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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만나는 지름길, 철학의 뒷계단 - 탈레스에서 비트겐슈타인까지, 위대한 철학자 34인의 생애와 사상
빌헬름 바이셰델 지음, 안인희 옮김 / 김영사 / 2024년 9월
평점 :
저자가 살았을 1900년대의 독일 집을 상상해본다. 지금의 우리야 아파트에 사니 뒷계단이랄 것이 없지만 이런 집이라면 출입구가 여러 곳일 거다.
뒷계단으로 슬쩍 들어가 집주인의 꾸미지 않은 "생긴 그대로"의 숨겨진 모습을 엿본다는 발상이 재미있다.
허례허식이나 과장 없는 인간적인 모습, 더 나아가 인간적인 것을 넘어서려고 애쓰는 위대하고도 감동적인 노력까지 들여다보며 《철학을 만나는 지름길, 철학의 뒷계단》은 철학자들의 다양한 면모를 비춘다.
"(인간적인 노력까지도 보게 된다면)
뒷계단으로 올라온 무례함은 없어지고 오히려 철학자들과 진지한 대화를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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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계단은 장식이 없으니 사람의 마음을 홀릴 것도 없다. 그래서 이따금 더욱더 확실하게 목적지로 안내해준다."
- 8면
《철학을 만나는 지름길, 철학의 뒷계단》은
1905년 태생인 독일의 교수 빌헬름 바이셰델이 1966년에 출간한 책이다. 철학의 나라 독일에서 고전으로 인정받은 스테디셀러로 대학의 철학 개론 수업이나 학원가의 논술 교재로도 쓰이는 철학 입문서다. 철학 분야의 "사회교육 과정"의 역할을 하는 책이지만 어렵지 않다. "철학적 주제들을 보통 사람들의 일상의 담론으로 만들기"가 이 책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다수의 번역상을 받은 안인희 번역가가 2004년 《철학의 에스프레소》라는 제목으로 출간했지만 여러 출판사를 거치며 절판이 된 것을 김영사가 올해 《철학을 만나는 지름길, 철학의 뒷계단》으로 새롭게 펴냈다.
번역가님은 다시 거듭 읽으며 책을 손질했다. 전문용어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존재"를 "있음"으로, "현존재"를 "여기있음", "진리"를 "참"으로 서양의 언어 형태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힘든 작업을 감내하셨다. 덕분에 더 선명하고 신선하게 의미가 전달되어 철학의 중요한 개념들을 편안하게 살필 수 있게 한 번역가님의 노력이 정말 인상 깊었다.
《철학을 만나는 지름길, 철학의 뒷계단》은 34명의 위대한 철학자를 시대순으로 살펴보는 철학 역사서로도 볼 수 있다. 철학을 탄생시킨 고대의 탈레스부터 철학을 붕괴한 비트겐슈타인까지 서양 철학의 2500년 역사를 담았다.
저자는 풍부한 일화로 철학자들의 개성있는 일상을 전한다. 또 철학적 사상의 정수를 압축하여 설명하고 평한다. 뒷계단을 안다는 것은 집의 전체 구조를 파악하고 있다는 것. 한 명의 철학자를 공부하는 것도 어려울 텐데 이 많은 철학자들을 다 파고들었다니 저자의 방대한 지식과 영리한 해석이 놀라웠다. (게다가 그 어렵다는 칸트 전문가다.)
동시에 괴짜 같은 철학자들의 뒷모습이 재미있고 친근해 즐거웠다. '이 사람들도 똑똑한 척은 다 하더니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네.' 오히려 그들이 생생하게 입체적인 인간으로 그려졌다.
철학의 계단을 오르면, 결혼하라는 어머니의 요구를 이리저리 피해다녔던 탈레스가, 사람들의 지켜보는 시선은 아랑곳않고 24시간을 꼬박 같은 자리에 서서 생각에 잠겨 있던 소크라테스가, 눈에 띄는 거대한 몸피를 지녔음에도 “어떤 경우에도 남의 눈에 띄지 않겠다는 소망”에서 말을 거의 하지 않아 ‘말 없는 황소’라는 별명을 얻었던 토마스 아퀴나스가, 자신의 책 『자본』에 대한 반응이 전무하자 부정적 서평과 긍정적 서평을 직접 쓴 마르크스가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물론 ‘세상이라는 책’에서 배우기를 바라며 유럽 각지를 떠돌던 모습 이상으로 은둔을 꿈꾸었던 데카르트, 정해진 일과를 엄격하게 지키는 것으로 유명했던 칸트라면 이런 갑작스런 방문을 못마땅해할 수도 있겠다. 칸트라면 다방면에서 해박했음에도, 햇빛이 빈대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 여겨 햇빛을 차단하기 위해 늘 덧창을 닫아두었다는 일화도 빼놓을 수 없다.
- 출판사 리뷰 중
그중 가장 달리 보인 철학자는 소크라테스다. 《철학을 만나는 지름길, 철학의 뒷계단》에서는 그의 유명한 악처 크산티페에 대해서도 들려준다.
크산티페를 아내로 두지 않았다면 소크라테스도 소크라테스가 아닐 것이다.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제게 꼭 필요한 아내를 얻었다. ... 크산티페는 정말이지 그가 점점 더 자신의 직업을 행하도록 내몰았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서재에 틀어박혀 있었다면 그는 절대로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 45, 47면
크산티페는 남편이 철학 활동을 못하게 하려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집을 끔찍한 지옥으로 만들고, 창문에서 남편 머리 위로 더러운 물을 부었다. 사람 많은 시장에서 남편의 외투를 벗겨가기도 했다. 그녀는 왜 그랬을까?
남편으로서 소크라테스를 바라보자. 겉으로만 보면 그는 싸돌아다니며 수다 떠는 일밖에는 하지 않았다. 그는 진짜로 빈둥거리는 사람이었다. 집과 아내와 자식들을 보살피지 않고, 정상적인 생계 활동을 하지 않고 사람들과 쓸데없는 잡담이나 한 것이다.
게다가 소크라테스는 게으름뱅이 유형이 전혀 아니었다. 운동을 열심히 했고 심지어는 춤도 잘 추었다. 단순히 건강을 위해서! 전쟁터에서도 다들 추위에 몸을 꽁꽁 싸고 있을 때도 맨발로 얼음 위를 걸었다고 한다. 다 도망치는 상황에서도 혼자서 장군을 따라 성큼성큼 걸어갔다. 태연히 아군과 적군을 살펴보면서 말이다.
소크라테스가 일정 부분 크산티페를 악처로 만들고, 크산티페도 일정 부분 소크라테스를 위대한 철학자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면 더 억울한 사람은 누구일까? 우리의 테스형은 왜 자신의 가족을 내팽개쳤을까? 분명 누군가가 가족을 돌보라 말했을텐데 그때 그는 뭐라고 답했을까?
《철학을 만나는 지름길, 철학의 뒷계단》은 분명 재미있다. 높은 철학의 문턱을 낮추었다. 그러나 사실 결코 쉬운 책은 아니다. 문장은 쉽다. 어려운 단어도 없다. 번역도 훌륭하다. 그런데 이해가 안 된다. ㅎㅎㅎ
철학이 쉬우면 철학이겠는가. 철학자들이 온 생을 바쳐 사색하고 사유해 길어올린 형이상학적인 사고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 단번에 될 일이 아님을 인정해야만 했다. 철학은 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질문에 질문하기다. "철학하기란 답변을 찾아내고 이 답변과 더불어 편안하게 쉰다는 뜻이 아니다. 철학하기란 언제나 새로이 본질적인 물음들을 내놓는다는 뜻이다."(344면)
지독하게 생각해 파고들 깊이가 있어야 철학이지, 금세 모든 것이 드러날 얕은 세계라면 철학이 아니지 않을까. 그 세계를 탐구할 호기심이 있다면 재미와 깊이를 겸비한 《철학을 만나는 지름길, 철학의 뒷계단》은 최적의 선택이라고 본다.
저자는 "올라감과 내려감"을 말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서른네 번을 올라간 사람은 내려가기를 잊어서는 안 된다. 내려가기가 그냥 무심하게 내려가기 아니면 심지어 그냥 떨어지기가 되지 않으려면, 올라가면서 경험한 것이 속에 간직되어야 한다. 조심스레 간직하며 내려가야만 철학자들의 층에서 얻은 통찰이 일상의 삶이라는 지층에서, 혹은 심지어 현실이라는 지하실에서도 쓸모가 있을 테니 말이다."
모든 걸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 일반 독자라면 그럴 수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머리가 엉키는 혼란속에서 가느다란 깨달음의 한 줄기 빛으로 지적 희열을 맛본다면 조금만 더 철학적 세계에 머물러보자. 그 빛을 소중히 간직하며 책을 덮고 다시 열자.
그 횟수를 반복할수록 통찰은 빈번해질 것이다. 비판적 사고력이 높아지고, 자기성찰과 자아발견으로 가는 길목에서 삶의 의미가 선명해질 것이다. 다양한 관점과 문제를 다각적으로 분석하는 능력을 갖출수 있다. 자신을 깨는 순간들을 귀하게 여기며 일상으로 내려간다면 분명 커다란 변화가 작게 조금씩 따라올 것이다.
가까이 하기엔 먼 당신.
하지만 가까이 하고픈 매력적인 당신, 철학.
《철학을 만나는 지름길, 철학의 뒷계단》은 그러한 당신을 좀 더 친근하고 사랑스럽게 다시 볼 수 있게 하는 묘약이 될 것이다.
*** 출판사 김영사의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