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 - 루마니아의 소설가가 된 히키코모리
사이토 뎃초 지음, 이소담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부터 좋았다.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
아이들이 폰만 붙들고 꼼짝 않고 있으면 절로 하게 되는 말과 닮았다. "얘들아, 그렇게 앉아만 있지 말고 뭐라도 해~" (^^;;) 뭐라도 하면 무슨 기회로든 연결될 거라는 평소 신념에서 나온 말이다. 그 믿음을 실제로 살아낸 나의 증인, 사이토 뎃초.


히키코모리로 오랜 시간을 지낸 저자 사이토 뎃초는 어려서부터 끝도 없이 내향적이고 생각이 과한 인간이었다. 마지막 여행은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 대학 입시를 망치고, 동일본대지진을 겪고, 간신히 대학에 들어가서는 사랑에 실패했다. 장 난치병인 크론병까지 걸린다. 그렇게 진정한 히키코모리가 되었다.


"부모님께 얹혀산다. 게다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30년, 바깥세상에 제대로 나간 적이 없다."
- 24면
"상처받은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불성실하게 굴었다는 소리다. 그러다가 4학년 마지막에 힘이 다해 내 마음은 본가의 방구석에서 무너져 내렸고 더는 꼼짝할 수 없었다. 이때부터 아름다운 히키코모리 생활이 막을 연다."
-31면


꿈이 소설가라 일본 문학을 전공했지만 우울증을 겪으며 능동적인 행동인 독서마저 놓게 된다. 대체제로 영화에 몰두하며,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는 초조함과의 투쟁을 영화 비평 쓰기로 맞선다. 인터넷에 영화 이야기를 쓰는 재야의 시네필들처럼 되고 싶어 그들을 흉내 내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에 공개되지 않은 작품을 닥치는 대로 보고 비평을 쓰다 깨닫는다.

"영화로 치면, 주변에서는 할리우드나 일본의 오락 영화를 보는데, 장뤼크 고다르를 보는 나, 완전 힙하다."
- 37면


'주변과 다른 내가 멋짐'이라는 나르시시즘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에너지로 삼아, 긍정적인 정체성을 만들고 좋아하는 일에 파고드는 원동력으로 삼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하나뿐인 자기 자신을 끝끝내 파고들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미지의 영역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 나는 '주변과 다른 내가 멋짐'이라는 나르시시즘에 인생을 걸었다. 그건 루마니아와 루마니앙에 인생을 거는 것이기도 했다."
- 38면



저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영화 <경찰, 형용사> 루마니아어 자체를 주제로 삼아 그만의 독특함을 둘러싼 통찰이 풍부한 작품이다.


"내 뇌를 루마니아어 사전으로 후려치고 반강제로 루마니아 문단으로 끌고 간 대단한 은인이다."
- 39면


원래 뼛속까지 어학 오타쿠인 저자는 루마니아어에 빠진다. 그러나 희귀 언어를 전문적으로 배울 곳은 없었다. 교재도 턱없이 부족한 환경에서 루마니아어 학습은 가시밭길이었다. 일본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루마니아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재미있게도 저자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이런 생각을 한다.

"마이너한 언어를 배우려는 나,
완전 힙해... ."
- 58면


빵 터졌다. 오타쿠와 히키코모리적인 사고방식이 엉뚱하고도 유쾌한 시너지를 내는 장면이 아닌가! 저자의 깊은 곳에 굳건하게 흐르는 자기애가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탐나는 멋진 능력이다.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는 자기가 좋아하는 걸 찾아가는 즐거운 여정을 담았다. 좋아하는 대상의 세계로 깊게 들어가는 자기만의 방식, 자신이 자극받는 포인트까지 세밀하게 파악한 자기 전문가의 진로 찾기로도 보였다. "그저 나의 즐거움만을 위해 마음 내키는 대로 경박하게" 좋아하는 일을 따라 한 발 한 발 걸어가며 예상하지 못한 길로 튀어 날아가는 과정이 무척 흥미로웠다. 일본 방구석에 틀어박힌 채 인터넷만으로 루마니아까지 영역을 넓힐 수 있음을 당당히 보여준다.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의 핵심 키워드는 출판사가 내세운 '히키코모리'보다 '오타쿠'에 있는 것 같다. 독자의 흥미를 끄는 데는 히키코모리가 좋았겠지만 한 가지 분야에 온갖 방법으로 치열하고 집요하게 매달린 힘은 저자가 오타쿠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깊이 몰입하는 힘을 가진 이들. 그 세계 안에서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교류하며, 새로운 것을 배우고 성취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변태적인 이미지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강한 자기 주도성과 끈기, 창의성과 독창성을 지닌 그들을 다시 만나는 시간이었다.


"한동안은 끝까지 쓴 것 자체에 성취감을 느꼈는데, 나는 그쯤에서 만족할 인간이 아니었다."
- 100면


책상 위에 수북히 쌓인 영화 노트는 장장 44권이다. 10년간 한 페이지에 영화 한 편을 기록한 것이다. 넷플리스 자막으로 루마니아어에 다가가고, 페이스북으로 4천명에게 친구 신청을 해 일상 표현을 배우며 슬랭까지 따로 공부한다. (페이스북으로 이어진 인연 덕분에 소설을 문예지에 기고하며 소설가가 되어 3년간 30편가량의 단편을 게재했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루마니아어를 폭격하는 모양새다.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를 읽으며 '꾸준히'가 세상 가장 어려운 나 같은 사람은 쉽게 다다를 수 없는 경지이기에 저자의 오타쿠적인 무궁한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정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힌트는 얻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그것을 찾으면 우리도 오타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 하나를 아직 찾지 못했기에, 찾았더라고 그에 대한 애정이 무르익을 만큼의 시간을 내어주지 못했기에 우리를 펼치지 못한 건 아닐까.


"나는 바로 당신에게 다른 곳에는 없는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게 나였으니까, 나 같은 건 형편없다고 생각했던 예전의 나. 그저 지금 서 있는 그 자리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곳이기에 해낼 수 있는 것이 있다.

좋은 나쁘든
지금 네가 거기 그렇게
있는 게 최대의 강점
벅틱 [ NATIONAL MEDIA BOYS ]
- 252면


어디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우리가 지금 거기 있다는 사실, 그보다 가치 있는 건 없다는 응원. 내가 선 이 자리에서 뭐든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을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를 통해 증명해 낸 성공 스토리는 용기를 북돋운다. 소설가가 되기까지 놀라운 행운이 이어진 것은 단지 운이 아니라 다각적으로 모든 노력을 기울인 준비된 능력 덕분임을 안다. 핑계 대지 말고, 변명하지 말고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보자. 그 다음은 지금은 알 수 없는 미래의 내가 또 해낼 것이다.


안주하고 정체하려는 나태함이 기어나올 때마다 주문처럼 되새기련다.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


나르시시트 덕후의 자기애 만땅 찬가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 삶의 새로운 변화를 꿈꾸는 분, 좌절과 실패를 겪고 있는 분, 인생의 재미를 찾고 싶은 분,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고 싶은 모든 분들께 추천합니다.


*** 출판사 북하우스의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뭐든하다보면뭐가되긴해 #사이토뎃초 #북하우스 #루마니아소설가가된히키코모리 #오타쿠 #히키코모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