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었다
방성현(현사이트) 지음 / 딥앤와이드(Deep&WIde)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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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목말랐다. 열심히는 사는 것 같은데 제자리라는 갈증에 뭔가를 더하고 얹어 쌓으려고만 했다. 양질전환의 법칙을 믿었기 때문이다. 양적인 누적에서 질적인 비약이 나오듯, 경험과 노력이 든든하게 축적되면 능력이 되리라 확신했다. 하지만 양질전환의 순간은 좀처럼 오지 않았고 지칠 때가 많아졌다.


그럴 때마다 자기계발서나 관련 영상을 뒤졌다. 힘을 내서 앞으로 앞으로 또 달리고 싶었다. 그래서 자주 들르던 채널 중 하나가 이 책의 저자 방성현이 운영하는 인스타그램 채널 '현사이트' (@hyunsight)였다. 감성적인 위로도, 잠깐 소비되고 연기처럼 사라지는 현란한 영상도 아니었다. 실제적인 변화를 이끄는 철학을 하나의 장면에 담은 영리함이 좋았다. 이성과 감정을 동시에 움직이는 방법을 아는 것 같았다. 이 영상들을 보고 나면 창밖으로 눈을 돌려 생각에 잠기게 됐다. 틈과 여백을 허락하는 콘텐츠가 이 시대에 얼마나 드문가.


"당신의 성장이 멈춘 이유는
충분히 노력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을
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그 끈질긴 생존을,
제대로 작동하는 전략으로
바꿔야 할 때다."


매일의 노력을 제대로 작동하는 전략으로 바꾸기 위해 이 책은 지금 하고 있는 활동과 목표를 재정렬하여 ‘나의 걸음’으로 성장하는 데 집중하라 한다. 목표에 직결되는 행동을 반복하는 집중이 중요한 것이다. 특히 실패나 좌절, 멈춤의 경험도 자기 성장의 재료로 활용하며, 성실성이 문제가 아닌 "리듬의 문제"를 짚어준 점이 인상 깊었다. 성장은 지속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힘을 빼 봐, 그래야 멀리 날아가."
아이가 종이비행기를 힘껏 날린다. 힘을 너무 세게 줬는지 비행기는 아이의 발 앞에 떨어진다. 아빠는 손에 힘을 거의 뺀 채 비행기를 날렸고, 그 비행기는 아이가 쫓아갈 정도로 멀리 날아갔다.

"Slow is smooth and smooth is fast."
"여유는 부드럽고, 부드러움은 빠르다."
- 미 해군 특수부대 격언


성공을 막는 건 과한 욕심이었을지 모른다. 저자는 하루에 할 일을 5개 이내로 줄이자 오히려 실수가 줄고 집중력이 돌아왔다고 말한다. 성과도 덩달아 상승하며, '잘해보고 싶은 열정'이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성숙은 완성이 아니라 방향이다."
- <아직도 가야 하라 길>, 모건 스콧 팩

축적은 양적인 집적이 방향성과 목표로 연결될 때 비로소 “쌓인다”는 감각이 생긴다는 것을 깨달았다. 1단계만 있고 2단계는 빠져있었다. 욕심으로 하루하루 열심히 걷기만 했지, 지도 없이 헤매니 힘만 빠질 뿐 만족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꾸준함의 힘은 시작과 지속의 이유는 되지만 방향이 없다면 완성도 없다. 경로 없이 기초체력만으로 무작정 달린다고 마라톤을 완주한 것은 아니다.



"그들이 후회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했다.
모든 선택이 '본인의 의지'로 결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 50면

심리학의 '자기결정성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행복과 만족은 결과보다 선택의 주체성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주체적으로 내린 결정에 대해서는 후회보다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좌충우돌 거창한 성과도 없는 블로그지만 그 선택은 분명 내 안에서 솟아오른 용기이자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고, 나는 매 순간 그때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리라 믿는다.


내가 한 선택이라면 최고의 결정이라는 말에 진심으로 위안을 얻었다. 실패 없는 삶이 아니라, 책임지는 삶이 더 의미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대학생 때부터 창업에 도전하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래서일까, 멈춘 것 같은 시간을 숱하게 관통했을 그의 이야기에는 거칠고 울퉁불퉁한 삶이 정직하게 살아있었다. 그 진짜 이야기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들렸다.


잠깐 반짝이는 동기부여가 아니라 끝까지 나의 리듬을 이어가게 하는 전략, 흔들림과 실패까지 품고 방향을 설정해가는 업그레이드된 힘을 실어주는 책이었다. 시련과 좌절을 깊이 맛본 분일수록 더 풍성한 통찰을 얻을 책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


#도서지원 #당신은한번도멈춘적이없었다 #방성현 #현사이트 #인스타그램스타 #자기계발책추천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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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묻고 의학이 답하다 - 의학의 새로운 도약을 불러온 질병 관점의 대전환과 인류의 미래 묻고 답하다 7
전주홍 지음 / 지상의책(갈매나무)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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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흐름과 관점의 변화를
이해하는 일은 더욱 중요합니다.
오늘날의 우리를 더 깊이 이해하게 할 뿐 아니라
의문과 갈등, 불확실성 속에서
더 나은 질문을 던질 힘을 주지요."
- 들어가며


《역사가 묻고 의학이 답하다》는 질병을 바라보는 관점 변화와 의학의 발전 과정을 역사 속에서 다각도로 흥미롭게 설명한 책이다. 서울대 교수이자 분자생리학자인 전주홍이 쓴 자연과학 교양서이다. 의학의 언어가 신의 벌, 체액, 해부와 병리, 분자, 정보로 바뀔 때마다 치료법과 환자의 운명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역사를 통해 추적한다.


의학은 언제부터 과학이었을까. 백신이나 항생제, 유전자 편집 같은 최신 기술을 떠올리기 쉽지만, 저자는 다른 대답을 건넨다. 의학은 어느 날 갑자기 과학이 된 것이 아니다. 신의 노여움, 체액, 해부, 분자, 정보라는 다섯 전환을 거치며 ‘점진적으로 과학이 되어온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다섯 관점의 전환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자 관점이 충돌하는 이야기로 흘러서 무척 흥미로웠다.


고대에는 질병을 신의 노여움으로 해석했다. 중세 이전까지 사람들은 병을 초월적 개입으로 인식해 기도나 종교 의례로 치료했다. 이후로는 그리스, 로마 전통에서 체액의 균형이 무너진다는 자연주의적 관점이 힘을 얻는다. 피를 뽑거나 음식과 생활습관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회복을 시도한다.


르네상스 시기, 해부학이 본격적으로 발전하면서 병의 원인은 인체 내부로 들어온다. 장기와 조직을 눈으로 확인하며 병리를 찾는 방식이 자리 잡았고, 의학은 미술과 함께 ‘보는 방식’을 공유한다. 19세기 이후 분자 수준에서 생명을 파악하는 접근이 등장하면서 세균학, 화학적 약제, 분자생물학이 폭발적으로 발전한다. 인간은 질병을 분자 단위의 적을 상대하는 전쟁처럼 이해하게 된다.


21세기에 들어선 의학은 정보의 언어로 다시 태어난다. 유전자는 코드로 불리고, 질병은 데이터의 오류로 해석된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는 평균적인 환자가 아니라 ‘특정한 개인’에게 최적화된 진단과 치료를 제안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 지점을 경고한다. 아무리 정밀한 기술이 있어도, 환자 곁을 지키는 손길 없이는 전인적 돌봄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책을 읽으며 의학의 진보는 기술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진정한 치료는 환자의 곁을 지키는 돌봄의 서사와 과학적 패러다임이 함께 가는 것이었다. AI가 세상을 장악할수록 인간적인 손길과 과학적 시선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저자의 메시지가 인류를 위한 경고처럼 들렸다.



"대립하는 것들은 상보적이다"
- 닐스 보어

저자는 닐스 보어의 문장으로 책을 마무리한다. 강렬했다. 서로 반대처럼 보이는 것들이 서로를 보완한다니! 차가운 해석과 따뜻한 돌봄, 알고리즘과 직관, 치료와 기다림. 하나를 지우면 이야기가 기울어지듯, 의학은 한 번도 하나의 언어만으로 말한 적이 없었다. 시대마다 주된 언어가 바뀌었을 뿐, 나머지 언어들은 물처럼 흐르며 다시 새로워졌다.


데이터가 점점 더 방대해지고, AI는 더 빠르게 학습하겠지만 의학은 차가운 지식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다. 병리학의 날카로운 눈이 있어도, 환자를 인격체로 바라보고 손을 잡는 따뜻한 시간이 없으면 치료는 불완전하다.


의학의 언어가 시대마다 바뀌었듯, 오늘을 사는 우리는 ‘정보’와 ‘돌봄’이라는 두 언어를 함께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깊어졌다. 기술의 언어가 질병을 설명해 준다면, 돌봄의 언어는 환자를 끝까지 안아 준다. 인공지능의 무오함과 인간의 따듯함이 균형을 이룰 때, 의학은 사람을 온전히 구한다. 우리는 우리를 믿어야 한다.


결국 사람이었다. 역사가 알려주는 미래의 해답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역사는 올바른 방향을 들려준다. 기술이 아무리 정밀해지더라도, 우리는 반드시 더 인간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도서지원 #역사가묻고의학이답하다 #전주홍 #지상의책출판사 #의학 #생명과학 #추천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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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올리버
올리버 색스.수전 배리 지음, 김하현 옮김 / 부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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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신경과학자가 나눈
우정, 감각, 그리고
인생의 두 번째 시선"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로 알려진 신경과 교수, 올리버 색스는 "의학계의 계관시인"이라 불리는 탁월한 과학 저술가이기도 하다. 이 책은 올리버 색스의 타계 10주기를 기리며 그에게 부치는 수전 배리의 찬가다.


수전 배리는 생물학 및 신경과학 교수다. 올리버 색스와 20살의 나이차에도 오랜 우정을 다지며 10년간 150통의 편지를 주고받는다. 그녀는 어릴 때 사시 교정 수술을 받았지만 48세에 처음으로 입체시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입체적인 세상을 수전 배리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보고 있었다. 한 눈만 쓰면 세상은 어수선하고 납작한 평면으로 보인다. 탁자 위에 있는 컵을 종이에 그려진 그림처럼 보는 것이다. 시력 훈련을 받고서야 난생처음으로 두 눈의 초점을 한곳에 맞춰 3차원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그날 저는 떨어지는 눈 속에, 눈송이 사이에 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점심 먹는 것도 잊고 한참 동안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며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눈은 대단히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눈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더더욱요."
- 24면


입체시는 유아기가 지나면 발달할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수전 배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믿어줄 사람이 없을 거라 여겼지만 올리버 색스의 책을 읽고는 환자에게 깊이 공감하는 그의 통찰력에 감탄한다. 그리고 기나긴 편지에 자신의 시력 일대기를 실어 보낸다.


올리버 색스는 입체시가 무너졌다가 복구된 경험이 있었기에 입체시가 기적이자 특권이며, 강렬한 기쁨과 경이의 원천이라는 것을 알았다. 뉴욕입체협회의 정회원으로 온갖 입체적인 것을 사랑하는 올리버 색스는 그녀의 편지는 받고 몹시 흥분했다. 그렇게 편지 한 통으로 시작된 두 지성의 교류는 두 사람의 인생을 풍성하게 바꾼다.


수전 배리와 편지를 교환하기 시작한 해에 올리버 색스는 안구암 진단을 받는다. 그녀가 경이로운 세상을 발견한 시기에 그는 시력을 잃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세상을 떠나기 7주 전까지도 무엇을 쓸지 고민하고, 식을 줄 모르는 호기심으로 신나게 성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었다.


수전은 그런 올리버를 위해 그녀만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편지를 쓴다. 올리버에게 전할 재미있는 동물 관련 사건을 찾아다니며 그림을 그려 보낸다. 그가 사랑하는 세상 이야기를 끝까지 들려주고 보여주며, 언제까지나 그가 감탄을 잃지않길 바라는 마음은 아니었을까.


"유유상종. 끼리끼리"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들이 이런 우정을 가꿀 수 있었던 건 좋은 사람이었던 이유도 있지만 서로의 진가와 진심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는 진짜를 알아본다. 서로가 서로의 거인이 되어 상대의 어깨에 올라타 더 높이 오를 수 있도록 손을 잡아주는 우정. 서로가 서로의 동료이자 스승이 되는 관계. 무척 부럽다.


수전이 그 첫 번째 편지를 부치지 않았더라면 (실제로 그녀는 부치지 않을 뻔했다), 그 편지를 받고 올리버가 한걸음에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찰나의 작은 용기로 말을 건네는 순간 세상은 변하기 시작한다. 서로의 세계가 삶에 들어와 섞인다. 수많은 변화를 일으키며 인생을 바꾼다.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을 그들이 직접 만들어낸 것이다.


"인생에는 그런 순간들이 있다.
드물긴 하지만 내 우주에 있는
모든 별과 행성이 나란히 정렬하는 것 같은 때."
- 294면



그들의 우정은 우연에서 시작된 것 같지만 사실은 서로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만든 준비된 기적이었다. 삶의 갈림길에서 망설이지 않고, 누군가의 작은 빛을 알아보는 안목을 가진 사람, 그렇게 주변 사람들이 가진 빛을 모아 세상을 더 밝게 비추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한 책, 《디어 올리버》였다.


#도서지원 #올리버색스 #우정 #우정편지 #위로 #디어올리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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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의 철학적 대화
가렛 매튜스 지음, 김혜숙.남진희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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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의 철학적 대화》는 어린이철학의 시작을 알린 철학 교수, 가렛 매튜스가 쓴 대중철학서다. 8~11세 음악학교 학생들과 한 학기 동안 나눈 철학토론을 기록했다.


어른도 어려워하는 철학토론을 초등학생들이 한다?
의아했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아이들과의 철학적 대화는 틀이 없어 오히려 더 여유롭고 흥미로우며 열려있었다. 그 빈틈에서 철학의 본질이 드러났다.


"식물도 아기 식물을 갖고 싶어 할까요?
(♡♡♡)

"식물도 서로 대화할 거 같아요.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옮겨 다니는 꽃가루를 통해서요."
(과학적 증거는 아직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사실이 영원히 바뀌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순 없다. 아이들은 세상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캐내는 탐구자다.)

"컴퓨터는 기억 저장 창고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아 반응해요. 그건 생각하는 것과 같아요. 하지만 그들이 살아 있는 건 아니죠."
(AI를 이용하는 어른들도 잊기 쉬운 핵심을 정확히 짚어냈다.)

"저는 바나나를 싫어해요. 만약 아빠가 저였다면, 아빠도 바나나를 싫어할 거예요. 그런데 만약에 아빠가 내가 된다면, 누가 아빠가 되는 거죠?"
(막 세 살이 된 아이가 반 사실적 조건문을 써서 논리적인 난점을 찾아 스스로 퍼즐을 풀고자 했다.)



"부모와 교사들은, 심지어 감수성이 높고 선의를 가진 사람들조차, 왜 아이들의 생각에서 순수한 성찰의 순간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걸까?
아마도 그들이 아이들의 능력, 특히 인지적 능력의 발달에 대해 완고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의 사고는 당연히 초보적이며, 어른들이 생각하는 규정을 따라 발달한다고 가정한다. 우리는 발달 개념을 가지고 아이들의 말을 걸러냄으로써, 그러한 말들이 가진 철학적 탐색의 기회를 막고 있다."
- 82, 83면


저자가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가렛 매튜스는 어린이도 세상과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 하며,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아이들을 사유할 수 있는 능동적인 철학 주체로 간주했다. 사실과 논리가 부족하다며 무시하지 않고,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가능성으로 귀 기울이는 태도야말로 가장 어른다운 모습이 아닐까.



지식과 경험이 쌓인 어른들은 사실과 허구를 구분하며, ‘당연한’ 틀에 갇혀 살아간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당연함은 없다. 직관과 호기심으로 세상과 인간을 낯설고 새롭게 바라보는 아이들은 어른과 다른 관점을 가지고 동등하게 토론할 수 있는 훌륭한 대화 상대다. 아이들을 미숙한 존재로만 본다면, 그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스스로 버리는 셈이다.


아이들뿐 아니라, 타인과 나 자신을 바라볼 때, 얼마나 진정으로 존중했던가. 중요한 사람의 말을 듣듯 경청했던가. 정답인지 아닌지를 따지며 선입견과 지레짐작으로 얼마나 많은 순간을 흘려보냈는지 후회된다. 함께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려 노력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아이들을 통해 "다른 생각"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이들은 대답을 얻기보다 생각을 흔드는 질문으로 세상을 여는 법을 보여주었다. 철학이란 고독하고 어렵게 형성되기보다, 서로의 의견을 발판 삼아, 함께 헤매며 생각을 피워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타인과 나 자신에게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귀 기울이는 자세와 생각을 부딪치고 조율하며 같이 쌓아가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우리는 모두 스스로 자기만의 답을 찾아가는 존재라는 걸 알았다. 《아이들과의 철학적 대화》는 그 믿음을 준 책이었다.


#도서지원 #아이들과의철학적대화 #가렛매튜스 #철학 #어린이철학 #바람의아이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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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영감노트 - 읽고 쓰는 모든 사람을 위한 고전 수업
기무라 류노스케 지음, 김소영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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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고 인용된 작가, 셰익스피어.
연간 수천 편의 논문과 학술지를 통해 학자들은 끝없이 그의 작품을 연구한다. 궁금했다.
무엇이 그리 대단하길래 4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읽히고, 분석되고, 공연되는 걸까?


"고전을 하나 출산하면
그 작가는 거장의 반열에 오릅니다.
하지만 고전을 하나도 아니고
여러편을 수태하면 그 작가는 어떻게 될까요?
셰익스피어가 됩니다.
셰익스피어 이외에 그러한 존재가
인류사에서 아직 없었기 때문에
다른 표현을 고를 수 없습니다."
- 이종범 (웹툰 닥터 프로스트 작가) 추천사


인류사에 단 한 명이라는 경지에 이른 셰익스피어.
영어 어휘 중 약 1700개를 직접 만들면서 현대 영어의 토대를 놓아 영어 문학과 언어 발전에 혁신적인 공헌을 했다.
사랑, 권력, 질투, 야망, 죽음 등 인간의 선악과 복잡한 내면을 깊이 탐구하며,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을 그려냈다.


게다가 계층을 막론하고 모두가 이야기에 빠져들게 할만큼 기가 막힌 스토리텔러였다. 오락성과 철학적 깊이까지 아우르며 오늘까지도 인문학과 예술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그의 위대함을 모두 열거하기가 벅찰 정도다. 알면 알수록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는 놀라운 위인이다.


저자는 셰익스피어 작품을 중심으로 무대 연출을 해온 기무라 류노스케다. 셰익스피어가 그랬듯 연출까지 겸하는 작가여서 그럴까, 연출가 셰익스피어의 입장에서 고민하며 작품의 매력을 무대 위에 펼쳐고픈 순수한 열망이 느껴져 좋았다.


정답을 찾듯 셰익스피어를 해석하려 들지 않고, '지금 이 시점에 셰익스피어를 전달한다면 어떤 방법이 좋을까?' '어떻게 읽어야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까'하는 관점으로 작품을 마주하는 태도가 정말 인상 깊었다. 굉장히 열린 자세를 가진 사람이었다. 유연하고도 넓은 시야로 작품과 인간을 이해하려는 저자의 태도는 셰익스피어와 오랜 시간을 보낸 덕분이 아닐까.


희곡의 한자를 풀면 '놀면서(희) 구부린다(곡)'는 뜻이다. 희곡은 애초부터 연극의 사전 설계도 같은 것이라 자유롭게 놀다가 마음껏 모양을 바꿔도 되는 장르다. 책장에 꽂아두기보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떠들썩하게 사람들과 토론도 하고, 자기 인생을 자유롭게 끼워 넣어도 보며, 내용을 조금 어지럽히는 것이 묘미라는 희곡!


나와는 정반대의 장르라는 사실에 호기심이 생겼다. 나는 해석의 자유보다 질서와 구조를 우선하는 융통성 없는 사람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정답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정답이 있다는 전제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답을 찾으려는 욕망이 원동력이 된다.


그런 내게 "인생에 이치에 맞는 의미 따윈 없다"는 셰익스피어의 명대사도, 표절의 명인으로 원작의 좋은 부분을 쏙쏙 골라 하나로 합쳐 셰익스피어식 '에센스 한 방울'을 떨어뜨려 인류 역사상 최대의 히트작으로 탈바꿈시킨 글쓰기 방식도 뻣뻣한 나를 자꾸만 흔들어 놓았다. 정답 없는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라고, 틀을 조금 어지럽혀도 괜찮다고 속삭였다. 셰익스피어가 열어준 삶의 무대 위에서, 어쩌면 나는 처음으로 질서가 아닌 자유를 배우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셰익스피어 영감노트》의 원서는 <14歳のためのシェイクスピア>.14세를 위한 셰익스피어란 제목으로 일본에서는 청소년을 타깃으로 출간된 모양이다. 쉽고 재미있는 책이지만 청소년들만 읽기엔 너무나 아까운 책이다. 이 책을 읽는다면 누구나 셰익스피어를 인생 친구로 삼고 싶을 정도로 셰익스피어의 매력을 제대로 소개하는 책이니 많은 분들이 읽어보셨으면 좋겠다.


이 책은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을 학문적으로 파고드는 대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왜 그가 특별한가를 보여주었다. 고전을 멀게만 느끼던 나조차 자유와 유연성의 힘을 배워가게 했으니, 셰익스피어를 처음 만나려는 이들에게 이보다 좋은 입문서는 드물 것이다.


책장을 넘어 삶의 무대로 독자를 불러내는 셰익스피어. 이제 그는 나의 인생 무대에서도 오랫동안 함께하고싶은, 내 친구다.


p.s 셰익스피어 전작을 번역한 대가와의 인터뷰가 후반부에 수록돼있다.
정말 즐거웠다. 인터뷰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셰익스피어로 통하는 두 전문가의 대화는 나까지도 그 대화에 참여한듯 생동감 있었다. 번역의 어려움과 즐거움, 셰익스피어에 관한 TMI까지 다채로운 재미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도서지원 #셰익스피어영감노트 #읽고쓰는모든사람을위한고전수업 #셰익스피어 #희곡 #더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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