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를 했으면 이익을 내라 - 손님이 줄 서는 가게 사장들의 돈 버는 비밀 자영업자를 위한 ‘가장 쉬운’ 장사 시리즈
손봉석 지음 / 다산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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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회계사가 자신의 고객들의 경험을 토대로 쓴 자영업 안내서이다.


부제도 '손님이 줄 서는 가게 사장들의 돈 버는 비밀'이라고 되어 있어서 제목만 보면 마치 매뉴얼Manual로 예상되지만 내용은 마인드 셋Mind Set에 가깝다.


저자가 던지는 '매출은 손님이 가져오지만 이익은 회계가 가져온다'는 명제는 자영업자가 아니더라도 궁금증을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또한 이 명제 하나로 장사에 관한 모호했던 개념이 윤곽을 갖게 된다.


저자는 전문회계사답게 장사에 필요한 네 가지 숫자로 매출, 이익, 자금조달, 투자금 회수라고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규모의 경제 안에서 기업체의 성과를 논할 때 매출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소규모 점포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나 예비 창업자가 회계적 요소를 쉽게 간과하여 시행착오를 겪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전문가답게 기본에 충실한 시야와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기존 자영업자나 창업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의 근본 원인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창업 시 시장을 분석한 내용이 매출 추정과 연결되어야 하며, 추정 매출 달성 시 얼마나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 미리 계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또 투자금을 어떻게 조달할지 고민할 때 시설 투자에 대한 감가상각과 매출 증가에 따른 추가 투자비 등을 미리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어서 투자금 회수에 대한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손익분기점을 계산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한다.

 

이렇듯 원론에 충실한 교과서적 내용이지만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숫자에 대한 집착과 숫자를 좋아하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다. 하루 매출이 얼마인지 숫자로 꼼꼼히 따져 보기만 하는 것은 숫자에 대한 집착이다. 반면 숫자를 좋아한다는 말은 장사한 것을 숫자로 바꿔보는 것보다 숫자가 의미하는 것을 알아채고 그 원인을 분석하여 장사에 활용하는 것에 가깝다. 쪽박 가게 사장은 숫자에 집착하지만 대박 가게 사장은 숫자를 좋아한다."(본문 30쪽)

 

라고 하여 현장을 뛰는 전문 회계사다운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회계라는 것이 장사와 기업의 운영관리의 결과이기 때문인지 회계를 분석하여 운영상태를 진단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 다양한 점포 운영 사례까지도 직접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간단한 아이디어로 효과적으로 점포를 운영하는 성공사례를 소개하기도 하고 회계 관념이 부족해 실패하는 여러 사례도 소개해주고 있다. 하지만 다양한 성공 및 실패 사례를 소개하는 부분들은 사실 일반 창업 관련 서적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문 회계사적 관점의 백미는 '큰 숫자를 보면 업의 본질이 보인다'는 3장부터이다. 3장에서는 일반인들이 겉모습만 보고 잘못 판단하는 자영업의 속사정을 자세히 소개한다.

내가 창업과 경영에 관심을 갖고 방통대에서 경영학 공부를 하면서 지인들에게 농담식으로 '맥도날드는 햄버거 회사가 아니라 부동산회사다', '엡손은 프린터회사가 아니라 잉크회사다'라고 했던 것들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다.

저자의 전문성은 상품가격정책에 관한 조언에서 빛난다. 

"이렇게 가격을 결정할 때는 원가 중에서 고정비를 무시하고 가격을 결정해야 오류에 빠지지 않는다."(본문 155쪽)

"가격졀정은 단지 가격을 올리기 위해서만 활용하는 것은 아니다. 가격을 내리는 것 같아도 가게 전체적으로 이익을 가져다주는 경우가 많다. 이익을 늘리려면 판매량을 늘리거나 원가를 줄이거나 가격을 올려야 한다."(본문 156쪽)

"비지니스의 관점에서 가격졀정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손님이 많이 올 수 있는 가격이 아니라 이익이 가장 많이 나는 가격을 찾는 것입니다. 또 싼 것을 찾는 손님들을 잡기 위해 가격을 낮출 경우, 좀 비싸도 기꺼이 구매할 의사를 갖고 있는 손님들을 대상으로 벌 수 있는 이익까지 줄어드는 문제가 생겨버리죠"(본문 201쪽)

"우리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맞는 명품의 가격정책을 써야 한다."(본문 202쪽)

결국 가격정책에 대한 저자의 전문적 식견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빛 좋은 개살구처럼 실익 없는 매출만을 높이기 위해 양적으로 더 많은 수의 고객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가격을 인하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가격을 올려도 고객이 '상품의 값어치'를 느낄 수 있도록 서비스하면 된다. 그러한 서비스의 원가를 따져보면 가격인상으로 얻는 수익보다 훨씬 작다. 고객을 만족시키면 가격을 올린다고 해도 매출이 줄지는 않는다.


출장사진 전문인 지니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내 친구는 창업한지 아직 10년이 되지 않았지만 안정기를 지나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런데 언제나 고민 하나가 있는데 매출을 보면 이제 어느 정도 버는 것 같지만 실제론 남는 돈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고민은 내가 학창시절 편의점 점장을 할 때도 주변 점포 사장님들께 숱하게 들었던 얘기다.

이 친구에게 사업 초기부터 장부를 써서 입출금을 확인하고 정산시점을 결정해서 손익분기를 분석하라고 수없이 잔소리하고 엑셀파일도 직접 만들어 줬다. 하지만 성격이 느긋하고 치밀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서 장부를 작성하지 않다가 최근에서야 장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바로 이 지점도 날카롭게 파고들어 지적한다. 책의 앞부분에서부터 회계관리에 대한 개념전환을 요구하며 장부기록은 물론 점포 사장의 개인용 지출과 점포관리를 위한 지출을 구분해야 하며 통장자체를 분리시키라고 조언한다. 책의 후반부에 가서는 비용관리라는 측면에서 지출관리를 지적한다.

"부자가 되려면 매출이나 수입을 올리려고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 수입보다 적게 쓰고 나머지는 시간과의 싸움을 해야 한다."(본문 162쪽)

"결국 이익관리는 비용관리고 돈을 모으는 것은 수입의 문제라기보다는 지출의 문제다."(본문 166쪽)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생각했던 부분들을 전문가에게 인정받는 것 같아 기분이 으쓱하기도 한다.


방송과 출판은 공익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에 대놓고 탈세를 부추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보니 궁여지책으로 나온 말이 절세라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이는 내가 내야 할 세금이 100이라면 내가 세법을 더 공부하면 할인받아 70이나 80만 낼 수 있다는 개념으로 된다. 

그런데 국세청도 사용하고 있는 절세의 내용을 살펴보면 내가 낼 세금이 80인데 세법을 잘 모르고 부지런하지 못해 100이란 세금을 내게 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의미이다. 세금을 전기나 수도요금으로 비유하자면 굳이 연체하여 불필요한 체납이자를 물지 말자는 개념일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혼돈을 주는 '절세'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매우 보수적인 관점이지만 그냥 직구를 던진다. 세금에 대한 잘못 된 개념을 전환해서 내야 할 세금은 내고 스트레스 받지 말자는 것이다. 그리고 내야 할 세금을 내는 것이 바로 절세라고 한다.

특히 부가세에 대해서도 고객이 내는 세금이지 자영업자인 당신이 내는 세금이 아니잖소? 그게 돈의 형태로 내 통장에 들어와 있으니 내 돈 같아서 착각하는 것 아니겠소?라고 묻는다.

그러니 가격을 정할 때 부가세 개념을 잊지 않고 적용시켜서 결정하라고 조언한다. 

소득세 관련해서도 재산유무와 무관하게 소득이 기준이 된다는 것은 자영업자가 아니라도 일반 상식으로도 매우 유용한 정보이다. 더불어 사업체를 가족공동명의로 하여 소득을 분산시켜 세금을 낮추려는 의도가 갖는 리스크도 소개하고 있다.

또한 성장과 확대 지향의 공격적 사업이 갖는 보이지 않는 리스크에 대해서도 회계적 관점에서 납득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가장 호쾌했던 것이 자동차 리스에 관련한 부분이었다.

내 주변에 사업자를 내서 자동차를 리스하면 자동차 운영에 대한 모든 것이 비용으로 상계 처리가 되어 세금이 줄어든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값비싼 외제차일지라도 리스로 굴리면 세금 혜택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리스로 3년마다 차를 바꿔 탄다며 자랑하던 사장님도 본 적이 있다. 물티슈 공장을 운영하는 그 사장님은 매월 적자를 보면서도 리스로 차를 굴리고 있었다.

내가 대충 계산 해 봐도 차를 구매하는 것보다 리스가 훨씬 더 많은 돈이 들어가는데 도대체 세금을 얼마나 감면해 주길래 그렇게 하는가 하는 의문이 항상 한켠에 있었다. 차량 구매비보다 더 들어가는 리스료 이상을 세금에서 상쇄시켜줘야 리스를 선택할텐데 과연 비용상계처리가 그보다 더 되는지 궁금했었다. 

"그는 리스 회사로부터 제안을 받고 고민인 것 같았다. "세금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세금이란 것은 비용이 많으면 적어지기 때문이죠. 원장님이 리스료를 많이 내시면 리스 쪽이 세금이 적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차량 구입보다 리스료가 더 많은 비용이 나가기 때문입니다." 즉 리스가 차량을 구입한는 것보다 비용이 많이 지출되므로 세금절감 효과가 큰 것이다. 그러므로 리스가 주는 세금절감 효과를 위해 차를 사지 않고 리스를 하라는 것은 정말 우스꽝스러운 제안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세금이 무서워서 돈을 벌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세금으로 낼 바에는 돈을 많이 지출해서라도 좋은 차를 타겠다면 말릴 수는 없지만 세금만 보고 차를 리스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것이다. 세금이란 항상 내가 벌어들인 소득의 일부를 내는 것이다. 그러니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은 사실 많이 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본문 246쪽)

저자 덕분에 자동차 리스에 대한 본질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내가 갖던 의구심을 확인 받을 수 있었다.

이렇듯 이 책에서는 저자가 직접 만나고, 컨설팅하고, 경험해 본 다양한 점포의 구체적인 일화를 예로 들어 쉽게 설명하고 있다. 회계 전문가이지만 어려운 전문 용어 하나 사용하지 않고 일상의 얘기를 하듯 풀어가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구체적 사례로 들고 있는 업종이 거의 요식업 위주라는 것이다.

창업 업종의 대다수를 요식업이 차지하고 있고, 원가 계산 시 각 항목이 고루 존재하기 때문인지 요식업에 많이 치중되어 설명되고 있다. 도매유통업과 시설서비스업도 조금 소개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요식업 중심으로 설명되고 있어서 독자의 사고의 범위를 제한하지 않을까 싶다. 

두 번째는 회계적 관념과 숫자를 강조 했음에도 그 구체성이 조금 떨어진다는 것이다. 

'자산=자본+부채'라는 회계 기본에서 출발해서 손익분기 계산법과 고정비와 변동비에 대해 별도의 장을 할애해서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소규모 점포를 운영하면서도 구체적인 원가 계산을 못하는 대부분의 사장님들은 고정비와 변동비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저자와 기획자가 대상 독자군과 그 수준을 그렇게 선정했을 것이고, 회계 특성상 구체적으로 파고 들면 그 범위와 수준을 제한하는 것이 더 어려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곤 하나 회계 전문가가 집필한 책이라고 하기엔 매뉴얼이라기 보다는 일반교양서에 더 가깝기에 조금 아쉽다.

그래서 저자의 이름으로 다른 저서가 있는지 검색을 해보니 역시 '회계 천재가 된 홍대리'라는 회계실무관련 시리즈물의 저자였다. 실무에 적용할 수 있는 매뉴얼 시리즈를 이미 집필하고 있었기에 타겟 범위를 넓힌 이런 책도 집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연일까? 이 서평의 작성이 끝나갈 무렵에 앞서 소개한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친구가 방문하였다가 이 책을 가져갔다.

그 친구가 읽으면 그 동안 나의 잔소리에 더해 전문가의 권위마저 실린 책이라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그 친구에겐 가장 필요한 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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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 - 서울대생 1100명을 심층조사한 교육 탐사 프로젝트
이혜정 지음 / 다산에듀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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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을 보면 선입관이 생길 수 밖에 없다. 한국 특유의 교육열에 편승한 '내 새끼만 성공시키기' 부류의 책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은 프롤로그를 읽으며 곧바로 깨진다. 

 

객관적인 데이터에 근거한 많은 연구자료와 인터뷰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양서적이면서도 한편의 완성된 논문이다.

 

25개월 된 딸아이가 있는 아빠로서 아무래도 육아와 교육에도 관심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최근에 집어 든 책이 "프랑스 아이들은 왜 말대꾸를 하지 않을까"였다. 캐서린 크로퍼드라는 저자는 스스로 책을 쓰기 위해 방대한 자료조사와 인터뷰를 위해 수차례 프랑스 현지를 방문했다면서도 정작 책의 내용에 데이터가 전혀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변의 프랑스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이렇더라는 식의 이야기로 점철되고 있다. 그렇다보니 어디까지 저자의 말을 믿어야 할지, 무엇이 프랑스 육아의 진정한 실태인지 즉, 신빙성이 크지 않았다.


그 이후에 보게 된 "세계 최고의 학교는 왜 인성에 집중할까"는 저자가 직접 보고 겪은 미국의 명문고 필립스 엑시터 고등학교의 교육현장을 생생하게 보여 줌으로써 우리의 교육 시스템과의 차이점을 잘 보여준다. 교육 현장의 구체성은 있지만 거시적 관점에서의 문제제기와 대안점은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를 먼저 읽고 "세계 최고의 학교는 왜 인성에 집중할까"를 읽는다면 올바른 교육에 관한 개념 정립과 더불어 올바른 교육현장의 뚜렷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책을 반드시 함께 읽을 것을 추천한다.


각 3부로 구성된 두 개의 파트, 총 6부로 구성된 이 책의 내용은 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공부법 조사에서 시작해서 한국의 교육실태와 문제점, 향후 지향해야 할 교육의 방향과 방법론까지 명확하게 제시 해 주고 있다.


저자는 프롤로그를 통해 독자가 두 가지 메시지를 얻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는 서울대에서 고학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의 교육이 진정한 인재를 육성하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라고 한다.


이 책이 '교육혁명의 고전이 될 명저'가 될 것이라고 주저없이 말 할 수 있는 것은 내겐 술안주거리에 불과하던 한국의 교육문제와 그 실태에 대한 비판들, 더불어 대한민국이 스스로 진단하는 교육의 문제점과 그 대안이 모두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교육문제를 뚜렷한 윤곽으로 바라 볼 수 있게 해 주는 책이다. '주입식 교육'라고 정의 된 기존 관념의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대안없는 비판만 했던 내게 패러다임을 전환시켜 줄 거시적 관점과 다각도에서 바라보는 교육현장의 모습을 제시 해 주고 있다. 

 

어려운 어휘나 전문용어 하나 사용하지 않고도 내용만으로 교육공학 전문가로서 저자의 전문성이 진하게 베어 나온다. 


저자는 주입식 교육이라는 가르치는 교사나 교수를 주체로 하는 표현보다는 배우는 학생을 주체로 해서 '수용적 사고력'이라고 한다. 그 반대편에는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적 사고력'을 배치하여 올바른 교육의 목표개념을 정립하고 있다. 단어의 선택만 보더라도 교육의 주체는 교사나 교수가 아닌 학생이라는 저자 스스로의 논거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 책을 보면서 첫 번째 감탄사는 서울대 상위권 학생들의 공부법에서 나왔다. 

교수의 말을 농담은 물론 조사 하나까지 빠트리지 않고 1차 필기한 후 복습할 때 자신의 언어로 2차로 정리하고 시험 때까지 반복적으로 외운다는 설문조사를 보고 솔직히 놀라야 할지 비난을 해야 할지 모를 복잡한 심정이었다. 


나는 그런 경쟁 속에서 도태됐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멍청하게도 내가 학창시절 이런 류의 경쟁을 했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됐기 때문이다. 한 때 강남8학군의 핵이었던 상문고등학교 재학시절 어느 영어선생님이 우리에게 "외워! 외워! 외우는 게 공부하는 거야!"라고 했던 말이 진실이었음을 이제서야 알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상위권 학점을 유지하기 위해 평상 시의 감정조절까지도 한다는 어느 학생의 인터뷰 내용을 볼 땐 의자에 정강이를 찍힐 때처럼 '악!'하는 소리도 나지 않는다. 

 

두 번째는 "학습은 위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편견"이 틀렸다고 했을 때이다. 다시 한번 나의 고지식함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비판적 창의적 학습은 수용적 학습 후에야 가능한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중략)신체의 근육을 기르는 것도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고 장시간 꾸준히 훈련해야 하듯이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을 기르는 것도 몇 달이든 몇 년이든 지속적으로 훈련되어야만 길러질 수 있다. 수용적 학습을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 비판적 창의적이 되는 것이 아니다.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이 길러질 수 있는 환경에서 수용적 학습 이상으로 노력하고 연마되어야 가능하다."(본문 70쪽)


세 번째는 국가에서 정한 '학습진도'를 없애자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국가가 짜놓은 일치된 교육과정에 의해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어 전국 어느 학교에서도 학생들은 같은 내용을 같은 방법으로 같은 진도에 맞추어 배운다. 교사 재량으로 할 수 있는 활동 과제나 그룹 수업도 엇비슷하다. 준비물도 똑같으니 학교 앞 문방구에서는 항상 맞춤형으로 구비되어 있다. 이때쯤이면 어떤 준비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문방구도 빤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교육과정이 정해 놓은 '진도'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 이는 정말 많은 것을 야기한다. 우선, 통일된 진도는 가르치는 내용과 방법이 일치해야만 가능하다. 또한 그 진도를 맞추어 나가야 하기 때문에 진도에 방해될 것 같은 학생들의 수많은 창의적 질문들이 "진도 나가야 하니 쓸데없는 질문은 하지 마라"라는 말로 일축되어 묻혀 버리고 만다.

(중략)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진도'가 실은 그리 당연한 것이 아니다. 선진국에서는 대부분 국가적으로 통일된 진도가 없다. 미국은 물론이고 공교육이 미국보다 우수하다고 평가받는 캐나다도 마찬가지다. 내가 학부모로서 미국과 캐나다의 교육을 지켜보니 대략 무슨 역량을 길러야 하는지에 대한 굵직한 가이드라인 정도만 있을 뿐 구체적으로 가르치는 소재와 진도는 개개의 교사들마다 다르고 진도를 정하는 주체도 교사 자신이었다." (본문 182쪽)


이 부분에서 교육 전문가로서 저자의 폭넓은 시야가 잘 드러난다. 그 동안 수용적 사고력으로 단련 받은 나 같은 일반인들은 잘 알지 못하는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사실 앞서 "세계 최고의 학교는 왜 인성에 집중할까?"라는 책에서 하크네스식 수업이라고 일컫는 토론식 수업을 소개할 때 내가 가장 우려스럽고 궁금했던 것이 바로 '그럼 도대체 진도는 어떻게 나갈까?'였다. 즉 이 의문자체가 우문(愚問)이었던 것이다. 수용적 사고력의 대표적인 폐해를 직접 경험한 것이다.


네 번째는 이러한 국가 정책적 진도라는 것을 거시적 가이드라인으로 바꾸고 교육권을 국가에서 교사에게로 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교사들의 수준이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 봐도 절대 떨어지지 않으니 우리 교사들을 믿고 입시 위주의 수업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수업과 평가 기준을 설계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언론을 통해서 듣던 '교권'이라는 말에 이런 배경과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줄 미쳐 몰랐다. 


이 책을 읽으면서 크게 놀라고 공감할만한 내용을 이렇게 네 가지 정도로 요약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끝까지 읽는 내내 경이롭기까지 했다. 


서울대와 미시건대 학생들의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그 차이점을 문화적, 민족적, 역사적 영향까지를 고려하여 하나씩 차근차근 풀어간다. 


곳곳에 인상적인 부분들이 무척이나 많은데 그 중 저자가 하와이 동서문화센터 초빙으로 참여했던 리더십 연수에서 나온 죽은 말(Dead Horse) 이야기는 우리의 교육현실을 너무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1992년에 발표된 락그룹 Guns&Roses의 Use Your Illusion 1 앨범에 있는 'Dead Horse'라는 곡처럼 이미 엎질러진 물 또는 돌이킬 수 없이 저질러진 일이라는 의미로써 죽은 말이다. 이 이야기는 정말이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이 일화를 통해 그 동안 언론을 통해 알려진 교육정책들과 현재 벌어지고 있는 자사고 갈등이 교육문제의 본질과 얼마나 괴리가 큰 사안인지 알게 되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시야가 열린 것이다.

 

파트1에서 문제점과 실태를 보여줬다면 파트2에서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책의 절반을 차지하는 대안제시는 판에 박힌 듯한 내용을 열거하는 것이 아니라 파트1의 내용을 근거로 끊임없이 교육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루한 표현의 반복은 없다.

 

'지식소비자가 아닌 지식생산자를 기르는 교육', '문제해결력에서 문제발견력을 기르는 교육', '수업의 질은 수업의 디자인이 결정한다', '지식을 제시 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말(질문)하고 생각하는 교육', '집어넣는 교육이 아니라 꺼내는 교육'이라는 부분은 구구절절이 무릎을 치며 공감하게 된다.

 

특히 저자의 '문제발견력'이라는 표현은 탁월하다. 나는 지금껏 성실하게 일 해오고 정직하게 열심히 살았지만 주어진 일에 대해서였고,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에 탁월했다. 자존심과 업무추진력도 강해 능동적이지만 어디까지나 주어진 일에 한 해서였다. 뜻하지 않은 실직처럼 외부에서 나에게 목표나 해야 할 일이 주어지지 않으면 무엇을 할지 모르고 방황했던 것이다. 도대체 창의력이란 찾아 볼 수도 없고 스티브 잡스와 같은 생각을 스스로 한다는 것은 파격 그 자체였다. 그 이유를 마흔이 훌쩍 넘은 지금에 와서야 '문제해결력이 아닌 문제발견력을 기르는 교육'이라는 것에서 깨달았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더불어 말의 맥락과 글의 맥락이 서로 다르고 말로써 생각을 정리하는 사람과 글로써 생각을 정리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내성적이라 의사표현에 소극적인 학생의 말문을 열게 만드는 방법 등 교육/교수법에 대한 내용들도 맛볼 수 있다.


논거로써 여러 논문과 이론을 제시하고 있으며 논지에 의문이 생길만한 곳에서는 실험과 설문조사를 통해 얻은 구체적 데이터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저자의 활발하고 폭넓은 국내외 활동을 통해 얻은 경험과 지식을 모두 공유하여 교육의 목표와 방향설정, 구체적 실행방안 등을 제시하고 있다. 


교육공학자답게 책(논문)도 자신이 말하고자하는 내용을 유기적으로 구성하여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오랜만에 책의 모든 것을 흡수할 듯 빠져들어 풍요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기분을 맛보게 해주는 책이었다. 더구나 관념에 머무는 추상적 내용들이 아니라 실용적으로도 매우 유용하기에 그 기쁨은 더욱 크다.


향후에 만약 우리나라 교육이 혁신된다면 이 책은 반드시 교육혁명의 고전이 될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이 책을 반드시 읽기 바란다. 그래야만 교육혁명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단, 지금에 한 가지 부작용이라면 적나라한 교육실상이 제대로 보이면서 내 아이를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 맡길 자신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아이가 공부를 못할까 싶어서가 아니다. 

 

어제는(2014. 11. 2) 페이스북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경향신문 기사가 올라왔다.

 

"저는 점심 때마다 꼴찌로 급식을 받아요. 성적이 꼴찌이기 때문이예요. 우리 반은 시험 성적순대로 밥을 먹어요. 전 성적이 안올라서 1년 내내 맨 꼴찌로 밥을 먹었어요. - 대구 칠곡의 한 초등생, 9세"

 

그냥 무시할 수도 없는 기사다. 한숨만 나온다.

 

한국의 교육은 항상 정치권과 밀접하게 반응하며 부동산과 연동되어 왔다. 한국 현대사가 그랬다.

군부 독재시절부터 땅 덩어리 좁은 나라에서 부동산 정책으로 국가의 경기부양책을 만들어 왔다. 그 부동산 정책을 만들어가는 방법으로 국민의 교육열을 등에 업은 학군제 편성이었다.

 

교육정책은 항상 '평준화'라는 우습지도 않은 말을 목표로 해왔지만 오히려 입시제도의 과열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 그래야만 교육과 경졔를 계속 연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출마 때마다 교육정책을 공약으로 빠짐없이 내건다. 이렇다보니 한국의 교육은 집권세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며 장기적 계획들이 그 시비를 떠나 정권이 바뀌면 언제나 미완으로 끝났다. 


학생과 학부모는 번번이 바뀌는 입시제도나 교육정책에 시달리고 힘들어하지만 이런 교육정책이 떠받치고 있는 것은 상승하는 부동산 물가와 심화되는 빈부격차뿐이다.

 

일본 소카대학교의 창립자인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박사는 이미 몇 십년전부터 민주주의의 "3권분립"에 교육부를 더 해 "4권분립"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래야만 정치로부터 교육이 자유롭게 독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 

 

탁월한 식견인 이 제안을 반드시 우리나라에 먼저 적용시키면 어떨까 싶다.

 

 

 

이제 이 책의 에필로그에 있는 저저의 말을 끝으로 소개한다.

 

"인류의 역사는 제한시간 내에 정해진 100미터를 가장 빨리 뛰는 사람보다는,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무엇을, 어디를, 얼만큼, 어떻게 뛸지를 찾아내는 사람에 의해 발달해 왔다. 이미 알려진 문제를 푸는 사람보다는 발견되지 않은 문제를 찾아내는 사람에 의해 인류 문명이 진화되어 왔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나라 교육은 정해진 100미터를 가장 정확하게 빨리 뛰는 사람을 길러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반도 반만년 역사상 처음 찾아온, 세계 속에서 발돋움할 수 있는 이 시점에, 우리에게 필요한 교육은 주어진 거리를 빨리 뛰는 사람보다는 주어지지 않은 길을 찾아서 그곳에서 뛸지, 걸을지, 차를 탈지, 혹은 다른 무엇을 할지 찾아내는 사람을 길러 내는 교육이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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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정원 - 제4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혜영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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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접하는 아름다운 문학작품이다. 


이 책에 대한 선입관을 껴안기 싫어서 책의 말미에 있는 심사평이나 작가후기를 앞서 읽지 않았다. 책 뒷표지에 있는 간략한 서평조차도 읽지 않았다. 목차만 흘깃보고 첫 문장을 읽어 나갔다.


90여 쪽을 읽었을 무렵 덮었던 책을 다시 집어들면서 비로소 겉표지의 제목 아래 '잃어버린 엄마의 첫사랑을 찾아서'라는 부제를 발견했다.

 

혼불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이 작품을 나는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 본다.


첫째, 시처럼 아름다운 어휘와 문체

둘째, 편집증적인 사랑 이야기

셋째, 한국현대사의 시대정신의 반영

 


1. 시처럼 아름다운 어휘와 문체


이 책을 보는 내내 스마트폰을 옆에 두고 있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기 위해서다. 마치 1930년대 한국문학처럼 순우리말은 물론 오래되고 생경한 단어와 비유들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었다. 디지털 사전이 얼마나 빠르고 편한지 감사할 따름이다.


예를 들자면 작가는 대여섯번 등장하는 주인공 어머니의 오래된 벨벳 의자를 표현하는대도 처음엔 '우단의자'라고 쓰고, 중간엔 '비로드의자'라고 표현하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벨벳의자'라고 표현한다.

어느 한 문장도 허투루 썼다는 느낌이 없음을 감안하면 작가가 하나의 사물도 다양한 어감과 감성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한 듯 하다.


"별들은 검은 양탄자를 밟고 와 제 이름의 금빛 의자를 찾아 앉았다. 달은 지상의 만물이 꿈을 꾸도록 은빛 이불을 덮어주었다. 뒤 숲에서는 초겨울 바람이 댓가지들을 자갈 굴리듯 이리저리 밀고 다녔다." (본문 39쪽)


이렇듯 작가는 작심한 듯 은유와 비유를 한껏 활용하여 고즈넉한 노관의 풍경과 일상, 날씨, 계절, 정물, 정황 등을 감성적으로 묘사한다. 


책의 말미에 있는 혼불문학상 심사위원장인 황석영 소설가의 심사평을 보면

 

"이를테면 '요즈음도 이렇게 소설을 쓰는 사람이 있구나' 할 정도로 구닥다리이면서 그게 또 묘한 '빈티지'의 매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344쪽 심사평)

 

라고 쓰고 있다.

 

작가의 문체가 곰삭은 메주처럼 조금은 옛스러울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한글과 우리말을 재료로 그토록 맛깔지게 글을 썼을 것이다.


이런 감성적인 문장들은 수사법상 은유와 비유로 구분할 수 있겠지만 이 모든 표현들은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작가의 순수한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율이 삼촌이 사랑 대청의 여덟 개의 드닫이문을 들어 처마 끝의 쇠고리에 걸었다. 그러자 대청 마룻바닥으로 겨울 빛과 먼지의 조각들이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오랫동안 마르고 움츠렸던 서재 안의 공기들은 새로 들어오는 햇빛을 피해 눈살을 찌푸리면서 구석으로 몰려 다녔다. 지루한 대화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서가의 영혼들은 이제 막 올리는 새 무대에 기대를 가지고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본문 45쪽)


사소하고 하찮은 먼지나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라 해도 작가의 상상력은 제약이 없어 보인다.


작가의 상상력은 요정이 보내오는 편지내용에서 절정에 달한다.


소녀(테레사)가 열여섯살 생일에 잠들어 100년 후에나 깨어났을 때 유년의 기억을 돕기 위한 기록으로써 보낸다는 편지내용은 그 자체로 한 편의 동화다.


소설 속의 소설, 즉 액자소설이라 할 수 있다. 소녀의 방을 이루고 있는 4면의 벽이 모서리에 모여서 대화를 나누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거울세계 이야기, 시계 속 시간 여행 이야기, 별과 사랑에 빠진 창문 이야기 등은 마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나 돈키호테, 또는 판타지 영화 한 편을 보는 듯 하다.

 

이 작품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처음 등장한 소녀가 앞으로 100년간 잠들 것이라며 보내오는 이 편지들을 보면서 환타지 소설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편지의 분량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다. 


편지 내용 자체만 보면 너무도 아름답고 따뜻한 이야기라 너무도 마음에 들지만 심사평의 지적처럼 필요이상의 분량과 내용으로 소설 전체 구성을 약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감성적 묘사와 문장에 집중을 해서인지 소설의 앞부분은 화자(話者)이자 주인공인 이요의 아버지와 할머니가 죽고, 율이 삼촌이 십여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그 이야기는 진행된다기 보다는 노관의 정경과 일상처럼 따뜻하게 박제되어 버린다. 


작가 특유의 문체에 적응되어 문장을 읽어가는 것에 속도가 붙을 때까지도 이야기는 진전이 없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노관의 일상과 정경, 정황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로 인해 전반부는 다소 지루해지기까지 한다.


시처럼 아름다운 감성으로 쓰여진 문장들은 가슴 한 켠에 숨어 있던 따뜻한 정서를 불러 일으키지만 이야기 전개를 더디게 한다.

 

더딘 이야기를 더욱 더디게 만드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스마트폰, 인터넷, 교통카드 등이 없고 자가용도 많지 않던 시대의 강원도 산골을 배경으로 그 일상이 구체적으로 묘사되니 지금의 생활감각으로는 너무 느리고, 더욱 더디게 느껴지는 것이다.

 

또 하나는 멈출 줄 모르는 작가의 넘치는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문장을 이끌어 가는 작가만의 힘이다. 상상력이 넘치니 문장도 넘치기 때문이다.

 

 

2. 편집증적인 사랑 이야기

 

뒤늦게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는 소설의 주된 이야기는 어머니와 삼촌의 사랑 이야기이다.

10여년 전에 어긋난 사랑을 되돌리려는 남자와 과거나 현재나 감정을 숨기고 똑같이 처세하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이 소설이 죽음을 각오하거나 초월하는 사랑의 이야기라고, 그래서 숭고한 사랑이라고 한다는 의견에는 절대 찬성할 수 없다.

 

릴케의 시와 실존주의 철학으로 포장되어 있을 뿐이지 남자의 사랑은 집착이다. '너 아니면 안돼'라는 식의 타협없는 편집증적인 집착이다.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에 거주하고 있는 것이다. 증세가 더 진행되면 여자의 본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그려놓고 강요하기도 한다. 그러다 자살까지 감행할 정도라면 편집증은 이미 정신병이 된 것이다.

 

율이 삼촌은 자신의 옛연인이었던 요의 어머니 권정의에게 '넌 나와 함께 도망가야한다.'고 강요하며 일방적으로 약속하고 기다린다. 권정의에게 사랑하는 남자와 도망갈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면 이미 과거에 도망갔을 것이다. 사랑하는 이와의 도피는 그녀의 본 모습이 절대 아니다. 권정의에게 그것은 용기가 아니라 무모다.

 

반면 사랑하는 남자가 죽고 나서야 비로소 과거와 현재에 자신이 했던 무책임한 행동의 이유를 말하는 여자. 

사랑했던 남자가 피를 토하듯 이유를 물어도 절대 말하지 않다가 그 남자가 죽고나니 엉뚱한 제3자에게 고백한다. 그리곤 애달파하다가 서서히 죽어간다. 그 여자의 머리와 마음은 어지럽겠지만 그냥 위선이고 자책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남녀는 21세기인 현재에도 흔하디 흔하다. 다만 스스로 죽지만 않을 뿐. 오히려 가끔 상대와 가족을 헤쳐서 사회뉴스가 되기도 하지만...

 

남녀 문제만큼 모든 것을 결과로 설명하는 것도 드물다. 과거에 사랑했으나 그로인해 둘 다 죽어버렸다면 사랑도 인연도 아닌 것이다. 짝궁이 될 인연이 아니다. 연이 있었다면 다만 같은 운명의 굴레를 뒤집어 쓴 악연일 뿐이다. 

 

지금도 이별을 통보하는 여자는 절대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다. 이별을 통보받은 남자는 어떤 이유를 말해줘도 절대 믿지 않는다. 

 

이렇듯 사랑 이야기는 각 시대상과는 별게로 인류사를 관통하는 공통요소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운 문장으로 쓰여진 촌스러운 사랑타령이 독자의 감성을 자극하고 공감을 이끌어 내는지도 모른다.

 

 

3. 한국현대사의 시대정신의 반영

 

심사평처럼 이 소설은 참으로 특이한 소설이다. 작가의 개성이 독특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사랑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연애소설이라고 하기엔 한국현대사의 시대정신이 무겁게 반영되고 있다. 지금보다 순박한 사랑 이야기를 하겠다고 7~80년대를 설정한 것은 아니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총격이 있은 직후의 연회석 장면과 대통령 사진이 반복되어 나왔다. 태어난 이후 한 번도 대통령이 바뀌지 않은 세상에서 살아온 우리에게는 전 세대의 육이오 남침만큼이나 충격적인 일이었다.쿠데타로 십팔 년 동안이나 장기집권한 군사정권이 내부의 붕괴로 무너지다니 그야말로 하늘이 깨지고 땅이 흔들리는 일이었다." (본문 222쪽)

 

 

겉표지의 작가 소개를 보니 1961년 강릉 태생이다. 한국현대사의 격동기 한 복판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것이다.

주인공 이요의 나이와 작가의 나이가 동갑이고 고향마저 같은 것이다. 작가의 자전적 시대정신이다.

 

 

"어쨌든 혁명은 승리한 다음에는 근사하게 포장되지만 일어난 시점을 들여다보면 극심한 피폐와 험난한 과정이 숨어 있어. 폭동에서 튀는 파편의 강도를 보면 정치적 폭압의 정도를 가늠할 수가 있지. 지금 유신정권은 겉은 평평해서 그럴 듯해 보이지만 그 얼음장 밑 한 뼘 아래에는 벌써 봄의 물결들이 모여들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해. 민중이 결속되는 그 방향이 바로 자연의 이치이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명백한 역사의 방향이고." (본문 157쪽)


"민주적 평등이란 사회주의의 균등함하고는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평등함이란 같음이 아니라 공정함입니다. 무수한 다양성에 대한 다양한 공정성이 바로 민주적 평등입니다. 같음이라니요, 생각해보십시오!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 논리입니까? 인간은 자율적인 존재입니다. 자연에, 환경에 자율적으로 알맞게 적응해가도록 만들어진 과정의 피조물입니다."

손님은 어머니가 일손을 멈추고 귀 기울여주는 데 고무되어 말을 계속 이어갔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의 획일적이고 독단적인 행태를 보십시오. 이 정권은 일본 사무라이들처럼 목을 쳐서 전 국민의 키를 똑같이 고르고 있습니다. 강도 프로크루스테스처럼 다리를 잘라내서 정해진 침대에 키를 맞추고 있지요. 이런 터무니없는, 풍자나 우화에서나 있을 법한 획일적인 독단이 실제로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이 강산은 숨죽인 비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본문 158쪽)


"지금은 시절이 안 좋아. 자네도 알겠지만 지금은 우리가 역사의 왜곡된 방향과 싸우고 있는 전시나 마찬가지지. 이런 폭압 아래에서는 문화가 제대로 꽃필 수 없어. 독재는 실생활보다 예술에 가장 독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억압과 불안, 두려움이 창조의 씨앗을 깨끗이 말려버린다고. 모험과 자유가 없는 상상력이란 얼마나 비루한가! 독재라는 좀벌레가 파먹어서 날지 못하고 지천에 버려져 있는 이 마법의 양탄자들을 좀 보라고!" (본문 287쪽)

 

아이러니일까? 짓궂은 역사의 사소한 장난일까?

작가는 대학시절부터 쓰던 소설을 바탕으로 수년 뒤에 이 소설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그 책이 혼불문학상에 당선되어 세상으로 나오는 시점이 독재자의 영애께서 대통령인 바로 지금이니 말이다. 

 

 

 

4. 마무리하며...

 

이 소설엔 반전이 없다. 테레사의 정체도, 동네 아낙들이 수군거리던 노관의 마님과 작은 서방님과의 사랑 이야기의 전말도, 김경수의 등장과 연애도 모두 독자가 충분히 예상할만한 지점에서 그 인과관계가 드러난다. 


황석영소설가는 심사평을 통해서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탄탄한 문장 실력과 상상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은, 고전적으로 절제되고 상징화된 아름다운 도입부가 지나고 후반부에 이르면서 '가족의 비밀'이 사건과 등장인물의 행동에 의하여 차츰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돌발적인 인물들의 발설과 충동적인 대화에 의하여 오로지 '말'로 풀어버림으로써 긴박감과 흥미를 잃게 한다는 것이다."


이 평을 본 후 주인공 요가 다리 아래서 빨래하는 동네 아낙네들의 수다를 엿들으면서 어머니의 과거를 확인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남의 집 이야기를 득의양양하게 말하는 동네 아낙들에게 감정이입하여 귀를 솔깃하던 내 모습이 보였다.


어쨌든 그러고보니 주인공 요가 한 것이 하나도 없다. 등장인물의 심리, 행동, 표정을 묘사할 때는 전지적 시점도 갖지만 대체로 1인칭 관찰자 시점을 유지하는 주인공 요는 학창시절을 통해서도 그 흔한 연애도 한 번하지 않는다.


학생운동을 하는 친구의 부탁으로 학보에 실을 시를 익명으로 쓰지만 자발적이지 않고 위험해지자 그조차 그만 둔다. 또 영문도 모른 체 친구에게 이끌려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영상물을 보게 된다. 그 영상을 본 후 구토를 할 정도의 충격을 받았음에도 학생운동 같은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김경수를 은닉해 준 것도 손상기교수가 벌인 일이다. 더욱이 어수선한 시국에 미국유학을 권하는 손상기교수의 전화 한 통에 아무런 고민도 없이 도미한다. 미국에 가서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유학하다가 이십년이 지나서야 귀국한다. 

 

"지바고, 데미안, 베르테르, 나르치스까지 네가 알고 지내는 주인공들은 모두 고뇌하는 자들뿐이야. 더구나 니체니 쇼펜하우어니 하는 자들은 달변가이고. 넌 그런 행동 없는 대화에만 귀 기울이면서 책 속에서만 살고 있어. 한마디로 명작 병에 걸린 거야. 책은 그림이지. 액자일 뿐 창문은 아니야."

(중략)

"이젠 벽에 걸린 그림 액자나 드나들지 말고 실제의 창문을 뛰어 넘어! 요요, 세상 밖으로 뛰쳐나가라고! 햇살 아래로 저 바람 속을 달려봐! 산이 막으면 넘어가고 강이 막으면 건너가!" (본문 317쪽)

 

등장인물 중 하나인 김경수와의 대화를 통해 주인공 요에게 이토록 행동을 촉구한다. 이어서 김경수는 요에게 조국을 만나보라고 권하지만 요는 망설이며 자신은 시인이 되고 싶은데 조국이 다른 일을 원하면 어떻게 하냐며 걱정을 한다. 

 

그러자 김경수는 요에게 "이요군! 이 조국은 자네가 훌륭한 시인이 되길 원하네!"라며 답해 준다.

 

이 책은 요의 어린시절도, 정든 고향 노관도, 지독한 사랑이야기도, 책을 좋아하며 시인이 되고 싶지만 행동하지 못했던 요의 모습도 모두 작가의 자전적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당시에는 하지 못했던 말을 이제 시인(작가)이 되어 모두 쏟아낸 것이 아닌가 싶다.


'비밀정원'은 특이하지만 아름다운 문학작품으로 오래 간직될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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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를 선물하는 남자 - 명화와 함께 읽는 나의 섹스 감정 수업 29
김진국 지음 / 스토리3.0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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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은 포르노가 사회 시스템에 녹아 있다. 일본영화가 한국영화만큼도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가 포르노로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투자자들이 영화에는 투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의 유명 영화들은 블록버스터급 액션영화는 없고 하나 같이 시나리오의 완성도에 의존하는 잔잔한 드라마들이다. 어쨌든 이런 일본을 우리나라 인터넷에서 '성진국'이라고 지칭한지 오래다.


2. 여기에 남자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을 덧붙인다면 "머리는 항일인데 아랫도리는 친일이다."라는 말이다. 

 

3. 얼마 전에는 일본의 한 포르노 제작사가 한국의 불법 다운로드 때문에 피해를 보았다며 한국법원에 소송을 제기 했다가 기각된 일도 있었다. 


위 세가지는 일본의 포르노가 한국에 너무도 깊숙히 들어와 있다는 방증이다.


우리나라의 성은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가. 폐쇄적 성문화 속에 침투한 일본의 포르노는 그야말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적지 않은 변태와 바바리맨이 발생한 것에 대해 일본 포르노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저급하기로는 세계 상위를 차지할 국내 언론들은 온갖 종류의 성범죄를 찾아 신조어까지 만들어가며 연일 배설하고 있다. 폐쇄적 성문화 중에서도 유독 어두운 부분만 끊임없이 부각시킨다. 언론조차 관음증에 걸려 있는 형편이다. 이는 다시 성범죄를 자극하게 돼 그야말로 악순환이다.


이렇게 일본의 포르노와 선정적 언론이 왜곡된 성문화를 떠 받치고 있는 것이 한국의 실상이다.


나 역시 38살에 결혼해서야 성에 대한 나의 지식이 모두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됐다. 결혼 후에야 자구책으로 구성애소장님의 동영상 강의를 찾아보기 시작했을 정도다.


"멀티를 선물하는 남자" 


이 책의 저자는 결국 누군가는 나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고 본다. 


구성애 소장님이 선구자로서 보수적인 견지에서 올바른 성문화에 대해 담론을 펼칠 수 있는 마당을 만들어 놓았다면 이 책의 저자는 좀 더 솔직한 입장 즉, 서로 즐기고 누리는 성의 구체적인 경험에 대해 논하고 있다. 실전 테크닉이다. 여기서 말하는 멀티도 여성의 멀티 오르가슴을 말하는 것이다.


대치동 학원가 국어과목의 스타강사였던 저자가 아프리카 방송의 BJ경험을 바탕으로 써 나간 이 책의 내용은 사실 파격적이다. 


모두들 점잖게 애둘러 표현하던 것들을 매우 구체적으로 써내려가고 있어서 만약 한 부분만 발췌한다면 거의 야설(야한 소설)로 보일 정도이다. 10대들이 쓰는 은어, 속어조차 숨기지 않고 그대로 옮겨 썼을 정도이다.


책의 말미인 3부에 내용과는 별도로 저자의 인생분투기를 적지 않은 분량으로 담았는데 아마도 내용의 진솔한 면을 첨부하기 위한 듯 하다. 


작가 스스로 국문과를 졸업하고 학원가 국어강사를 하다가 이제는 어릴 적 꿈이었던 문학작가가 되고 싶다고 소개하고 있다. 또한 이미 '유라의 하루'라는 소설을 출간하기도 했단다.


이 책은 문학작가로서의 필체는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성에 대해 더욱 도발적이고 자극적이며 직설적인 이야기가 되긴 했다.


전체적으로 마치 격앙된 목소리로 떠드는 방송을 듣는 듯한 문체이다. 방송인 노홍철씨의 말투? 아마도 성에 대한 기존의 잘못된 관념을 깨고 자신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선택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초반에 자신의 주장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도 눈에 띈다. 어쨌든 내용이 내용인지라 단숨에 읽어나기기 쉬운데 지금까지 이 책이 가장 빨리 읽은 책이 됐다. 


이 책의 특징이라면 서평에 옮길 수 없을 정도로 표현이 매우 구체적이고 솔직하다는 것이다. 나이 불문하고 자신의 성지식이 포르노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 이 책에 투자를 하는 것이 매우 유익할 것이다.


이 책은 성에 대한 호기심이 넘치는 청소년에게도 차라리 포르노보다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전망해 본다.


부제가 '명화와 함께 읽는 나의 섹스 감정 수업 29'이다. 내용을 부연설명할 수 있는 사진이나 그림을 넣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대신 내용과는 무관한 누드 명화들을 삽화로 많이 넣어두었다. 내용과 무관하지만 명화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읽도록 만든 편집자의 노고가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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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지 돈을 끌어당기는 여자의 39가지 습관
와타나베 가오루 지음, 김윤수 옮김 / 다산북스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예전에 봤던 뉴스 제목이 기억난다. 

 

"'빌린 돈 갚지 마라'의 저자, 몸소 실행. 출판사사장에게 돈 빌려 도주"


노골적으로 돈을 다루는 책들은 마치 스포츠 신문의 정력제 광고처럼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제목을 달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 검증되지 않은 작가들이 단지 책의 판매를 목적으로 출간한 것은 아닌가라는 의심과 이미지만 갖고 있었다.


그 동안 돈이나 재테크에 관한 여러가지 실용서나 자기계발서에는 관심을 둔 적이 없다. 인터넷 기사, 신문의 칼럼, 방송에 출연한 경제학자나 전문가들이 재테크 비결이라며 소개하는 것들이 경제원론을 벗어난 적이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


'아껴서 소비를 줄이고 저축할 것. 수익성과 리스크는 비례함으로 연금, 펀드, 주식 등 자신에게 맞는 금융상품을 고를 것. 2~3년의 단기적금을 반복하여 몫돈을 키워 갈 것. 주식은 10년이상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할 것.'


솔직히 돈에 관한 책들에 관심을 갖고 기웃거리는 것 자체가 천박한 취향을 가졌다고 인정하는 양, 자의식 강한 내겐 스스로 용납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책은 돈에 대한 나의 바로 그 지점을 정확하게 파고 들었다.


일본의 파워블로거이자 유능한 멘탈 코치인 와타나베 가오루라는 일본인 작가가 쓴 '왜 그런지 돈을 끌어당기는 여자의 39가지 습관'이라는 책을 받아들고도 사실 별다른 기대는 없었다. 목차를 살펴봐도 눈에 띌만한 것은 별반 없어 보였다.


먼저 프롤로그에서 제시한 개괄적 결론이 "돈의 법칙은 사람이 돈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와 관계가 있다."이다. 돈에 대해 접근하는 방법이 다르다고 생각되자 처음부터 마음이 열렸다.


이 책은 실용서라기보다 자기계발서다. 자기계발서는 독자의 변화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반드시 고정관념의 변화, 패러다임의 전환, 개념의 전환이 필수적으로 제시될 수밖에 없다.


서른 아홉가지 중 첫 번째를 읽고 나서 이 책의 구성과 접근방식이 무척이나 마음이 들었다. 장황하지 않은 간결한 설명에 핵심내용은 보기 좋고 찾기도 좋게 빨간색으로 정리 해 두었다.



"돈은 갖고 있느냐, 갖고 있지 않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내 눈앞을 지나가느냐?'가 포인트다."



첫 번째 요점부터 개념을 전환시켜주고 있다. 경제원론이 아니라 실전감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패러다임의 전환, 개념의 전환은 계속 된다.



"'꺼내다'와 '들어오다'는 전적으로 자연의 섭리다. 들어오기 때문에 꺼내는 것이 아니라, 꺼내기 때문에 들어오는 것이다."


"쇼핑은 손해나 이익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다. 갖고 싶으면 사는 것이지, 싸기 때문에 사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내 주변에 쇼셜커머스에 중독증상을 갖는 사람을 몇몇 볼 수 있으며 나도 당장은 필요없지만 할인율이 크다는 이유로 미리 구매해 봤기때문에 크게 공감하는 부분이다. 


"진짜 부자들은 눈에 보인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돈을 사용한다. 경험으로 얻은 감성이나 지혜는 아무도 빼앗지 못할뿐더러 잃는 일도 없다."



피상적으로만 인지하던 부자들의 소비행태를 보다 가치적인 관점에서 정의하여 소개 해 주고 있다.


이처럼 우리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던 돈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을 모두 바꿀 것을 주문하고 있다. 또한 일본인 저자답게 심리적 위치를 정확하게 찾아 끄집어 내 준다. 



"그런데 실은 그와는 모순되게 '돈을 받는 일에 서툰' 사람들이 많다. 가령 다음과 같은 경우다. 

●거래처에 일을 해주고 돈을 받아야 하는데, 결제가 늦어져도 빨리 처리해달라는 말을 잘 못한다.

●친구나 지인 사이에서는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게 모호해져서 차마 돌려달라고 하지 못한다.

●작은 물건을 사다주고 상대가 돈을 내밀면 "괜찮아, 선물이라고 생각해"하고 말한다.

●상대가 도움의 대가로 "이거 얼마 안 되지만...."하고 사례를 하면 "아니, 됐어요"라며 절대 받지 않는다.

의외로 이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마치 내 마음 속을 들어왔다가 나간 것처럼 너무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다. 여기까지 왔을 때 나는 저자의 의도대로 돈에 대한 나의 잘못된 인식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기존의 개념과 관행의 오류를 찾았으면 바꿔서 실행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하는 것 역시 자기계발서의 중요한 역할이다. 그 실행과 실천 부분에서 이 책은 몇 해 전 발간되었던 '시크릿'을 연상케 한다. 



"돈이 들어올 때에는 '감사와 기쁨'을! 돈이 나갈 때에도 '감사와 기쁨'을! 절대로 '마이넛 감정'을 실어서는 안 된다. 가장 중요한 점이다."


"'감사'는 지금 현재 '내게 있는 것'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인식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감정이다. 반대로, 나한테 '있다'거나 내가 '갖고 있다'는 걸 느끼지 못하면, 감사가 아니라 '갈망'이나 '집착'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갈망'이나 '집착'은 실제로 '있는' 것이 보이지 않거나 '가지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에 늘 다른 무언가를 갈구하는 상태다. 자신의 마음과 사고, 모든 행동들이 모두 '나한테는 없다'고 믿는 상태다. 나 자신한테 '없는 것' '갖고 있지 않는 것'을 계속 잠재의식 속에 인풋하는 행위다."


"예를 들면, 노후가 불안하기 때문에 열심히 돈을 모아야겠다는 마음은 언뜻 전향적이며 계획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돈을 모아야겠다는 동기가 '두려움'과 '불안'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불안을 없애기 위해 돈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라면, 오히려 돈의 순환은 나빠질 수 있다. (중략)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실제 '무슨 일'로 일어나는 것이다. 매사에 감사할 줄 알던 나도 그 '두려움'과 '불안'에 발목 잡혔고 '더 바라는 건 과욕'이라고 생각했다. 그 에너지가 강하다 보니 그쪽이 현실화되었던 것이다."


"돈을 부정하는 어떤 말도 피하는 게 상책이다. "나는 돈이 없어"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면 현실이 되어버린다. 말이 씨가 된다고 했다. 그건 정말 맞는 말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 나는 주변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고 나 스스로도 비굴했었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실제로 무언가를 해보면 정말로 자아상이나 마인드가 바뀌게 된다. 머릿속에서 이미지를 그리는 것뿐 아니라, 실제로 체험을 하는 걸 더 추천한다. 체험을 해보면 상상할 수 있는 게 점점 더 많아진다."


"지금 내가 가진 좋은 것들을 매일 세어보면 점점 행복의 개수가 많아진다. 반대로 부정적인 걸 센다면 불행의 개수가 점점 늘어날 뿐이다. 그게 자칫 버릇이 되면 뇌는 무의식적으로 불행을 더 찾아 나선다."


"명심해야 할 세 가지가 있다. 비교하지 않는다. 불만을 늘어놓지 않는다. 지금 가진 작은 행복을 일상에서 더 많이 찾아서 초점을 맞춘다."



세상은 내가 생각하고 말하는대로 되어가기 때문에 내 생각과 말을 올바른 방향으로 향해야 한다는 것이 시크릿이었다면 돈 역시 내가 주체가 됨으로써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쯤되면 이 책은 시크릿의 화폐버전이라 할만하다.


아쉬운 점 몇 가지도 눈에 띈다.


돈 관리는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 방법으로 한다는 17번째는 독자에 따라서 다소 위험한 발상으로 될 수도 있다. 



"자연스레 돈 관리에 신경을 전혀 안 쓰게 되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무렵부터는 돈을 쓰면 어디선가 새로 돈이 들어오는 일이 생겼다. 실제로 쇼핑을 하며 쓴 금액이 정말 그날 중에 고스란히 입금되는 경험을 여러 차례 했다. 참석하고 싶다고 생각한 심리학 트레이닝을 신청하느라 700만원을 지불하니 딱 그만큼의 수입이 바로 생기기도 했고, 코칭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600만원을 썼는데 다음 달에 그 비용을 충당할 일거리가 들어와 결과적으로 수지가 맞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꺼내면 들어온다'는 재미있는 법칙이 내 생활 속에서 실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저자도 오해 없기 바란다며 당부하고 있지만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이 그 의도와는 다르게 적지 않은 주식 폐인을 만들어 낸 것을 보면 다소 위험한 발상이 될 수도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일본 특유의 애니미즘이 투영된 것이다.



"'장지갑을 쓰면 돈이 많이 들어온다!'고 믿는 사람들은 점점 풍족해질 수 있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또 '이 부적을 가지고 다니면 금전운이 상승할 거야'하고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될 것이고, '다 쓸데없는 짓이야. 이런 거 가지고 다닌다고 돈이 들어오겠어?'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현재의 상황이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보름달을 보며 지급을 흔드는 일도 진심으로 믿고 실천하는 사람들에게는 돈이 따라온다. 굳이 보름달이 아니더라도 '나는 풍족해질 것이다'라고 늘 믿고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들에게는 돈이 따르게 돼 있다. 다시 말해, 당신이 믿고 있는 것이 현실이 된다는 이야기다."



어쨌든 ​생각한대로 우주와 세상이 움직인다는 원리와 일본 특유의 애니미즘적 미신을 어디서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는 독자의 소양에 달려있다. 아마도 실천단계에서 본말이 뒤집히는 순간에 미신으로 치닫을 것이다.



"그때그때 정리하지 않으면 흐름이 막히는 법이다. 그리고 막혔을 때는 뚫어주어야 순환이 좋아진다. 돈의 흐름도 마찬가지다. 마음을 비우고 청소를 해보자. 물건들을 보기 좋게 잘 정리하자. 어느 새 돈의 순환도 좋아질 것이다."


"오빠는 조그만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매사에 귀찮아하는 성격이지만 호기심이 왕성한 오빠는 "화장실을 깨끗이 하면 금전운이 상승한다!"는 말을 듣고 매일같이 회사의 화장실 청소를 직접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전까지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화장실 청소를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빠는 실제로 금전운이 좋아지고 있다고 느꼈다. 내내 정체 상태였던 주문도 대폭 늘었고, 까다로운 고객들에게 치이던 일도 이제는 없다고 한다. 오빠는 지금도 "화장실에는 신이 정말 있다"고 호탕하게 말하곤 한다."



예전에 직장생활할 때 "망해가는 회사는 화장실부터 더러워진다."는 말은 들어봤다. 방 청소를 하면 돈의 흐름이 뚫리고, 화장실 청소를 하면 돈이 들어온다는 말은 정리정돈에 유난을 떠는 나도 처음 듣는다. 더구나 화장실에 신이 있다니... 저자가 일본인이라는 특성을 감안하여 읽어야 할 대목이다.


이 책이 전체적으로 이런 미신적 요소가 깔려 있는 것은 아니다. 평소 사용하는 것들은 더 좋은 것으로 엄선한다는 22번째에서는 좀 더 납득하기 쉬운 새로운 소비개념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시계는 거의 매일 차기 때문에 300만원을 줬어도 20년을 사용하면 한 달의 비용은 1만2,500원이다. 유행을 타지 않는 시계는 충분히 20년 넘게 쓸 수 있는 것들이 많다. 30만원 주고 산 시계가 싫증나거나 유행이 지나서 2년밖에 차지 않았다면, 한 달의 비용은 300만원짜리 시계와 동일한 1만 2,500원이다. 한 달의 비용이 같다면 300만원짜리 시계와 30만원짜리 시계 중 당신은 어느 것을 선택하겠는가?"



"왜 그런지 돈을 끌어당기는 여자의 39가지 습관"이라는 다소 긴 제목을 가진 이 책은 돈에 대해 솔직한 담론을 벌이며 우리가 항상 전전긍긍하는 돈 문제에 있어서도 긍정의 에너지를 만들 것을 주문하고 있다. 


저자는 에필로그를 통해 "돈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모을 때가 아니라, 돈을 가지고 당신이 기뻐할 일을 할 수 있을 때다." 라고 당부한다.


이 책을 통해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이 없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임으로써 비굴해졌던 나의 모습을 바라볼 수있었다. 또한 자칫 수동적으로 되기 쉬운 돈 문제에 허세가 아닌 긍정의 마인드로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라는 것은 고지식했던 나에게 매우 유익하다. 다른 독자들은 그것이 정답임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돈에 대한 솔직한 담론을 통해 작은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어 유익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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