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가져야 할 부에 대하여 고전이 답했다 시리즈
고명환 지음 / 라곰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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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이 되면 부는 따라온다’는 말을 면죄부처럼 여기며 안도하며 지냈다. 그것을 덕이라고, 순리라고 부르며 애써 움직이지 않아도 괜찮단 자기합리화의 근거로 붙들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는 어떻게 삶의 해답을 찾는가>부터 고명환 작가님의 팬이 되었다. 3년 반이 넘도록 (오늘로써 1311일째) 매일 아침마다 긍정 확언 영상을 올리는 행동 하나만으로도 큰 자극을 주신다. 그러한 꾸준함 뒤에는 책에서 얻은 깨달음과 통찰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의 책들은 일단 믿고 본다.


이 책은 전작 《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가져야 할 삶에 대하여》와 한 글자만 다르다. "삶과 부". 두 책 다 고전을 기반으로 쉽지만 깊게, 철학적이지만 현실적으로 삶을 해석한 인문 에세이다. "기승전독서"라고 할 만큼 독서를 강조해서 독서 에세이라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언뜻 보면 구성과 문체가 비슷해서 두 책 간에 차이를 눈여겨보며 읽었다.


전작이 고전에서 찾은 삶의 의미로 인생 전반의 태도를 말하는 기초과정이라면, 이번 책은 그 위에 부에 관한 건강한 태도를 재정립하는 심화과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자신만의 방향을 잡았다면 '돈에 대한 혼란이나 죄책감, 욕망을 다룰 줄 아는가'하는 단계로 인생의 가치관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사실 나는 '부'에 대해 큰 관심이 없다. 흔히 말하듯, 그릇이 되면 부는 저절로 따라온다는 말을 어설프게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알았다. 덕은 부의 바탕이 될 수는 있지만 부는 준비된 자가 쟁취하는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결과물이었다. 하늘을 올려다 본 채, 입만 벌린다고 해서 잘 익은 감이 정확히 쏙 내 입에 떨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고전 속 부자들도 덕을 길렀지만 동시에 철저히 계산하고, 부를 설계하고, 현실을 직시했다. 부는 철학이라기보다는 기술이다. 그릇보다는 도구로 보는 관점이 지금 내게 필요했다. 그릇이 되기만 하면 된다는 건 반쪽짜리 진실이었다. 부는 따라오는 게 아니라, 내가 능동적으로 끌어와야 하는 거였다.


고명환 작가님의 이번 책도 정말 만족스러웠다. 처음부터 답을 아는 선생님처럼 전달하지 않고, 의문을 갖고 답을 찾아가는 사유의 과정을 같이 걸어가자 손 내미는 것 같았다. 다층적이면서도 깊게 사유하는 저자여서 그런지 각 챕터는 짧지만 묵직하다. 좋은 책을 만나면 늘 그랬듯, 나는 이번에도 많은 줄을 긋고 끄적이며 즐거웠다.


가장 인상 깊었던 주제는 "호리병이 아닌 대접에 담을 것"

"노자가 말했다. 찰흙으로 그릇을 만드는데,
텅 빈 공간이 있어서 그릇의 기능이 있게 된다고.
빈 곳을 흙으로 다 채우면
그것은 그릇이 아니라 그냥 흙덩어리다.
방 역시 마찬가지다.
문과 창과 벽이 있고, 그 안에
텅 빈 곳이 있어야 방이다.

돈을 벌려면 이 '텅 빈 공간'을 이해해야 한다."

반드시 빈 곳을 만들어야 한다. 돈을 좇는 사람은 욕심으로 입구 쪽이 점점 좁아지는 호리병이지만 돈을 제대로 버는 사람은 주둥이가 넓어지는 대접 같다. 고객을 우선으로 하고 남을 구하려고 애쓰는 마음이 대접 같은 그릇이다. 주둥이가 넓어지면 품을 수 있는 공간도 점점 커진다. 그릇은 점점 커지고 그 안에 돈은 저절로 채워진다. 돈의 선순환이다.


채우는 데만 급급하기 쉬운 세상. 원자는 99.9%가 비어 있고 0.1%만이 원자핵으로 이뤄진다는 사실과 노자의 공 사상을 떠올리며 인생에도 텅 빈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선명하게 새길 수 있었다.


여전히 나는 "그릇" 개념에 끌리지만 이제는 안다. 진짜 부를 담는 그릇은 멍하니 도 닦는 신선이 아니라 계산하고 설계해 온몸을 움직인 도공의 작품이라는 것을. 그저 크기만 한 그릇이 아닌, 타인을 담을 넉넉함과 부를 순환시킬 구조를 갖춘 대접을 설계할 때다.



#도서지원 #고독한북클럽 #고명환 #고전이답했다 #고전이답했다마땅히가져야할부에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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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관찰 일기 쓰기 - 관찰하고 기록하며 자연과 친해지는 법
클레어 워커 레슬리 지음, 신소희 옮김 / 김영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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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똑바로 보려면 그것을 그려야 하며...
보는 것과 그리는 것은 결국 하나임을...
세상은 내가 끊임없이 재발견하는 것임을 배웠다."
- 프레더릭 프랭크, <보는 것의 선>


자연 관찰 일기?
그림일기는 알지만 자연을 관찰하는 일기가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자연을 관찰하고 인식하고 느낀 내용을 규칙적으로 기록하는 일기라니, 일기의 세계는 생각보다 다채롭다.


자연 관찰 일기는 머릿속을 벗어나 자연의 세계에 들어서기 위한 시간이다. 그러니 일반 일기처럼 자신의 고민을 중심 주제로 다루지 않는다. 자연 앞에서 내가 어떻게 반응했는지, 무엇을 배웠는지 자연이 주인공이다. 핵심은 잘 보는 것이다. 하늘에 구름이 떠 있는지, 새소리가 들리는지, 날씨가 어떤지, 어떤 식물이 보이는지 간단한 질문을 품고 내 반응을 덧붙이면 된다.


잘 그릴 필요 없다.
중요한 건 글이나 그림보다도 얼마나 잘 '보고' 기록했는가니까.
"내가 사는 이곳의 자연에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묻는 호기심을 갖는다면 더 잘 볼 수 있다.


"자연 관찰 일기를 작성하는 '올바른' 방법은 없습니다.
자연 관찰 일기를 잘 쓰려면 융통성이 있고
어디까지나 자신의 의도에 충실해야 합니다."
- 18면


《자연 관찰 일기 쓰기》 책에는 다양한 샘플 일기가 실려있다. 그리기의 기초에서 기록 요령까지 전체를 개괄하되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도전해 봄직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해봤다.


물꽂이 중인 얼룩자주달개비를 그렸다. 잎이 이렇게 많았나, 하나하나 다 그리다 보니 잎맥을 따라 손이 멈췄다. 낙서라고 생각하고 끼적여봐도 좋다며, 1~2분 안에 빠르게 그리라고 책은 말했지만, 그 짧은 순간에 집중하게 되는 기분이 근사했다.


자연을 관찰하려면 멈출 수밖에 없다. 자연을 관찰하고 그리기 위해 멈춘 나는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느끼는 인간이었다. 시각, 촉각, 청각, 후각까지 오감이 켜졌지만 쉬는 것 같았다. 자연 앞에서 뇌가 해석을 멈추고 존재에 집중하는 것. 디지털에 잠식당한 숨 막히는 시간과는 결이 다른 빈틈 같은 시간이었다.

관찰은 존재를 바라보는 훈련이었다. 기후 위기로 생태 감수성이 중요해진 시대에 자연 관찰 일기는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생태적 사고였다. 아이들과 함께 수첩이나 스케치북을 들고나가 자연 관찰 일기를 쓴다면 시의적으로도 훌륭한 교육이 될 것이다.


자연을 관찰한다는 건 곧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관찰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연습이다. 보는 눈이 달라지면 일상에 의미가 더해진다. 달리던 시간에 브레이크를 걸고, 삶을 다시 감각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자연에 다가가보자. 느린 눈으로 자연을 보자. 그러면 나도 다시 보인다. 자연처럼 더 나 다워질 것이다.


⁠#도서지원 #자연관찰일기쓰기 #클레어워커레슬리 #자연관찰 #일기 #자연관찰일기고전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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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나이 들수록 행복해지는 인생의 태도에 관하여 - 103세 할머니 의사의 인생 수업
글래디스 맥게리 지음, 이주만 옮김 / 부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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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6가지 인생의 비밀"

시대가 급변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나이가 들수록 익숙한 것들에 둘러싸여 삶이 점차 안정되지만, 이제는 아니다. 계속해서 새로운 것들을 배우며 변화에 맞춰야 한다.

더군다나 지금은 100세 시대. 늙을수록 적응력은 떨어질 텐데, 세상은 반대로 점점 빠르게 변하니 늙는다는 건 쉬어도 되는 게 아니라, 더 오래 버텨야 한다는 뜻이 됐다. 죽을 때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산다는 말이 압박처럼 느껴지곤 한다. 이런 막연한 두려움이 《나이 들수록 행복해지는 인생의 태도에 관하여》를 집어 들게 했다. 이 책이 내가 놓친 삶의 희망을 보여주지 않을까.


축복
- 나태주

처음보다는
나중이 좋았더라
좋았어도 아주 많이 좋았더라
날마다 너의 날들도
그러기를 바란다


나중이 아주 좋은 인생을 바라지 않을 이가 어디 있을까. 103세 '전인의학의 어머니'로 불리는 글래디스 맥게리 의사의 인생 수업이 끝이 더 좋은 삶의 6가지 비밀을 말한다.


전인의학은 질병만을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몸, 마음, 감정, 영성까지 포함한 ‘인간 전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치료한다. 그래서 이 책은 무엇을 먹으라, 어떤 활동을 하라 같은 장수의 비법이 아니라 "관점 전환"을 이야기한다.


"진정한 의미의 건강은
질병을 진단하거나 그저 수명을 연장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다.
그보다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내고,
어떻게 성장하고 변화해야 하는지 알아차리고,
무슨 일을 할 때 가슴이 뛰는지 귀 기울이는 것과 관련이 있다."
- 28면


몸과 정신의 문제들이 건강한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맞지만 건강한 삶을 '결정짓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건강과 행복의 결정적 요소로 "생기"를 강조한다. 생기는 살아 있다는 느낌, 살맛 나는 기분, 삶을 끌고 가는 내면의 동력이다. 그것은 우리가 태어난 이유와 연결된다.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고유한 재능과 연결되기 위해서다. 이 재능과 연결될 때 삶의 의욕이 솟는다. 하지만 이 재능과 반드시 연결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탐색 과정 자체에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 "자신의 생기를 찾는 과정" 자체가 우리를 생명력 넘치게 만든다. "
-56면


생기는 타고나는 게 아니라 찾고 연결하는 힘이다. "너 자신을 알라." 지금 당신을 설레게 하는 일이 있다면 그게 바로 당신만의 생기다. 좋아하는 일을 좇을 때, 목적은 저절로 드러난다. 이 생명력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기에 세상과 직결되어 있다. 재능을 발휘하고 그것으로 세상에 기여할 때, 삶을 긍정하고 나아가는 행복한 인생이 된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의 6가지 비밀은 이것이다.
1. 당신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다
2. 모든 생명은 움직여야 산다
3. 사랑은 가장 강력한 치료약이다
4.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5. 모든 것은 당신의 스승이다
6. 에너지를 마음껏 사용하라


창조적 생명력이 끊이지 않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결국 사랑이 중요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생기가 솟는 샘물은 마르고 만다. 사랑이 생명을 흐르게 하고, 몸과 마음을 치유하며, 일에 에너지를 쏟게 하고, 긍정적인 관점을 갖게 한다. 사랑과 연결될 때 우리의 세상은 커진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앞길을 막는 것이 아니었다. 100세 시대가 공포로 다가오는 건, 목적 없이 오래 살아야 한다는 상상 때문이다. 두려움은 생기를 찾으라는 신호로서 진짜 방향을 묻고 있었다. 세상이 요동쳐도 사랑하고 싶은 것, 연결되고 싶은 사람,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면 불안은 방향을 가리키는 감각이 된다.


우리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퍼즐 조각이다. 생기는 나만의 형태를 찾아 세상과 맞물릴 때 흐르기 시작한다. 그런데 세상은 2차원의 평면 퍼즐이 아니라 3차원의 입체 퍼즐이다. 사방으로 휘고 구부러진 내 퍼즐 모양을 알기란 얼마나 어렵겠는가. 그래서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퍼즐 조각이 어떤 모양인지 발견하는 데 평생을 보낸다.


세상의 퍼즐 조각 중 하나로서 온전한 나다움을 찾는 과정이 인생인 것 같다. 다른 조각들과 조화를 이루고, 나 자신의 고유한 빛깔로 내 자리를 찾아가는 여정이 행복하고 건강한 삶이다.


이 책을 읽으며 '어떻게 오래 살아야 하나'라는 질문이 '어떻게 하면 살아 있는 삶을 살까'라는 고민으로 바뀌었다. 생기는 살아 있는 나로 존재하는 힘, 고갈되지 않는 삶의 연료였다. 내 안의 생기라는 불씨를 해답으로 찾아낸 오늘의 결론이다. 맡은 자리를 성실히 채움으로 나의 존재 가치를 매일 새롭게 깨닫는 노년, 좋았어도 아주 많이 좋은 삶의 나중을 꿈꾸게 됐다.


#도서지원 #나이들수록행복해지는인생의태도에관하여 #글래디스맥게리 #부키 #노후준비 #노년기 #인생의태도 #생기 #생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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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날들
조 앤 비어드 지음, 장현희 옮김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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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날들》은 2024년 영국 왕립문학학회의 국제 작가로 선정된 미국의 시인, 소설가, 에세이스트인 조 앤 비어드의 "에세이 + 소설"이다. 한 권에 소설과 에세이를 동시에 실어 새로운 읽기 경험을 선사한다.


총 9개의 작품 중 소설로 발표한 건 두 작품이지만 무엇이 소설이고 에세이인지 구분할 필요는 없었다. 에세이와 소설의 경계에서 사실의 진정성과 허구의 몰입감을 아름답게 조율한 글은...... 그렇다. 분명 자기답고 아름답게 실재하고 있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소설적인 흐름과 긴장감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 허구인지 구분할 수 없게 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뭣이 중헌디. 이야기 안에 담긴 감정은 모두 진짜였으니, 독자는 그 속에 풍덩 빠져들기만 하면 된다.


"넋이 나간 듯, 그녀는 마지막 순간을
어머니의 젊은 얼굴을 올려다보며 보낸다.
셰리?
여전히 어머니를 바라보며, 셰리는 고개를 끄덕인다.
누군가 그녀의 팔을 잡는다.
주삿바늘은 차갑고, 순식간에 그녀는 감각을 잃는다.
두꺼운 얼음층이 그녀와 남자들을 분리한다.
셰리는 비좁은 공기주머니 속에서 천천히 호흡하고,
머리 위로 화려한 스케이트를 신은 아이들이 모여든다.
그녀는 얼음 밑에 볼을 댄 채 잠시 거기 머문다.
그러다 곧 누군가의 손이 내려와 그녀를 아래로 밀어 넣는다."
- 116면


암으로 고통스러웠던 생을 마감하기 위해 안락사를 택한 셰리의 마지막 장면이다. 실제 지인의 죽음을 다룬 이 장면에서 장르를 융합하는 실험의 정점을 본 것 같았다. 얼음 아래 잠긴 이미지로 죽음을 은유한 문장을 읽으며 인물과 함께 그 순간을 체험한 듯했다. 나는 감히 누군가의 죽음을 상상해 글로 옮기는 일을 시도하지 못할 것 같다. 뛰어난 작가의 용기와 감각 덕분에 두 세계가 접히는 경계를 경험할 수 있어 좋았다.



"이 정도로 구체적인 문장을 쓰면서
버릴 문장이 없을 수 있다니"
김겨울 작가의 이 한 마디가 정말로 이해되는 글이었다.


국어시간에 배웠다. 중심문장과 뒷받침 문장을.
하지만 《축제의 날들》은 문장 하나하나가 독자적인 의미를 가지고 모두가 주인공처럼 빛난다. 설명하지 않고 보여줌으로써 느끼게 한다. 감정을 묘사하지 않고 암시한다. 그 여백이 특유의 문체를 만들고 독자의 내면을 강하게 건드린다.


자신이 보고 느낀 세상을 고해상도 렌즈로 걸러낸 후 예술로 창조하고, 감정선까지 정밀하게 설계한 것 같았다.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내가 작가의 눈이 되고 귀가 된다.




"몹쓸 피로와 고통으로 인해 자기 자신이 죽어가는 동물처럼 느껴진다. 이 모든 것이 마치 축사와도 같다. 더러움, 냄새, 그리고 소의 몸 안에 갇혀 침대에서 화장실까지 비틀거리며 터벅터벅 걸어가는 느낌까지. 몸이 특히 더 나쁜 오후, 셰리는 마치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 자기 목소리를 듣는다. 겁에 질린 소 울음소리 같은 것이 깊고 길게 울린다."
- 67면



아이비리그 중 한 곳인 세라 로런스 칼리지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교수이기도 해서 저자의 글에 대한 사유도 인상 깊었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 작품의 표면 아래 숨어 있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이다.
.......

좋은 에세이는, 좋은 단편, 좋은 회고록,
좋은 소설도 마찬가지이지만,
아이디어에 달려 있다. 그래서 좋은 작품은
명목상 주제를 넘어
보편적인 무언가를 조명하면서
스스로 고양할 수 있는 것이다.
문학은 교훈을 준다.
작가는 독자보다 더 현명하고
더 많은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논픽션 워크숍에서 내 노력의 절반은
아이디어와 문제를 끌어내는 데 쓰인다."
- 182면


글을 쓰는 이유는 제각각이겠지만, 독자가 누군가의 글을 읽는 이유는 무언가를 얻기 위함이다. 내면을 성장케하는 글의 실용성을 지향하는 나 역시 "무언가를 조명하면서 스스로 고양한다"라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아이디어와 문제를 끌어내는 데 노력의 절반을 들인다는 저자의 태도가 스승께 전해 받은 가르침처럼 내 안에 오래 남았다.



"사랑하는 반려견의 죽음,
불타는 건물 안에 갇힌 남자,
암 투병 끝에 안락사를 선택하는 여자,
죽어가는 친구와 배신한 남편을 떠올리는 이야기까지."



고통과 죽음의 언저리를 기록한 이 책의 제목은 왜 "축제의 날들"일까? 축제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고 놀랐다. "축하와 제사를 통틀어 이르는 말"

탄생과 죽음, 희극과 비극, 양극단의 감정이 한 단어에 고여 있었다. 삶에서 지워지지 않는 밀도 높은 날들을 축제로 정의한 적확함에 감탄했다. 슬픔이든 기쁨이든 일상을 흩트린 의도치 않은 기념일은 삶의 클라이맥스이자 의미 있는 축제일 수 있다. 그런 날들을 축제로 재해석한 저자 덕분에 나는 오늘 조금 더 커진 것 같다.


축제란 누군가에게는 떠들썩한 환희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조용한 작별일지도 모른다. 삶은 이것과 저것의 사이, 웃음과 울음의 경계에서 오히려 더 뚜렷해지는지도 모르겠다. 기억이라는 무대 위에서 우리의 축제는 어떤 얼굴이었을까. 《축제의 날들》은 그 얼굴을 오래 바라보게 한다. 나도 언젠가 내 인생이 지나왔을 축제의 날을 기록할 수 있기를.


#도서지원 #축제의날들 #조앤비어드 #클레이하우스 #김겨울추천 #에세이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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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뇌
마수드 후사인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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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우리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이 책은 신경과학의 눈으로 우리의 뇌와 자아, 즉 정체성과 소속감을 살펴본다. 우리의 뇌가 바로 우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뇌가 우리를 만들며, 자아 역시 뇌 기능의 총합으로 구성된다고 설명한다.

"자아는 그저 우리 뇌 전체의 창발적 특성이다.
자아는 우리 "마음들의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인지 과정들의 산물이다."
-10면

뇌 때문이야, 뇌 때문이야~♪
우리의 피로는 간 때문이지만, 우리가 우리가 된 이유는 뇌 때문이었다. 수많은 뇌의 인지 기능이 협력한 결과로 인간의 정체성이 만들어지고, 또 변하며, 때로는 회복되기도 한다.

그런데 제목이 왜 아웃사이더일까?
뇌 장애로 인해 삶이 바뀐 7명의 환자를 통해 뇌를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뇌 질환의 손상으로 인해 사회적 관계에서 멀어져 아웃사이더처럼 개인 정체성까지 변해버린 환자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뇌졸중으로 병적인 무관심 상태가 되어 직장을 잃고 실업 급여를 신청할 의욕마저 잃은 사람. 의미 지식 결핍으로 말을 잃고 물건의 이름과 용도까지 잊어, 변기를 세탁기로 생각해 변기에 옷을 넣고 내리려하고, 화분을 변기로 착각해 화분에 소변을 보려한 사람. 알츠하이머병으로 침대에 누운 남편을 자신의 또다른 애인이라 생각한 사람 등...

뇌의 손상이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 정체성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생생하게 알린다. 몸의 건강이 당연한 일이 아니듯, 건강하게 작동하는 정상적인 뇌 상태가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선택, 성격까지도 모두 신경학적으로 뇌가 튼튼한 덕분에 누릴 수 있는 축복이었다.

뭔가 조금 이상하고 불쾌할 수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시야도 넓어졌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의 이면에 뇌 기능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지식은 타인을 향한 손쉬운 비난을 물리고, 이해와 공존으로 판단을 돌리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고보면 완전히 정상적인 뇌는 없지 않을까. 우리는 모두 미세하게 비정상적이다. 우울, 불안, 감정조절문제, 기억력 저하 등 경계선상에서 흔들리고 있는 면모를 저마다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의 자아, 동기, 감정, 의사결정 능력, 심지어 도덕성까지도 뇌의 기능에서 비롯된다. 건강하게 살아있는 신경회로들 덕분에 오늘도 우리는 조금은 이상한 나로 의지를 가지고 노력을 기울이며 삶을 가꾸고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도 뇌 때문이다. 자신을 탓하지 말자. 건강하게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기에 충분히 변할 수 있는 우리 뇌에게 감사하자.

뇌라는 토대 위에 지어진 나는 깨질 수도 있고, 변할 수도 있으며, 다시 지어질 가능성 또한 있다. 신경가소성으로 인해 신경의 배선을 바꿀 수 있다.

우리는 언제든, 원하는 우리가 될 기반 위에 있는 것이다. 그럴 수 있는 최고 사양의 시스템이 머리 안에 있다. 지금의 나로 만들어준 뇌, 걷고 먹고 느끼는 아주 기본적인 인지 기능을 문제없이 수행하는 뇌에 감사하며 그 주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싶다.

이 책은 나의 뇌를 들여다보게 만든 동시에, 다른 사람의 뇌, 다른 자아의 조건도 함께 상상하게 했다. 우리가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마음이 좁아서가 아니라 뇌에 관한 앎과 상상력 부족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가 나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남을 다 이해할 수 없는 것도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해하려 애쓸 수 있다. 뇌의 구조와 기능을 더 이해한다면 판단보다 공감을 먼저 선택할 수 있다.

내 안의 뇌를 바라보는 눈 하나를 더 갖게 된 지금, 나는 나를 덜 단정하고, 타인을 쉽게 재단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은
뇌에 대한 앎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이 책 덕분에 조금 더 유연하고 책임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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