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 - 서울대생 1100명을 심층조사한 교육 탐사 프로젝트
이혜정 지음 / 다산에듀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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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을 보면 선입관이 생길 수 밖에 없다. 한국 특유의 교육열에 편승한 '내 새끼만 성공시키기' 부류의 책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은 프롤로그를 읽으며 곧바로 깨진다. 

 

객관적인 데이터에 근거한 많은 연구자료와 인터뷰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양서적이면서도 한편의 완성된 논문이다.

 

25개월 된 딸아이가 있는 아빠로서 아무래도 육아와 교육에도 관심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최근에 집어 든 책이 "프랑스 아이들은 왜 말대꾸를 하지 않을까"였다. 캐서린 크로퍼드라는 저자는 스스로 책을 쓰기 위해 방대한 자료조사와 인터뷰를 위해 수차례 프랑스 현지를 방문했다면서도 정작 책의 내용에 데이터가 전혀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변의 프랑스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이렇더라는 식의 이야기로 점철되고 있다. 그렇다보니 어디까지 저자의 말을 믿어야 할지, 무엇이 프랑스 육아의 진정한 실태인지 즉, 신빙성이 크지 않았다.


그 이후에 보게 된 "세계 최고의 학교는 왜 인성에 집중할까"는 저자가 직접 보고 겪은 미국의 명문고 필립스 엑시터 고등학교의 교육현장을 생생하게 보여 줌으로써 우리의 교육 시스템과의 차이점을 잘 보여준다. 교육 현장의 구체성은 있지만 거시적 관점에서의 문제제기와 대안점은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를 먼저 읽고 "세계 최고의 학교는 왜 인성에 집중할까"를 읽는다면 올바른 교육에 관한 개념 정립과 더불어 올바른 교육현장의 뚜렷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책을 반드시 함께 읽을 것을 추천한다.


각 3부로 구성된 두 개의 파트, 총 6부로 구성된 이 책의 내용은 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공부법 조사에서 시작해서 한국의 교육실태와 문제점, 향후 지향해야 할 교육의 방향과 방법론까지 명확하게 제시 해 주고 있다.


저자는 프롤로그를 통해 독자가 두 가지 메시지를 얻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는 서울대에서 고학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의 교육이 진정한 인재를 육성하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라고 한다.


이 책이 '교육혁명의 고전이 될 명저'가 될 것이라고 주저없이 말 할 수 있는 것은 내겐 술안주거리에 불과하던 한국의 교육문제와 그 실태에 대한 비판들, 더불어 대한민국이 스스로 진단하는 교육의 문제점과 그 대안이 모두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교육문제를 뚜렷한 윤곽으로 바라 볼 수 있게 해 주는 책이다. '주입식 교육'라고 정의 된 기존 관념의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대안없는 비판만 했던 내게 패러다임을 전환시켜 줄 거시적 관점과 다각도에서 바라보는 교육현장의 모습을 제시 해 주고 있다. 

 

어려운 어휘나 전문용어 하나 사용하지 않고도 내용만으로 교육공학 전문가로서 저자의 전문성이 진하게 베어 나온다. 


저자는 주입식 교육이라는 가르치는 교사나 교수를 주체로 하는 표현보다는 배우는 학생을 주체로 해서 '수용적 사고력'이라고 한다. 그 반대편에는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적 사고력'을 배치하여 올바른 교육의 목표개념을 정립하고 있다. 단어의 선택만 보더라도 교육의 주체는 교사나 교수가 아닌 학생이라는 저자 스스로의 논거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 책을 보면서 첫 번째 감탄사는 서울대 상위권 학생들의 공부법에서 나왔다. 

교수의 말을 농담은 물론 조사 하나까지 빠트리지 않고 1차 필기한 후 복습할 때 자신의 언어로 2차로 정리하고 시험 때까지 반복적으로 외운다는 설문조사를 보고 솔직히 놀라야 할지 비난을 해야 할지 모를 복잡한 심정이었다. 


나는 그런 경쟁 속에서 도태됐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멍청하게도 내가 학창시절 이런 류의 경쟁을 했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됐기 때문이다. 한 때 강남8학군의 핵이었던 상문고등학교 재학시절 어느 영어선생님이 우리에게 "외워! 외워! 외우는 게 공부하는 거야!"라고 했던 말이 진실이었음을 이제서야 알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상위권 학점을 유지하기 위해 평상 시의 감정조절까지도 한다는 어느 학생의 인터뷰 내용을 볼 땐 의자에 정강이를 찍힐 때처럼 '악!'하는 소리도 나지 않는다. 

 

두 번째는 "학습은 위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편견"이 틀렸다고 했을 때이다. 다시 한번 나의 고지식함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비판적 창의적 학습은 수용적 학습 후에야 가능한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중략)신체의 근육을 기르는 것도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고 장시간 꾸준히 훈련해야 하듯이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을 기르는 것도 몇 달이든 몇 년이든 지속적으로 훈련되어야만 길러질 수 있다. 수용적 학습을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 비판적 창의적이 되는 것이 아니다.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이 길러질 수 있는 환경에서 수용적 학습 이상으로 노력하고 연마되어야 가능하다."(본문 70쪽)


세 번째는 국가에서 정한 '학습진도'를 없애자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국가가 짜놓은 일치된 교육과정에 의해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어 전국 어느 학교에서도 학생들은 같은 내용을 같은 방법으로 같은 진도에 맞추어 배운다. 교사 재량으로 할 수 있는 활동 과제나 그룹 수업도 엇비슷하다. 준비물도 똑같으니 학교 앞 문방구에서는 항상 맞춤형으로 구비되어 있다. 이때쯤이면 어떤 준비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문방구도 빤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교육과정이 정해 놓은 '진도'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 이는 정말 많은 것을 야기한다. 우선, 통일된 진도는 가르치는 내용과 방법이 일치해야만 가능하다. 또한 그 진도를 맞추어 나가야 하기 때문에 진도에 방해될 것 같은 학생들의 수많은 창의적 질문들이 "진도 나가야 하니 쓸데없는 질문은 하지 마라"라는 말로 일축되어 묻혀 버리고 만다.

(중략)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진도'가 실은 그리 당연한 것이 아니다. 선진국에서는 대부분 국가적으로 통일된 진도가 없다. 미국은 물론이고 공교육이 미국보다 우수하다고 평가받는 캐나다도 마찬가지다. 내가 학부모로서 미국과 캐나다의 교육을 지켜보니 대략 무슨 역량을 길러야 하는지에 대한 굵직한 가이드라인 정도만 있을 뿐 구체적으로 가르치는 소재와 진도는 개개의 교사들마다 다르고 진도를 정하는 주체도 교사 자신이었다." (본문 182쪽)


이 부분에서 교육 전문가로서 저자의 폭넓은 시야가 잘 드러난다. 그 동안 수용적 사고력으로 단련 받은 나 같은 일반인들은 잘 알지 못하는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사실 앞서 "세계 최고의 학교는 왜 인성에 집중할까?"라는 책에서 하크네스식 수업이라고 일컫는 토론식 수업을 소개할 때 내가 가장 우려스럽고 궁금했던 것이 바로 '그럼 도대체 진도는 어떻게 나갈까?'였다. 즉 이 의문자체가 우문(愚問)이었던 것이다. 수용적 사고력의 대표적인 폐해를 직접 경험한 것이다.


네 번째는 이러한 국가 정책적 진도라는 것을 거시적 가이드라인으로 바꾸고 교육권을 국가에서 교사에게로 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교사들의 수준이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 봐도 절대 떨어지지 않으니 우리 교사들을 믿고 입시 위주의 수업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수업과 평가 기준을 설계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언론을 통해서 듣던 '교권'이라는 말에 이런 배경과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줄 미쳐 몰랐다. 


이 책을 읽으면서 크게 놀라고 공감할만한 내용을 이렇게 네 가지 정도로 요약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끝까지 읽는 내내 경이롭기까지 했다. 


서울대와 미시건대 학생들의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그 차이점을 문화적, 민족적, 역사적 영향까지를 고려하여 하나씩 차근차근 풀어간다. 


곳곳에 인상적인 부분들이 무척이나 많은데 그 중 저자가 하와이 동서문화센터 초빙으로 참여했던 리더십 연수에서 나온 죽은 말(Dead Horse) 이야기는 우리의 교육현실을 너무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1992년에 발표된 락그룹 Guns&Roses의 Use Your Illusion 1 앨범에 있는 'Dead Horse'라는 곡처럼 이미 엎질러진 물 또는 돌이킬 수 없이 저질러진 일이라는 의미로써 죽은 말이다. 이 이야기는 정말이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이 일화를 통해 그 동안 언론을 통해 알려진 교육정책들과 현재 벌어지고 있는 자사고 갈등이 교육문제의 본질과 얼마나 괴리가 큰 사안인지 알게 되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시야가 열린 것이다.

 

파트1에서 문제점과 실태를 보여줬다면 파트2에서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책의 절반을 차지하는 대안제시는 판에 박힌 듯한 내용을 열거하는 것이 아니라 파트1의 내용을 근거로 끊임없이 교육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루한 표현의 반복은 없다.

 

'지식소비자가 아닌 지식생산자를 기르는 교육', '문제해결력에서 문제발견력을 기르는 교육', '수업의 질은 수업의 디자인이 결정한다', '지식을 제시 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말(질문)하고 생각하는 교육', '집어넣는 교육이 아니라 꺼내는 교육'이라는 부분은 구구절절이 무릎을 치며 공감하게 된다.

 

특히 저자의 '문제발견력'이라는 표현은 탁월하다. 나는 지금껏 성실하게 일 해오고 정직하게 열심히 살았지만 주어진 일에 대해서였고,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에 탁월했다. 자존심과 업무추진력도 강해 능동적이지만 어디까지나 주어진 일에 한 해서였다. 뜻하지 않은 실직처럼 외부에서 나에게 목표나 해야 할 일이 주어지지 않으면 무엇을 할지 모르고 방황했던 것이다. 도대체 창의력이란 찾아 볼 수도 없고 스티브 잡스와 같은 생각을 스스로 한다는 것은 파격 그 자체였다. 그 이유를 마흔이 훌쩍 넘은 지금에 와서야 '문제해결력이 아닌 문제발견력을 기르는 교육'이라는 것에서 깨달았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더불어 말의 맥락과 글의 맥락이 서로 다르고 말로써 생각을 정리하는 사람과 글로써 생각을 정리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내성적이라 의사표현에 소극적인 학생의 말문을 열게 만드는 방법 등 교육/교수법에 대한 내용들도 맛볼 수 있다.


논거로써 여러 논문과 이론을 제시하고 있으며 논지에 의문이 생길만한 곳에서는 실험과 설문조사를 통해 얻은 구체적 데이터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저자의 활발하고 폭넓은 국내외 활동을 통해 얻은 경험과 지식을 모두 공유하여 교육의 목표와 방향설정, 구체적 실행방안 등을 제시하고 있다. 


교육공학자답게 책(논문)도 자신이 말하고자하는 내용을 유기적으로 구성하여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오랜만에 책의 모든 것을 흡수할 듯 빠져들어 풍요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기분을 맛보게 해주는 책이었다. 더구나 관념에 머무는 추상적 내용들이 아니라 실용적으로도 매우 유용하기에 그 기쁨은 더욱 크다.


향후에 만약 우리나라 교육이 혁신된다면 이 책은 반드시 교육혁명의 고전이 될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이 책을 반드시 읽기 바란다. 그래야만 교육혁명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단, 지금에 한 가지 부작용이라면 적나라한 교육실상이 제대로 보이면서 내 아이를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 맡길 자신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아이가 공부를 못할까 싶어서가 아니다. 

 

어제는(2014. 11. 2) 페이스북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경향신문 기사가 올라왔다.

 

"저는 점심 때마다 꼴찌로 급식을 받아요. 성적이 꼴찌이기 때문이예요. 우리 반은 시험 성적순대로 밥을 먹어요. 전 성적이 안올라서 1년 내내 맨 꼴찌로 밥을 먹었어요. - 대구 칠곡의 한 초등생, 9세"

 

그냥 무시할 수도 없는 기사다. 한숨만 나온다.

 

한국의 교육은 항상 정치권과 밀접하게 반응하며 부동산과 연동되어 왔다. 한국 현대사가 그랬다.

군부 독재시절부터 땅 덩어리 좁은 나라에서 부동산 정책으로 국가의 경기부양책을 만들어 왔다. 그 부동산 정책을 만들어가는 방법으로 국민의 교육열을 등에 업은 학군제 편성이었다.

 

교육정책은 항상 '평준화'라는 우습지도 않은 말을 목표로 해왔지만 오히려 입시제도의 과열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 그래야만 교육과 경졔를 계속 연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출마 때마다 교육정책을 공약으로 빠짐없이 내건다. 이렇다보니 한국의 교육은 집권세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며 장기적 계획들이 그 시비를 떠나 정권이 바뀌면 언제나 미완으로 끝났다. 


학생과 학부모는 번번이 바뀌는 입시제도나 교육정책에 시달리고 힘들어하지만 이런 교육정책이 떠받치고 있는 것은 상승하는 부동산 물가와 심화되는 빈부격차뿐이다.

 

일본 소카대학교의 창립자인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박사는 이미 몇 십년전부터 민주주의의 "3권분립"에 교육부를 더 해 "4권분립"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래야만 정치로부터 교육이 자유롭게 독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 

 

탁월한 식견인 이 제안을 반드시 우리나라에 먼저 적용시키면 어떨까 싶다.

 

 

 

이제 이 책의 에필로그에 있는 저저의 말을 끝으로 소개한다.

 

"인류의 역사는 제한시간 내에 정해진 100미터를 가장 빨리 뛰는 사람보다는,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무엇을, 어디를, 얼만큼, 어떻게 뛸지를 찾아내는 사람에 의해 발달해 왔다. 이미 알려진 문제를 푸는 사람보다는 발견되지 않은 문제를 찾아내는 사람에 의해 인류 문명이 진화되어 왔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나라 교육은 정해진 100미터를 가장 정확하게 빨리 뛰는 사람을 길러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반도 반만년 역사상 처음 찾아온, 세계 속에서 발돋움할 수 있는 이 시점에, 우리에게 필요한 교육은 주어진 거리를 빨리 뛰는 사람보다는 주어지지 않은 길을 찾아서 그곳에서 뛸지, 걸을지, 차를 탈지, 혹은 다른 무엇을 할지 찾아내는 사람을 길러 내는 교육이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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