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어른이 되는 시간 - 소란한 세상에서 평온함을 찾는 가장 고귀한 방법
나태주 지음, 보담 삽화 / 북로그컴퍼니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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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한 세상에서
평온함을 찾는
가장 고귀한 방법"


⁠부제가 자못 거창하다. 필사가 평온함을 찾는 가장 고귀한 방법이라니, 출판사의 자신감이 엿보인다. 살짝 거부감이 스쳤지만 나태주 시인의 서문으로 스르르 녹는다.


⁠"소리 내어 시를 읽으며 필사하면
시를 세 번 읽는 것과 같습니다.
눈으로 한 번 읽고,
쓰면서 한 번 읽고,
내가 읽는 소리를 내 귀가 들어서
다시 한번 읽습니다.
시의 강물이 세 번 흐르는 사이
우리들 마음은 자라고 자라
성숙한 어른이 될 것이며,
그렇게 바라본 삶은 이전보다
더 곱고 아름다울 것입니다."


시인의 문장에 격이 다른 고귀함이 흐른다.
시를 낭독하며 필사하는 것이
마음에 시의 강물이 흐르게 하는 일이라니♥


자기 안의 소음을 다스리는 필사는 느림을 선택하는 태도이자 급박한 시대에 휩쓸리지 않도록 나의 존엄을 지켜내는 방식이 될 수 있다.


소란한 세상에서도 멈추어 내면의 품격을 돌아보는 시간. 마음을 정리하는 차원을 넘어, 나를 존중하는 의식. 그렇게 필사는 고귀한 행위가 될 수 있었다.


특히 이 필사 시집은 시인이 ⁠아침 시간⁠에 ⁠가볍게 산뜻하게 ⁠읽기 좋은 시들만 골랐다고 한다. 아침에 읽는 시답게 이 시들은 아침의 햇살을 닮았다. 동시에 고요한 우주도 비친다.


시들을 따라 한 자 한 자 써내려가다 보니
내 안의 묵은 감정들이 말을 걸어온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되, 감정을 방치하지도 않기 위해
천천히 써본다. 감사와 평온이 강물처럼 흐르고, 시의 고운 언어가 햇살처럼 윤슬로 반짝인다.


낭독하며 필사하는 아침은
떠오른 마음 찌꺼기를 고르고
하루를 깨끗하게 맑히는 시간이 된다.


가장 좋았던 것은 시에서 놓쳤던 시인의 감성과 생각을 짧은 산문으로 붙잡을 수 있었던 점이다. 해설이 아니라 공부할 필요 없이, 편안하게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듯 시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시를 몇 배 더 깊이 음미할 수 있었다. 이런 형태의 시집이 계속 출간되어도 좋겠다.


보담 작가의 일러스트도 빼놓을 수 없는 이 시집의 강점이다. 마음을 위로하는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답게, 그림마다 바람과 향기가 불어오는 것 같았다. 절로 미소를 짓게 하는 삽화들 덕분에 매일 아침 짧은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하루를 잘 살기 위해,
매일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게 하는
100편의 시를 내일도 매일 따라 쓸 것이다.


시를 필사하는 짧은 시간 동안,
어쩌면 나는 가장 나다운 나를
만나는지도 모르겠다.



#도서지원 #필사어른이되는시간 #나태주 #시 #필사 #필사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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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십 대를 지탱해 줄 다정한 문장들 - 김혜정의 청소년을 위한 힐링 에세이
김혜정 지음 / 다산에듀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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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 년째 열다섯> 시리즈의 소설가로 알고 있던 김혜정 작가님이 이 책의 저자라니 의외였다. 소설가가 쓴 에세이는 흔치 않다. 더군다나 청소년 문학가가 청소년을 위한 에세이를 쓰다니, 처음 본다. 청소년을 위한 글은 많지만, 청소년을 정면으로 마주한 에세이는 드문 편이다. 왜일까?


학업에 치여 책 읽을 시간도 없는 독자라 시장성이 없어서? 한 끗 차이로 훈계가 되기 쉬워서? 소설가란 이야기를 통해서 말하는 사람들이라, 작가 본인의 목소리로 직접 말하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 어떤 이유든 청소년을 위한 에세이가 적다는 사실은 아이들이 보고 들으며 배울 통로가 적다는 뜻이다.


그래서 "청소년을 위한 힐링 에세이"라는 부제까지 붙은 이 책이 참 귀하고 반가웠다. 보기 드문 선택이자 태도로 다가온 《흔들리는 십 대를 지탱해 줄 다정한 문장들》에는 어른도 아이도 아닌, 그 사이에서 오래 머물며 양쪽의 균형을 잡아온 작가님의 시선이 있다. 청소년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작가님이 아이들에게 건네는 말들은 단순한 위로나 충고가 아니었다. 어른인 척했지만 진짜 어른이 못 되어 여전히 방향을 찾는 중인 내게도 필요한 문장이었다.


프롤로그
어른들이 알려주지 않는 진짜 미래

" 자라나야 할 십 대들을 자라나지 못하게 가두고
앞으로 가야 할 십 대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편 없는 모습에 화가 날 때가 많았거든요."
- 6면


프롤로그부터 팩폭을 당했다. 매일 비슷한 잔소리로 아이들을 자라지 못하게 가두고, 발목을 잡고 있던 건 아닌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른 말 다 듣지 마세요."
강연마다 십 대들에게 이렇게 말하면 아이들 눈이 동그랗게 변한단다.
"네, 실은 저는 어른의 내부 고발자입니다."
책을 읽다 보니 어느새 내부 고발자의 편에 서있었다. 아이의 눈으로 엄마인 내가 보였다. 나는 아이의 삶을 응원하기보다 통제하고 관리하려 한 엄마였다. 내가 틀렸구나. 잘못할 때가 많았구나. 생각보다 훨씬 많이!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함부로 말하는 거야?"
-9면
지금 젊은 세대들은 최초로 부모보다 못 사는 세대가 되었다. 미래를 떠올리면 암담해지기 십상이다. 아이들을 너무 사랑하니 걱정 먼저 앞선다.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밭에 부정적인 말들을 씨앗처럼 뿌리고 있었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우리 아이들이 아무것도 되지 못할까 봐 걱정만 했다. 우매한 나의 오만함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사춘기는 생각과 마음의 크기를 넓혀가야 하는 시기다. 내가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거지?!


"너는 네가 행복을 느끼는 일을 하면 되고,
내가 너에게 원하는 것은 그것뿐이란다."
-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네 인생의 이야기> 중
미래에 닥칠 비극을 알면서도 주인공은 딸을 만나는 선택을 한다. 그리고 딸에게 이 말을 들려준다. 아이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은 모든 부모가 똑같다. 그런데 아이를 향한 첫사랑에 세상의 비교와 욕심이 점점 덧붙는다. 그리고 부모가 경험한 몇 가지의 안정된 길을 아이에게 부추긴다.


"나 자신의 행복을 가장 우선에 두세요.
부모님을 위해, 친구를 위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위해 살지 마세요.
어쩌면 학교를 다니는 게 너무 힘들 수 있어요.
도저히 못 다니겠다 싶으면 그깟 학교 그만둬도 돼요.
나를 너무 힘들게 하면 그게 누구라도 절연해도 돼요.
나 빼고는 그깟 거 그만해도 된다라는 걸 잊지 마세요."
-77면


바로 어제, 내 인생 처음으로, 학교를 그만뒀어도 좋았겠단 후회를 한 터라 작가님의 말씀이 피부로 읽혔다. 전 같으면 극단적인 말로 들려 흘려버렸을 텐데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인생의 온갖 방향을 들려줄 다양한 어른들을 만나는 건 십 대 아이들에게 정말이지 중요하다. 판단과 선택은 아이의 몫이고, 시행착오와 실패도 아이 인생에 반드시 필요하다. 책으로 비교적 안전하게 여러 삶을 탐색할 수 있으니 역시 독서는 인생의 필수템이다.


흔들리는 "모두"를 지탱해 줄 명랑하고 다정한 책이다. 당신의 나이가 어떻든 청소년의 마음으로 돌아가, 다른 각도에서 과거의 자신과 주변 사람들, 세상을 고루 둘러보게 될 것이다. 어른이라고 다 아는 게 아니다. 알아도 잊고 사는 게 많다. 이 책에서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문장들을 한가득 챙겨갈 수 있을 것이다.


#도서지원 #김혜정 #흔들리는십대를지탱해줄다정한문장들 #청소년에세이 #힐링에세이 #오백년째열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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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웨이 : 30주년 기념 특별판 아티스트 웨이
줄리아 캐머런 지음, 박미경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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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지원

《아티스트 웨이》는 "창조성 회복의 고전"으로 불리며, 창조성을 회복하는 가이드로 널리 알려져있다.

이 책은 "직접 쓰고 실천하는 워크북형 자기 탐색 프로그램"이다. 잃어버린 자신을 불러내는 감각 훈련서로 창조성과 정체성 회복을 돕는다. 가장 중요한 실천사항은 바로 이 두 가지다.



[ 모닝 페이지와 아티스트 데이트 ]

1. 모닝 페이지
매일 아침, 의식이 흐르는 대로 세 쪽 분량을 적는다. 두뇌 유출이다. 두서없이 사소하고 이상한 내용이라도 생각과 감정을 죄다 쏟아내보자. 멋져 보일 필요 없다. 처음 8주 정도는 다시 읽지도 말아라. 앞 장을 절대로 넘겨보지 마라. 그저 매일 세 쪽을 써라.

내면의 비평가, 내 안에 검열관의 부정적인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훈련이다. 판단하지 않고 그냥 써라. 세 쪽을 다 채울 때까지 무슨 말이든 써라.

모닝 페이지를 쓰며 나도 놀랐다. 글을 쓸 때는 항상 '무엇을 쓸까, 어떤 포인트를 골라 강조할까' 뇌의 전 영역이 총동원된다. 그러나 모닝 페이지는 뇌가 쉬는 쓰기다. 일기보다도 더 편하고 자유로웠다. 어떠한 틀도 없이 얽매이지 않아야 하기에 내 속에 숨은 진짜 나의 아주 작은 속삭임을 들을 수 있게 한다. 들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글이 되어 나온다. 뒤죽박죽으로!

저자는 쓰고 나서 절대 읽어보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퇴고 습관이 있는 나는 어쩔 수 없이, 나도 모르게 다시 읽어버렸다. 그런데 좋았다. 쓰레기처럼 하찮은 글자 무더기에서 보석 같은 생각 알갱이들이 하나씩 반짝이고 있었다. 타인의 멋진 통찰을 훔쳐 와 베껴 놓은 느낌이었다. 웜홀 같은 다른 차원의 문을 연 기분이다. 창조는 멋진 결과물이 아니라, 나와의 내밀한 대화에서 시작된다.



2. 아티스트 데이트
놀이 같은 혼자만의 데이트다. 매주 두 시간 정도 특별히 시간을 내어, 즐거운 자극이 있는 영감의 공간으로 나를 데려가자. 혼자 해변을 산책하거나 옛날 영화를 보거나 수족관이나 미술관을 가도 좋다. 시간만 내면 된다.

이번에도 저자의 말을 거슬렀다. 두 시간 내기가 어려워, 점심시간에 30분동안 아티스트 데이트를 시도했다. 근처 작은 무인 매점에 들러 불량한 군것질거리를 샀다.

처음엔 시간 낭비 같았다. 그러다 아차 싶었다. 직접적인 성과가 없으면 헛짓처럼 느끼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나한테 이렇게 여유 부릴 자격이 있나, 창조성이니 뭐니 이런 건 다 특권층의 사치 아닌가'하는 내면의 검열관의 목소리였다.

평소 같으면 검열관의 목소리에 손을 들어주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난 처음 가는 길, "아티스트 웨이"로 향하는 전환점에 서있다. 이대로 돌아갈 순 없지!

눈을 감고 소리에 집중해보았다. 근처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놀고 있었다. 그 북적임을 듣다가 갑자기 눈물을 글썽였다. 나의 국민학교 시절에는 없는 정다운 활력이었다. 차라리 학교를 그만뒀더라면 더 많이 배우고, 더 행복했을 거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학교를 자퇴하다니, 전 같았으면 절대 떠올려 보지 않았을 가능성이다.

아티스트 데이트 덕분에 대담하게 생각이 튀었다. 억눌렀던 과거의 욕구와 숨기기 급급했던 내면 아이의 목소리를 들은 것이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관심의 초점을 외부가 아닌 내면으로 돌리면, 의식의 전환은 생각보다 쉬울 수 있었다.



"나는 지금 나를 충분히 살고 있나?
이 책을 읽으며 나와 보낸 시간은 꽤 묵직했다. 지금 나는 나를 살고 있는 건지, 관성대로, 살던 대로 살고 있는 건지 내가 나에게 물었다. "아티스트 웨이"는 삶의 틈을 만들고, 그 틈을 여백으로 넓혀 덮어둔 창조 본능을 깨우는 시간이었다. 삶을 감각적으로 다시 느끼게 하고, 생기를 회복시키는 도구였다.

이 책은 예술가로 살라고 하지 않는다. 삶을 예술처럼 느끼라고 말한다. 소풍 전 날처럼 잔뜩 기대하고 설레며, 일상을 자기답게 창조하길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선물이다.

예술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내 삶이 반짝이고 있음을 보게하는
장난기 어린 아이의 웃음소리다.




#아티스트웨이 #줄리아캐머런 #모닝페이지 #아티스트데이트 #창조성 #예술 #영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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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만나는 해부학 수업 - 머리털부터 발가락뼈까지 남김없이 정리하는 인체의 모든 것 드디어 시리즈 7
케빈 랭포드 지음, 안은미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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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이라니. 의료계에 몸담지 않고서야 볼 일이 없는 책을 이 나이에 읽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항상 아쉬웠다. 매일 똑같은 몸 하나를 입고 살면서도 단 하나뿐인 이 Body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다. 처참할 정도다. 어렵겠지만 몸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어 이 책에 도전했다.


온갖 건강 정보는 범람하지만 설왕설래 일치된 학설은 찾아보기 힘들다. 과일 채소식이 유행하다가 육류만 먹는 카니보어식이 인기를 끌고 있다. 몸은 우리가 사는 유일한 공간이다.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결국 내가 건강해지는 가장 확실한 기준은 몸의 구조와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다. 내 몸은 정답을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야심차게 책을 펼쳤지만 이내 당황했다. 해부학이 아닌 화학이 등판한다. 세포를 알기 위해서는 물질의 구조와 특성, 상호작용을 다루는 기초 화학을 이해해야 한단다. 인체의 구조를 다루는 인체해부학과 구조의 기능을 살피는 생리학을 배우기 위해서다. 역시나 만만치 않다. ㅎㅎ


의외로 흥미로웠다. 몸은 세포로 이뤄져 있고, 세포는 분자로, 분자는 원자로, 원자는 결합으로 뭉쳐 있다. 몸의 기본 재료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화학결합은 몸의 가장 기초적인 이해가 맞았다. 몸이 어떻게 붙어 있고, 작동하며, 변화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우주에서 벌어지는 현상 대부분이 그렇듯이, 원자는 균형을 추구합니다. ....... 원자는 자연스러운 균형을 찾기 위해 양성자와 같은 수의 전자를 보유해 전하 중립을 유지합니다. "
- 23면


내 인생 모토인 "균형"이 원자와 세포에도 작동하고 있었다. 역시 세상은 반복되는 프랙털 구조라는 사실을 확인하니 재미있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이온결합, 수소결합, 공유결합 등 다양한 방식으로 원자들이 붙어 인체뿐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을 이루고 있다.


화학결합은 과학적 개념일 뿐 아니라 존재가 완성되는 방식이었다. 원자들도 혼자서는 불안정하다. 결합으로 관계 맺으며 안정된 상태에 이르면, 무언가가 되어 기능한다. 그 모습이 꼭 우리와 같다. 누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존재의 형태를 바꾸고 의미를 결정짓는다.


몸은 수많은 결합의 결과였고, 그 결합은 균형을 향한 치열함이었다. 세포를 통해 삶을 배운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도 적절한 결합과 거리, 균형에서 비롯된다.

이번에는 "림프계"에 대해 배웠다. 여자의 다이어트는 림프순환부터라는 말이 있어 관심이 많았다. 몸속 쓰레기차이자 면역 경찰인 림프에 대해 읽고 나니 몸이 다르게 보였다. 림프는 혈액이 가져가지 못한 노폐물을 수거하는 하수도다. 동시에 병원균을 탐지하고 싸우는 면역 순찰차다.


"림프는 단백질 함량이 적도 압력을 가해주는 펌프도 없으므로 림프순환 내로 밀려 들어갈 힘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림프의 이동은 주변 장기들, 특히 근육이 사이질조직에 가하는 압력에 달려 있습니다. 걷기, 숨쉬기, 그 밖에 장기를 움직이는 모든 일반적인 운동이 림프의 압력을 일시적으로 높입니다."
- 263면


놀랍게도 이 시스템엔 펌프가 없다. 걷고, 숨 쉬고, 스트레칭하며 움직여야 돌아간다.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림프는 정체되고, 몸은 붓고, 면역도 무뎌진다. 왜 오래 앉아있는 습관이 담배보다 해로운지 이제서야 이해했다. 목 돌리기, 어깨 풀기, 발바닥 자극 하나하나가 림프를 흘러가게 만드는 작은 압력이었다. 건강은 움직임의 누적이다. 부지런히 움직여 림프를 쉴 새 없이 작동시켜보자.


한 번에 정독하는 것도 좋지만 발췌독으로 자주 들춰보는 방식이 이 책에는 더 어울린다. 행복은 강도보다 빈도에 있다. 털의 정체를 알게 된다던가 (각질층의 죽은 세포들을 튜브처럼 단단히 말아 넣은 구조라는 것), 손톱 역시 죽은 세포층이 빽빽이 들어차 있는 단단한 판이라는 발견처럼 하나씩 알아가는 깨알 재미를 누릴 수 있다.


해부학이 외워야 하는 복잡한 그림책 같았는데 이 책을 읽다 보니 어느새 몸과 친해진 기분이다. 보이지 않는 몸속 세포와 기관들을 상상할 재료들이 생겼다. 정확히 알지 못해도 해부학은 내가 움직이고 호흡하고 살아가는 흐름과 기능을 가늠케 한다.


해부학은 권위의 정보가 아니라 내 언어로 내 몸을 이해하는 기술이었다. 건강은 이제 어디서 들은 막연한 팁이 아니라 내 몸의 구조를 바탕으로 선택할 수 있는 주체적 영역이 된다. 원자와 세포, 림프의 구조를 구체적으로 떠올리는 사람의 일상은 다르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자세와 행동을 바꾸는 데는 의지뿐만 아니라 신체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이해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건강한 삶의 또 다른 기반을 이 책을 통해 만났다.


몸에 대한 문해력, 해부학.
나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언어.
만나서 반갑다.


#도서지원 #드디어만나는해부학수업 #현대지성 #해부학책 #해부학입문서 #해부학책추천 #몸에대한문해력 #머리부터발끝까지 #인체의모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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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는 7가지 무기
가바사와 시온 지음, 최수영 옮김 / 다산에듀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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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10대를 살고 있는 너에게

30년 상담 경력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가바사와 시온이 이번에는 청소년을 위한 책을 선보였어. 요즘처럼 뭘 해도 불안한 시대에 흔들리기 쉬운 너희에게 먼저 겪은 어른으로서 스무살이 되기 전에 꼭 알아야 할 '인생 무기'를 알려줘.

이 책을 읽다보니 억울함이 밀려오더라. 학교에서 국영수랑 '삶'도 함께 배웠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인생을 살고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어. 학교는 점수를 매길 수 있는 것만 가르치지. 인내심, 공감, 회복 탄력성, 주체성 같은 건 채점할 수 없잖아. 시험이 인생을 바꾸는 게 현실이었으니 국영수 성적으로 자신을 증명하라 한 거야.

학교는 삶이 교육의 대상이 아니라 경험의 몫이라 착각했던 것 같아. 각자도생, 자기 삶은 자기가 알아서 하라며 준비도 안 된 학생들을 사회로 던져버린 거지. 수학 문제는 풀지만, 복잡한 인생 문제를 푸는 법은 가르치지 않아. 영어 문장은 분석하지만, 어떻게 해야 진심을 전할 수 있는지 대화하는 법은 다루지 않아. 삶을 가르치는 건 부모가 온전히 담당하기엔 너무 크고 어려운 문제야. 게다가 학생은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걸......

삶을 살아내는 기술은 대체 누가, 어디서 가르쳐야 할까? 아마도 이 책이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 것 같아. 《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는 7가지 무기》는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를 시원하게 보여줘.

이 책은 청소년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기막힌 소재를 끌어와 인생을 가르쳐. 바로 게임! 너도 게임 좋아하지? 드래곤 퀘스트나 파이널 판타지 같은 롤플레잉 게임으로 인생을 어찌나 탁월하게 설명하는지 난 정말 감탄했어! 당장 게임을 다운받고 싶을 정도였다니까.

이 책은 명쾌하게 인생의 성공법칙을 단 12글자로 정리해.
'정비하기, 연결하기, 행동하기'

"학교생활과 사회생활도 게임과 비슷합니다.
'무기를 챙기고 파티원을 모아서 모험을 떠나라!'라는
게임 법칙을 그대로 삶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성공법칙은 '정비하기, 연결하기, 행동하기'입니다.
이것이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와 반대로 행동하곤 합니다."
-18면

모든 챕터가 정말 인상적이었지만 "정비하기"가 정말 신선했어. 들어볼래?

"고민의 근본적인 원인은 피로다. 90%는 불안정하고 피곤한 상태다.
평소에 몸과 마음을 관리하는 사람은 단 15%. 단순히 몸과 마음을 잘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상위 15%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다.
30년 동안 의사로 일하면서 청소년 상담으로 만난 아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밤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고, 폰을 만지거나 게임을 한다는 것. 잠을 푹 자는 것만으로 고민들이 거의 해결될 수 있다!

폰을 줄이고, 질 좋은 수면을 8시간 취하고, 적당히 운동하고, 아침을 포함해 균형 잡힌 식사를 하는 것. 컨디션과 기분이 깜짝 놀랄 만큼 개선된다. 10대가 하는 다양한 고민은 '정비'라는 무기를 손에 쥔 것만으로도 대부분 해결할 수 있다."

다 안다고? 하지만 실천하고 있는 건 얼마나 될까?
두뇌는 죽을 때까지 계속 성장하지만 10대일 때 뇌 성장 속도는 30, 40대와 비교하면 10배 이상 빠르대. 고속철도와 완행열차의 차이라고 생각하면 돼. 고속철도를 타고 있을 때 몸과 마음의 기초를 단단하게 정비해둔다면 평생 얼마나 큰 자산이 될까.

읽고 나면 뭔가 정리가 될 거야. 뭘 해야 할지,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그 막막한 기분이 조금 사라진달까. ‘나도 뭔가 가지고 있구나’ 싶은 느낌이 은근히 위로가 되더라.

그동안 난 내가 뭘 잘하는지도 모르겠고, 뭐 하나 이룬 것도 없다고 생각했거든. 언제부터인지 우린 뭔가를 잘해야만 가치 있는 사람처럼 느껴. 근데 아니었어. 그냥 내가 가진 걸 알아보는 것도 출발점이 될 수 있어. 무기는 이미 있었는데, 칼집에 넣어놓고 있었다는 느낌? 너도 너만의 무기 하나씩 꺼내보면 어때?


책 한 권으로 갑자기 사람이 변하지는 않을 거야. 근데 방향은 달라질 수 있어. 생각이 꼬이고 있을 때, 그 실타래를 풀어주는 실마리처럼 말이야. 무기를 장착하라는 말이 멋있게만 들리지 않고, 현실적으로 와닿는 저자의 이야기 속에서 너의 빛나는 가능성을 찾을 수 있기를.

#도서지원 #학교에서는가르치지않는7가지무기 #가바사와시온 #다산에듀 #청소년추천책 #인생무기 #인생전략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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