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월드 - 심해에서 만난 찬란한 세상
수전 케이시 지음, 홍주연 옮김 / 까치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관심을 두어야 할 곳은 사물의 표면이 아니다."
- 테런스 매케나

우리는 바다를 안다고 말하지만, 실은 심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언더월드》는 그 무지를 경이로 바꾸는 책이다.


"심해에는 철을 호흡하는 생물,
유리 골격으로 이루어진 생물,
피부로 소통하는 생물들이 있다.
몸의 안팎을 뒤집을 수 있는 생물도 있다.
입이 두 개일 수도, 심장이 세 개일 수도,
다리가 여덟 개일 수도 있다.
수천 개의 작은 몸이 마치
군대처럼 모여 이루어진 생물도 있다.
노란색 불빛을 쏘는 심해 생물도
최소 1종 이상 있다. 어떤 생물은
속이 다 비치는 머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가장 연약해 보이는 생물조차,
대형 트럭을 찌그러뜨릴 만큼의
수압을 견딜 수 있다."
- 32면


수심 200미터 아래의 바다, 심해.
심해는 지표면의 65퍼센트, 생물이 사는 공간의 95퍼센트를 차지한다. 지구의 모든 대륙과 섬을 태평양 안에 집어넣어도 남아메리카를 하나 더 집어넣을 수 있다니, 막연하게 가늠해온 지구의 크기가 얼마나 말도 안 되게 작았던 건지 뒤늦게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언더월드》를 통해 만난 심해는 바다의 우주였다. 우주보다 더 알아낸 것이 없는 세계인지도 모른다. 화성 탐사용 로버는 3개인데 비해 잠수정은 1대뿐이라니 말이다. 압력은 사람 몸을 납작하게 누를 정도로 세다. 물은 냉장고보다 차갑다. 빛은 없지만, 많은 생물들이 스스로 빛을 낸다. 지구 생명체의 절반이 살고 있지만 대부분 미지의 존재다.


"미지의 물속 세상이 우리의 발밑에 항상 존재한다는 사실, 우리가 사는 세계 안에 또다른 수중 세계가 있다는 사실은 언제나 일종의 마법처럼 나에게 경이와 두려움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22면


그 이름만으로도 우리를 숨죽이게 만드는, 말 그대로 ‘깊고 어두운’ 세계. 《언더월드》는 내게 심해에 관한 책이라기보다, 심해로 연결되는 단 하나의 채널이었다. 저자가 전하는 심해의 경이로움과 기묘한 생물들, 히말라야의 봉우리들을 거꾸로 뒤집어놓은 형태로 파인 해구와 해곡 등 상상하지 못한 지질학적 구조들까지, 과학적인 지식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들은 판타지처럼 신기하고 신비로웠다.


지루하고 어려운 과학책일 거라 예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소설인지 과학책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문학적으로 아름다운 문장들이 이어진다. 전미 잡지상을 수상한 저널리스트이자 <O, 오프라 매거진>의 편집장이었던 수전 케이시의 필력은 예상하지 못한 놀라움이었다.


챕터마다 인물들이 등장하며 플롯이 흐르고, 그 안에 과학 지식이 녹아있다. 팩트를 나열하기보다 저자가 보고 느낀 감각을 과하지 않은 시적 언어로 전달한다.


사실 심해보다 저자의 글솜씨에 홀려서 읽었던 것 같다. 담백하고 깔끔한 단문의 책들을 주로 읽다가 길고 복잡하지만 전혀 힘들이지 않고 술술 써내려간 유려하고 자연스러운 매력이 넘치는 글에 빠졌다. 나도 모르게 낭독하며 글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 책 자체가 어느새 내게는 심해로 보였다. 문장과 내용이 안팎으로 모두 신비롭게 살아있었다. 활자는 검푸른 수압 속을 유영하듯 흐르고, 문장은 생물발광처럼 어둠을 밝힌다. 모든 문장들이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세계를 표현하고 있었다. 그 메시지들은 찬란하고 역동적인 동시에 그야말로 경이로웠다.


차갑고도 찬란하며, 삭막해 보이지만 실은 가장 치열하게 살아내는 존재들로 가득한 심해의 경이로움을 이보다 더 경이롭게 전달할 수 있을까. 활자들이 생명처럼 움직이며 지구의 가장 깊은 곳으로 데려가는 듯했다.


"하늘을 날면서 비행기를 고치고 있었던 셈이죠."
-221면
심해를 사랑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무척 흥미로웠다. 그들 또한 심해의 생명체처럼 보였다. 빛도 닿지 않는 그곳을 향해 생명을 걸고 묵묵히 나아가, 인간이 닿을 수 없는 경계를 넘나드는 그들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놀라운 존재였다.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지, 어떻게 닿을 수 없는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지를 이 책을 목격하고 경험할 수 있어서 참 감사했다. 한 편의 긴 시이자 기도 같았던 시간이었다. 물 한 방울 없이도 물속으로 고요하게 가라앉는 듯한 경험이었다.


책을 덮은 뒤에도 여전히 심해에 잠긴 듯했다. 심해는 깊고, 어둡고, 멀다. 하지만 그 안엔 빛나는 생명들이 있고, 그곳을 향해 가는 사람들이 있다.
심해의 경이로움을 경이롭게 전하는 데 성공한 《언더월드》, 꼭 경험해보길 바란다.


#까치글방서포터츠3기
#도서지원
#언더월드 #수전케이시 #심해 #바다 #바다생물 #바다이야기 #과학책 #과학책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루 한 줄, 나를 지키는 필사책 - 내일을 꿈꾸는 1020을 위한 문장들
구병모 외 지음 / 창비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필사 모임 지원 이벤트 당첨!
창비 출판사에서 5권의 책을 제공받아
3년째 함께 하고 있는 독서모임 멤버들과 나누었다.
(*** 아래의 내용은 멤버들과의 모임 대화를 종합한 것입니다.)


필사책을 처음 접해본 분들도 계시고, 아끼는 마음에 책에 직접 쓰지 않고 노트에 따로 필사한 분들도 계셨다. "내일을 꿈꾸는 1020을 위한 문장들"이란 부제를 가진 필사책인만큼, 아이들이 따라 쓰면 좋을 문장이 그득하고 구성도 다채로워 자녀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분들도 많았다.


이 책의 첫 번째 강점으로 꼽고 싶은 점도 바로 그것이다. 구성이 다양하고 알차다. 십 대들도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챌린지 요소를 곳곳에 배치했다.


다이어리를 꾸미듯 다양한 활동을 유도하는 아기자기한 구성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교육적이기도 해서 엄마 입장에서도 매우 만족스러웠다. 어떻게든 아이들이 책을 읽게 도우려고 실용적인 아이디어들을 총동원한 결과물 같다.


--- 마음 발견 테스트
순서대로 필사하지 않아도 괜찮다. 고민이 될 만한 상황을 목차로 구성해, 마음에 맞는 문장을 만날 수 있도록 화살표 테스트를 제공한다. 결과에 따라 마음을 돌아보고, 스스로에게 말을 걸어보는 기회가 된다.


--- 오늘의 단어, 오늘의 한 문장
본문에 표현된 단어 하나를 정확하게 뜻풀이해주고, 그 단어를 활용해 자신만의 문장을 써보는 공간이다. 그저 따라 쓰는 데 그치지 않고, 단어를 통해 속마음을 꺼내보는 훈련을 할 수 있다.


--- 필사 습관 기록
필사를 마친 후, 해당 칸을 색칠로 표시해 직관적으로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


--- 나만의 독서 기록
예쁜 책장 일러스트에 자신이 읽은 책을 기록할 수 있다. 완독한 책 제목을 한 권씩 채우며 책장을 완성해가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 투두리스트를 하나씩 지워가는 재미와 반대로 빈칸을 채우는 재미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구병모, 김려령, 김민서, 김중미,
백온유, 이현, 이희영, 천선란.
⁠창비청소년문학시리즈의 대표작에서 엄선한 문장들이야말로 이 책의 백미다.


긴 서사에서 빠져나와 문장 자체로 만나는 소설가의 언어는 더 세밀했다. 아름답고 단단한 문장들은 언어의 미각을 날카롭게 다듬는 도구가 된다. 문장을 가만히 바라보고 따라 쓰는 동안 그들의 어휘, 어순, 리듬을 민감하게 음미할 수 있었다. 뇌는 반복을 좋아한다. 좋은 문장을 자주 보면, 나도 모르게 그런 문장을 닮아갈 거라 믿는다.


다양한 작가들의 문장이 섞여 있어 자신의 취향에 맞는 문장, 각자가 추구하는 스타일을 찾을 수 있다. '이 작가의 문장은 무겁고, 저 작가의 결은 부드럽네.' 문장을 감각적으로 구분하는 경험들이 나만의 문체가 만들어지는 재료가 되기도 한다.


필사를 할 때는 무작정 베껴 써서는 안 된다. 문장을 왜 따라 쓰는지, 특정 문장이 왜 울림을 주는지에 초점 두어야 변화가 따라온다. 문장과 나, 둘만이 존재하는 고요한 시간. 번잡한 일상을 밀어두고 타인의 세계로 걸어들어가 보는 일. 필사는 독서와 쓰기를 높은 밀도로 만끽하는 활동이다.


하루하루 쌓인 필사를 돌아보며, 어떤 단어와 문장에서 힘을 얻었는지 보이지 않던 나의 흐름을 발견하게 하는 책이었다. 문장을 수집한 책을 통해, 문장에 비친 나를 수집해두는 책이었다.


이 책을 덮고 나면, 익숙하지 않던 단어와 낯설게 여겨졌던 문장들이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앉아있다. 그 변화는 작지만 크다.


소설의 문장을 통해 자신만의 감각을 깨우고 펼치는 필사를 놀이처럼 즐겨보길 바란다.


#도서지원 #하루한줄나를지키는필사책 #창비 #청소년문학필사 #필사책추천 #필사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필사, 어른이 되는 시간 - 소란한 세상에서 평온함을 찾는 가장 고귀한 방법
나태주 지음, 보담 삽화 / 북로그컴퍼니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란한 세상에서
평온함을 찾는
가장 고귀한 방법"


⁠부제가 자못 거창하다. 필사가 평온함을 찾는 가장 고귀한 방법이라니, 출판사의 자신감이 엿보인다. 살짝 거부감이 스쳤지만 나태주 시인의 서문으로 스르르 녹는다.


⁠"소리 내어 시를 읽으며 필사하면
시를 세 번 읽는 것과 같습니다.
눈으로 한 번 읽고,
쓰면서 한 번 읽고,
내가 읽는 소리를 내 귀가 들어서
다시 한번 읽습니다.
시의 강물이 세 번 흐르는 사이
우리들 마음은 자라고 자라
성숙한 어른이 될 것이며,
그렇게 바라본 삶은 이전보다
더 곱고 아름다울 것입니다."


시인의 문장에 격이 다른 고귀함이 흐른다.
시를 낭독하며 필사하는 것이
마음에 시의 강물이 흐르게 하는 일이라니♥


자기 안의 소음을 다스리는 필사는 느림을 선택하는 태도이자 급박한 시대에 휩쓸리지 않도록 나의 존엄을 지켜내는 방식이 될 수 있다.


소란한 세상에서도 멈추어 내면의 품격을 돌아보는 시간. 마음을 정리하는 차원을 넘어, 나를 존중하는 의식. 그렇게 필사는 고귀한 행위가 될 수 있었다.


특히 이 필사 시집은 시인이 ⁠아침 시간⁠에 ⁠가볍게 산뜻하게 ⁠읽기 좋은 시들만 골랐다고 한다. 아침에 읽는 시답게 이 시들은 아침의 햇살을 닮았다. 동시에 고요한 우주도 비친다.


시들을 따라 한 자 한 자 써내려가다 보니
내 안의 묵은 감정들이 말을 걸어온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되, 감정을 방치하지도 않기 위해
천천히 써본다. 감사와 평온이 강물처럼 흐르고, 시의 고운 언어가 햇살처럼 윤슬로 반짝인다.


낭독하며 필사하는 아침은
떠오른 마음 찌꺼기를 고르고
하루를 깨끗하게 맑히는 시간이 된다.


가장 좋았던 것은 시에서 놓쳤던 시인의 감성과 생각을 짧은 산문으로 붙잡을 수 있었던 점이다. 해설이 아니라 공부할 필요 없이, 편안하게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듯 시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시를 몇 배 더 깊이 음미할 수 있었다. 이런 형태의 시집이 계속 출간되어도 좋겠다.


보담 작가의 일러스트도 빼놓을 수 없는 이 시집의 강점이다. 마음을 위로하는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답게, 그림마다 바람과 향기가 불어오는 것 같았다. 절로 미소를 짓게 하는 삽화들 덕분에 매일 아침 짧은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하루를 잘 살기 위해,
매일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게 하는
100편의 시를 내일도 매일 따라 쓸 것이다.


시를 필사하는 짧은 시간 동안,
어쩌면 나는 가장 나다운 나를
만나는지도 모르겠다.



#도서지원 #필사어른이되는시간 #나태주 #시 #필사 #필사시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흔들리는 십 대를 지탱해 줄 다정한 문장들 - 김혜정의 청소년을 위한 힐링 에세이
김혜정 지음 / 다산에듀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백 년째 열다섯> 시리즈의 소설가로 알고 있던 김혜정 작가님이 이 책의 저자라니 의외였다. 소설가가 쓴 에세이는 흔치 않다. 더군다나 청소년 문학가가 청소년을 위한 에세이를 쓰다니, 처음 본다. 청소년을 위한 글은 많지만, 청소년을 정면으로 마주한 에세이는 드문 편이다. 왜일까?


학업에 치여 책 읽을 시간도 없는 독자라 시장성이 없어서? 한 끗 차이로 훈계가 되기 쉬워서? 소설가란 이야기를 통해서 말하는 사람들이라, 작가 본인의 목소리로 직접 말하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 어떤 이유든 청소년을 위한 에세이가 적다는 사실은 아이들이 보고 들으며 배울 통로가 적다는 뜻이다.


그래서 "청소년을 위한 힐링 에세이"라는 부제까지 붙은 이 책이 참 귀하고 반가웠다. 보기 드문 선택이자 태도로 다가온 《흔들리는 십 대를 지탱해 줄 다정한 문장들》에는 어른도 아이도 아닌, 그 사이에서 오래 머물며 양쪽의 균형을 잡아온 작가님의 시선이 있다. 청소년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작가님이 아이들에게 건네는 말들은 단순한 위로나 충고가 아니었다. 어른인 척했지만 진짜 어른이 못 되어 여전히 방향을 찾는 중인 내게도 필요한 문장이었다.


프롤로그
어른들이 알려주지 않는 진짜 미래

" 자라나야 할 십 대들을 자라나지 못하게 가두고
앞으로 가야 할 십 대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편 없는 모습에 화가 날 때가 많았거든요."
- 6면


프롤로그부터 팩폭을 당했다. 매일 비슷한 잔소리로 아이들을 자라지 못하게 가두고, 발목을 잡고 있던 건 아닌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른 말 다 듣지 마세요."
강연마다 십 대들에게 이렇게 말하면 아이들 눈이 동그랗게 변한단다.
"네, 실은 저는 어른의 내부 고발자입니다."
책을 읽다 보니 어느새 내부 고발자의 편에 서있었다. 아이의 눈으로 엄마인 내가 보였다. 나는 아이의 삶을 응원하기보다 통제하고 관리하려 한 엄마였다. 내가 틀렸구나. 잘못할 때가 많았구나. 생각보다 훨씬 많이!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함부로 말하는 거야?"
-9면
지금 젊은 세대들은 최초로 부모보다 못 사는 세대가 되었다. 미래를 떠올리면 암담해지기 십상이다. 아이들을 너무 사랑하니 걱정 먼저 앞선다.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밭에 부정적인 말들을 씨앗처럼 뿌리고 있었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우리 아이들이 아무것도 되지 못할까 봐 걱정만 했다. 우매한 나의 오만함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사춘기는 생각과 마음의 크기를 넓혀가야 하는 시기다. 내가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거지?!


"너는 네가 행복을 느끼는 일을 하면 되고,
내가 너에게 원하는 것은 그것뿐이란다."
-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네 인생의 이야기> 중
미래에 닥칠 비극을 알면서도 주인공은 딸을 만나는 선택을 한다. 그리고 딸에게 이 말을 들려준다. 아이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은 모든 부모가 똑같다. 그런데 아이를 향한 첫사랑에 세상의 비교와 욕심이 점점 덧붙는다. 그리고 부모가 경험한 몇 가지의 안정된 길을 아이에게 부추긴다.


"나 자신의 행복을 가장 우선에 두세요.
부모님을 위해, 친구를 위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위해 살지 마세요.
어쩌면 학교를 다니는 게 너무 힘들 수 있어요.
도저히 못 다니겠다 싶으면 그깟 학교 그만둬도 돼요.
나를 너무 힘들게 하면 그게 누구라도 절연해도 돼요.
나 빼고는 그깟 거 그만해도 된다라는 걸 잊지 마세요."
-77면


바로 어제, 내 인생 처음으로, 학교를 그만뒀어도 좋았겠단 후회를 한 터라 작가님의 말씀이 피부로 읽혔다. 전 같으면 극단적인 말로 들려 흘려버렸을 텐데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인생의 온갖 방향을 들려줄 다양한 어른들을 만나는 건 십 대 아이들에게 정말이지 중요하다. 판단과 선택은 아이의 몫이고, 시행착오와 실패도 아이 인생에 반드시 필요하다. 책으로 비교적 안전하게 여러 삶을 탐색할 수 있으니 역시 독서는 인생의 필수템이다.


흔들리는 "모두"를 지탱해 줄 명랑하고 다정한 책이다. 당신의 나이가 어떻든 청소년의 마음으로 돌아가, 다른 각도에서 과거의 자신과 주변 사람들, 세상을 고루 둘러보게 될 것이다. 어른이라고 다 아는 게 아니다. 알아도 잊고 사는 게 많다. 이 책에서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문장들을 한가득 챙겨갈 수 있을 것이다.


#도서지원 #김혜정 #흔들리는십대를지탱해줄다정한문장들 #청소년에세이 #힐링에세이 #오백년째열다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티스트 웨이 : 30주년 기념 특별판 아티스트 웨이
줄리아 캐머런 지음, 박미경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지원

《아티스트 웨이》는 "창조성 회복의 고전"으로 불리며, 창조성을 회복하는 가이드로 널리 알려져있다.

이 책은 "직접 쓰고 실천하는 워크북형 자기 탐색 프로그램"이다. 잃어버린 자신을 불러내는 감각 훈련서로 창조성과 정체성 회복을 돕는다. 가장 중요한 실천사항은 바로 이 두 가지다.



[ 모닝 페이지와 아티스트 데이트 ]

1. 모닝 페이지
매일 아침, 의식이 흐르는 대로 세 쪽 분량을 적는다. 두뇌 유출이다. 두서없이 사소하고 이상한 내용이라도 생각과 감정을 죄다 쏟아내보자. 멋져 보일 필요 없다. 처음 8주 정도는 다시 읽지도 말아라. 앞 장을 절대로 넘겨보지 마라. 그저 매일 세 쪽을 써라.

내면의 비평가, 내 안에 검열관의 부정적인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훈련이다. 판단하지 않고 그냥 써라. 세 쪽을 다 채울 때까지 무슨 말이든 써라.

모닝 페이지를 쓰며 나도 놀랐다. 글을 쓸 때는 항상 '무엇을 쓸까, 어떤 포인트를 골라 강조할까' 뇌의 전 영역이 총동원된다. 그러나 모닝 페이지는 뇌가 쉬는 쓰기다. 일기보다도 더 편하고 자유로웠다. 어떠한 틀도 없이 얽매이지 않아야 하기에 내 속에 숨은 진짜 나의 아주 작은 속삭임을 들을 수 있게 한다. 들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글이 되어 나온다. 뒤죽박죽으로!

저자는 쓰고 나서 절대 읽어보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퇴고 습관이 있는 나는 어쩔 수 없이, 나도 모르게 다시 읽어버렸다. 그런데 좋았다. 쓰레기처럼 하찮은 글자 무더기에서 보석 같은 생각 알갱이들이 하나씩 반짝이고 있었다. 타인의 멋진 통찰을 훔쳐 와 베껴 놓은 느낌이었다. 웜홀 같은 다른 차원의 문을 연 기분이다. 창조는 멋진 결과물이 아니라, 나와의 내밀한 대화에서 시작된다.



2. 아티스트 데이트
놀이 같은 혼자만의 데이트다. 매주 두 시간 정도 특별히 시간을 내어, 즐거운 자극이 있는 영감의 공간으로 나를 데려가자. 혼자 해변을 산책하거나 옛날 영화를 보거나 수족관이나 미술관을 가도 좋다. 시간만 내면 된다.

이번에도 저자의 말을 거슬렀다. 두 시간 내기가 어려워, 점심시간에 30분동안 아티스트 데이트를 시도했다. 근처 작은 무인 매점에 들러 불량한 군것질거리를 샀다.

처음엔 시간 낭비 같았다. 그러다 아차 싶었다. 직접적인 성과가 없으면 헛짓처럼 느끼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나한테 이렇게 여유 부릴 자격이 있나, 창조성이니 뭐니 이런 건 다 특권층의 사치 아닌가'하는 내면의 검열관의 목소리였다.

평소 같으면 검열관의 목소리에 손을 들어주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난 처음 가는 길, "아티스트 웨이"로 향하는 전환점에 서있다. 이대로 돌아갈 순 없지!

눈을 감고 소리에 집중해보았다. 근처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놀고 있었다. 그 북적임을 듣다가 갑자기 눈물을 글썽였다. 나의 국민학교 시절에는 없는 정다운 활력이었다. 차라리 학교를 그만뒀더라면 더 많이 배우고, 더 행복했을 거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학교를 자퇴하다니, 전 같았으면 절대 떠올려 보지 않았을 가능성이다.

아티스트 데이트 덕분에 대담하게 생각이 튀었다. 억눌렀던 과거의 욕구와 숨기기 급급했던 내면 아이의 목소리를 들은 것이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관심의 초점을 외부가 아닌 내면으로 돌리면, 의식의 전환은 생각보다 쉬울 수 있었다.



"나는 지금 나를 충분히 살고 있나?
이 책을 읽으며 나와 보낸 시간은 꽤 묵직했다. 지금 나는 나를 살고 있는 건지, 관성대로, 살던 대로 살고 있는 건지 내가 나에게 물었다. "아티스트 웨이"는 삶의 틈을 만들고, 그 틈을 여백으로 넓혀 덮어둔 창조 본능을 깨우는 시간이었다. 삶을 감각적으로 다시 느끼게 하고, 생기를 회복시키는 도구였다.

이 책은 예술가로 살라고 하지 않는다. 삶을 예술처럼 느끼라고 말한다. 소풍 전 날처럼 잔뜩 기대하고 설레며, 일상을 자기답게 창조하길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선물이다.

예술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내 삶이 반짝이고 있음을 보게하는
장난기 어린 아이의 웃음소리다.




#아티스트웨이 #줄리아캐머런 #모닝페이지 #아티스트데이트 #창조성 #예술 #영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