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 속 아이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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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난 20년 동안
구상해온 작품이다.


드디어 기욤 뮈소를 만났다.
2004년 두 번째 소설 <그 후에>로 프랑스 문단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후 매년 출간한 19권의 소설을 모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린 프랑스 작가다. 3번째 소설 <구해줘>는 아마존 프랑스 85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 국내에서도 200주 이상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12년간 프랑스에서 책이 가장 많이 판매된 작가로 2021년 프랑스 작가 최초로 전 세계 서스펜스 대가에게 수여되는 레이먼드 챈들러 상을 수상했다. 우리나라에서 영화로 제작된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프랑스 언론은 '하나의 현상', '페이지터너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작가', '언제나 상상의 한계를 뛰어넘는 반전으로 독자들을 놀라게하는 작가'로 기욤 뮈소를 평한다. 뉴욕타임스는 '서스펜스 마스터'라 인정했다.


2024년 출간한 《미로 속 아이》는 기욤 뮈소의 데뷔 20주년 기념작으로 무려 20년 동안 구상해온 작품이라고 해 기대가 컸다. 그의 작품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 명성은 들어 알고 있었기에 얼마나 대단한 실력일지 정말 궁금했다. 그리고 곧 알 수 있었다. 편하게 훑어보자는 마음으로 짬 시간에 책을 펼쳤는데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100페이지 정도를 읽어 내려간 후였다. 페이지터너의 위력에 금세 빠져버렸다.

《미로 속 아이》의 제목이 원제 'Quelqu'un d'autre' (다른 누군가)와 전혀 달라 의아했다. 소설 초반부까지 읽으면 원제목의 뜻은 납득이 되지만 "미로 속 아이"의 뜻은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제목을 궁금해하며 읽다 보니 조금은 가닥을 잡을 수 있었다. 미로에서 길을 잃은 아이처럼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혼란과 성장을 강조한 제목인 것 같다. (중요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에 말을 아낍니다. ^^;;)


"범인은 예측 불가의 영역에 있다.
언제나 상상을 뛰어넘는 기욤 뮈소 매직!"

《미로 속 아이》는 기욤 뮈소의 본격 스릴러 작품이다. 주인공의 피살 사건으로 시작한다. 이탈리아 기업가의 30억 유로 상속녀(한화로 40조 5천억), 오리아나. 그녀는 젊은 시절 모델이기도 했던 미모의 다이아몬드 수저다. 그런데도 종군 기자 출신으로 활동하고 출판 사업까지 성공시키며 재즈 피아니스트 남편과 두 아이를 키우며 부족할 것 없는 완벽한 인생을 살고 있다. 그러다 프랑스 해상에서 괴한에게 쇠꼬챙이로 피습을 당하고 결국은 사망한다. 요트를 급습해 30억 유로 상속녀를 살해한 범인은 누구일까?


"잠시 머릿속이 아득해졌다가 눈을 떴을 때 햇빛을 막고 서서 자신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실루엣이 눈에 들어온다. 검은색 잠수복을 착용한 괴한은 쇠꼬챙이인지 부지깽이인지 모를 무기를 손에 들고 있다. 얼굴에 복면을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오리아나는 괴한의 정체를 알아보았고, 그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은 공포감이 밀려든다. 그녀가 대적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괴한이 휘두른 쇠꼬챙이가 머리와 목을 가격했고, 오리아나는 미처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갑판을 적시는 동안 갈매기 울음소리만이 하염없이 울려 퍼진다."
- 13면


전작은 로맨스와 스릴러를 넘나드는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문체라 들었는데 《미로 속 아이》의 문장들은 유려했지만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서인지 꽤 담백하게 느껴졌다. 인물의 심리와 풍경 묘사가 세밀해 작가가 만든 세계가 절로 상상 속에서 그려져 읽자마자 이내 몰입할 수 있었다. 쉽게 읽혀서 속도감이 좋았던 이유도 한몫했다.


"그 누구도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진실은 없다."

《미로 속 아이》의 큰 특징은 다중 시점이라는 것. 여러 인물의 시점이 번갈아가며 서술된다. 독자는 각 인물의 생각과 감정을 생생히 느끼며 입체적이고도 객관적으로 사건을 파악할 수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미로 속 아이》에는 4명의 화자가 등장한다. 피습당한 상속녀 오드리나, 그의 남편 피아니스트 아드리앙, 수사를 맡은 담당 여형사 쥐스틴, 호텔 직원 아델. 각자의 관점이 장마다 새롭게 펼쳐지며 바통을 이어받는다.


하나의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의 다른 시선이 비교되고 대조되며 퍼즐이 맞춰지는 재미가 무척 매혹적이었다. 어수선할 수 있는 구성이지만 전혀 방해되지 않았다. 오히려 연작 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면서도 하나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읽혔다. 예측할 수 없는 대담한 반전과 반전이 심리 스릴러가 주는 즐거움과 카타르시스까지 모두 충족시켰다.


“지난 20년 동안 마지막 한 줄에서 모든 의구심을 해소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고 있었다”
게다가 《미로 속 아이》는 오리아나가 죽기 1년 반 전부터 죽은 후 2~3년까지 일어난 일들을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편집했다. 시간을 거스르고 오가며 인물들은 사건의 주변인으로 밀려나지 않고 각자의 욕망과 불만, 열망을 가진 복잡한 내면을 점차 드러낸다. 그렇게 이야기의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이 기가 막혔다.


나와 당신이 각자 진실이라고 믿은 진실이 하나로 모였을 때 모두의 진실이 밝혀진다. 기억은 주관적이라 완벽하지 않았고 시간에 의해 왜곡되고 변색된다.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어 보존되는 기억의 불완전성을 잘 그렸다. 진실이란 무엇일까. 개인의 주관적인 시선에 갇힌 진실 너머로 절대적인 진리와 같은 모두의 진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원제목에서 말하고 있었다. 그러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다중 시점을 소설의 형식으로 택한 작가의 뜻을 뒤늦게 헤아릴 수 있었다.
"마지막 페이지에서만 그 진실이 드러나는 특별한 이야기"


《미로 속 아이》는 범죄소설이 표현할 수 있는 인간의 어두운 심리의 본질과 욕망, 그 사이에서 선택하고 행동한 결과가 마지막에서 밝혀지는 재미가 대단하다. 수사의 한가운데에 독자를 앉히고 함께 추리하게 만드는 솜씨가 탁월한 이야기였다.



"오직 한 번만 살 수 있다는 건 전혀 살아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 밀란 쿤데라.

첫 인용문으로 작가가 선택한 문장이다. 대개 이런 문장은 작품을 관통하는 중요한 메시지를 함축한다. 한 번만 사는 우리 인생은 유한하기에 더없이 소중하지만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과거를 되돌릴 수도,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없다. 오직 현재만을 살며 선택한 것들이 모여 삶이 된다. 그래서 다른 삶을 살 수 없다. 영원한 미지의 영역을 두고 그 세계를 아쉬워하고 후회하며 살아간다. 전혀 살아보지 못하는 생이 있는 것이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변화를 갈망하는 《미로 속 아이》 속 인물들을 잘 대변한 말 같다. 오직 한 번뿐인 인생이기에 진실을 마주하고 온전하게 살아가는 중요성을 전하는 것 같다.


《미로 속 아이》속에 비밀 쪽지가 끼어 있었다. 검은 고양이가 뛰어다니고 글자들이 흩어져있다. "이 종이를 빛에 비추면 오리아나가 감춰온 비밀이 드러납니다." 빛에 비추니 숨어 있던 문장이 드러난다. "절대 상자를 열면 안 돼." 오리아나가 30년 동안 깊이 품고 있던 끔찍한 비밀이다. 그 비밀이 너무 가슴 아팠고 미스터리하게만 보였던 오리아나가 한순간에 이해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미로 속 아이》로 기억과 상실, 정체성과 선택과 관련한 많은 질문들을 받았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흡인력 강한 스토리로 재미만을 주는 소설이 아니었다. 인간 존재의 한계와 본성, 복잡하고 취약해서 소중할 수밖에 없는 인간관계와 같은 묵직한 주제를 비춰보는 경험이기도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읽을 수 있지만 많은 생각을 거두게 하는 멋진 이야기였다. 기욤 뮈소의 저력을 제대로 만끽하고 팬이 되게 만든 소설, 《미로 속 아이》. 추천합니다!


*** 출판사 밝은세상의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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