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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의 철학적 대화
가렛 매튜스 지음, 김혜숙.남진희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25년 9월
평점 :
《아이들과의 철학적 대화》는 어린이철학의 시작을 알린 철학 교수, 가렛 매튜스가 쓴 대중철학서다. 8~11세 음악학교 학생들과 한 학기 동안 나눈 철학토론을 기록했다.
어른도 어려워하는 철학토론을 초등학생들이 한다?
의아했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아이들과의 철학적 대화는 틀이 없어 오히려 더 여유롭고 흥미로우며 열려있었다. 그 빈틈에서 철학의 본질이 드러났다.
"식물도 아기 식물을 갖고 싶어 할까요?
(♡♡♡)
"식물도 서로 대화할 거 같아요.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옮겨 다니는 꽃가루를 통해서요."
(과학적 증거는 아직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사실이 영원히 바뀌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순 없다. 아이들은 세상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캐내는 탐구자다.)
"컴퓨터는 기억 저장 창고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아 반응해요. 그건 생각하는 것과 같아요. 하지만 그들이 살아 있는 건 아니죠."
(AI를 이용하는 어른들도 잊기 쉬운 핵심을 정확히 짚어냈다.)
"저는 바나나를 싫어해요. 만약 아빠가 저였다면, 아빠도 바나나를 싫어할 거예요. 그런데 만약에 아빠가 내가 된다면, 누가 아빠가 되는 거죠?"
(막 세 살이 된 아이가 반 사실적 조건문을 써서 논리적인 난점을 찾아 스스로 퍼즐을 풀고자 했다.)
"부모와 교사들은, 심지어 감수성이 높고 선의를 가진 사람들조차, 왜 아이들의 생각에서 순수한 성찰의 순간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걸까?
아마도 그들이 아이들의 능력, 특히 인지적 능력의 발달에 대해 완고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의 사고는 당연히 초보적이며, 어른들이 생각하는 규정을 따라 발달한다고 가정한다. 우리는 발달 개념을 가지고 아이들의 말을 걸러냄으로써, 그러한 말들이 가진 철학적 탐색의 기회를 막고 있다."
- 82, 83면
저자가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가렛 매튜스는 어린이도 세상과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 하며,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아이들을 사유할 수 있는 능동적인 철학 주체로 간주했다. 사실과 논리가 부족하다며 무시하지 않고,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가능성으로 귀 기울이는 태도야말로 가장 어른다운 모습이 아닐까.
지식과 경험이 쌓인 어른들은 사실과 허구를 구분하며, ‘당연한’ 틀에 갇혀 살아간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당연함은 없다. 직관과 호기심으로 세상과 인간을 낯설고 새롭게 바라보는 아이들은 어른과 다른 관점을 가지고 동등하게 토론할 수 있는 훌륭한 대화 상대다. 아이들을 미숙한 존재로만 본다면, 그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스스로 버리는 셈이다.
아이들뿐 아니라, 타인과 나 자신을 바라볼 때, 얼마나 진정으로 존중했던가. 중요한 사람의 말을 듣듯 경청했던가. 정답인지 아닌지를 따지며 선입견과 지레짐작으로 얼마나 많은 순간을 흘려보냈는지 후회된다. 함께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려 노력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아이들을 통해 "다른 생각"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이들은 대답을 얻기보다 생각을 흔드는 질문으로 세상을 여는 법을 보여주었다. 철학이란 고독하고 어렵게 형성되기보다, 서로의 의견을 발판 삼아, 함께 헤매며 생각을 피워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타인과 나 자신에게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귀 기울이는 자세와 생각을 부딪치고 조율하며 같이 쌓아가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우리는 모두 스스로 자기만의 답을 찾아가는 존재라는 걸 알았다. 《아이들과의 철학적 대화》는 그 믿음을 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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