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20만 부 에디션, 양장) -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조현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름다운 것이 이토록 많은 세상에서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기나긴 제목만 숱하게 들어 항상 궁금했던 책이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독서모임 지원단에 당첨되었다는 소식을 받고 참 기뻤다.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을 수 있도록 5권의 책을 전부 출판사에서 제공해 주셨다.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라 신나고 설렜다.


성탄절과 연말에 어울리는 붉은빛의 "20만 부 양장 에디션"으로 멋지게 차려입은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을 만났다. 기대가 컸지만 실망은 없었다. 유서 깊은 매거진 "뉴요커" 출신의 저자 패트릭 브링리의 유려하고 아름다운 문체가 미술관의 작품들과 참 잘 어울렸다. 미술 감상을 위한 작품 해설이나 묘사가 아닌 저자의 삶을 관통해 예술과 어우러진 통찰과 사유가 잔잔한 윤슬처럼 빛나는 책이었다.


전도유망한 뉴욕의 마천루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승승장구하던 저자. 친형이 암 투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형과 각별한 우애를 나누던 저자는 도저히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내 나이 스물다섯이었다. 세상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를 쓰고, 꾸역꾸역 긁고, 밀치고, 매달려야 하는 종류의 일은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누군가를 잃었다. 거기서 더 앞으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
오랫동안 나는 뉴욕의 훌륭한 미술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눈여겨봐왔다. 보이지 않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큐레이터들이 아니라 구석마다 경계를 늦추지 않고 서 있는 경비원들 말이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되면 어떨까? 해결책이 이렇게 간단해도 되는 것일까?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세상에서 빠져나가 온종일 오로지 아름답기만 한 세상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속임수가 과연 가능한 것일까?"
- 75면


그렇게 그는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되었고 10년을 일하게 된다. 그 10년의 회고록이자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 삶과 죽음, 인생과 예술의 기록이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이다. 세계 3대 미술관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7만 평의 공간, 300만 점의 작품 속에서 저자는 완벽한 고요가 건네는 위로를 받았다. 600명의 경비원 동료들과 연 700만 명이 넘는 관람객들 사이에서 작은 인사를 주고받고 교류하는 시간들은 마음속에 커다란 구멍을 조금씩 채웠다. 그리고 저자는 애도의 끝을 애도해야 하는 날들을 맞는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를 읽으며 평소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예술"에 대해 둘러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 좋았다. 저자는 어릴 때부터 가족과 함께 미술관을 드나들며 나름의 감상과 추억을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성인이 되어서도 예술을 삶에 들여 함께 녹여낼 줄 알았던 것 같다. 그렇게 자신이 진정으로 즐기고 원하는 것들 중 하나가 예술이 되었고, 미술관은 그의 우주의 구멍이자 영혼의 안식처인 환상적인 공간이 될 수 있었다.


누구나 저자처럼 미술관에서 위안과 교감을 얻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저자와 같이 살아갈 힘을 잃었을 때 어떻게 할까? 영혼이 쉴 수 있는 피난처는 어디일까? 독서모임에서 발제로 멤버들에게 질문을 드렸다.


바다를 바라보며 위안을 얻는다는 분도 계셨고, 특정 장소는 없지만 좋은 사람들과 수다 떨기, 잠자기, 기도하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이겨낸다는 이야기들을 나눴다. 나라면 역시나 도서관이다. 우울증으로 힘들었을 때 도서관을 시작으로 세상에 다시 나갈 수 있었듯, 내가 쉴 수 있는 편안한 도서관으로 숨어들었을 것 같다. 회복하고 충전할 수 있는 자기만의 다채로운 장소와 방법을 모아두는 것은 자신을 위해 참으로 중요한 노력인 것 같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를 통해 예술을 대하는 태도와 철학에 대해서도 크게 배웠다. "예술 작품은 말로 단번에 요약하기에 너무 거대한 동시에 아주 내밀한 것들을 다루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침묵을 지킴으로써" 우리에게 말한다. 그래서 이해하기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는 미술이지만 저자는 말한다.


"그 광대함 속에서 길을 잃어보십시오. 인색하고 못난 생각은 문밖에 두고 아름다움을 모아둔 저장고 속을 자유롭게 떠다니는 작고 하찮은 먼지 조각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즐기십시오.
가능하면 미술관이 조용한 아침에 오세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면 눈을 크게 뜨고 끈기를 가지고 전체적인 존재감과 완전함뿐 아니라 상세한 디테일을 발견할 만한 시간을 스스로에게 허락하세요. 감각되는 것들을 묘사할 말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거기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어쩌면 그 침묵과 정적 속에서 범상치 않은 것 혹은 예상치 못했던 것을 경험하는 행운을 누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328면


어렵다는 선입견을 버리고 마음을 열어 작품 앞에 조용히 서보는 시간을 허락하는 것이 중요했다. 예술이란 창작자의 온 영혼을 담은 것이니 보는 이의 마음이 편안해야 마음을 울리는 저마다의 작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저자의 어머니는 어릴 때 각자 제일 마음에 드는 작품 하나씩을 고르기 전에는 전시실을 떠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다른 이유는 제쳐두고 은밀히 곁에 두고 싶은 작품 딱 하나만 훔친다면 무엇을 몰래 가져갈지 생각하는, 평화롭지만 치열한 목적 하나를 두고 미술관을 방문해 보는 건 어떨까. 색다른 경험이 될 것 같다.


"작품을 살핀 다음 무엇인가를 품고 바깥세상으로 나가십시오. 그렇게 품고 나간 것들은 기존의 생각에 쉽게 들어맞지 않고, 살아가는 동안 계속 마음에 남아 당신을 조금 변화시킬 것입니다."
- 329면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덕분에 반성도 했다. 그동안 나는 예술을 통해 배우기보다 예술을 배우려고 했다. 작품명과 화가 이름을 짝짓고 화풍을 분석하는 지식을 더하는 것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런 학습적인 노력도 물론 의미 있겠지만 이제는 시선을 바꾸고 싶다. 작품이 무슨 말을 내게 하고 싶은지, 나는 어떤 느낌을 받는지, 그림을 가운데 두고 마주한 작품 너머의 오래전 사람에게 눈을 맞추고 싶다. 공부가 아니라 느끼고 싶다.


저자도 그런 자세로 미술관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기에 죽음과 상실, 그럼에도 계속 나아가는 삶과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길어올릴 수 있었으리라. 미술관은 그런 것들을 배우고 나눌 수 있는 훌륭한 통로였다. 그 비밀을 안다면 굳이 미술관이 아니라도 일상의 많은 순간에서 예술을 발견하고 감탄하며, 세상의 경이로움을 통해 우리 자신을 더 깊이 알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수천 년부터 전해진 유물과 작품을 통해 당시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느낀 생각을 지금 우리도 공유할 수 있다. 그들의 삶에 일어난 일들이 그것들에 녹아있고 쌓였다. 인류는 그 위에서 지금 이곳에 이르렀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 삶에 거둔 질문과 의미들은 그저 사라지지 않았다. 모든 예술과 문화와 정보에 스며들어 남는다. 매일 남기는 sns와 사진과 글과 모든 흔적이 세상에 영향을 주고 돌고 돌아 나에게 영향을 준다. 그중에 하나의 통로인 예술을 더 가까이 우리 곁에 둔다면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세상과 나를 더 세미하게 발견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런 기대와 희망을 슬프고도 아름답게 전하는 책,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스마트폰을 꺼둔 채 잔잔한 침묵이 전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만들어 예술과 더 친해지고픈 아름다운 씨앗을 심어주는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추천합니다.



***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의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나는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경비원입니다 #패트릭브링리 #웅진지식하우스 #20만부기념 #예술 #미술 #에세이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로 속 아이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지난 20년 동안
구상해온 작품이다.


드디어 기욤 뮈소를 만났다.
2004년 두 번째 소설 <그 후에>로 프랑스 문단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후 매년 출간한 19권의 소설을 모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린 프랑스 작가다. 3번째 소설 <구해줘>는 아마존 프랑스 85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 국내에서도 200주 이상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12년간 프랑스에서 책이 가장 많이 판매된 작가로 2021년 프랑스 작가 최초로 전 세계 서스펜스 대가에게 수여되는 레이먼드 챈들러 상을 수상했다. 우리나라에서 영화로 제작된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프랑스 언론은 '하나의 현상', '페이지터너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작가', '언제나 상상의 한계를 뛰어넘는 반전으로 독자들을 놀라게하는 작가'로 기욤 뮈소를 평한다. 뉴욕타임스는 '서스펜스 마스터'라 인정했다.


2024년 출간한 《미로 속 아이》는 기욤 뮈소의 데뷔 20주년 기념작으로 무려 20년 동안 구상해온 작품이라고 해 기대가 컸다. 그의 작품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 명성은 들어 알고 있었기에 얼마나 대단한 실력일지 정말 궁금했다. 그리고 곧 알 수 있었다. 편하게 훑어보자는 마음으로 짬 시간에 책을 펼쳤는데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100페이지 정도를 읽어 내려간 후였다. 페이지터너의 위력에 금세 빠져버렸다.

《미로 속 아이》의 제목이 원제 'Quelqu'un d'autre' (다른 누군가)와 전혀 달라 의아했다. 소설 초반부까지 읽으면 원제목의 뜻은 납득이 되지만 "미로 속 아이"의 뜻은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제목을 궁금해하며 읽다 보니 조금은 가닥을 잡을 수 있었다. 미로에서 길을 잃은 아이처럼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혼란과 성장을 강조한 제목인 것 같다. (중요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에 말을 아낍니다. ^^;;)


"범인은 예측 불가의 영역에 있다.
언제나 상상을 뛰어넘는 기욤 뮈소 매직!"

《미로 속 아이》는 기욤 뮈소의 본격 스릴러 작품이다. 주인공의 피살 사건으로 시작한다. 이탈리아 기업가의 30억 유로 상속녀(한화로 40조 5천억), 오리아나. 그녀는 젊은 시절 모델이기도 했던 미모의 다이아몬드 수저다. 그런데도 종군 기자 출신으로 활동하고 출판 사업까지 성공시키며 재즈 피아니스트 남편과 두 아이를 키우며 부족할 것 없는 완벽한 인생을 살고 있다. 그러다 프랑스 해상에서 괴한에게 쇠꼬챙이로 피습을 당하고 결국은 사망한다. 요트를 급습해 30억 유로 상속녀를 살해한 범인은 누구일까?


"잠시 머릿속이 아득해졌다가 눈을 떴을 때 햇빛을 막고 서서 자신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실루엣이 눈에 들어온다. 검은색 잠수복을 착용한 괴한은 쇠꼬챙이인지 부지깽이인지 모를 무기를 손에 들고 있다. 얼굴에 복면을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오리아나는 괴한의 정체를 알아보았고, 그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은 공포감이 밀려든다. 그녀가 대적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괴한이 휘두른 쇠꼬챙이가 머리와 목을 가격했고, 오리아나는 미처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갑판을 적시는 동안 갈매기 울음소리만이 하염없이 울려 퍼진다."
- 13면


전작은 로맨스와 스릴러를 넘나드는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문체라 들었는데 《미로 속 아이》의 문장들은 유려했지만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서인지 꽤 담백하게 느껴졌다. 인물의 심리와 풍경 묘사가 세밀해 작가가 만든 세계가 절로 상상 속에서 그려져 읽자마자 이내 몰입할 수 있었다. 쉽게 읽혀서 속도감이 좋았던 이유도 한몫했다.


"그 누구도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진실은 없다."

《미로 속 아이》의 큰 특징은 다중 시점이라는 것. 여러 인물의 시점이 번갈아가며 서술된다. 독자는 각 인물의 생각과 감정을 생생히 느끼며 입체적이고도 객관적으로 사건을 파악할 수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미로 속 아이》에는 4명의 화자가 등장한다. 피습당한 상속녀 오드리나, 그의 남편 피아니스트 아드리앙, 수사를 맡은 담당 여형사 쥐스틴, 호텔 직원 아델. 각자의 관점이 장마다 새롭게 펼쳐지며 바통을 이어받는다.


하나의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의 다른 시선이 비교되고 대조되며 퍼즐이 맞춰지는 재미가 무척 매혹적이었다. 어수선할 수 있는 구성이지만 전혀 방해되지 않았다. 오히려 연작 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면서도 하나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읽혔다. 예측할 수 없는 대담한 반전과 반전이 심리 스릴러가 주는 즐거움과 카타르시스까지 모두 충족시켰다.


“지난 20년 동안 마지막 한 줄에서 모든 의구심을 해소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고 있었다”
게다가 《미로 속 아이》는 오리아나가 죽기 1년 반 전부터 죽은 후 2~3년까지 일어난 일들을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편집했다. 시간을 거스르고 오가며 인물들은 사건의 주변인으로 밀려나지 않고 각자의 욕망과 불만, 열망을 가진 복잡한 내면을 점차 드러낸다. 그렇게 이야기의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이 기가 막혔다.


나와 당신이 각자 진실이라고 믿은 진실이 하나로 모였을 때 모두의 진실이 밝혀진다. 기억은 주관적이라 완벽하지 않았고 시간에 의해 왜곡되고 변색된다.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어 보존되는 기억의 불완전성을 잘 그렸다. 진실이란 무엇일까. 개인의 주관적인 시선에 갇힌 진실 너머로 절대적인 진리와 같은 모두의 진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원제목에서 말하고 있었다. 그러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다중 시점을 소설의 형식으로 택한 작가의 뜻을 뒤늦게 헤아릴 수 있었다.
"마지막 페이지에서만 그 진실이 드러나는 특별한 이야기"


《미로 속 아이》는 범죄소설이 표현할 수 있는 인간의 어두운 심리의 본질과 욕망, 그 사이에서 선택하고 행동한 결과가 마지막에서 밝혀지는 재미가 대단하다. 수사의 한가운데에 독자를 앉히고 함께 추리하게 만드는 솜씨가 탁월한 이야기였다.



"오직 한 번만 살 수 있다는 건 전혀 살아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 밀란 쿤데라.

첫 인용문으로 작가가 선택한 문장이다. 대개 이런 문장은 작품을 관통하는 중요한 메시지를 함축한다. 한 번만 사는 우리 인생은 유한하기에 더없이 소중하지만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과거를 되돌릴 수도,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없다. 오직 현재만을 살며 선택한 것들이 모여 삶이 된다. 그래서 다른 삶을 살 수 없다. 영원한 미지의 영역을 두고 그 세계를 아쉬워하고 후회하며 살아간다. 전혀 살아보지 못하는 생이 있는 것이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변화를 갈망하는 《미로 속 아이》 속 인물들을 잘 대변한 말 같다. 오직 한 번뿐인 인생이기에 진실을 마주하고 온전하게 살아가는 중요성을 전하는 것 같다.


《미로 속 아이》속에 비밀 쪽지가 끼어 있었다. 검은 고양이가 뛰어다니고 글자들이 흩어져있다. "이 종이를 빛에 비추면 오리아나가 감춰온 비밀이 드러납니다." 빛에 비추니 숨어 있던 문장이 드러난다. "절대 상자를 열면 안 돼." 오리아나가 30년 동안 깊이 품고 있던 끔찍한 비밀이다. 그 비밀이 너무 가슴 아팠고 미스터리하게만 보였던 오리아나가 한순간에 이해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미로 속 아이》로 기억과 상실, 정체성과 선택과 관련한 많은 질문들을 받았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흡인력 강한 스토리로 재미만을 주는 소설이 아니었다. 인간 존재의 한계와 본성, 복잡하고 취약해서 소중할 수밖에 없는 인간관계와 같은 묵직한 주제를 비춰보는 경험이기도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읽을 수 있지만 많은 생각을 거두게 하는 멋진 이야기였다. 기욤 뮈소의 저력을 제대로 만끽하고 팬이 되게 만든 소설, 《미로 속 아이》. 추천합니다!


*** 출판사 밝은세상의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미로속아이 #기욤뮈소 #20주년기념작 #밝은세상 #소설추천 #스릴러책추천 #소설신간 #책추천 #베스트셀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분 리셋 - 모든 성공은 좋은 기분에서 시작된다
알리 압달 지음, 김고명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엇이 자신을 기분 좋게
만드는지 알고 활용할 때
달라지는 것은 일뿐만이 아니다.
인생이 바뀐다.
- 27면


막연하게 이런 책이 있으면 좋겠다, 원했던 책이 실제로 나타났다.
영국에 사는 저자가 어떻게 나를 알고 맞춤으로 써주셨지? 착각을 일으킬 만큼 완전히 취향저격 당한 책, 《기분 리셋》!


《기분 리셋》은 그동안 읽은 생산성 관련 책 중 가장 내게 어울리는 책이었다. 적당한 목표를 설정하고 다양한 팁으로 시간을 꼼꼼하게 관리해 To-Do 리스트를 해치우며, 같은 시간을 일해도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는 기술을 알리는 책들은 많다. 《기분 리셋》도 마찬가지다. 다채로운 방법론을 제시한다.


하지만 《기분 리셋》은 생산성만 노리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기분 좋게 일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일과 행복을 같이 가져갈 수 있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고생 끝에 낙이 오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참고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 몰입할 때 생산성도 극대화된다는 "기분 좋은 생산성"이 《기분 리셋》의 핵심이다. 일 자체에서 만족을 찾음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책을 읽고 나면 일에 대한 태도가 근본적으로 바뀐다.


기분 좋게 일하는 것은 곧 일과 삶의 균형이며 행복이었다. 모든 이들의 꿈인 덕업일치(취미와 일이 일치)의 실현이며 삶이 변하는 길이다.


부정적인 사고방식 먼저 가동하는 나 자신이 늘 불만이었는데 바로 그 부분을 다루고 있어 《기분 리셋》에 취향저격을 당한 것이었다. 어렵고 복잡한 심리학 이론이 아닌 딱 필요한 만큼의 흥미로운 연구 사례를 중심으로 과학적으로 설득한 방식까지도 좋았다.


나는 소소하게 일상의 행동방식에 변화를 주는 "실험"과 그 후의 셀프 피드백을 중요하게 여긴다. 《기분 리셋》의 구성 자체가 딱 그러했다. 각 장마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아이디어를 3개씩 제공하는 동시에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실험을 6개씩 소개한다. 삶을 무대로 직접 "연습"할 수 있도록 아이디어와 실험이라는 개념을 제시해 행동하게 만들어 책이 책으로만 그치지 않게 하는 기분 좋은 동기부여가 《기분 리셋》의 강점이다.


그러나 모두 다 실천하지 않아도 된다. 효과가 있다면 좋은 일이고, 효과가 없더라도 깨닫는 부분이 있을 거라며 부담 주지 않는 저자의 조언조차 마음에 쏙 들었다.


저자 알리 압달은 외과의사이자 세계에서 팔로워가 가장 많은 생산성 전문가이며 600만 유튜버이다. 영국 케임브리지 의대를 다니며 사업을 병행했고, 대학 졸업 후 유튜브와 의사로 고군분투하던 중 번아웃이 왔다. 그 시간을 통해 자신이 일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더 열심히 일한다고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저자는 노벨상을 수상한 외과의사들이 수술실에서 가벼운 분위기를 유지한다는 연구를 발견한다. 무언가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실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수술실에 밝은 음악을 틀어놓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긍정 심리학을 공부하며 압력을 줄이고 일상에서 더 많은 가벼움을 찾는 여정을 시작한다.


"기분이 좋으면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기분이 좋으면 생각과 행동의 패턴이 바뀐다. 기분이 좋으면 창의성이, 그리고 생산성이 향상된다.

기분이 좋을 때 마음이 열려서 더 많은 정보를 수용하고 더 폭넓게 가능성을 모색한다. 더 넓은 시야로 해법을 탐색했다.
기분이 좋으면 미래에 쓸 정신적, 정서적 자원의 비축량이 늘어난다. 그 자원이란 예를 들면 회복 탄력성, 창의성, 문제 해결력, 대인 관계, 신체 건강 등이다. 시간이 갈수록 확장과 구축은 서로 맞물려 긍정, 성장, 성공의 상승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 18, 19면


성장하지 않으면 퇴보한다는 말에 동의했지만 《기분 리셋》을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성장이든 제자리이든 이제는 좀 제쳐두고 싶다. 대신 과정에 집중하며 긍정적 감정을 유지하는 것, 그것에 우선순위를 둔다면 자연스럽게 중요한 일을 더 많이 하게 되는 생산성 높은 성장으로 이어질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기분 리셋》은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일을 더 많이 하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스스로를 더 잘 파악하고 자신이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에 진정으로 의욕을 느끼는지 알게 한다. 그 기법은 크게 3부분으로 나뉜다.

1. 에너지 충전 : 3대 에너지원인 "놀이, 힘, 사람"으로 에너지를 일상에 충전하는 방법
2. 장애물 제거 : 기분을 나쁘게 하는 3대 장애물 "불확실성, 두려움, 관성"을 제거해 미루기를 극복해 기분이 좋아지는 방법
3. 생산성 지속 : 3 종류의 번아웃을 분석해 장기적으로 생산적인 삶을 지속하는 방법.


리처드 파인만의 이야기로 시작해 "놀이"의 놀라운 힘을 피력하는 챕터가 무척 인상 깊었다. 번아웃이 와 아무 연구도 손에 잡히지 않던 어느 날, 모든 것이 바뀌었다.


구내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다가 어떤 학생이 접시를 허공에 던지는 장면을 관찰한다. 접시가 공중에서 흔들릴 때 그 위에 인쇄된 대학교 로고가 접시보다 더 빨리 흔들리는 것이 이상했다. 그 현상에 호기심을 느낀 순간 그는 깨닫는다. 자신이 애초에 물리학에 끌린 이유가 떠올랐다. 물리학이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재미있었을까? 나는 물리학을 가지고 놀았다. 마음이 내키는 대로 했다. 핵물리학 발전에 도움이 되고 말고를 떠나서 내가 흥미를 느끼고 재미있으면 그만이었다."
- 32면


"중요하진 않아도 재미있잖아요" 쾌활하게 대답하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접시에서 느낀 호기심은 훗날 노벨 물리학 수상으로 이어진다. 그 진동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모델이 양자 차원에서 빛과 소립자의 상호 작용을 규명하는 학문인 양자 전기 역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노벨상 수상자 중 최소 여섯 명이 놀이를 성공 비결로 꼽았다고 한다. "노벨상은 애쓴다고 받는 게 아니다. 우리의 연구는 사실 즐거운 놀이였다"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옛말은 참이었다. 놀이는 진정한 생산성의 원천이었다. "놀이의 심리적 효과는 즐겁고 편안한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지친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것"이다.


《기분 리셋》은 놀이의 잠재력을 이용하는 6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게임 캐릭터처럼 자신이 다른 인격체가 됐다고 상상해 모험을 시작하는 방법이나 호기심을 가지고 '사이드 퀘스트'를 찾는 것, 결과가 아닌 과정을 즐기고 실패를 보는 관점을 바꾸는 등 구체적인 행동 지침뿐 아니라 마인드셋과 철학까지 다룬다. 그중 "마법의 포스트잇" 실험을 자세히 알려드리고 싶다.


저자는 영화 <메리 포핀스>에서 심오한 진리를 찾았다. 가장 유명한 삽입곡 <설탕 한 스푼>의 가사다.


꼭 해야 하는 일에는
반드시 재미있는 부분이 있어.
재미있는 것을 찾아서 손가락을 딱!
그러면 놀이가 되지.


가사가 준 영감에 벅차 포스트잇에 "만일 이게 재미있는 일이라면 어떤 식일까?" 메모한다. 다음 날, 기운 빠지고 지루한 일을 하려 할 때 생각했다. 이 어려운 공부가 재미있는 일이라면 음악이 있겠지. 영화 반지의 제왕과 캐리비안의 해적 삽입곡을 틀었다. 효과가 대단했다. 훨씬 재미있었다. 그렇게 이 질문은 저자 삶의 등불 같은 질문이 되었다.


마법의 문장이라며 꼭 해보라고 강추해 주신 과학유튜버 궤도님이 떠올랐다.
"와, 오늘까지 이걸 다 끝내야 한다고? 이거 백퍼 야근각이다. "야 이거 진짜 개꿀잼이다." 붙이고 일해보세요. 아침에 일어나서 딱 죽을 것 같을 때 양치하면서 "와 이거 진짜 개꿀잼이다." "야 이거 출근 진짜 개꿀잼이다." 이거 진짜 무조건 해야 돼요. 우울하게 말하지 말고 텐션 올려서 힘들 때마다 이 마법의 문장 붙여 보세요."
일 잘하는 사람들은 통하나 보다. 그들만의 비밀을 이제 우리 것으로 훔쳐 오자.


《기분 리셋》은 모든 것이 항상 재미있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항상 재미있는 것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하든 조금이라도 더 기분을 좋게 만들고, 좀 더 즐겁게 만드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삶의 짐이 주는 부담을 덜고 일상에서 더 자주 가벼움을 찾을 수 있다. 덜 진지하고 더 우스워질 필요가 있다.


멋진 사람보다 이상한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지금도 딸은 이상한 엄마라고 매일 고개를 젓지만 계속 이렇게 살아야겠다 싶다. (미안하다, 딸.) 완벽하지 않아도 기분이 좋아진 그 틈으로 말랑말랑한 여유로움과 느긋함이 유쾌하게 스며들 때, 그것이 충만함이 되어 행복한 생산성으로 삶을 채울 것이라는 기분 좋은 믿음이 싹텄다. 그 길로 가는 귀여운 발자국들이 《기분 리셋》에 선명하게 찍혀있다. 따라 하고 싶은 목록과 철학까지 삶에 들일 수 있는 기분 좋은 실험을 시작해 보자.


새해에 걸맞은 새로운 계획과 방향을 찾고 계신 분이라면, 가성비 좋은 삶의 지혜를 찾고 계신 분이라면, 좀 더 자주 웃으며 밝은 활력을 발휘하고 싶은 분이라면, 생산성과 행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싶은 욕심쟁이라면! 자기계발서라기보다 호감 가는 친구 한 명을 소개받았다는 마음으로 《기분 리셋》을 읽어보시길 강추 드린다.


*** 출판사 위즈덤하우스의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기분리셋 #알리압달 #위즈덤하우스 #자기계발 #강추책 #기분좋은생산성 #성공 #생산성 #일잘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민 골짜기와 무민의 첫 겨울 무민 골짜기 이야기 시리즈
이유진 옮김, 토베 얀손 원작 / 어린이작가정신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민을 아시나요?
핀란드의 국민 작가 토베 얀손이 1945년부터 발표한 동화 속 캐릭터이다. (1945년?!!!) 그의 대표작으로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수상의 영예를 안겨 준 세계적인 캐릭터이자 고전 명작이다. 하얗고 동그란 몸에 커다란 눈을 가진 귀여움으로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무민.

가족의 사랑, 친구와의 우정, 자연과의 조화를 다루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다. 무민이 사는 무민 골짜기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상상력을 자극하고 꿈꾸게 하는 환상적인 세계다. 깨끗하고 순수한 이미지의 캐릭터로만 알고 호기심만 갖고 있었는데 처음으로 무민을 만나게 되어 설렜다. 무민은 이 겨울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80주년을 맞은 무민의 겨울 이야기, 《무민 골짜기와 무민의 첫 겨울》
1957년작 <무민의 겨울> 연작소설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이해하기 쉽게 풀어쓴 그림책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 추천한다. 하지만 철학적이고 심오한 주제를 담고 있어 어른을 위한 동화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무민 골짜기와 무민의 첫 겨울》은 차갑고 서늘한 색감으로 한겨울의 온도를 잘 표현한 그림책이다. 동시에 무민 골짜기의 따뜻함과 포근함을 살리면서도 캐릭터들의 겨울 패션으로 핀란드의 감성적인 패턴까지 세심하게 챙겼다.


무민 가족들은 한 겨울이 오기 전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긴 겨울잠을 잔다. 겨울을 모르고 살아야 할 무민이 "첫 겨울"을 맞는다. 어떻게? 달빛 한 줄기가 무민의 얼굴을 비추자 겨울잠에서 깬 것이다!

엄마를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다. 겨울잠에 빠지면 일어날 수 없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고독을 느끼지만 다행히 친구 투티키와 미이가 함께 한다.

"눈을 잘 모르겠어."
"나도 그래. 눈은 차갑지만, 눈으로 만든 집은 따뜻해. 눈은 부드러울 수도 있고, 돌보다 더 단단할 수도 있어. 확실히 알 수가 없어서 난 차라리 마음이 편해."
하지만 무민은 달랐어요. 오히려 햇빛과 푸른 나무들이 정말이지 너무 그리웠어요!


쿨하고 자유로운 친구들은 외로워하며 초록숲을 그리워하는 무민을 위로해 주지는 않는다. 처음 맞는 겨울을 가족들 없이 무민은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무민 골짜기와 무민의 첫 겨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따뜻하고 포용적인 세계였다. 개성이 강한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다름에 대한 편견이 전혀 없었다. 무민은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녹아 있다. 먹을 것을 찾아 무민 골짜기로 몰려오는 동물들을 차별하거나 배척하지 않고 집과 잼을 베푸는 배려는 걱정이 될 정도였다. 가족이 겨울잠에서 깨면 먹을 것이 없을 텐데 어쩌나... 하지만 온화하고 자상한 무민마마는 무민을 칭찬한다. 함께 살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엄마가 부끄럽지 않게 우리 무민이 손님들을 잘 대접한 모양이야. 고맙구나."
"엄마, 정말 너무너무 사랑해요."


평화롭게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삶의 조화와 느림의 정서가 참으로 편안하고 따뜻했다. 모르는 세상에 대한 걱정과 외로움이 있지만 결국은 친구들과의 우정 안에서 함께 잘 이겨내고 겨울을 좋아하게 된 성숙해진 무민을 만날 수 있어 흐뭇했다. 무민이 선사하는 작은 모험과 따뜻한 겨울을 만나고 싶다면 《무민 골짜기와 무민의 첫 겨울》 추천합니다.


*** 출판사 작가정신의 서포터즈 '작정단 13기'의 자격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토베얀손 #무민 #무민골짜기와무민의첫겨울 #무민의겨울 #어린이작가정신 #그림책추천 #겨울그림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생의 절반을 지나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 - 흔들리는 오십을 위한 철학의 지도
바르바라 블라이슈 지음, 박제헌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장 빛나는 시기를 위한 철학 안내서

청춘을 바쳐 얻은 결과가 이것뿐인가
새로운 꿈을 꾸기에 이미 늦은 나이인가
이 다음에는 무엇을 목표로 살 것인가


정년의 나이가 당겨지고 수시로 일상의 안정을 위협받고 있는 시대다. 쉬지 않고 달리듯 열심을 다하지만 이렇다 할만한 성과는 없고, 후회와 허무가 마음 한편에 늘 자리한다.


중년은 위기의 순간에 취약하고 나는 이 책에서 위기의 다양한 측면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오십을 넘기면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무서운 깨달음, 더 용기있고 단호하게 자신의 길을 가지 못했다는 후회, 모든 것을 성취하고도 바로 그 이유로 황량한 고원에서 정처 없이 헤매는 기분, 자기 인생에서 아무것도 제대로 할 줄 모르면서 인생이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느끼는 사례를 살펴보았다.
- 238면


《인생의 절반을 지나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는 중년을 위한 철학서를 표방하지만 사실 누가 읽어도 삶에 대한 관점을 전환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중년이라는 인생의 단계를 꽃이 피어나는 '최고의 시기'로 보고 그 시기의 특성을 분석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리고 그 시기의 충만함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를 물을 것이다. 중년기에 특히 적합한 삶의 방식이나 방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방향은 바로 이 시기에 직면하는 도전 과제에 신중하게 대처하고 이때 발생하는 실존적 의문을 현명하고 유익하게 극복하여 인생에서 가장 자유로운 중년기를 맞이하는 것이다.
- 38, 39면


중년을 단조로운 그림으로 그리는 것은 잘못된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인생의 절반을 지나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는 중년이 "위기"가 아니라 "절정기"라 말한다. 역설이 가득한 인생 최고의 시기다. 고대에는 중년이 성숙에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시기라는 인식이 강했다. 사실 삶에는 단계마다 위기가 있다. 유독 중년기에만 위기로 가득 차 있다는 고정관념은 잘못됐다. 저자는 특히 위기를 좋든 나쁘든 본질적인 것을 밝혀주는 전환점이며 존재를 밝히는 순간으로 본다. 자신의 삶을 재형성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다만 각각의 위기에 잘 대처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중년의 충만함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인생 경험과 과제를 현명하게 다룰 때만 이룰 수 있다. 과거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동시에 앞을 내다보면서 미래에 어떤 새로운 방향이 열려 있는지 검토하는 자기 발견의 계기로 삼아보자.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인생이 성장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인격이 발달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 우리는 각자 최고의 성숙으로 나아간다. 중년기는 인생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동시에 오래 참음, 보살핌, 인내로 젊음의 오만함을 벗어난 때이기도 하다. 그래서 중년기가 가장 손쉬운 출발점인 것이다. 가진 무기도 많지만 한참을 더 달릴 수 있는 건강함도 가졌다. 노년기와 달리 여전히 발전할 긴 세월이 남아있다. 그간 얻어낸 풍요로움을 활용할 기회다.


"철학적 문제는 '나는 나 자신을 알지 못한다'라는 형식을 띤다." (비트겐슈타인) 생의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고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실존적 의문과 혼란이 오히려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 길을 잃었을 때 우리는 고독한 존재가 되며 그보다 더 철학적인 순간은 없다. 자신의 삶을 미지의 존재로 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중년기에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자문하기 시작한다. 본질에 집중하고 불필요한 것을 버리며 삶의 주체성을 세우려 한다. 지나간 경험은 삶의 후반부에서 더 강렬하고 더 큰 감사로 다가온다. 높은 경험치로 인해 결정 지능이 상승한다. 관계 안에서 겸손하게 정체성을 정립하고 비극에서 한 발 떨어져 인생을 경이롭게 바라보는 자기인식도 가능하다.


《인생의 절반을 지나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는 철학서이기에 중년의 성공 방식 같은 자기계발서적인 실천 사항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좋았다. 세상은 당장에 변화를 가져올 거라는 정보는 끝없이 흘려보낸다. 하지만 습관으로 붙이는 데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에 알고 나서도 그대로인 나를 보면 되려 자괴감이 들 때가 많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 삶의 태도와 철학을 점검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적절한 타이밍에 이 책을 만나게 되어 감사하다. 철학은 난해하지만 삶의 근본적인 문제에 깊이 닿아있어 인생의 방향을 잡고 행복으로 가는 길에 유용한 도구임이 분명하다. 철학은 해답이 아니라 통찰력 있게 자기를 인식하게 하고 삶과 그 방식에 관해 깊이 생각하게 한다. 일상의 문제를 철학적 사유로 옮기는 작업에 몰두해온 저자의 매끄럽고 친절한 인생 풀이 덕분에 철학이 한층 친근해졌다.


철학에서 문제에 접근한다는 것은 어떤 선입견도 버리고 모든 것을 의심하며 어떤 상황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는지를 늘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상, 주제, 논제를 비틀고 뒤집어서 그 반대 역시 옳은지 묻는 것이 철학의 기본 사고다.
240면


철학적 사고도 비판과 저항을 본질로 삼는 과학적 사고와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한 방향으로 선입견을 굳히는 경직성을 경계하는 태도는 여러모로 매우 중요하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비틀고 뒤집을 줄 아는 유연한 자세를 《인생의 절반을 지나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에서 한 번 더 확실히 배운다.


《인생의 절반을 지나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가 "역설"을 강조한 점이 가장 인상 깊었다. 비교적 안정적일 수 있는 중년기가 오히려 더 깊은 갈망과 실존적 불안으로 괴로울 수 있다. 그렇게 흔들리는 시간들이 해결의 출발점이라는 역설. 과거보다 노련해져 나 자신을 더 잘 알고 내게 중요한 것을 파악할 수 있지만 꿈꾸는 미래와 현재의 격차에 여전히 혼란스러울 수 있다는 역설. 이 모든 것을 통해 내게 정말 중요한 것이 뭔지, 인생을 충만하게 만드는 일이 뭔지 더 분명하게 알아가는 과정은 위기를 더 확실하고 안전하게 빠져나가는 지름길이라는 희망의 역설이 해피엔딩 같았다. 삶의 모든 순간이 배움과 성장의 기회일 수 있다는 응원이 좋았다.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 인생에서 자신을 찾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 리베카 솔닛, 길 읽기 안내서


자신을 잃어도 또 새로이 찾을 준비가 되어 있는 중년기임을 믿게 하는 책. 풍부하게 쌓인 경험에 감사하고 새로운 여유를 만끽할 수 있으며, 거리를 두고 인생을 볼 줄 알며 스스로 쟁취하는 주체성까지 갖춘 중년이 꽃 필 시기가 아니라면 무엇일까. 지금 여기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버티고 이뤄낸 숱한 날들을 홀대해선 안 된다. 인생 후반전의 충만함을 알려주고 도전하게 하는 훌륭한 지도 같은 책, 《인생의 절반을 지나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 추천합니다.


***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의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인생의절반을지나면누구나철학자가된다 #바르바라블라이슈 #웅진지식하우스 #중년철학 #흔들리는오십을위한철학의지도 #정호승시인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