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 인간에 대한 비공식 보고서
매트 헤이그 지음, 강동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이란 중간 정도 지능을 가진 이족 보행 생명체로,
우주의 외딴 구석, 작고 침수된 행성에서
대체로 망상에 빠진 삶을 살고 있다."
- 11면

주인공은 외계의 고도 문명을 가진 종족인 보나도리아 외계인이다.
천재 수학자 앤드루 마틴이 100년 넘게 난제로 남은 '리만 가설'을 증명하자 보나도리아 외계인들(본체)은 그를 살해한다. 비이성적이고 불완전하며 감정에 휘둘리는 지구인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진보를 이끌 비밀을 푼 것은 우주적인 위험이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리만 가설과 관련 있는 자들을 모두 없애기 위해 앤드루 마틴의 몸을 똑같이 복제한 주인공을 지구에 보낸다. 그가 쓴 "인간에 대한 비공식 보고서"가 바로 이 책 《휴먼》이다. 보나도리아인을 독자로 상정했기에 지구인의 입장에서는 완전히 낯선 시각에서 인간과 삶과 사랑을 바라보게 한다.


"얼굴이 너무 이질적으로 보였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구멍과 돌출부로 가득했다.
특히 코가 신경 쓰였다. 천진난만한 내 눈에는
그의 안에 다른 무언가가 들어 있어서 뚫고 나오려는 것처럼 보였다."
- 22면


알몸으로 차도를 배회하고, 침 뱉기를 인사로 오해해 여러 번 침을 뱉으며, 인간의 생김새를 조악하고 역겹게 느끼는 외계인의 좌충우돌 지구 적응기가 시작된다. 저자 매트 헤이그가 정말로 외계인이 아닐까 생각들 정도로 새로운 시선들이 즐비했다.


외계인의 눈으로 본 지구인은 우스꽝스럽고 말도 안 되게 이상한 종족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몇 번이나 파안대소했다. 초반의 유머 코드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로 이어진다.


"인간 역사 전체가 불가능한 확률에 맞서 싸워온 사람들로 가득하다는 걸 알았다. 일부는 성공했고 대부분은 실패했다. 그래도 인간은 멈추지 않았다. 이 유인원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끈질기다는 것이다. 인간은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아아, 정말이지 희망은 있었다.
희망에 대해 또 하나 말할 수 있는 건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
- 238면


주인공은 그렇게 마흔세 살짜리 신생아로 시작해 아내와 아들이 있는 가족 안에서 인생을 배워간다. 앤드루 마틴이면서 앤드루 마틴이 아닌 삶, 그렇지만 결국은 인간이 되는 방법을 터득해가는 앤드루 마틴의 삶을 말이다.


"내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책.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은 책.
내가 세상에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들이 이 책에 담겼다."


동시에 여러 글을 쓰고 빠르게 작품을 발표하기로 유명한 작가인데 이 책은 출간까지 13년이 걸렸다고 한다. 탈고 후 편집에서 5만 단어를 지우고 새롭게 4만 단어를 추가하며 그야말로 그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책이었다. 우울증으로 삶을 포기할 뻔한 24세의 자신을 위해 쓴 자전적 소설을 통해 작가가 전하고 싶은 "가장 좋은 것들"이 무엇인지 내내 궁금했다.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그 반대를 통과해야만 한다.
이 역설이 인간성을 완성하는 본질이다."
- 쇠렌 키르케고르, <두려움과 떨림>


책을 덮으며 이 문장이 떠올랐다. 작가가 소설에 쓴 인용문 중에 하나다. 비합리적이고 모순투성이인 인간, 무언가를 원하면 동시에 그 반대편을 경험하거나 감내해야 하는 인생. 하지만 그 속에 놓을 수 없는 가치와 아름다움을 간직한 삶의 역설적인 진리를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사랑을 원하면 상실과 고통의 가능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유를 원하면 책임과 불안을 떠안아야 한다. 삶을 원하면 죽음을 직시해야 한다. 양극단을 모두 끌어안아야 비로소 인간은 사람이 된다.


덧없음을 알기에 순간의 소중함을 깨닫고, 관계를 깊이 가꿀 수 있다. 소멸을 전제로 하기에 예술과 철학, 사랑 같은 불가능함을 인간은 끊임없이 창조한다. 인생의 모순이야말로 인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본질임을 작가는 외계인의 눈을 거울삼아 밝혀준 것 같다.


뭉클했다. 작가 자신이 경험한 칠흑 같은 어둠을 녹여내, 그 속에서도 끝끝내 빛을 찾으며 이야기를 완성했을 그 마음이 아프고 또 참 고마웠다.


결국은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작은 것들에서 행복과 의미를 찾는 고귀함을 '좋은 것'으로 선물 받은 기분이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과 가족, 사랑, 예술, 존재의 모순과 아름다움 등 인생을 통해 체득한 작가의 사색이 곳곳에 스며 있는 멋진 소설이었다.


<미드나잇 라이브버리> <라이프 임파서블>에 이어 메트 헤이그의 작품을 세 번째 만났다. 그중 《휴먼》이 가장 인상 깊었다. 외계 행성으로 시선을 멀리 보내야만 인간의 위대함과 기적과도 같은 사랑을 볼 수 있다니,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고도 놀라운 생명체인가. 이 어렵고도 즐거운 사실을 확실히 각인시켜준 사랑스럽고도 경이로운 이야기였다.


좋은 문장들이 많아 오랫만에 필사도 하며 외계인의 신선한 관점에서 기분 좋게 환기하는 시간이었다. 주인공이 지구인 아들에게 전한 "인간을 위한 조언" 97가지(주인공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까지 보너스 선물로 꼼꼼히 챙겨본다.
그 중 몇 가지를 나눈다. 고도의 문명인다운 주옥 같은 조언들이 여러분의 마음에도 선물로 전해지기를.


1. 수치심은 족쇄다. 스스로 자유로워져라.
2. 네 능력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라.
너한테는 사랑할 능력이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3.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해라.
우주적인 차원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곧 너다.
4. 기술은 인류를 구하지 못한다.
인간이 인간을 구할 것이다.
5. 웃어라. 네게 어울린다.


#도서지원 #휴먼 #매트헤이그 #소설추천 #인생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