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합성 인간 - 낮과 밤이 바뀐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린 생체리듬과 빛의 과학
린 피플스 지음, 김초원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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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합성 인간》은 현대인이 잃어버린 자연스러운 생체리듬과 햇빛의 중요성을 과학적으로 조명하며 어그러진 일주기 리듬을 회복하는 생활 방식을 제안하는 책이다. 궁금했다. 인간은 식물이 아닌데 "광합성 인간"이라 칭할 만큼 우리에게 빛은 왜 중요할까?


인간은 광합성을 하지 않지만 빛 없이 살 수 없는 존재였다. 우리 몸 안에는 빛이 설계한 작은 시계가 있다. 세포 하나하나에, 위와 피부, 간과 폐에, 다리뼈와 근육에도 똑딱거리며 각자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모든 단원은 자기가 맡은 부분은 연주할 줄 압니다.
생체시계는 굉장히 훌륭한 음악가예요.
하지만 서로를 볼 수 없고, 소리도 들을 수 없고, 지휘자마저 볼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박자가 어긋나서 연주는 엉망이 될 겁니다."
- 48면


몸의 시작과 마지막을 알리는 지휘자가 바로 빛이었다. 인간은 자율적으로 움직인다고 믿기 쉽지만 그 삶의 리듬은 결국 햇빛이라는 외부 신호에 의존한다. 실제로는 매일 아침 햇살 한 줌에 의지해 깨어나고, 저녁의 어둠에 기대어 잠드는 존재였다. 망막이 빛을 감지하면 뇌 속에서 멜라토닌이 꺼지고 코르티솔이 켜진다. 일어나라는 신호다. 빛의 작은 속삭임이 쌓여 하루가 되고 그 하루들이 인생의 리듬을 만들고 있었다.



책을 읽으며 햇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세상의 질서에 맞춰 사는 인간을 마주하며 ‘존재의 광합성’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빛을 받고 닫으며 몸의 시계를 맞추는 행위는 생의 리듬을 조율하고 세상과 연결되는 존재의 뿌리 같았다.


낮의 부족한 자연광과 밤의 과도한 인공빛은 이렇게 중요한 우리의 일주기 리듬을 깨버린다. 이는 장내 미생물 구성에 영향을 미치고, 불면증, 소화불량, 집중력 저하, 우울증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된다.



우리는 먹고 마시며 에너지를 얻지만 삶의 리듬을 맞추는 질서는 햇빛이라는 외부 신호에 의존한다. 빛이라는 외부 세계의 에너지 없이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이란 참 나약한 존재다.


책을 덮으며 물었다. '나는 지금 햇빛과 얼마나 연결된 삶을 살고 있을까?' 작가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배우 차인표는 아침에 일어나면 창문을 열고 그날 만날 사람들과 하게 될 일에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한다. 나 역시 아침 햇살 앞에서 하루를 새날처럼 시작하는 작은 의식을 만들고 싶다. 오늘 하루 속에서 나를 바로 세우고 세상과 연결되는 단순하고도 확실한 방법일 것 같다.



어떤 방식으로 광합성을 실천할 수 있을까.
오전에 20~30분 집중적으로 볕을 쬐고,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며, 일몰 후 금식을 하고 인공조명을 낮추기. 해가 지면 몸이 재생하고 회복할 수 있도록 돌보아주기.


작은 관심을 기울인다면 몸속의 작은 시계는 다시 제 리듬을 찾고, 하루를 살아가는 힘이 되어준다. 햇빛에 몸을 내어주는 시간으로 매일매일 더 제 색깔을 빛내는 광합성 인간이 되기를 꿈꾼다.


#도서지원 #서평단 #광합성인간 #린피플스 #다니엘핑크추천 #흐름출판사 #생체리듬 #일주기리듬 #빛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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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다는 것의 의미 - 예일대 의대 교수가 가르쳐주는 나이 듦의 철학
셔윈 B. 눌랜드 지음, 김미정 옮김, 임기영 감수 / 생각의힘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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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다는 것의 진짜 의미
삶의 깊이와 성장을 만나다

스테디셀러
《사람은 어떻게 나이드는가》가
15년 만에 복간된 책!

저자 셔윈 눌랜드
전 예일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로
전미도서상을 수상.
퓰리처상과 미국비평가협회상 최종 후보.


의사인데 인정받은 작가이기까지 하다? 평범한 사람인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경지이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사실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해박한 의학 지식이 촘촘하게 수 놓이고, 아름답고 정교한 문장이 배경처럼 흘렀다.



저자는 자기다운 삶을 일궈간 다채로운 사례들을 면밀히 관찰하고 통찰한 뒤 풀어낸다. 논문에서 발췌해 몇 줄로 요약된 종이 위의 사례가 아니라 우리도 똑같이 지나온 어둠과 환희가 살아 숨 쉬는 인생이 그대로 녹아있었다. 반복되는 역경 속에서도 놀라운 열정과 믿음으로 자기 생의 주인으로 살다간 이야기들을 만나 행복했다.



나도 어느 정도 나이를 먹었기에 이 책의 가치를 알아채고 음미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가만히 앉아서 책을 펼치기만 해도 다른 삶을 살아보고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나이라니, 나이 든다는 것은 꽤 괜찮은 일 아닌가. 노화의 그림자와 빛을 동시에 들여다볼 줄 아는 지혜가 있다면 나이 든다는 것은 충분히 축복이다.


이 책의 원제목은 <The Art of Aging>
저자는 노화를 기술처럼 다듬고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바라본다. 여기서 "art"는 예술이라기보다 경험과 훈련, 감각이 필요한 섬세한 기술을 뜻한다. 나이 듦은 수동적으로 당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삶을 다루는 숙련된 방법이자 지혜로운 태도인 것이다.


이 책이 말하는 노화는 죽음의 전초전도 추락도 아니었다. "삶의 완성"이요, "지혜와 성숙의 기회"였다. 노화한 몸 자체가 지혜와 균형을 요구하고, 질병이나 쇠퇴가 삶의 페이스를 조정한다는 관점에 정말 공감했다. 서서히 스며드는 노화와 그것이 가져다주는 한계는 우리가 지금 가진 것들을 귀중하게 만든다. 사랑, 배움, 가족, 일, 건강, 점점 줄어가는 시간까지 말이다.


"우리는 이 귀한 것들을
더 잘 사용해야 한다는 간절함을 느끼며
이들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된다.
새롭게 알게 된 한계들은
쓰임새가 아주 많다."
- 18면


한계의 쓸모를 배울 수 있어 좋았다. 나이 든다는 것을 걱정하기보다 한계의 지평선을 끌어안는 것, 나를 둘러싼 새로운 가능성으로 바라보는 것. 그러한 메시지들을 읽으니 늙어간다는 감각이 나쁘기만 한 건지 진심으로 의아해졌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반성했던 점은 "경력 중심의 정체성"이었다. "나"라는 존재 자체를 보려 하지 않고, 세상에 내놓을 만한 커리어만을 생각하다 보니 늘 숨고만 싶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현실에서는 보이는 것만이 가치있을 거란 생각에 갇혀있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지속해서 발전할 수 있는
능력의 상당 부분은 자신을 하던 대로 행동하려는 경향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이런 능력을 써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이 든다는 것의 진정한 교훈이다."
- 136면


어제도 지인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저는 관성에 지배당하는 사람이에요. 하던 대로 하고, 안 하던 건 계속 안 하고, 그 흐름을 거스르는 걸 정말 못해요." 나는 나 자신을 하던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라 못 박아 놓고 있었다. 실제로 행동력이나 추진력이 정말 약하다.


하지만 이 책은 말한다. 인간은 살아 있는 내내 계속 발달할 수 있다고, 오래 산다는 것은 계속 발달할 수 있도록 허락받은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축복으로 여길 줄 알아야 한다고.



히브리어로 '나이 든'이라는 'zaken'은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이것은 지혜를 얻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나이 들어가는 뇌를 잘 이용해 깊이 있는 자기 인식을 하고, 현명하게 판단하며, 넓고 유연한 관점을 가지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가는 기회가 삶 곳곳에 널려 있다니, 삶이 그런 거라면 나는 끝까지 살아보고 싶다.


#도서지원 #서평단 #서평 #책리뷰 #나이든다는것의의미 #스테디셀러 #노화 #죽음 #셔윈눌랜드 #생각의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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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었다
방성현(현사이트) 지음 / 딥앤와이드(Deep&WIde)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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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목말랐다. 열심히는 사는 것 같은데 제자리라는 갈증에 뭔가를 더하고 얹어 쌓으려고만 했다. 양질전환의 법칙을 믿었기 때문이다. 양적인 누적에서 질적인 비약이 나오듯, 경험과 노력이 든든하게 축적되면 능력이 되리라 확신했다. 하지만 양질전환의 순간은 좀처럼 오지 않았고 지칠 때가 많아졌다.


그럴 때마다 자기계발서나 관련 영상을 뒤졌다. 힘을 내서 앞으로 앞으로 또 달리고 싶었다. 그래서 자주 들르던 채널 중 하나가 이 책의 저자 방성현이 운영하는 인스타그램 채널 '현사이트' (@hyunsight)였다. 감성적인 위로도, 잠깐 소비되고 연기처럼 사라지는 현란한 영상도 아니었다. 실제적인 변화를 이끄는 철학을 하나의 장면에 담은 영리함이 좋았다. 이성과 감정을 동시에 움직이는 방법을 아는 것 같았다. 이 영상들을 보고 나면 창밖으로 눈을 돌려 생각에 잠기게 됐다. 틈과 여백을 허락하는 콘텐츠가 이 시대에 얼마나 드문가.


"당신의 성장이 멈춘 이유는
충분히 노력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을
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그 끈질긴 생존을,
제대로 작동하는 전략으로
바꿔야 할 때다."


매일의 노력을 제대로 작동하는 전략으로 바꾸기 위해 이 책은 지금 하고 있는 활동과 목표를 재정렬하여 ‘나의 걸음’으로 성장하는 데 집중하라 한다. 목표에 직결되는 행동을 반복하는 집중이 중요한 것이다. 특히 실패나 좌절, 멈춤의 경험도 자기 성장의 재료로 활용하며, 성실성이 문제가 아닌 "리듬의 문제"를 짚어준 점이 인상 깊었다. 성장은 지속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힘을 빼 봐, 그래야 멀리 날아가."
아이가 종이비행기를 힘껏 날린다. 힘을 너무 세게 줬는지 비행기는 아이의 발 앞에 떨어진다. 아빠는 손에 힘을 거의 뺀 채 비행기를 날렸고, 그 비행기는 아이가 쫓아갈 정도로 멀리 날아갔다.

"Slow is smooth and smooth is fast."
"여유는 부드럽고, 부드러움은 빠르다."
- 미 해군 특수부대 격언


성공을 막는 건 과한 욕심이었을지 모른다. 저자는 하루에 할 일을 5개 이내로 줄이자 오히려 실수가 줄고 집중력이 돌아왔다고 말한다. 성과도 덩달아 상승하며, '잘해보고 싶은 열정'이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성숙은 완성이 아니라 방향이다."
- <아직도 가야 하라 길>, 모건 스콧 팩

축적은 양적인 집적이 방향성과 목표로 연결될 때 비로소 “쌓인다”는 감각이 생긴다는 것을 깨달았다. 1단계만 있고 2단계는 빠져있었다. 욕심으로 하루하루 열심히 걷기만 했지, 지도 없이 헤매니 힘만 빠질 뿐 만족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꾸준함의 힘은 시작과 지속의 이유는 되지만 방향이 없다면 완성도 없다. 경로 없이 기초체력만으로 무작정 달린다고 마라톤을 완주한 것은 아니다.



"그들이 후회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했다.
모든 선택이 '본인의 의지'로 결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 50면

심리학의 '자기결정성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행복과 만족은 결과보다 선택의 주체성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주체적으로 내린 결정에 대해서는 후회보다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좌충우돌 거창한 성과도 없는 블로그지만 그 선택은 분명 내 안에서 솟아오른 용기이자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고, 나는 매 순간 그때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리라 믿는다.


내가 한 선택이라면 최고의 결정이라는 말에 진심으로 위안을 얻었다. 실패 없는 삶이 아니라, 책임지는 삶이 더 의미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대학생 때부터 창업에 도전하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래서일까, 멈춘 것 같은 시간을 숱하게 관통했을 그의 이야기에는 거칠고 울퉁불퉁한 삶이 정직하게 살아있었다. 그 진짜 이야기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들렸다.


잠깐 반짝이는 동기부여가 아니라 끝까지 나의 리듬을 이어가게 하는 전략, 흔들림과 실패까지 품고 방향을 설정해가는 업그레이드된 힘을 실어주는 책이었다. 시련과 좌절을 깊이 맛본 분일수록 더 풍성한 통찰을 얻을 책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


#도서지원 #당신은한번도멈춘적이없었다 #방성현 #현사이트 #인스타그램스타 #자기계발책추천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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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묻고 의학이 답하다 - 의학의 새로운 도약을 불러온 질병 관점의 대전환과 인류의 미래 묻고 답하다 7
전주홍 지음 / 지상의책(갈매나무)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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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흐름과 관점의 변화를
이해하는 일은 더욱 중요합니다.
오늘날의 우리를 더 깊이 이해하게 할 뿐 아니라
의문과 갈등, 불확실성 속에서
더 나은 질문을 던질 힘을 주지요."
- 들어가며


《역사가 묻고 의학이 답하다》는 질병을 바라보는 관점 변화와 의학의 발전 과정을 역사 속에서 다각도로 흥미롭게 설명한 책이다. 서울대 교수이자 분자생리학자인 전주홍이 쓴 자연과학 교양서이다. 의학의 언어가 신의 벌, 체액, 해부와 병리, 분자, 정보로 바뀔 때마다 치료법과 환자의 운명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역사를 통해 추적한다.


의학은 언제부터 과학이었을까. 백신이나 항생제, 유전자 편집 같은 최신 기술을 떠올리기 쉽지만, 저자는 다른 대답을 건넨다. 의학은 어느 날 갑자기 과학이 된 것이 아니다. 신의 노여움, 체액, 해부, 분자, 정보라는 다섯 전환을 거치며 ‘점진적으로 과학이 되어온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다섯 관점의 전환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자 관점이 충돌하는 이야기로 흘러서 무척 흥미로웠다.


고대에는 질병을 신의 노여움으로 해석했다. 중세 이전까지 사람들은 병을 초월적 개입으로 인식해 기도나 종교 의례로 치료했다. 이후로는 그리스, 로마 전통에서 체액의 균형이 무너진다는 자연주의적 관점이 힘을 얻는다. 피를 뽑거나 음식과 생활습관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회복을 시도한다.


르네상스 시기, 해부학이 본격적으로 발전하면서 병의 원인은 인체 내부로 들어온다. 장기와 조직을 눈으로 확인하며 병리를 찾는 방식이 자리 잡았고, 의학은 미술과 함께 ‘보는 방식’을 공유한다. 19세기 이후 분자 수준에서 생명을 파악하는 접근이 등장하면서 세균학, 화학적 약제, 분자생물학이 폭발적으로 발전한다. 인간은 질병을 분자 단위의 적을 상대하는 전쟁처럼 이해하게 된다.


21세기에 들어선 의학은 정보의 언어로 다시 태어난다. 유전자는 코드로 불리고, 질병은 데이터의 오류로 해석된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는 평균적인 환자가 아니라 ‘특정한 개인’에게 최적화된 진단과 치료를 제안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 지점을 경고한다. 아무리 정밀한 기술이 있어도, 환자 곁을 지키는 손길 없이는 전인적 돌봄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책을 읽으며 의학의 진보는 기술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진정한 치료는 환자의 곁을 지키는 돌봄의 서사와 과학적 패러다임이 함께 가는 것이었다. AI가 세상을 장악할수록 인간적인 손길과 과학적 시선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저자의 메시지가 인류를 위한 경고처럼 들렸다.



"대립하는 것들은 상보적이다"
- 닐스 보어

저자는 닐스 보어의 문장으로 책을 마무리한다. 강렬했다. 서로 반대처럼 보이는 것들이 서로를 보완한다니! 차가운 해석과 따뜻한 돌봄, 알고리즘과 직관, 치료와 기다림. 하나를 지우면 이야기가 기울어지듯, 의학은 한 번도 하나의 언어만으로 말한 적이 없었다. 시대마다 주된 언어가 바뀌었을 뿐, 나머지 언어들은 물처럼 흐르며 다시 새로워졌다.


데이터가 점점 더 방대해지고, AI는 더 빠르게 학습하겠지만 의학은 차가운 지식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다. 병리학의 날카로운 눈이 있어도, 환자를 인격체로 바라보고 손을 잡는 따뜻한 시간이 없으면 치료는 불완전하다.


의학의 언어가 시대마다 바뀌었듯, 오늘을 사는 우리는 ‘정보’와 ‘돌봄’이라는 두 언어를 함께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깊어졌다. 기술의 언어가 질병을 설명해 준다면, 돌봄의 언어는 환자를 끝까지 안아 준다. 인공지능의 무오함과 인간의 따듯함이 균형을 이룰 때, 의학은 사람을 온전히 구한다. 우리는 우리를 믿어야 한다.


결국 사람이었다. 역사가 알려주는 미래의 해답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역사는 올바른 방향을 들려준다. 기술이 아무리 정밀해지더라도, 우리는 반드시 더 인간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도서지원 #역사가묻고의학이답하다 #전주홍 #지상의책출판사 #의학 #생명과학 #추천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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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올리버
올리버 색스.수전 배리 지음, 김하현 옮김 / 부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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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신경과학자가 나눈
우정, 감각, 그리고
인생의 두 번째 시선"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로 알려진 신경과 교수, 올리버 색스는 "의학계의 계관시인"이라 불리는 탁월한 과학 저술가이기도 하다. 이 책은 올리버 색스의 타계 10주기를 기리며 그에게 부치는 수전 배리의 찬가다.


수전 배리는 생물학 및 신경과학 교수다. 올리버 색스와 20살의 나이차에도 오랜 우정을 다지며 10년간 150통의 편지를 주고받는다. 그녀는 어릴 때 사시 교정 수술을 받았지만 48세에 처음으로 입체시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입체적인 세상을 수전 배리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보고 있었다. 한 눈만 쓰면 세상은 어수선하고 납작한 평면으로 보인다. 탁자 위에 있는 컵을 종이에 그려진 그림처럼 보는 것이다. 시력 훈련을 받고서야 난생처음으로 두 눈의 초점을 한곳에 맞춰 3차원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그날 저는 떨어지는 눈 속에, 눈송이 사이에 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점심 먹는 것도 잊고 한참 동안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며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눈은 대단히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눈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더더욱요."
- 24면


입체시는 유아기가 지나면 발달할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수전 배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믿어줄 사람이 없을 거라 여겼지만 올리버 색스의 책을 읽고는 환자에게 깊이 공감하는 그의 통찰력에 감탄한다. 그리고 기나긴 편지에 자신의 시력 일대기를 실어 보낸다.


올리버 색스는 입체시가 무너졌다가 복구된 경험이 있었기에 입체시가 기적이자 특권이며, 강렬한 기쁨과 경이의 원천이라는 것을 알았다. 뉴욕입체협회의 정회원으로 온갖 입체적인 것을 사랑하는 올리버 색스는 그녀의 편지는 받고 몹시 흥분했다. 그렇게 편지 한 통으로 시작된 두 지성의 교류는 두 사람의 인생을 풍성하게 바꾼다.


수전 배리와 편지를 교환하기 시작한 해에 올리버 색스는 안구암 진단을 받는다. 그녀가 경이로운 세상을 발견한 시기에 그는 시력을 잃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세상을 떠나기 7주 전까지도 무엇을 쓸지 고민하고, 식을 줄 모르는 호기심으로 신나게 성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었다.


수전은 그런 올리버를 위해 그녀만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편지를 쓴다. 올리버에게 전할 재미있는 동물 관련 사건을 찾아다니며 그림을 그려 보낸다. 그가 사랑하는 세상 이야기를 끝까지 들려주고 보여주며, 언제까지나 그가 감탄을 잃지않길 바라는 마음은 아니었을까.


"유유상종. 끼리끼리"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들이 이런 우정을 가꿀 수 있었던 건 좋은 사람이었던 이유도 있지만 서로의 진가와 진심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는 진짜를 알아본다. 서로가 서로의 거인이 되어 상대의 어깨에 올라타 더 높이 오를 수 있도록 손을 잡아주는 우정. 서로가 서로의 동료이자 스승이 되는 관계. 무척 부럽다.


수전이 그 첫 번째 편지를 부치지 않았더라면 (실제로 그녀는 부치지 않을 뻔했다), 그 편지를 받고 올리버가 한걸음에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찰나의 작은 용기로 말을 건네는 순간 세상은 변하기 시작한다. 서로의 세계가 삶에 들어와 섞인다. 수많은 변화를 일으키며 인생을 바꾼다.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을 그들이 직접 만들어낸 것이다.


"인생에는 그런 순간들이 있다.
드물긴 하지만 내 우주에 있는
모든 별과 행성이 나란히 정렬하는 것 같은 때."
- 294면



그들의 우정은 우연에서 시작된 것 같지만 사실은 서로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만든 준비된 기적이었다. 삶의 갈림길에서 망설이지 않고, 누군가의 작은 빛을 알아보는 안목을 가진 사람, 그렇게 주변 사람들이 가진 빛을 모아 세상을 더 밝게 비추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한 책, 《디어 올리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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