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만나는 해부학 수업 - 머리털부터 발가락뼈까지 남김없이 정리하는 인체의 모든 것 드디어 시리즈 7
케빈 랭포드 지음, 안은미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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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이라니. 의료계에 몸담지 않고서야 볼 일이 없는 책을 이 나이에 읽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항상 아쉬웠다. 매일 똑같은 몸 하나를 입고 살면서도 단 하나뿐인 이 Body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다. 처참할 정도다. 어렵겠지만 몸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어 이 책에 도전했다.


온갖 건강 정보는 범람하지만 설왕설래 일치된 학설은 찾아보기 힘들다. 과일 채소식이 유행하다가 육류만 먹는 카니보어식이 인기를 끌고 있다. 몸은 우리가 사는 유일한 공간이다.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결국 내가 건강해지는 가장 확실한 기준은 몸의 구조와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다. 내 몸은 정답을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야심차게 책을 펼쳤지만 이내 당황했다. 해부학이 아닌 화학이 등판한다. 세포를 알기 위해서는 물질의 구조와 특성, 상호작용을 다루는 기초 화학을 이해해야 한단다. 인체의 구조를 다루는 인체해부학과 구조의 기능을 살피는 생리학을 배우기 위해서다. 역시나 만만치 않다. ㅎㅎ


의외로 흥미로웠다. 몸은 세포로 이뤄져 있고, 세포는 분자로, 분자는 원자로, 원자는 결합으로 뭉쳐 있다. 몸의 기본 재료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화학결합은 몸의 가장 기초적인 이해가 맞았다. 몸이 어떻게 붙어 있고, 작동하며, 변화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우주에서 벌어지는 현상 대부분이 그렇듯이, 원자는 균형을 추구합니다. ....... 원자는 자연스러운 균형을 찾기 위해 양성자와 같은 수의 전자를 보유해 전하 중립을 유지합니다. "
- 23면


내 인생 모토인 "균형"이 원자와 세포에도 작동하고 있었다. 역시 세상은 반복되는 프랙털 구조라는 사실을 확인하니 재미있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이온결합, 수소결합, 공유결합 등 다양한 방식으로 원자들이 붙어 인체뿐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을 이루고 있다.


화학결합은 과학적 개념일 뿐 아니라 존재가 완성되는 방식이었다. 원자들도 혼자서는 불안정하다. 결합으로 관계 맺으며 안정된 상태에 이르면, 무언가가 되어 기능한다. 그 모습이 꼭 우리와 같다. 누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존재의 형태를 바꾸고 의미를 결정짓는다.


몸은 수많은 결합의 결과였고, 그 결합은 균형을 향한 치열함이었다. 세포를 통해 삶을 배운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도 적절한 결합과 거리, 균형에서 비롯된다.

이번에는 "림프계"에 대해 배웠다. 여자의 다이어트는 림프순환부터라는 말이 있어 관심이 많았다. 몸속 쓰레기차이자 면역 경찰인 림프에 대해 읽고 나니 몸이 다르게 보였다. 림프는 혈액이 가져가지 못한 노폐물을 수거하는 하수도다. 동시에 병원균을 탐지하고 싸우는 면역 순찰차다.


"림프는 단백질 함량이 적도 압력을 가해주는 펌프도 없으므로 림프순환 내로 밀려 들어갈 힘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림프의 이동은 주변 장기들, 특히 근육이 사이질조직에 가하는 압력에 달려 있습니다. 걷기, 숨쉬기, 그 밖에 장기를 움직이는 모든 일반적인 운동이 림프의 압력을 일시적으로 높입니다."
- 263면


놀랍게도 이 시스템엔 펌프가 없다. 걷고, 숨 쉬고, 스트레칭하며 움직여야 돌아간다.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림프는 정체되고, 몸은 붓고, 면역도 무뎌진다. 왜 오래 앉아있는 습관이 담배보다 해로운지 이제서야 이해했다. 목 돌리기, 어깨 풀기, 발바닥 자극 하나하나가 림프를 흘러가게 만드는 작은 압력이었다. 건강은 움직임의 누적이다. 부지런히 움직여 림프를 쉴 새 없이 작동시켜보자.


한 번에 정독하는 것도 좋지만 발췌독으로 자주 들춰보는 방식이 이 책에는 더 어울린다. 행복은 강도보다 빈도에 있다. 털의 정체를 알게 된다던가 (각질층의 죽은 세포들을 튜브처럼 단단히 말아 넣은 구조라는 것), 손톱 역시 죽은 세포층이 빽빽이 들어차 있는 단단한 판이라는 발견처럼 하나씩 알아가는 깨알 재미를 누릴 수 있다.


해부학이 외워야 하는 복잡한 그림책 같았는데 이 책을 읽다 보니 어느새 몸과 친해진 기분이다. 보이지 않는 몸속 세포와 기관들을 상상할 재료들이 생겼다. 정확히 알지 못해도 해부학은 내가 움직이고 호흡하고 살아가는 흐름과 기능을 가늠케 한다.


해부학은 권위의 정보가 아니라 내 언어로 내 몸을 이해하는 기술이었다. 건강은 이제 어디서 들은 막연한 팁이 아니라 내 몸의 구조를 바탕으로 선택할 수 있는 주체적 영역이 된다. 원자와 세포, 림프의 구조를 구체적으로 떠올리는 사람의 일상은 다르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자세와 행동을 바꾸는 데는 의지뿐만 아니라 신체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이해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건강한 삶의 또 다른 기반을 이 책을 통해 만났다.


몸에 대한 문해력, 해부학.
나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언어.
만나서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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