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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올리버
올리버 색스.수전 배리 지음, 김하현 옮김 / 부키 / 2025년 8월
평점 :
"두 신경과학자가 나눈
우정, 감각, 그리고
인생의 두 번째 시선"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로 알려진 신경과 교수, 올리버 색스는 "의학계의 계관시인"이라 불리는 탁월한 과학 저술가이기도 하다. 이 책은 올리버 색스의 타계 10주기를 기리며 그에게 부치는 수전 배리의 찬가다.
수전 배리는 생물학 및 신경과학 교수다. 올리버 색스와 20살의 나이차에도 오랜 우정을 다지며 10년간 150통의 편지를 주고받는다. 그녀는 어릴 때 사시 교정 수술을 받았지만 48세에 처음으로 입체시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입체적인 세상을 수전 배리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보고 있었다. 한 눈만 쓰면 세상은 어수선하고 납작한 평면으로 보인다. 탁자 위에 있는 컵을 종이에 그려진 그림처럼 보는 것이다. 시력 훈련을 받고서야 난생처음으로 두 눈의 초점을 한곳에 맞춰 3차원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그날 저는 떨어지는 눈 속에, 눈송이 사이에 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점심 먹는 것도 잊고 한참 동안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며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눈은 대단히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눈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더더욱요."
- 24면
입체시는 유아기가 지나면 발달할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수전 배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믿어줄 사람이 없을 거라 여겼지만 올리버 색스의 책을 읽고는 환자에게 깊이 공감하는 그의 통찰력에 감탄한다. 그리고 기나긴 편지에 자신의 시력 일대기를 실어 보낸다.
올리버 색스는 입체시가 무너졌다가 복구된 경험이 있었기에 입체시가 기적이자 특권이며, 강렬한 기쁨과 경이의 원천이라는 것을 알았다. 뉴욕입체협회의 정회원으로 온갖 입체적인 것을 사랑하는 올리버 색스는 그녀의 편지는 받고 몹시 흥분했다. 그렇게 편지 한 통으로 시작된 두 지성의 교류는 두 사람의 인생을 풍성하게 바꾼다.
수전 배리와 편지를 교환하기 시작한 해에 올리버 색스는 안구암 진단을 받는다. 그녀가 경이로운 세상을 발견한 시기에 그는 시력을 잃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세상을 떠나기 7주 전까지도 무엇을 쓸지 고민하고, 식을 줄 모르는 호기심으로 신나게 성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었다.
수전은 그런 올리버를 위해 그녀만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편지를 쓴다. 올리버에게 전할 재미있는 동물 관련 사건을 찾아다니며 그림을 그려 보낸다. 그가 사랑하는 세상 이야기를 끝까지 들려주고 보여주며, 언제까지나 그가 감탄을 잃지않길 바라는 마음은 아니었을까.
"유유상종. 끼리끼리"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들이 이런 우정을 가꿀 수 있었던 건 좋은 사람이었던 이유도 있지만 서로의 진가와 진심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는 진짜를 알아본다. 서로가 서로의 거인이 되어 상대의 어깨에 올라타 더 높이 오를 수 있도록 손을 잡아주는 우정. 서로가 서로의 동료이자 스승이 되는 관계. 무척 부럽다.
수전이 그 첫 번째 편지를 부치지 않았더라면 (실제로 그녀는 부치지 않을 뻔했다), 그 편지를 받고 올리버가 한걸음에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찰나의 작은 용기로 말을 건네는 순간 세상은 변하기 시작한다. 서로의 세계가 삶에 들어와 섞인다. 수많은 변화를 일으키며 인생을 바꾼다.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을 그들이 직접 만들어낸 것이다.
"인생에는 그런 순간들이 있다.
드물긴 하지만 내 우주에 있는
모든 별과 행성이 나란히 정렬하는 것 같은 때."
- 294면
그들의 우정은 우연에서 시작된 것 같지만 사실은 서로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만든 준비된 기적이었다. 삶의 갈림길에서 망설이지 않고, 누군가의 작은 빛을 알아보는 안목을 가진 사람, 그렇게 주변 사람들이 가진 빛을 모아 세상을 더 밝게 비추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한 책, 《디어 올리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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