지 않았지만 에세이식 서술로 편안하고 쉽게 설명해 주어 즐겁게 읽었다.


제한된 시간 안에 문제를 빠르게 풀어야 하는 성적 중심의 좁은 의미의 수학을 싫어하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아이들이 아니라 수학을 싫어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수학 교육 시스템이었다.


수학 불안이 있는 사람에게 수학 문제를 제시하면, 뇌에서 뱀이나 거미를 볼 때 활성화하는 공포 중추가 활성화되어 해마를 비롯한 뇌 일부를 무력화해 학습 능력이 떨어진다. 수학이 공포가 아니라, 천천히 창의적인 생각들을 연결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수학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는 렌즈를 갖게 되면 우리가 가진 지식을 다른 지식과 연결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는 사실을 저자는 풍성한 자료와 예시로 확실히 설득시킨다.


《수학 머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가 가장 큰 의의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학교 교육의 그늘에 가려진 수학의 진정한 면모를 제대로 꺼내 보여주면 우리 아이들도 진짜 수학을 만나 수학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는 가능성 말이다. 그것이 진짜 수학적 사고의 렌즈를 갖는 출발점이 될 테다.


수학은 암기하고 문제를 푸는 과목이 아니었다. 우리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창의적인 사고를 키울 수 있는 매력적인 학문이다. 《수학 머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가 말하는 수학은 누구나 잘할 수 있고, 삶에 의미를 더하는 훌륭한 도구였다. 그 도구는 수학 머리를 가진 소수만이 가지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수학적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운동을 통해 근육을 키우듯, 꾸준한 연습과 뇌를 자극하는 활동을 통해 수학적 사고력을 발달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강의를 시작할 때마다, 우리 뇌는 항상 성장하고, 연결되고, 경로를 강화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수학 뇌’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 뇌는 계속 변화한다. 나는 학생들이 애를 쓰고 실수하기를 바란다. 애를 쓰는 시간이야말로 우리 뇌가 경로를 형성하고, 연결하고, 강화하는 정말 중요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104면


《수학 머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로 수학의 세계에 머무르는 동안, 수학을 공부하는 과정이 인생을 사는 것과 참으로 닮았다는 걸 발견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수학은 두려움을 극복해야 할 대상이듯, 삶도 꼭 같다. 불안과 두려움은 수시로 일상을 엄습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며 우리는 어른이 된다. 수학은 오류를 통해 배우고, 자유롭게 질문하고 탐구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듯, 시행착오와 실패를 겪으며 세상에 질문하고 도전하는 태도는 삶을 풍요롭게 한다. 긍정적인 피드백을 통해 학생들의 자신감을 높이고, 학습에 대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인생을 돌아보고 피드백하며 방향을 수정하는 것, 현재를 즐기고 감사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삶의 태도인가.


아이의 수학을 위해 읽기 시작했다가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준 《수학 머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수학과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의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수학머리는어떻게만들어지는가 #조볼러 #웅진지식하우스 #수학학습 #학습과학 #수학잘하는법 #진짜수학 #삶도수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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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봉그깅 할래? 삶과 사람이 아름다운 이야기
박소영 지음, 배민호 그림, 변수빈 감수 / 베틀북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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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함께하면 할수록
바다가 아프다는 사실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 11면


봉그깅 = 봉그다 + 플로깅
= 줍다의 제주말 + 쓰레기 줍다의 스웨덴말
= 바닷가의 쓰레기를 줍는 것


제목에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그 말부터 찾아보게 된다. 봉그깅이라... 봉다리?(봉지의 경상도 사투리) 플로깅? 두 단어가 먼저 떠올랐는데 대강 뜻이 통했다. 봉다리에 쓰레기 주워 넣는 것, 봉그깅! (맞췄다, 오예)


'봉그깅'은 제주도에서 활동하는 청년 단체 ‘디프다 제주’ 사람들이 만든 말이다. 《우리 봉그깅 할래?》는 거의 날마다 바닷가에 나가 쓰레기를 줍는 디프다 제주의 변수빈 대표와 멤버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한다. 실제로 변수빈 대표가 "수빈"이라는 캐릭터로 이야기에 등장한다.


"아, 제대로 소개를 할게요. 저희는 '디프다 제주'라는 팀입니다. 저는 리더인 변수빈이라고 해요. 말씀드린 것처럼 해양 쓰레기를 수거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 38면


《우리 봉그깅 할래?》는 세계태권도한마당에서 주니어 태권 체조 은메달까지 수상한 유망주, 12살 지안이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지안이는 교통사고로 태권도를 그만두게 되고 아빠의 권유로 뼈에 무리가 가지 않는 프리 다이빙에 도전한다. 공기통 없이 깊은 물속에 잠수하는 스포츠다.


프리 다이빙을 하며 절망에서 빠져나와 다시 밝아진 지안이를 위해 가족은 '제주도 한달살이'를 시작한다. 지안이가 바다에서 마음껏 프리 다이빙을 즐기며 전과 같은 열정을 되찾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멋진 부모님이다.


"오랫동안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순간이었다. 바다의 물결은 잠수풀에서 느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야생의 온도와 촉감이었다. 지안은 바닷속의 모든 모습을 영원히 눈 속에 담으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푸른 물, 눈부신 산호, 빽빽한 숲과 부지런히 움직이는 동물들, 이 거대한 푸르름에 압도당할 것이다."
- 28면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지안이의 예상와 달리 바닷속은 미세먼지 낀 하늘처럼 뿌옇게 흐렸다. 해조류와 물고기는 없고 타이어와 폐자재, 비닐봉지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이곳은 지안이 꿈꿔 온 바다가 아니었다.
쓰레기장이었다."
- 30면


그렇게 지안이네 가족은 빠른 속도로 오염되고 있는 제주 바다에 놀라 '디프다 제주'팀을 만난 후 다 같이 봉그깅에 나선다.


"모래 해변의 쓰레기는 그나마 줍기 쉬운 편이었다. 문제는 바위였다. 제주도의 새까만 현무암 사이사이에 엄청난 쓰레기들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어찌나 깊이 박혔는지 잘 꺼내지지도 않았다. 지안이는 깊은 곳의 쓰레기를 꺼내기 위해 긴 막대를 구해 와서 바위틈을 뒤적거리기도 했다."
- 45면


태풍이 할퀴고 간 해변은 또다시 쓰레기로 엉망이 된다. 하룻밤 만에 청소하기 전보다 훨씬 더 지저분해진 바다를 보며 지안이는 왈칵 눈물을 쏟는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거대한 자연의 분노 앞에서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이 덮친 것이다.


"그래도 열심히....... 열심히 치우면 깨끗해질 줄 알았는데........ 흐흐흑."
- 62면


《우리 봉그깅 할래?》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해녀 식당의 할머니가 끓여주신 제주의 향토 음식 '몸국'의 뜨끈한 국물에 지안이의 설움은 씻긴다. 그리고 할머니의 말씀을 듣는다.


"믿어 보라. 경 허믄 바당은 지드려 줄 거여.
(믿어 봐라. 그러면 바다는 기다려 줄 거야.)"
- 70면


《우리 봉그깅 할래?》를 읽으며 지안이와 함께 제주의 바다 앞에서 설렜다. 물을 무서워하는 나도 물속에서 지안이가 편안함과 위안을 느끼는 장면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쓰레기장이 된 바다에 미안했고 그런 바다가 안타깝기도 했다. 그렇게 내내 지안의 세계에 독자를 빠뜨리는 힘을 가진 이야기다. 환경보호라는 교훈적인 스토리가 지루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기우였다.


지안이의 개인적인 경험과 바다의 오염을 자연스럽게 연결한 스토리텔링이 탁월했다.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해양 오염 실태가 이야기 안에 이음매 없이 녹아있다. 어떤 실천이 도움이 될지도 절로 배울 수 있다.


병 주고 약 주는 이야기 같기도 했다. 바다가 이토록이나 몸살을 앓고 있음에 참 아프고 쓰라렸다. 그러나 바다를 돕는 손길들이 끊이지 않음에 여전히 희망이 있었고,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바다의 생명력은 결코 이대로 스러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도 생겼다.


특히 그림을 맡은 배민호 작가님의 일러스트는 《우리 봉그깅 할래?》가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이야기로 중심을 잡고 특유의 분위기를 풍길 수 있게 큰 역할을 한다. 박스 같은 재활용지 위에 삽화를 그려 수록해주셨다. 평소에도 업사이클링 작품활동을 하셔서 《우리 봉그깅 할래?》의 메시지를 누구보다도 잘 표현하셨다고 느꼈다.


좌절을 겪은 지안이가 아프지만 푸르른 제주 바다를 청소하며 내면의 상처까지 치유하는 씩씩함이 참 좋았다. 그런 지안이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부모님의 적극성도 크게 배웠다. 내가 지안이 엄마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적당한 운동을 찾아 제안하고, 환경까지 바꾸는 도전을 할 수 있었을까? 때로는 과감하게 변화를 향해 성큼성큼 내딛는 본을 아이들에게 보이고 싶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비슷한 것만 보고 들으며 한정될 수밖에 없는 사고의 폭이 《우리 봉그깅 할래?》 덕분에 확장된 것 같다. 아파트숲을 떠나 제주 바다로 갔고, 그곳에서 내 코가 석자인 양 나와 가족밖에 모르던 삶이 아픈 바다를 살필 줄 아는 더 큰마음을 품을 수 있었다.


독서 활동지를 활용할 수 있도록 알차게 제작해 주셔서 아이들과 함께 야무지게 《우리 봉그깅 할래?》를 읽어낼 수 있는 점도 좋았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길을 공감대 높은 이야기로 잘 풀어준 이야기, 《우리 봉그깅 할래?》 자연을 더 친근하게 느끼고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일상의 노력을 책을 통해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생활 습관도 많이 달라졌다.
쓰레기, 특히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게 된 뒤로는 최대한 일회용 포장 용기를 안 쓰려고 노력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엄마, 아빠는 집에서 나올 때 가방 속에 텀블러를 하나씩 꼭 챙겼다. 카페에서 음료수를 살 때 일회용 컵을 쓰지 않기 위해서였다.
착착 접어서 넣고 다닐 수 있게 만들어진 장바구니도 유용했다. 전통 시장에서 챗를 살 때면 미리 준비한 신문지에 둘둘 싸서 장바구니에 쏙 넣곤 했다.
플라스틱 칫솔 대신 대나무 칫솔을 사용했고, 플라스틱 통에 들어 있는 샴푸나 세제를 고체 샴푸나 세제로 바꾸었다.
솔직히 불편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더 많이 움직여야 했고, 물건을 사고 싶은 욕구를 참아 내야 했다. 하지만 금세 익숙해졌고, 가족의 생활은 단순하지만 더욱 풍요로워졌다."
- 75, 76면




*** 출판사 베틀북이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우리봉그깅할래 #박소영 #배민호 #변수민 #베틀북 #바다쓰레기 #봉그깅 #디프다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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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건너는 한 문장 - 당신에겐 한 문장이 있습니까?
정철 지음 / 김영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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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카피라이터의 책들은 하나같이 다 감각적이었다. 가벼운 몸짓으로 날렵하게 날아들어, 노련하게 빈틈을 찾아 날카로운 통찰을 유쾌하게 꽂아 넣는 솜씨! 묘한 쾌감을 주는 그들의 책은 한 번 더 눈길이 간다.


《인생을 건너는 한 문장》도 그렇다.
서문마저 시와 같고 여유가 넘친다.


한 문장.
두 문장.
세 문장.

문장을 하나씩 늘려가며 글을 쓴다. 아직 완성은 아니다. 연필을 내려놓는다. 지우개를 든다. 지우개로 글을 마저 쓴다.

세 문장.
두 문장.
한 문장.

내가 쓴 문장을 내 손으로 지운다. 지운다. 지운다. 더는 지울 것이 없다. 지우개똥 곁에 살아남은 문장 하나가 보인다.

이것이 책을 쓰며 내가 한 일의 전부다.
나는, 누가 훔쳐갈 것도 아닌데 꼭꼭 숨어서 이 일을 즐겼다.


기똥차다.
애써 쓴 문장을 지우고 지우고 지운다. 지우개똥이라니. 뜨거워진 지우개의 정련을 견디고 남은 결정체, 반짝이지 않을 수 없는 문장들이다.


짧고 쉽게 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조금은 안다. 짧다고 쉽게 읽을 수 없었다. 짧아서 번 시간을 생각으로 덧칠해 가슴에 새긴다. 이 문장을 따라해볼까, 어떻게 다르게 바꿀까. 저자가 지우고 지워 만든 여백에 내 글을 더해본다. 그러라고 지우셨나.


딴짓하듯 시선을 창밖으로 옮긴 횟수는 그간 읽은 책들 중 《인생을 건너는 한 문장》이 가장 많지 않을까 싶다. 누가 보면 재미없는 책인 줄 오해하려나.


그래도 글을 자주 쓰는 편이라 글쓰기에 관한 문장들이 특히 기억에 남아 모아보았다. 쓰는 모든 분들께도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생선을 뒤집으면 선생이 된다
갈치나 넙치 같은 생선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는 뜻이다. 세상 모든 것을 뒤집어 다시 보라. 뒤집는 순간 보이지 않던 귀한 것이 보인다.
내가 글을 써야 하는지, 글을 써도 되는지 고민이 깊은 사람은 '연필'을 뒤집어 보라.
-154 면


글을 쓰는 건 쉽지만
글을 쉽게 쓰는 건 어렵다
이 글이 쉽다면
내가 어려운 일을 해 낸 것이고,
이 글이 어렵다면 내가 한 말이 맞는 거다.
- 38면


동사가 연상되지 않는 명사는
곧 명사 신분을 잃는다
해는 뜨다. 꽃은 피다. 새는 날다. 물은 흐르다. 모두 다 자신만의 동사가 있는 튼튼한 명사들이다. '나'라는 명사도 튼튼해지려면 연상되는 동사 하나는 있어 줘야 하지 않을까.
-289면


베토벤도 삶의 9할을
백지 앞에 앉아 있었다
운명은 백지다.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깨끗한 백지다. 베토벤도 교향곡 5번 운명을 쓰기 전까지는 백지 앞에 앉아 있었다. 지금 내 앞에도 백지가 놓여 있다. 그곳에 내 손으로 오선지도 긋고 음표도 그려 넣으면 제법 괜찮은 운명 하나를 써 낼 수 있다. 내 운명은 베토벤이 대신 써 줄 수 없다.
- 273면


《인생을 건너는 한 문장》은 이렇게 진지하게 재미있다. 풉, 웃음이 터지게 한다.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급히 손을 놀려 공책에 옮겨 적게 한다. 인덱스를 이미 너무 많이 붙여 붙이지 말까 고민하게 한다.


책을 선물하고 싶은 사람은
도서관을 선물하지 않는다
이 책에 너무 많은 밑줄을 긋지 마라.
물론 안다. 밑줄 긋고 싶은 문장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하지만 참아라. 밑줄이 많으면 밑줄은 없다. 강조가 많으면 강조는 없다.
- 248면


맞는 말씀입니다!
계속 발췌하고 싶은데 꾹 참아보겠다.


오늘 여기에 옮기지 못한 옮기고 싶은 문장들은 독자들께서 직접 확인하고 즐기시기를 강추합니다. 잠들기 전, 웃음을 머금고 기분 좋게 꿈꾸기 좋은 책, 다른 설명이 더 필요하지 않은 책, 《인생을 건너는 한 문장》


길이 없다 싶을 때도 미소 지으며 성큼성큼 인생을 건널 수 있도록 동글동글 윤이 나는 징검다리가 되어줄 《인생을 건너는 한 문장》 추천합니다.



세상에 없는 것은
있을 필요가 없으니
없는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귀한 진실 하나.
당신은 꼭 필요한 사람.
- 26면




*** 출판사 김영사의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인생을건너는한문장 #정철 #카피라이터의글 #에세이추천 #힘나는글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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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만나는 지름길, 철학의 뒷계단 - 탈레스에서 비트겐슈타인까지, 위대한 철학자 34인의 생애와 사상
빌헬름 바이셰델 지음, 안인희 옮김 / 김영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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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살았을 1900년대의 독일 집을 상상해본다. 지금의 우리야 아파트에 사니 뒷계단이랄 것이 없지만 이런 집이라면 출입구가 여러 곳일 거다.


뒷계단으로 슬쩍 들어가 집주인의 꾸미지 않은 "생긴 그대로"의 숨겨진 모습을 엿본다는 발상이 재미있다.


허례허식이나 과장 없는 인간적인 모습, 더 나아가 인간적인 것을 넘어서려고 애쓰는 위대하고도 감동적인 노력까지 들여다보며 《철학을 만나는 지름길, 철학의 뒷계단》은 철학자들의 다양한 면모를 비춘다.


"(인간적인 노력까지도 보게 된다면)
뒷계단으로 올라온 무례함은 없어지고 오히려 철학자들과 진지한 대화를 할 수도 있다.
........
뒷계단은 장식이 없으니 사람의 마음을 홀릴 것도 없다. 그래서 이따금 더욱더 확실하게 목적지로 안내해준다."
- 8면


《철학을 만나는 지름길, 철학의 뒷계단》은
1905년 태생인 독일의 교수 빌헬름 바이셰델이 1966년에 출간한 책이다. 철학의 나라 독일에서 고전으로 인정받은 스테디셀러로 대학의 철학 개론 수업이나 학원가의 논술 교재로도 쓰이는 철학 입문서다. 철학 분야의 "사회교육 과정"의 역할을 하는 책이지만 어렵지 않다. "철학적 주제들을 보통 사람들의 일상의 담론으로 만들기"가 이 책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다수의 번역상을 받은 안인희 번역가가 2004년 《철학의 에스프레소》라는 제목으로 출간했지만 여러 출판사를 거치며 절판이 된 것을 김영사가 올해 《철학을 만나는 지름길, 철학의 뒷계단》으로 새롭게 펴냈다.


번역가님은 다시 거듭 읽으며 책을 손질했다. 전문용어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존재"를 "있음"으로, "현존재"를 "여기있음", "진리"를 "참"으로 서양의 언어 형태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힘든 작업을 감내하셨다. 덕분에 더 선명하고 신선하게 의미가 전달되어 철학의 중요한 개념들을 편안하게 살필 수 있게 한 번역가님의 노력이 정말 인상 깊었다.


《철학을 만나는 지름길, 철학의 뒷계단》은 34명의 위대한 철학자를 시대순으로 살펴보는 철학 역사서로도 볼 수 있다. 철학을 탄생시킨 고대의 탈레스부터 철학을 붕괴한 비트겐슈타인까지 서양 철학의 2500년 역사를 담았다.


저자는 풍부한 일화로 철학자들의 개성있는 일상을 전한다. 또 철학적 사상의 정수를 압축하여 설명하고 평한다. 뒷계단을 안다는 것은 집의 전체 구조를 파악하고 있다는 것. 한 명의 철학자를 공부하는 것도 어려울 텐데 이 많은 철학자들을 다 파고들었다니 저자의 방대한 지식과 영리한 해석이 놀라웠다. (게다가 그 어렵다는 칸트 전문가다.)


동시에 괴짜 같은 철학자들의 뒷모습이 재미있고 친근해 즐거웠다. '이 사람들도 똑똑한 척은 다 하더니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네.' 오히려 그들이 생생하게 입체적인 인간으로 그려졌다.


철학의 계단을 오르면, 결혼하라는 어머니의 요구를 이리저리 피해다녔던 탈레스가, 사람들의 지켜보는 시선은 아랑곳않고 24시간을 꼬박 같은 자리에 서서 생각에 잠겨 있던 소크라테스가, 눈에 띄는 거대한 몸피를 지녔음에도 “어떤 경우에도 남의 눈에 띄지 않겠다는 소망”에서 말을 거의 하지 않아 ‘말 없는 황소’라는 별명을 얻었던 토마스 아퀴나스가, 자신의 책 『자본』에 대한 반응이 전무하자 부정적 서평과 긍정적 서평을 직접 쓴 마르크스가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물론 ‘세상이라는 책’에서 배우기를 바라며 유럽 각지를 떠돌던 모습 이상으로 은둔을 꿈꾸었던 데카르트, 정해진 일과를 엄격하게 지키는 것으로 유명했던 칸트라면 이런 갑작스런 방문을 못마땅해할 수도 있겠다. 칸트라면 다방면에서 해박했음에도, 햇빛이 빈대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 여겨 햇빛을 차단하기 위해 늘 덧창을 닫아두었다는 일화도 빼놓을 수 없다.
- 출판사 리뷰 중


그중 가장 달리 보인 철학자는 소크라테스다. 《철학을 만나는 지름길, 철학의 뒷계단》에서는 그의 유명한 악처 크산티페에 대해서도 들려준다.


크산티페를 아내로 두지 않았다면 소크라테스도 소크라테스가 아닐 것이다.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제게 꼭 필요한 아내를 얻었다. ... 크산티페는 정말이지 그가 점점 더 자신의 직업을 행하도록 내몰았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서재에 틀어박혀 있었다면 그는 절대로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 45, 47면


크산티페는 남편이 철학 활동을 못하게 하려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집을 끔찍한 지옥으로 만들고, 창문에서 남편 머리 위로 더러운 물을 부었다. 사람 많은 시장에서 남편의 외투를 벗겨가기도 했다. 그녀는 왜 그랬을까?


남편으로서 소크라테스를 바라보자. 겉으로만 보면 그는 싸돌아다니며 수다 떠는 일밖에는 하지 않았다. 그는 진짜로 빈둥거리는 사람이었다. 집과 아내와 자식들을 보살피지 않고, 정상적인 생계 활동을 하지 않고 사람들과 쓸데없는 잡담이나 한 것이다.


게다가 소크라테스는 게으름뱅이 유형이 전혀 아니었다. 운동을 열심히 했고 심지어는 춤도 잘 추었다. 단순히 건강을 위해서! 전쟁터에서도 다들 추위에 몸을 꽁꽁 싸고 있을 때도 맨발로 얼음 위를 걸었다고 한다. 다 도망치는 상황에서도 혼자서 장군을 따라 성큼성큼 걸어갔다. 태연히 아군과 적군을 살펴보면서 말이다.


소크라테스가 일정 부분 크산티페를 악처로 만들고, 크산티페도 일정 부분 소크라테스를 위대한 철학자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면 더 억울한 사람은 누구일까? 우리의 테스형은 왜 자신의 가족을 내팽개쳤을까? 분명 누군가가 가족을 돌보라 말했을텐데 그때 그는 뭐라고 답했을까?


《철학을 만나는 지름길, 철학의 뒷계단》은 분명 재미있다. 높은 철학의 문턱을 낮추었다. 그러나 사실 결코 쉬운 책은 아니다. 문장은 쉽다. 어려운 단어도 없다. 번역도 훌륭하다. 그런데 이해가 안 된다. ㅎㅎㅎ


철학이 쉬우면 철학이겠는가. 철학자들이 온 생을 바쳐 사색하고 사유해 길어올린 형이상학적인 사고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 단번에 될 일이 아님을 인정해야만 했다. 철학은 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질문에 질문하기다. "철학하기란 답변을 찾아내고 이 답변과 더불어 편안하게 쉰다는 뜻이 아니다. 철학하기란 언제나 새로이 본질적인 물음들을 내놓는다는 뜻이다."(344면)


지독하게 생각해 파고들 깊이가 있어야 철학이지, 금세 모든 것이 드러날 얕은 세계라면 철학이 아니지 않을까. 그 세계를 탐구할 호기심이 있다면 재미와 깊이를 겸비한 《철학을 만나는 지름길, 철학의 뒷계단》은 최적의 선택이라고 본다.


저자는 "올라감과 내려감"을 말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서른네 번을 올라간 사람은 내려가기를 잊어서는 안 된다. 내려가기가 그냥 무심하게 내려가기 아니면 심지어 그냥 떨어지기가 되지 않으려면, 올라가면서 경험한 것이 속에 간직되어야 한다. 조심스레 간직하며 내려가야만 철학자들의 층에서 얻은 통찰이 일상의 삶이라는 지층에서, 혹은 심지어 현실이라는 지하실에서도 쓸모가 있을 테니 말이다."


모든 걸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 일반 독자라면 그럴 수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머리가 엉키는 혼란속에서 가느다란 깨달음의 한 줄기 빛으로 지적 희열을 맛본다면 조금만 더 철학적 세계에 머물러보자. 그 빛을 소중히 간직하며 책을 덮고 다시 열자.

그 횟수를 반복할수록 통찰은 빈번해질 것이다. 비판적 사고력이 높아지고, 자기성찰과 자아발견으로 가는 길목에서 삶의 의미가 선명해질 것이다. 다양한 관점과 문제를 다각적으로 분석하는 능력을 갖출수 있다. 자신을 깨는 순간들을 귀하게 여기며 일상으로 내려간다면 분명 커다란 변화가 작게 조금씩 따라올 것이다.


가까이 하기엔 먼 당신.
하지만 가까이 하고픈 매력적인 당신, 철학.
《철학을 만나는 지름길, 철학의 뒷계단》은 그러한 당신을 좀 더 친근하고 사랑스럽게 다시 볼 수 있게 하는 묘약이 될 것이다.


*** 출판사 김영사의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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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 - 루마니아의 소설가가 된 히키코모리
사이토 뎃초 지음, 이소담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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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좋았다.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
아이들이 폰만 붙들고 꼼짝 않고 있으면 절로 하게 되는 말과 닮았다. "얘들아, 그렇게 앉아만 있지 말고 뭐라도 해~" (^^;;) 뭐라도 하면 무슨 기회로든 연결될 거라는 평소 신념에서 나온 말이다. 그 믿음을 실제로 살아낸 나의 증인, 사이토 뎃초.


히키코모리로 오랜 시간을 지낸 저자 사이토 뎃초는 어려서부터 끝도 없이 내향적이고 생각이 과한 인간이었다. 마지막 여행은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 대학 입시를 망치고, 동일본대지진을 겪고, 간신히 대학에 들어가서는 사랑에 실패했다. 장 난치병인 크론병까지 걸린다. 그렇게 진정한 히키코모리가 되었다.


"부모님께 얹혀산다. 게다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30년, 바깥세상에 제대로 나간 적이 없다."
- 24면
"상처받은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불성실하게 굴었다는 소리다. 그러다가 4학년 마지막에 힘이 다해 내 마음은 본가의 방구석에서 무너져 내렸고 더는 꼼짝할 수 없었다. 이때부터 아름다운 히키코모리 생활이 막을 연다."
-31면


꿈이 소설가라 일본 문학을 전공했지만 우울증을 겪으며 능동적인 행동인 독서마저 놓게 된다. 대체제로 영화에 몰두하며,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는 초조함과의 투쟁을 영화 비평 쓰기로 맞선다. 인터넷에 영화 이야기를 쓰는 재야의 시네필들처럼 되고 싶어 그들을 흉내 내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에 공개되지 않은 작품을 닥치는 대로 보고 비평을 쓰다 깨닫는다.

"영화로 치면, 주변에서는 할리우드나 일본의 오락 영화를 보는데, 장뤼크 고다르를 보는 나, 완전 힙하다."
- 37면


'주변과 다른 내가 멋짐'이라는 나르시시즘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에너지로 삼아, 긍정적인 정체성을 만들고 좋아하는 일에 파고드는 원동력으로 삼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하나뿐인 자기 자신을 끝끝내 파고들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미지의 영역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 나는 '주변과 다른 내가 멋짐'이라는 나르시시즘에 인생을 걸었다. 그건 루마니아와 루마니앙에 인생을 거는 것이기도 했다."
- 38면



저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영화 <경찰, 형용사> 루마니아어 자체를 주제로 삼아 그만의 독특함을 둘러싼 통찰이 풍부한 작품이다.


"내 뇌를 루마니아어 사전으로 후려치고 반강제로 루마니아 문단으로 끌고 간 대단한 은인이다."
- 39면


원래 뼛속까지 어학 오타쿠인 저자는 루마니아어에 빠진다. 그러나 희귀 언어를 전문적으로 배울 곳은 없었다. 교재도 턱없이 부족한 환경에서 루마니아어 학습은 가시밭길이었다. 일본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루마니아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재미있게도 저자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이런 생각을 한다.

"마이너한 언어를 배우려는 나,
완전 힙해... ."
- 58면


빵 터졌다. 오타쿠와 히키코모리적인 사고방식이 엉뚱하고도 유쾌한 시너지를 내는 장면이 아닌가! 저자의 깊은 곳에 굳건하게 흐르는 자기애가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탐나는 멋진 능력이다.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는 자기가 좋아하는 걸 찾아가는 즐거운 여정을 담았다. 좋아하는 대상의 세계로 깊게 들어가는 자기만의 방식, 자신이 자극받는 포인트까지 세밀하게 파악한 자기 전문가의 진로 찾기로도 보였다. "그저 나의 즐거움만을 위해 마음 내키는 대로 경박하게" 좋아하는 일을 따라 한 발 한 발 걸어가며 예상하지 못한 길로 튀어 날아가는 과정이 무척 흥미로웠다. 일본 방구석에 틀어박힌 채 인터넷만으로 루마니아까지 영역을 넓힐 수 있음을 당당히 보여준다.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의 핵심 키워드는 출판사가 내세운 '히키코모리'보다 '오타쿠'에 있는 것 같다. 독자의 흥미를 끄는 데는 히키코모리가 좋았겠지만 한 가지 분야에 온갖 방법으로 치열하고 집요하게 매달린 힘은 저자가 오타쿠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깊이 몰입하는 힘을 가진 이들. 그 세계 안에서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교류하며, 새로운 것을 배우고 성취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변태적인 이미지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강한 자기 주도성과 끈기, 창의성과 독창성을 지닌 그들을 다시 만나는 시간이었다.


"한동안은 끝까지 쓴 것 자체에 성취감을 느꼈는데, 나는 그쯤에서 만족할 인간이 아니었다."
- 100면


책상 위에 수북히 쌓인 영화 노트는 장장 44권이다. 10년간 한 페이지에 영화 한 편을 기록한 것이다. 넷플리스 자막으로 루마니아어에 다가가고, 페이스북으로 4천명에게 친구 신청을 해 일상 표현을 배우며 슬랭까지 따로 공부한다. (페이스북으로 이어진 인연 덕분에 소설을 문예지에 기고하며 소설가가 되어 3년간 30편가량의 단편을 게재했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루마니아어를 폭격하는 모양새다.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를 읽으며 '꾸준히'가 세상 가장 어려운 나 같은 사람은 쉽게 다다를 수 없는 경지이기에 저자의 오타쿠적인 무궁한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정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힌트는 얻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그것을 찾으면 우리도 오타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 하나를 아직 찾지 못했기에, 찾았더라고 그에 대한 애정이 무르익을 만큼의 시간을 내어주지 못했기에 우리를 펼치지 못한 건 아닐까.


"나는 바로 당신에게 다른 곳에는 없는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게 나였으니까, 나 같은 건 형편없다고 생각했던 예전의 나. 그저 지금 서 있는 그 자리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곳이기에 해낼 수 있는 것이 있다.

좋은 나쁘든
지금 네가 거기 그렇게
있는 게 최대의 강점
벅틱 [ NATIONAL MEDIA BOYS ]
- 252면


어디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우리가 지금 거기 있다는 사실, 그보다 가치 있는 건 없다는 응원. 내가 선 이 자리에서 뭐든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을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를 통해 증명해 낸 성공 스토리는 용기를 북돋운다. 소설가가 되기까지 놀라운 행운이 이어진 것은 단지 운이 아니라 다각적으로 모든 노력을 기울인 준비된 능력 덕분임을 안다. 핑계 대지 말고, 변명하지 말고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보자. 그 다음은 지금은 알 수 없는 미래의 내가 또 해낼 것이다.


안주하고 정체하려는 나태함이 기어나올 때마다 주문처럼 되새기련다.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


나르시시트 덕후의 자기애 만땅 찬가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 삶의 새로운 변화를 꿈꾸는 분, 좌절과 실패를 겪고 있는 분, 인생의 재미를 찾고 싶은 분,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고 싶은 모든 분들께 추천합니다.


*** 출판사 북하우스의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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