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독서 (특별증보판)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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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으로 알게 됐지만 지금은 작가로 더 익숙한 유시민.
정치적 성향은 뒤에 두고, 한 사람이 어떤 책으로 그만의 사유를 구축했는지 일필휘지의 글쟁이가 걸어온 독서의 역사가 궁금해 이 책을 펼쳤다.


《청춘의 독서》는 젊은 날의 독서를 다시 펼쳐 자신의 변화 과정을 추적한다. 고전을 빌린 자기성찰의 회고록이자 고백록이다. 도스토옙스키부터 맹자, 다윈, 밀에 이르기까지 15권의 고전을 통해 “무엇을 믿었고, 왜 바뀌었는가”를 보여준다.


글은 역시 유려했다. 정치철학을 축으로 사상과 역사, 경제를 자유자재로 엮고 날카로운 논증까지 더한다. 배경지식이 없는 나는 저자의 경지를 따라가기가 버거웠지만 다양한 책을 깊이 있게 만날 수 있어 흥미로운 지점이 많았다.


《청춘의 독서》가 중립적이라 말하긴 어렵다. 정치적 입장은 배제하고 청춘의 독서를 즐기고 싶었던 나와 같은 독자에게는 꽤나 아쉬운 일이다. 문학적으로 공감하다가도 정치인 유시민을 만났다. 책 선정과 배치에서 이미 정해진 프레이밍이 작동하는 것 같았다. <공산당 선언>이나 E. H. 카를 언급하는 부분에서 특히 현재의 정치 프레임으로 텍스트를 해석하는 태도가 보였다. 고전으로 현재의 신념을 공고하게 증명하는 흐름은 이 책을 사상적 자서전처럼 읽게 만들었다.


그래서 오히려 보수주의자에게 권하고 싶다. 저자는 자타공인 노련한 토론자다. 그의 지적 지도를 함께 걸으며 자기 신념을 잠시 내려놓고 상대의 논지에 빠져보는 경험은 '우리 편이 맞다'는 확증 편향에서 벗어나게 한다. 다른 길을 걷는 동안 사고의 지평이 넓어지고 시야의 균형이 잡힌다. 반대편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유연성이 자신의 주장에 뚫린 논리의 빈틈을 메우는 유용한 방법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좋았다. 정직한 용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이 선 자리에서 본 풍경을 눈치 보지 않고 드러낸다. 오독을 스스로 교정하는 과정을 투명하게 보여준. 질문을 세우고, 고전을 호출하고, 현실에 대입해 입장을 분명히 하는 태도에서 프로의 자세를 배운다.


저자가 소개한 책 중 <맹자>가 가장 인상 깊었다. 맹자가 위대한 사상가로 대접받기까지 1,500년 가까운 세월이 필요했다니 그는 얼마나 앞서간 성인이었던가. 저자는 맹자를 진정한 보수주의자로 다시 읽는다.


고유의 전통과 문화와 가치관을 지키려는 보수주의자 맹자는 공동체의 질서를 중시하고, 아버지를 사랑하고 형을 공경하는 효제를 최고의 가치로 삼았다. 전국시대의 전란 속에서 가족을 해하면서까지 권력을 지킨 위정자들 앞에서도 단호하게 효를 앞세우고, 백성을 근본으로 삼아 인의예지에 입각한 왕도정치를 설득했다.


"내가 남을 사랑해도 남이 나를 가까이하지 않으면
인자한 마음이 넉넉했는지 되돌아보고,
내가 남을 다스려도 다스려지지 않으면
지식과 지혜가 부족하지 않았는지 반성해볼 것이며,
예로 사람을 대해도 나에게 답례를 하지 않으면
공경하는 마음이 충분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어떤 일을 하고도 성과를 얻지 못하면
자기 자신에게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자신이 바르다면 온 천하 사람이
다 내게로 귀의할 것이다."
- <이루 상> 4

"맹자는 내면의 힘으로 빛을 내는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그의 보수주의는 불편하지만,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호연지기를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맹자는, 좌절마저도 아름다웠던, 진정한 보수주의자였다.
대장부였다. 나는 그것을 알고 나서야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 136면


책을 덮고 나면 묻게 된다. 내 생각의 근거는 무엇인가. 그 논거는 어디에서 왔는가. 저자의 탄탄한 사유를 함께 걸으며, 내가 딛고 선 기반은 과연 굳건한지 점검하고 싶어졌다. 늘 중립의 회색지대를 선호하던 내가 의도적으로 한편에 기울어 보는 경험을 해본 것도 의미 있었다.


좋은 독서는 합의를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나은 반대를 가능하게 한다. 이 책이 정확히 그런 공간이 되어주었다. 저자가 읽은 책들을 언젠간 나만의 관점으로 읽고 다시 이 책을 열어보고 싶다. 그때는 저자와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을까. 더 가까워졌을지 멀어졌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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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뎀 이론 - 인생이 ‘나’로 충만해지는 내버려두기의 기술
멜 로빈스 지음, 윤효원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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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길게 늘어선 줄 때문에 하루를 망치는가?
왜 교통체증 때문에 기분이 나빠지는가?
왜 중요한 일을 하던 중에 누군가 방해하면 힘들어지는가?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는 사람이 짜증 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족들의 조언이 인신공격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쁜 길에서 다른 사람의 느린 걸음이 왜 당신을 서두르게 하는가?

- 80면



이 문장을 읽기만 해도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 같다. 《렛뎀 이론》의 저자 멜 로빈스는 '놀랍게도 인생은 스트레스로 가득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엉망진창 같은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가 아니다. "그 일에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가다."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애당초부터 불가능한 일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타인이나 상황을 통제하려는 것 말이다. 통제욕은 인간의 본능으로 편안함과 안정감을 준다. 우리는 마치 많은 것들을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살지만 실상은 자신의 마음 하나조차 원하는 대로 다루지 못한다.


"렛뎀 이론"은 냅둬, 내버려두라(Let Them)는 의미다.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 바로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를 위해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내버려두자는 제안이다.


내버려두기는 다른 사람의 행동이 자신을 괴롭히지 않겠다고 의식적으로 결정하는 반응이다. 특히 타인이 나를 부정적으로 볼까 봐 걱정하는 것을 멈추라는 대목이 인상 깊었다. 그들은 이미 나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에 관해서도 비판적인 의견을 갖고 있다. 남편과 자녀에 대해 못마땅한 점들이 있지 않은가. 남편에 관해 나쁜 생각을 하지만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짜증 나는 행동 방식이 있지만 동시에 죽을 때까지 사랑할 수 있다. 그러니 남들이 나의 일부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들이 그렇게 나를 판단하도록 내버려두라. 다른 사람에 관해 걱정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지켜낸 나의 에너지를 내게 중요한 것들에 쏟자.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집중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 힘이 생긴다." (89면)
남들의 감정은 내버려두고,
통제할 수 있는 단 하나에 집중하자.
그 단 하나는 바로 당신 자신이다.


"내가 하기 (Let Me)"
렛뎀이 전반부라면, 후반부는 렛미다.
남들을 내버려두라고 혼자 고립된 채 살라는 말이 아니다. 그다음 내가 할 행동에 책임을 진다는 의미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에 힘을 쏟는 것이다. 태도, 가치관, 필요, 욕구, 방금 일어난 일에 대한 반응. 내가 하기는 자기 인식, 공감, 권한 개인의 책임에 관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렛뎀 이론의 진정한 힘이다. 내버려두고 내가 하는 것.


"다른 사람이 자기 삶을 살아가도록 허용할수록
당신의 삶도 더 좋아질 것이다.
통제하기를 더 많이 포기할수록 더 많이 얻을 것이다."
- 66면



렛뎀과 렛미가 하나라는 사실이 좋았다. 조각 기법 중 "양각"과 닮아있었다. 그림이나 글자가 도드라지도록 배경 부분을 깎아내는 과정이 렛뎀 같았다. 통제할 수 없지만 에너지와 시간을 갉아먹는 영역들을 깎아내다보면 '진짜 나'와 내 '인생의 문양'이 입체감을 띄며 선명해지는 것이다. 음각에 비해 시간도 비용도 힘도 몇 배가 더 요구되지만 이것이야말로 나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믿는 자만이 가꿀 수 있는 진짜 삶이 아닐까 싶다.


⁠무엇을 통제하고 무엇을 통과시킬 것인가.
렛뎀은 말한다. 네가 짊어질 짐이 아닌 것은 내버려두라.
렛미는 말한다. 여기서부터는 네 권한이니 이제는 행동하자.


일상에서 부딪히며 그 둘 사이를 현명하게 구분하고 무의미한 통제를 내려놓는 순간, 비로소 진짜 나다운 선택이 또렷해지고 내가 도드라질 것이다. 타인을 바꾸려는 무모한 에너지를 걷어내면 남는 건,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단 하나,
지금의 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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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는 항상 상훈이 형이 있다 - 영화가 인생을 삼켜버린 한 남자 이야기
한상훈 지음 / 불란서책방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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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라는 유령에 홀린 한 남자의 이야기
30년간 강박 장애로 고통받으며 사회적으로 고립된 채 자신을 유령으로 바라보게 된 남자. 그에게 영화는 자신만의 시선이자 언어요, 좁고 광활한 세상이었다. 그렇다고 아예 다른 차원을 사는 괴짜는 아니다. 그에게 내가 겹쳐졌고 곧 깊은 친밀함을 느꼈다.


저자 한상훈은 1997년부터 지금까지 8천 편이 넘는 영화를 보았다. 말 그대로 '영화 빼면 시체'인, 영화에 미친 사람이었다. 좋아하는 하나에 일생을 바칠 줄 아는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 황홀하고도 지난한 여정에 멱살 잡혀 끌려가면서도 누구보다 주체적으로 나아간 자들. 설명할 순 없지만 그들에게선 특유의 파동이 선명하다. 그 무엇도 흔들 수 없을 것 같은 중심이 뿌리박혀 있다. 어마무시한 시간을 등에 업고 있기에 누구든 그들을 감히 흉내 낼 수 없다.


상훈이형에게도 그런 아우라가 비친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얻고 싶었던 사랑을 결코 얻을 수 없었던 나는 영화에 대한 짝사랑을 통해서라도 그 결핍을 채우려고 했다."라고 고백한다. 사람들과 주고받을 수 없어 갈 곳 잃은 사랑을 저자는 영화라는 세상에서 씨앗과 물, 공기와 햇볕으로 쏟아부었다. 영화는 사람만큼 상처 주지 않았고 그에게 행복을 되돌려주었다. 몇 번의 기적까지 선물했다.


영화를 향한 이 맹렬한 짝사랑이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은 저자의 용기에 참 감사했다. 영화와 상훈이형, 단둘만의 내밀한 30년 역사를 책 한 권으로 누릴 수 있다니 대단한 축복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알지 못했을 그의 삶과 영화 이야기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났기 때문이다.


제자리만 맴돈 줄 알았지만 항상 삶으로 향했던 갈망을 품고, 스스로 구원의 길을 찾아낸 걸음에서 나의 지난날이 떠올랐다. 그러자 책의 문장들은 내 마음을 대신 읽어주는 목소리가 되었다. "프레임의 가장자리, 화면 구도의 후경, 스치는 행인"으로 살아오면서도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시간들, 고독하지만 끝까지 혼자 커온 마음들이 만져졌다.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계속 글을 써왔던 것 같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는 문장에서도 내가 보였다.


상훈이형의 영화적 시선이 무척 탐난다. 영화라는 어휘를 이렇게나 넘치도록 쌓아둔 사람이라면 영화 한 편에서 얼마나 깨알 같은 메타포와 기쁨을 숱하게 발견할까! 넓고 멀리 보는 메타인지와 집요하게 파고드는 통찰이 동시에 작동하며, 그 모든 요소들이 하나로 연결되고 구축되는 경지일 테니 말이다. 모래 한 알에서 우주를 보듯, 영화로 모든 것을 투사할 것만 같은 그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어 즐거웠다.


상훈이형은 영화로부터 받지 못한 답장을 독자에게 받게 되지 않을까. 이 리뷰 또한 결핍을 채우기 위한 본능적인 사랑을 해온 그에게 그 사랑이 어떤 건지 아는 독자가 부치는 편지이니 말이다. 삶과 영화가 불가분의 관계이듯, 저자가 세상에 내놓은 시선과 목소리도 독자의 반응과 떼려야 뗄 수 없다. 그는 영화를 통해 자신을 말했고, 독자는 그 말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돌아본다. 저자가 던진 감정과 장면은 독자 안에서 또 다른 이야기로 번져 돌아오니, 두 세계는 그렇게 서로의 결핍을 채우며 완성된다.


상훈이형이 소개해 준 스티븐 스필버그의 <파벨만스>를 봤다. 처음 봤지만 상훈이형 덕분에 두세 번을 본 것처럼 숨은 의미들이 눈에 들어와 나 역시 경탄하며 즐겼다. 친해지고 싶은 상훈이형이다. 그가 영화에서 건져 올린 장면들이 나를 울먹이게 하고 웃음 짓게 했듯, 이 리뷰가 그에게 작은 힘으로 전해지는 엉뚱한 장면을 상상해 본다.


어떻게 되든 괜찮다. 이 마음을 건넨 순간 혹시 모를 희박한 가능성이라도 꿈꿀 수 있게 되어 설렌다. 내가 만든 이 프레임 속에서 상훈이형은 유령이 아닌 누구보다도 진솔하고 뜨거운 사람으로 투명하게 살고 있다는 걸 알아주면 좋겠다.


#도서지원 #극장에는항상상훈이형이있다 #한상훈 #시네필 #영화이야기 #봉준호추천 #김지운추천 #김시선추천 #불란서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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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욕망 - 당신은 본능을 이길 수 있는가
최형진.김대수 지음 / 빛의서가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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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 같은 질문을 던진다. 

“오늘 뭐 먹지?”

특히 주부들에게 평생의 퀘스트로 따라붙는 이 미션은 오래전부터 각인된 인간 생존의 흔적이었다.


인류는 수백만 년 동안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먹을 것을 찾아야 했고, 그 본능은 유전자에 새겨졌다. 뇌는 설탕, 지방, 단백질처럼 높은 에너지를 제공하는 음식에 쾌감을 얻으며 진화했다. 덕분에 우리는 배가 불러 늘어지면서도 ‘다음에 뭘 먹을까’를 묻는 존재가 되었다.



화려한 이력의 뇌과학자와 의사과학자가 만났다. 

김대수• 최형진 공저 《먹는 욕망》은 이 질문이 어떻게 태어나고 왜 사라지지 않는지를 유전학, 뇌과학, 인문학과 철학을 오가며 설득력있게 답한다. 


흥미진진했다. 생각하지 못한 지점을 '먹는 욕망'과 연결해 인간을 탐험하는 여정이었다. 과학자로서의 시선은 물론, 아들이자 교수이자 학자로서의 인격적인 면모까지 글 속에 스며 있어, 머리와 가슴이 동시에 반응하는 즐거운 독서였다.



김대수 교수는 인간을 “메타헌터”라 부른다. 배를 채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확보하고 활용해 문명을 만든 존재라는 뜻이다. 하지만 현대의 초가공식품은 이  뇌의 쾌락 회로를 과도하게 자극해, 포만감 신호를 늦추고 계속 먹게 만든다.


최형진 교수는 여기에 사회적 관점을 더한다. 라캉의 ‘사회적 욕망’을 빌려, 우리가 욕망하는 것의 상당 부분은 사실 사회가 짜놓은 규범과 타인의 시선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SNS에 공유하기 위해 맛집을 탐색하는 데에는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얹혀 있다.



《먹는 욕망》은 식욕을 억누르기보다 ‘이해하라’고 말한다. 배고픔–쾌락–포만감으로 이어지는 뇌의 회로를 구조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시상하부가 혈당과 호르몬 변화를 감지해 ‘먹어라’는 신호를 보내고, 도파민 회로가 기대와 설렘을 키우며 음식을 찾게 하고, GLP-1·렙틴 같은 호르몬이 분비돼 ‘그만 먹어도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일련의 과정. 문제는 식품산업⁠에서 생산된 음식들은 마지막 단계를 지연시키거나 무력화한다는 점이다.


이 구조를 알면 개입할 타이밍도 보인다. 도파민이 예열되기 전에 음식의 시각·후각 자극을 피하는 것이다. 장을 볼 때 배부른 상태로 가고, 군것질 코너를 아예 가지 않는 전략이 여기에 해당한다. 포만감 신호가 도착하기 전, 식사 속도를 늦추거나 중간에 젓가락을 내려놓아 시간을 벌어주는 방법도 유용해보였다. 


여기에 ‘마음 챙김 식사’를 실천하면 포만감은 더 빨리 찾아온다. 식사 중 휴대폰과 TV를 끄고, 음식의 맛과 향, 식감을 온전히 느끼며 천천히 먹는 것이다.



식생활에 꼭 적용하고 싶은 팁도 있었다. 먹방처럼 강한 자극 대신, 초콜릿을 머릿속에서 구체적으로 상상하거나 단순한 음식 사진을 잠깐 보는 것만으로도 뇌의 시간, 미각, 후각 영역이 반응해 ‘조금은 먹은 것 같은 착각'을 줄 수 있다. 카카오닙스나 허브티 향을 맡는 것도 비슷한 효과를 낸다. 도파민을 적당히 자극하되 폭주시키지 않으면 덜 먹고도 포만감을 가질 수 있다. 전을 부치느라 오랫동안 기름냄새를 맡고나면 식욕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특히 메타헌터와 메타푸드의 개념이 인상적이었다. 젊은 시절의 우리는 “메타헌터”로 살아야 한다. 적극적으로 배우고, 시도하고, 경험과 자원을 모아 에너지를 축적하는 존재다. 

인생의 후반부에는 “메타푸드”가 되어야 한다. 내가 쌓아온 힘과 지혜를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고, 그들의 생존과 성장을 돕는 존재로 함께 살아가는 삶이다.


생존을 위해 모으던 힘을, 언젠가는 누군가를 살리는 힘으로 내어줄 준비를 하자는 것이 책이 들려주고픈 진짜 메시지인 것 같았다.


먹는 본능으로 인생을 바라보는 시간이었다. 욕망에 이끌리는 고통의 굴레가 주는 가르침을 읽을 줄 알아야 우리 몸을 지킬 수 있다. 축적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 삶, 순환과 나눔이 있어야 닫히는 욕망의 고리. 먹는 행위에서 출발한 인간의 이해 끝에서 지금 메타헌터인가, 아니면 메타푸드로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얻었다. 




⁠"이제,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인간이 사는 삶의 목적은 

더 많은 에너지를 사냥하며 축적하는 데 있는가,

아니면 자신의 에너지를 나누려 순환시키는 데 있는가?

대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을 실천해야 한다."

- 293면


#도서지원 #먹는욕망 #최형진 #김대수 #뇌과학 #뇌과학책 #욕망 #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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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와 시인의 마음을 받아쓰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필사 에세이
유희경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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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린다.
나는 기다리는 사람이다.
끌리기를 사로잡히기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장소를 바꿔가며 시간을 옮겨가며
책상 앞에서 거리에서 기다린다.

나는 기다림을 쓴다.
기다리는 대상을 쓰고
기다림을 쓰고
기다림의 앞과 뒤를 쓴다.
내가 쓰는 텍스트 -
이야기는 실은 이것이 전부일지도 모른다."
- 작가의 말



나도 기다렸던 사람이다.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
선택 당하길 바라는 사람.


누군가가, 무언가가 먼저 다가오길
참 길게도 기다렸다.
그랬더니 작아졌다.


기다림과 멀어져야 했다.
한 걸음 더 내딛는 게 옳아 보였다.
주체적인 인간으로 강해지고 싶어
나를 몰아붙였다.



그런데 유희경 시인이 그린
기다리는 사람의 뒷모습은
곱고 강인하다.
부러울 정도로.


어두운 밤에도 빛나고
움직이지 않아도 생명력 있어
비어 있는데도 충만하다.



이제 다시 기다리고 싶다.
내 안에 여전히 남아있던 기다림 때문일까.
기다림이 자아낸 텍스트, 《천천히 와》 때문일까.



시인의 기다림은 삶 전체를 관통하는 태도 같다.
자신이 무엇을 기다리는지 알고,
그것을 끝까지 기다릴 줄 아는 믿음.

그렇게 세상과 자신을 조율하는 시인의 자세가
급변하는 이 시대에 더더욱 가치 있어 보인다.



기다림은 언젠가는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라는
믿음에 대한 적극적인 표현이다.
시집만 파는 작은 서점에서, 버스 창밖을 바라보며,
그는 기다림을 문학의 호흡으로 사유한다.



기다림은 문을 두드리는 일과도 닮았다.
무엇이든 문이 될 수 있다는 믿음,
시인은 누군가의 삶 속에
문 하나를 열어줄 준비가 된 사람 같았다.



샛길 없이 익숙한 길만 다니던 생각에서 벗어나
시인의 머리와 가슴속에서 마음껏 놀다 온 기분이다.
색다른 관점과 시선, 감각과 표현에 물들어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낯선 느낌이 좋다.



계속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아 숨이 차는 사람,
조급함에서 벗어나 삶의 속도를 스스로 조율하고 싶은 사람,
기다릴 줄 아는 근육을 단련하고 싶은 사람,
천천히 느긋하게 생각을 걷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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