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셰익스피어 영감노트 - 읽고 쓰는 모든 사람을 위한 고전 수업
기무라 류노스케 지음, 김소영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8월
평점 :
인류사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고 인용된 작가, 셰익스피어.
연간 수천 편의 논문과 학술지를 통해 학자들은 끝없이 그의 작품을 연구한다. 궁금했다.
무엇이 그리 대단하길래 4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읽히고, 분석되고, 공연되는 걸까?
"고전을 하나 출산하면
그 작가는 거장의 반열에 오릅니다.
하지만 고전을 하나도 아니고
여러편을 수태하면 그 작가는 어떻게 될까요?
셰익스피어가 됩니다.
셰익스피어 이외에 그러한 존재가
인류사에서 아직 없었기 때문에
다른 표현을 고를 수 없습니다."
- 이종범 (웹툰 닥터 프로스트 작가) 추천사
인류사에 단 한 명이라는 경지에 이른 셰익스피어.
영어 어휘 중 약 1700개를 직접 만들면서 현대 영어의 토대를 놓아 영어 문학과 언어 발전에 혁신적인 공헌을 했다.
사랑, 권력, 질투, 야망, 죽음 등 인간의 선악과 복잡한 내면을 깊이 탐구하며,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을 그려냈다.
게다가 계층을 막론하고 모두가 이야기에 빠져들게 할만큼 기가 막힌 스토리텔러였다. 오락성과 철학적 깊이까지 아우르며 오늘까지도 인문학과 예술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그의 위대함을 모두 열거하기가 벅찰 정도다. 알면 알수록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는 놀라운 위인이다.
저자는 셰익스피어 작품을 중심으로 무대 연출을 해온 기무라 류노스케다. 셰익스피어가 그랬듯 연출까지 겸하는 작가여서 그럴까, 연출가 셰익스피어의 입장에서 고민하며 작품의 매력을 무대 위에 펼쳐고픈 순수한 열망이 느껴져 좋았다.
정답을 찾듯 셰익스피어를 해석하려 들지 않고, '지금 이 시점에 셰익스피어를 전달한다면 어떤 방법이 좋을까?' '어떻게 읽어야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까'하는 관점으로 작품을 마주하는 태도가 정말 인상 깊었다. 굉장히 열린 자세를 가진 사람이었다. 유연하고도 넓은 시야로 작품과 인간을 이해하려는 저자의 태도는 셰익스피어와 오랜 시간을 보낸 덕분이 아닐까.
희곡의 한자를 풀면 '놀면서(희) 구부린다(곡)'는 뜻이다. 희곡은 애초부터 연극의 사전 설계도 같은 것이라 자유롭게 놀다가 마음껏 모양을 바꿔도 되는 장르다. 책장에 꽂아두기보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떠들썩하게 사람들과 토론도 하고, 자기 인생을 자유롭게 끼워 넣어도 보며, 내용을 조금 어지럽히는 것이 묘미라는 희곡!
나와는 정반대의 장르라는 사실에 호기심이 생겼다. 나는 해석의 자유보다 질서와 구조를 우선하는 융통성 없는 사람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정답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정답이 있다는 전제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답을 찾으려는 욕망이 원동력이 된다.
그런 내게 "인생에 이치에 맞는 의미 따윈 없다"는 셰익스피어의 명대사도, 표절의 명인으로 원작의 좋은 부분을 쏙쏙 골라 하나로 합쳐 셰익스피어식 '에센스 한 방울'을 떨어뜨려 인류 역사상 최대의 히트작으로 탈바꿈시킨 글쓰기 방식도 뻣뻣한 나를 자꾸만 흔들어 놓았다. 정답 없는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라고, 틀을 조금 어지럽혀도 괜찮다고 속삭였다. 셰익스피어가 열어준 삶의 무대 위에서, 어쩌면 나는 처음으로 질서가 아닌 자유를 배우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셰익스피어 영감노트》의 원서는 <14歳のためのシェイクスピア>.14세를 위한 셰익스피어란 제목으로 일본에서는 청소년을 타깃으로 출간된 모양이다. 쉽고 재미있는 책이지만 청소년들만 읽기엔 너무나 아까운 책이다. 이 책을 읽는다면 누구나 셰익스피어를 인생 친구로 삼고 싶을 정도로 셰익스피어의 매력을 제대로 소개하는 책이니 많은 분들이 읽어보셨으면 좋겠다.
이 책은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을 학문적으로 파고드는 대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왜 그가 특별한가를 보여주었다. 고전을 멀게만 느끼던 나조차 자유와 유연성의 힘을 배워가게 했으니, 셰익스피어를 처음 만나려는 이들에게 이보다 좋은 입문서는 드물 것이다.
책장을 넘어 삶의 무대로 독자를 불러내는 셰익스피어. 이제 그는 나의 인생 무대에서도 오랫동안 함께하고싶은, 내 친구다.
p.s 셰익스피어 전작을 번역한 대가와의 인터뷰가 후반부에 수록돼있다.
정말 즐거웠다. 인터뷰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셰익스피어로 통하는 두 전문가의 대화는 나까지도 그 대화에 참여한듯 생동감 있었다. 번역의 어려움과 즐거움, 셰익스피어에 관한 TMI까지 다채로운 재미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도서지원 #셰익스피어영감노트 #읽고쓰는모든사람을위한고전수업 #셰익스피어 #희곡 #더퀘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