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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십 대를 지탱해 줄 다정한 문장들 - 김혜정의 청소년을 위한 힐링 에세이
김혜정 지음 / 다산에듀 / 2025년 7월
평점 :
<오백 년째 열다섯> 시리즈의 소설가로 알고 있던 김혜정 작가님이 이 책의 저자라니 의외였다. 소설가가 쓴 에세이는 흔치 않다. 더군다나 청소년 문학가가 청소년을 위한 에세이를 쓰다니, 처음 본다. 청소년을 위한 글은 많지만, 청소년을 정면으로 마주한 에세이는 드문 편이다. 왜일까?
학업에 치여 책 읽을 시간도 없는 독자라 시장성이 없어서? 한 끗 차이로 훈계가 되기 쉬워서? 소설가란 이야기를 통해서 말하는 사람들이라, 작가 본인의 목소리로 직접 말하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 어떤 이유든 청소년을 위한 에세이가 적다는 사실은 아이들이 보고 들으며 배울 통로가 적다는 뜻이다.
그래서 "청소년을 위한 힐링 에세이"라는 부제까지 붙은 이 책이 참 귀하고 반가웠다. 보기 드문 선택이자 태도로 다가온 《흔들리는 십 대를 지탱해 줄 다정한 문장들》에는 어른도 아이도 아닌, 그 사이에서 오래 머물며 양쪽의 균형을 잡아온 작가님의 시선이 있다. 청소년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작가님이 아이들에게 건네는 말들은 단순한 위로나 충고가 아니었다. 어른인 척했지만 진짜 어른이 못 되어 여전히 방향을 찾는 중인 내게도 필요한 문장이었다.
프롤로그
어른들이 알려주지 않는 진짜 미래
" 자라나야 할 십 대들을 자라나지 못하게 가두고
앞으로 가야 할 십 대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편 없는 모습에 화가 날 때가 많았거든요."
- 6면
프롤로그부터 팩폭을 당했다. 매일 비슷한 잔소리로 아이들을 자라지 못하게 가두고, 발목을 잡고 있던 건 아닌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른 말 다 듣지 마세요."
강연마다 십 대들에게 이렇게 말하면 아이들 눈이 동그랗게 변한단다.
"네, 실은 저는 어른의 내부 고발자입니다."
책을 읽다 보니 어느새 내부 고발자의 편에 서있었다. 아이의 눈으로 엄마인 내가 보였다. 나는 아이의 삶을 응원하기보다 통제하고 관리하려 한 엄마였다. 내가 틀렸구나. 잘못할 때가 많았구나. 생각보다 훨씬 많이!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함부로 말하는 거야?"
-9면
지금 젊은 세대들은 최초로 부모보다 못 사는 세대가 되었다. 미래를 떠올리면 암담해지기 십상이다. 아이들을 너무 사랑하니 걱정 먼저 앞선다.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밭에 부정적인 말들을 씨앗처럼 뿌리고 있었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우리 아이들이 아무것도 되지 못할까 봐 걱정만 했다. 우매한 나의 오만함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사춘기는 생각과 마음의 크기를 넓혀가야 하는 시기다. 내가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거지?!
"너는 네가 행복을 느끼는 일을 하면 되고,
내가 너에게 원하는 것은 그것뿐이란다."
-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네 인생의 이야기> 중
미래에 닥칠 비극을 알면서도 주인공은 딸을 만나는 선택을 한다. 그리고 딸에게 이 말을 들려준다. 아이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은 모든 부모가 똑같다. 그런데 아이를 향한 첫사랑에 세상의 비교와 욕심이 점점 덧붙는다. 그리고 부모가 경험한 몇 가지의 안정된 길을 아이에게 부추긴다.
"나 자신의 행복을 가장 우선에 두세요.
부모님을 위해, 친구를 위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위해 살지 마세요.
어쩌면 학교를 다니는 게 너무 힘들 수 있어요.
도저히 못 다니겠다 싶으면 그깟 학교 그만둬도 돼요.
나를 너무 힘들게 하면 그게 누구라도 절연해도 돼요.
나 빼고는 그깟 거 그만해도 된다라는 걸 잊지 마세요."
-77면
바로 어제, 내 인생 처음으로, 학교를 그만뒀어도 좋았겠단 후회를 한 터라 작가님의 말씀이 피부로 읽혔다. 전 같으면 극단적인 말로 들려 흘려버렸을 텐데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인생의 온갖 방향을 들려줄 다양한 어른들을 만나는 건 십 대 아이들에게 정말이지 중요하다. 판단과 선택은 아이의 몫이고, 시행착오와 실패도 아이 인생에 반드시 필요하다. 책으로 비교적 안전하게 여러 삶을 탐색할 수 있으니 역시 독서는 인생의 필수템이다.
흔들리는 "모두"를 지탱해 줄 명랑하고 다정한 책이다. 당신의 나이가 어떻든 청소년의 마음으로 돌아가, 다른 각도에서 과거의 자신과 주변 사람들, 세상을 고루 둘러보게 될 것이다. 어른이라고 다 아는 게 아니다. 알아도 잊고 사는 게 많다. 이 책에서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문장들을 한가득 챙겨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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