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의 철학적 대화
가렛 매튜스 지음, 김혜숙.남진희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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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의 철학적 대화》는 어린이철학의 시작을 알린 철학 교수, 가렛 매튜스가 쓴 대중철학서다. 8~11세 음악학교 학생들과 한 학기 동안 나눈 철학토론을 기록했다.


어른도 어려워하는 철학토론을 초등학생들이 한다?
의아했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아이들과의 철학적 대화는 틀이 없어 오히려 더 여유롭고 흥미로우며 열려있었다. 그 빈틈에서 철학의 본질이 드러났다.


"식물도 아기 식물을 갖고 싶어 할까요?
(♡♡♡)

"식물도 서로 대화할 거 같아요.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옮겨 다니는 꽃가루를 통해서요."
(과학적 증거는 아직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사실이 영원히 바뀌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순 없다. 아이들은 세상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캐내는 탐구자다.)

"컴퓨터는 기억 저장 창고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아 반응해요. 그건 생각하는 것과 같아요. 하지만 그들이 살아 있는 건 아니죠."
(AI를 이용하는 어른들도 잊기 쉬운 핵심을 정확히 짚어냈다.)

"저는 바나나를 싫어해요. 만약 아빠가 저였다면, 아빠도 바나나를 싫어할 거예요. 그런데 만약에 아빠가 내가 된다면, 누가 아빠가 되는 거죠?"
(막 세 살이 된 아이가 반 사실적 조건문을 써서 논리적인 난점을 찾아 스스로 퍼즐을 풀고자 했다.)



"부모와 교사들은, 심지어 감수성이 높고 선의를 가진 사람들조차, 왜 아이들의 생각에서 순수한 성찰의 순간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걸까?
아마도 그들이 아이들의 능력, 특히 인지적 능력의 발달에 대해 완고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의 사고는 당연히 초보적이며, 어른들이 생각하는 규정을 따라 발달한다고 가정한다. 우리는 발달 개념을 가지고 아이들의 말을 걸러냄으로써, 그러한 말들이 가진 철학적 탐색의 기회를 막고 있다."
- 82, 83면


저자가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가렛 매튜스는 어린이도 세상과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 하며,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아이들을 사유할 수 있는 능동적인 철학 주체로 간주했다. 사실과 논리가 부족하다며 무시하지 않고,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가능성으로 귀 기울이는 태도야말로 가장 어른다운 모습이 아닐까.



지식과 경험이 쌓인 어른들은 사실과 허구를 구분하며, ‘당연한’ 틀에 갇혀 살아간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당연함은 없다. 직관과 호기심으로 세상과 인간을 낯설고 새롭게 바라보는 아이들은 어른과 다른 관점을 가지고 동등하게 토론할 수 있는 훌륭한 대화 상대다. 아이들을 미숙한 존재로만 본다면, 그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스스로 버리는 셈이다.


아이들뿐 아니라, 타인과 나 자신을 바라볼 때, 얼마나 진정으로 존중했던가. 중요한 사람의 말을 듣듯 경청했던가. 정답인지 아닌지를 따지며 선입견과 지레짐작으로 얼마나 많은 순간을 흘려보냈는지 후회된다. 함께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려 노력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아이들을 통해 "다른 생각"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이들은 대답을 얻기보다 생각을 흔드는 질문으로 세상을 여는 법을 보여주었다. 철학이란 고독하고 어렵게 형성되기보다, 서로의 의견을 발판 삼아, 함께 헤매며 생각을 피워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타인과 나 자신에게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귀 기울이는 자세와 생각을 부딪치고 조율하며 같이 쌓아가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우리는 모두 스스로 자기만의 답을 찾아가는 존재라는 걸 알았다. 《아이들과의 철학적 대화》는 그 믿음을 준 책이었다.


#도서지원 #아이들과의철학적대화 #가렛매튜스 #철학 #어린이철학 #바람의아이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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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영감노트 - 읽고 쓰는 모든 사람을 위한 고전 수업
기무라 류노스케 지음, 김소영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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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고 인용된 작가, 셰익스피어.
연간 수천 편의 논문과 학술지를 통해 학자들은 끝없이 그의 작품을 연구한다. 궁금했다.
무엇이 그리 대단하길래 4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읽히고, 분석되고, 공연되는 걸까?


"고전을 하나 출산하면
그 작가는 거장의 반열에 오릅니다.
하지만 고전을 하나도 아니고
여러편을 수태하면 그 작가는 어떻게 될까요?
셰익스피어가 됩니다.
셰익스피어 이외에 그러한 존재가
인류사에서 아직 없었기 때문에
다른 표현을 고를 수 없습니다."
- 이종범 (웹툰 닥터 프로스트 작가) 추천사


인류사에 단 한 명이라는 경지에 이른 셰익스피어.
영어 어휘 중 약 1700개를 직접 만들면서 현대 영어의 토대를 놓아 영어 문학과 언어 발전에 혁신적인 공헌을 했다.
사랑, 권력, 질투, 야망, 죽음 등 인간의 선악과 복잡한 내면을 깊이 탐구하며,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을 그려냈다.


게다가 계층을 막론하고 모두가 이야기에 빠져들게 할만큼 기가 막힌 스토리텔러였다. 오락성과 철학적 깊이까지 아우르며 오늘까지도 인문학과 예술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그의 위대함을 모두 열거하기가 벅찰 정도다. 알면 알수록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는 놀라운 위인이다.


저자는 셰익스피어 작품을 중심으로 무대 연출을 해온 기무라 류노스케다. 셰익스피어가 그랬듯 연출까지 겸하는 작가여서 그럴까, 연출가 셰익스피어의 입장에서 고민하며 작품의 매력을 무대 위에 펼쳐고픈 순수한 열망이 느껴져 좋았다.


정답을 찾듯 셰익스피어를 해석하려 들지 않고, '지금 이 시점에 셰익스피어를 전달한다면 어떤 방법이 좋을까?' '어떻게 읽어야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까'하는 관점으로 작품을 마주하는 태도가 정말 인상 깊었다. 굉장히 열린 자세를 가진 사람이었다. 유연하고도 넓은 시야로 작품과 인간을 이해하려는 저자의 태도는 셰익스피어와 오랜 시간을 보낸 덕분이 아닐까.


희곡의 한자를 풀면 '놀면서(희) 구부린다(곡)'는 뜻이다. 희곡은 애초부터 연극의 사전 설계도 같은 것이라 자유롭게 놀다가 마음껏 모양을 바꿔도 되는 장르다. 책장에 꽂아두기보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떠들썩하게 사람들과 토론도 하고, 자기 인생을 자유롭게 끼워 넣어도 보며, 내용을 조금 어지럽히는 것이 묘미라는 희곡!


나와는 정반대의 장르라는 사실에 호기심이 생겼다. 나는 해석의 자유보다 질서와 구조를 우선하는 융통성 없는 사람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정답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정답이 있다는 전제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답을 찾으려는 욕망이 원동력이 된다.


그런 내게 "인생에 이치에 맞는 의미 따윈 없다"는 셰익스피어의 명대사도, 표절의 명인으로 원작의 좋은 부분을 쏙쏙 골라 하나로 합쳐 셰익스피어식 '에센스 한 방울'을 떨어뜨려 인류 역사상 최대의 히트작으로 탈바꿈시킨 글쓰기 방식도 뻣뻣한 나를 자꾸만 흔들어 놓았다. 정답 없는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라고, 틀을 조금 어지럽혀도 괜찮다고 속삭였다. 셰익스피어가 열어준 삶의 무대 위에서, 어쩌면 나는 처음으로 질서가 아닌 자유를 배우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셰익스피어 영감노트》의 원서는 <14歳のためのシェイクスピア>.14세를 위한 셰익스피어란 제목으로 일본에서는 청소년을 타깃으로 출간된 모양이다. 쉽고 재미있는 책이지만 청소년들만 읽기엔 너무나 아까운 책이다. 이 책을 읽는다면 누구나 셰익스피어를 인생 친구로 삼고 싶을 정도로 셰익스피어의 매력을 제대로 소개하는 책이니 많은 분들이 읽어보셨으면 좋겠다.


이 책은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을 학문적으로 파고드는 대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왜 그가 특별한가를 보여주었다. 고전을 멀게만 느끼던 나조차 자유와 유연성의 힘을 배워가게 했으니, 셰익스피어를 처음 만나려는 이들에게 이보다 좋은 입문서는 드물 것이다.


책장을 넘어 삶의 무대로 독자를 불러내는 셰익스피어. 이제 그는 나의 인생 무대에서도 오랫동안 함께하고싶은, 내 친구다.


p.s 셰익스피어 전작을 번역한 대가와의 인터뷰가 후반부에 수록돼있다.
정말 즐거웠다. 인터뷰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셰익스피어로 통하는 두 전문가의 대화는 나까지도 그 대화에 참여한듯 생동감 있었다. 번역의 어려움과 즐거움, 셰익스피어에 관한 TMI까지 다채로운 재미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도서지원 #셰익스피어영감노트 #읽고쓰는모든사람을위한고전수업 #셰익스피어 #희곡 #더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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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 인간에 대한 비공식 보고서
매트 헤이그 지음, 강동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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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중간 정도 지능을 가진 이족 보행 생명체로,
우주의 외딴 구석, 작고 침수된 행성에서
대체로 망상에 빠진 삶을 살고 있다."
- 11면

주인공은 외계의 고도 문명을 가진 종족인 보나도리아 외계인이다.
천재 수학자 앤드루 마틴이 100년 넘게 난제로 남은 '리만 가설'을 증명하자 보나도리아 외계인들(본체)은 그를 살해한다. 비이성적이고 불완전하며 감정에 휘둘리는 지구인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진보를 이끌 비밀을 푼 것은 우주적인 위험이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리만 가설과 관련 있는 자들을 모두 없애기 위해 앤드루 마틴의 몸을 똑같이 복제한 주인공을 지구에 보낸다. 그가 쓴 "인간에 대한 비공식 보고서"가 바로 이 책 《휴먼》이다. 보나도리아인을 독자로 상정했기에 지구인의 입장에서는 완전히 낯선 시각에서 인간과 삶과 사랑을 바라보게 한다.


"얼굴이 너무 이질적으로 보였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구멍과 돌출부로 가득했다.
특히 코가 신경 쓰였다. 천진난만한 내 눈에는
그의 안에 다른 무언가가 들어 있어서 뚫고 나오려는 것처럼 보였다."
- 22면


알몸으로 차도를 배회하고, 침 뱉기를 인사로 오해해 여러 번 침을 뱉으며, 인간의 생김새를 조악하고 역겹게 느끼는 외계인의 좌충우돌 지구 적응기가 시작된다. 저자 매트 헤이그가 정말로 외계인이 아닐까 생각들 정도로 새로운 시선들이 즐비했다.


외계인의 눈으로 본 지구인은 우스꽝스럽고 말도 안 되게 이상한 종족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몇 번이나 파안대소했다. 초반의 유머 코드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로 이어진다.


"인간 역사 전체가 불가능한 확률에 맞서 싸워온 사람들로 가득하다는 걸 알았다. 일부는 성공했고 대부분은 실패했다. 그래도 인간은 멈추지 않았다. 이 유인원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끈질기다는 것이다. 인간은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아아, 정말이지 희망은 있었다.
희망에 대해 또 하나 말할 수 있는 건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
- 238면


주인공은 그렇게 마흔세 살짜리 신생아로 시작해 아내와 아들이 있는 가족 안에서 인생을 배워간다. 앤드루 마틴이면서 앤드루 마틴이 아닌 삶, 그렇지만 결국은 인간이 되는 방법을 터득해가는 앤드루 마틴의 삶을 말이다.


"내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책.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은 책.
내가 세상에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들이 이 책에 담겼다."


동시에 여러 글을 쓰고 빠르게 작품을 발표하기로 유명한 작가인데 이 책은 출간까지 13년이 걸렸다고 한다. 탈고 후 편집에서 5만 단어를 지우고 새롭게 4만 단어를 추가하며 그야말로 그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책이었다. 우울증으로 삶을 포기할 뻔한 24세의 자신을 위해 쓴 자전적 소설을 통해 작가가 전하고 싶은 "가장 좋은 것들"이 무엇인지 내내 궁금했다.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그 반대를 통과해야만 한다.
이 역설이 인간성을 완성하는 본질이다."
- 쇠렌 키르케고르, <두려움과 떨림>


책을 덮으며 이 문장이 떠올랐다. 작가가 소설에 쓴 인용문 중에 하나다. 비합리적이고 모순투성이인 인간, 무언가를 원하면 동시에 그 반대편을 경험하거나 감내해야 하는 인생. 하지만 그 속에 놓을 수 없는 가치와 아름다움을 간직한 삶의 역설적인 진리를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사랑을 원하면 상실과 고통의 가능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유를 원하면 책임과 불안을 떠안아야 한다. 삶을 원하면 죽음을 직시해야 한다. 양극단을 모두 끌어안아야 비로소 인간은 사람이 된다.


덧없음을 알기에 순간의 소중함을 깨닫고, 관계를 깊이 가꿀 수 있다. 소멸을 전제로 하기에 예술과 철학, 사랑 같은 불가능함을 인간은 끊임없이 창조한다. 인생의 모순이야말로 인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본질임을 작가는 외계인의 눈을 거울삼아 밝혀준 것 같다.


뭉클했다. 작가 자신이 경험한 칠흑 같은 어둠을 녹여내, 그 속에서도 끝끝내 빛을 찾으며 이야기를 완성했을 그 마음이 아프고 또 참 고마웠다.


결국은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작은 것들에서 행복과 의미를 찾는 고귀함을 '좋은 것'으로 선물 받은 기분이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과 가족, 사랑, 예술, 존재의 모순과 아름다움 등 인생을 통해 체득한 작가의 사색이 곳곳에 스며 있는 멋진 소설이었다.


<미드나잇 라이브버리> <라이프 임파서블>에 이어 메트 헤이그의 작품을 세 번째 만났다. 그중 《휴먼》이 가장 인상 깊었다. 외계 행성으로 시선을 멀리 보내야만 인간의 위대함과 기적과도 같은 사랑을 볼 수 있다니,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고도 놀라운 생명체인가. 이 어렵고도 즐거운 사실을 확실히 각인시켜준 사랑스럽고도 경이로운 이야기였다.


좋은 문장들이 많아 오랫만에 필사도 하며 외계인의 신선한 관점에서 기분 좋게 환기하는 시간이었다. 주인공이 지구인 아들에게 전한 "인간을 위한 조언" 97가지(주인공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까지 보너스 선물로 꼼꼼히 챙겨본다.
그 중 몇 가지를 나눈다. 고도의 문명인다운 주옥 같은 조언들이 여러분의 마음에도 선물로 전해지기를.


1. 수치심은 족쇄다. 스스로 자유로워져라.
2. 네 능력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라.
너한테는 사랑할 능력이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3.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해라.
우주적인 차원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곧 너다.
4. 기술은 인류를 구하지 못한다.
인간이 인간을 구할 것이다.
5. 웃어라. 네게 어울린다.


#도서지원 #휴먼 #매트헤이그 #소설추천 #인생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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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 해방 - 가짜 허기에 중독된 두뇌를 리셋하다
데이비드 A. 케슬러 지음, 이충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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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체중이 늘어날까?
체중을 줄이기가 왜 그렇게 어려울까?
설령 체중을 줄이는 데 성공하더라도,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왜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질까?"
-10면


저자인 데이비드 A. 케슬러, 전 미국 식품의약국(FDA) 국장은 명확히 지적한다. 뇌가 초조제식품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라고.


초조제(ultraformulated)식품이란?
지방, 설탕, 소금의 강력한 조합으로
아주 맛있고 에너지 밀도와 혈당 지수가 높아 거부하기 힘든 식품이다. 저자는 의도적으로 뇌의 보상 시스템을 조작하기 위해 설계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렇다. 의도적이다.
거대 담배 회사가 조용하고 교활하게 니코틴 중독으로 사람들을 질병과 죽음의 주요 원인이 되는 습관에 빠뜨렸듯, 오늘날 식품 기업들도 동일한 전략과 중독 메커니즘으로 초조제식품을 퍼뜨리고 있다.


저자는 이 시대의 새로운 담배가 바로 초조제식품이라고 단언한다. 언제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접근성을 무기로, 더 많이 더 자주 먹도록 교묘하게 설계된 식품의 정체를 드러낸다. 비만과 과체중 문제의 본질은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중독을 유발하는 사회적 환경에 있었다.


"이 식품들은 조용히 우리의 뇌보상 중추를 장악했다.
간단히 말해, 이 식품들은 중독성이 있다.
우리 뇌에 지속적인 손상을 가하면서
중독 회로를 자극해
체중을 조절하는 신경 호르몬을 변화시킨다."
- 11면


초조제식품은 맛, 식감, 빠른 흡수 등으로 자연식품보다 훨씬 강하게 도파민을 분비시켜 중독처럼 작동한다. 초조제식품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자기 통제의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전두엽 피질이 둔화돼 포만감을 느끼는 능력을 잃어 더 쉽게 중독 행동으로 이어진다.


도파민은 음식을 먹는 즐거움 자체보다 먹기 전에 '먹으면 기분이 좋아질 거야'라는 기대를 강화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몇 번의 클릭으로 신속정확하게 배달되는 음식에 둘러싸여 “먹는 게 행복”이라는 잘못된 패턴을 뇌가 학습해버린 것 같다. 그러면 기대감에 중독돼 배가 안 고파도 먹는다. 잠깐의 쾌감을 충족시키는 음식 중독으로 우리는 진짜 행복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비만 해방》은 다이어트 매뉴얼로만 읽을 책이 아니다. 거대한 사회 구조 속에서 형성된 식품 산업의 그림자와 교육적 책임을 깨닫게 했다. 비만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였다. 건강은 습관의 문제라기보다 환경의 문제도 컸다.


이 책이 꼽는 비만 해방의 가장 핵심적인 방법은 중독적 식품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뇌의 도파민 회로와 행동을 재설계하는 선택과 환경 통제였다. 중독 메커니즘을 끊으려면 식단뿐 아니라 일상의 환경과 습관, 사고방식 전체를 바꾸는 종합적 행동 변화가 필수였다. 너무 어렵다고? 그만큼 인생을 결정짓는 중차대한 문제다!


"음식은 적이 아니다
자연식품(채소, 고기, 유제품을 포함해 어떤 것이건)은 일반적으로 뇌의 중독 회로를 강하게 자극하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초조제 식품인데,
이것은 사실상 매우 복잡한 종류의 약물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약물이 그렇듯이, 흡수 속도는 약물의 효능과 상관관계가 있다.
많은 자연식품은 영양소의 빠른 흡수와 에너지 추출에 저항한다. 대다수 사람들이 통감자나 두툼한 쇠고기 덩어리, 버터 조각을 크게 갈망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식품은 강렬한 보상 반응을 유발하는 방식으로 보상시스템을 자극하지 않는다."
-268면


초조제식품의 진짜 문제는 ‘맛’이 아니라 약물처럼 뇌를 조작한다는 점이다. 저자의 말처럼 음식은 적이 아니다. 우리의 '적'은 음식을 조작해 중독 회로를 강화하는 구조다. 이 책은 부모로서, 점점 더 편리해지는 시대를 사는 현대인으로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려준다.


#도서지원 #비만해방 #데이비트A케슬러 #웅진지식하우스 #초조제식품 #음식중독 #도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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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못하는 뇌 - 삶의 에너지를 회복하는 진정한 멈춤의 과학
조지프 제벨리 지음, 고현석 옮김 / 갤리온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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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가장 효과적인 휴식의 방법을 찾아가는
과학적 탐험을 시작할 것이다.
마음 방황, 삼림욕, 혼자 있기, 수면, 놀이, 운동
그리고 네덜란드 사람들이 '닉센 niksen'이라고
부르는 어떤 행위가 이 여정에 포함될 것이다.
이 여정이 끝날 즈음, 당신도 깨닫게 되길 바란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생산적인
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 86면


《멈추지 못하는 뇌》는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 오히려 뇌의 특정 영역들이 더 활발하게 작동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려준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뇌에 큰 유익이 된다는 것과 일에서 손을 떼고 쉴 때 정신적, 신체적 건강에 핵심적인 도움을 주는 디폴트 네트워크 모드가 된다는 것을 밝힌다.


디폴트 네트워크는 멍 때리고, 몽상하며, 마음이 방황하게 하고, 성찰하고, 미래를 상상하게 해주는 뉴런들의 회로다. 특정한 일에 집중하지 않을 때 활성화된다. 쓸데없다고 치부하던 생각들이 떠오를 때, 마음이 자유롭게 유영할 때만 활성화된다. 바로 이때 지능, 창의력, 사회적 공감력, 장기적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죄책감 없이 맘 편히 쉬도록 휴식에 대한 관점을 바꿔준다.


5분간 과제와 아무 관련 없는 생각을 한 그룹이 더 높은 점수를 받고, 단 10분의 휴식만으로 과제 성과가 눈에 띄게 향상된다. 문제 해결, 공간적 통찰, 언어적 추론 과제도 30분간 휴식한 뒤 수행하면 훨씬 더 나은 결과를 보인다. 관련 연구는 수도 없이 많다. 유레카! 아르키메데스가 목욕을 하던 도중에 부력의 원리를 깨달았듯, 편안하게 쉴 때 뇌는 오히려 더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었다!


궁극의 휴식이라는 닉센의 개념이 인상 깊었다.
닉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또는 목적 없는 활동을 의미한다. 네덜란드에서는 닉센이 일상의 일부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그렇게 가족을 위해 바쁘게 일하면서 어떻게 닉센할 시간을 내세요?"
내가 물었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대개 자기 시간을 가질 틈이 없잖아요."
"마음가짐에 달린 거라고 생각해요. 닉센은 하루에 꼭 30분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보다는 '사이의 순간들'을 이용하는 거예요. 예를 들면 '그래, 이제 소파에 앉아서 책 좀 읽고 차도 한잔 마셔야지'하고 생각하는 거죠. 그러고 나서 하던 일을 이어가거나 다른 일을 하면 돼요."
- 267면


닉센은 틀에 박힌 특정한 행동지침이 아니었다. 하루 일과의 틈 사이에 휴식을 끼워 넣는 것, 나를 쉬게 해주는 순간들을 허락하는 것이었다.
"내게 닉센은 차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는 거죠.
마음을 비우는 겁니다.
그럴 때 기막힌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해요."
'행복의 교황'이라는 별명을 가진 전설적인 학자, 뤼트 베인호번의 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시간 낭비가 아니다. 잘 쉴수록 잘 일하게 된다. 너무 열심히 일하지 말자. 매일 '그냥 존재하는 시간'을 떼어두자. 과감하게 게을러지자. 더 많이 자고 더 많이 놀자. 가끔은 어떤 할 일도 약속도 없는 날을 만들자.


사람들을 관찰하고, 카페에 앉아 있는 것.
필요할 때마다 주저 없이 휴식을 취하는 것.
틈틈이 창밖을 멍하니 보고,
자연에서 긴 산책을 하고,
오후에 낮잠을 자고,
일과 중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끼워 넣는 것.


"영혼은 언제나 살짝 열려 있어야 한다.
황홀한 경험이 찾아들 수 있도록."
- 에밀리 디킨슨


자신을 내버려두기.
내가 꺼지는 순간, 뇌의 잠재력은 켜진다.
멈추는 순간 뇌는 오히려 더 활발해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소중한 것을 놓는 항복이 아니라
소중한 것을 되찾는 것이었다.


마음 깊이
마음껏
쉬고 노는 시간을
이제는 허락할게.
그동안 미안했어, 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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