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치맨 Watchmen 2 - 시공 그래픽 노블 시공그래픽노블
Alan Moore 지음, 정지욱 옮김 / 시공사(만화)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오늘 아침 골목에 널브러진 개의 시체. 그 터진 배 위로 그려진 타이어 자국.
이 도시는 나를 두려워하고 있다. 나는 이 도시의 진짜 모습을 보았다.

-'로어셰크의 일기' 중에서」


지금은 2010년 12월 19일, 나는 서평을 쓸 생각이고 아마도 당신은 뭔가 읽을만한 서평을 기대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1986년, 'DC 코믹스'에서 새로운 만화를 선보였는데 1953년에 태어난 '앨런 무어'가 쓰고 1949년에 태어난 '데이브 기본즈'가 그렸으며 역시 1949년에 태어난 '존 히긴스'가 색깔을 입힌 작품으로, 그래픽노블의 전설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지금은 1938년 6월, <액션 코믹스_Action Comics> 1호에 '제리 시겔_Jerry Siegel'이 쓰고 '조 슈스터_Joe Shuster'가 그린 슈퍼히어로물 <슈퍼맨_Superman>이 실렸다. 그리고 올 가을의 어느날 밤, 귀가하던 연인들을 폭행하던 무장 강도들이 얼굴에 무언가를 뒤집어쓰고 갑자기 골목에 나타난 어떤 사람에 의해 제압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데 이어 키가 크고, 레슬링 선수 같은 체구에, 검은 후드와 망토를 걸치고 올가미를 목에 매단 사람이 슈퍼마켓 강도를 제압하는 사건이 일주일 간격으로 발생하는데 이는 현실세계 최초의 코스튬히어로 '후디드 저스티스'의 탄생을 알리는 사건이다. 그리고 지금은 1950년대, 한때는 존경의 대상이기도 했던 코스튬히어로의 시대는 급속히 몰락했는데, 간혹 신문기사에 오르내리는 논조는 조롱거리 일색이거나 후드를 쓴 자경단원에 대한 우스갯소리, 또는 수 없이 많은 저속한 농담들을 만들어냈을뿐 아니라 급기야는 미국내의 공산주의 수사기관인 HUAC(House Un-American Activities Committee)에 불려가 개인 신상을 밝히는 증언을 해야만 하는 상황까지 닥쳤으며, 이 당시 조사 과정의 후유증으로 모스맨은 알콜중독에 빠지게 되고 결국 정신병원에 감금된다. 그러나 코미디언은 정부기관과의 우호관계를 지속한 결과 애국의 상징으로써 수시로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한다.

지금은 1939년 1월, 어린시절부터 권선징악이라는 절대적 가치를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던 현직 경찰관이 '후디드 저스티스_Hooded Justice'의 등장에 자극받아 직접 제작한 코스튬을 입고 스스로를 '나이트 아울_Nite Owl'로 부르며 범죄와의 전쟁에 뛰어들어 미디어에서 관심을 갖게 된다. 그로부터 한달 뒤 '더 실루엣_The Silhouette'이라는 여성 히어로가 아동 포르노 밀매업자 폭행사건으로 신문에 대서특필되고 뒤이어 나방같은 옷을 입은 '모스맨_Mothman'과 노란색 작업복 차림의 '코미디언_The Comedian', 그리고 전직 미해병대 중위출신의 '캡틴 메트로폴리스_Captain Metropolis', 일시적인 유행에 편승한 영리추구가 목적이었던 '실크 스펙터_Silk Spectre'가 등장했으며 끝으로, 대학교 운동선수 출신인 '달러 빌_Dollar Bill'에 이르기까지 전국 각지에서 총 여덟 명의 코스튬히어로_costumed heroes가 선_善을 대변하며 악_惡에 맞서 활동을 시작하던 어느날, 그들의 재능과 경험을 모아 조직을 만들자는 캡틴 메트로폴리스의 제안으로 이번 가을에 본격 코스튬히어로 그룹 '미닛멘_The Minutemen'이 결성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1966년, 또다시 캡틴 메트로폴리스의 제안으로 새로운 사회악에 맞서기 위한 슈퍼히어로 그룹 '크라임 버스터즈_Crimebusters'가 결성되었다. 멤버는 총 일곱 명으로 '2대 실크 스펙터_Silk Spectre II'와 '오지맨디어스_Ozymandias', '닥터 맨해튼_Doctor Manhattan', 팀을 이뤄 갱단 소탕에 제법 괜찮은 성과를 올리고 있던 '2대 나이트 아울_Nite Owl II'과 '로어셰크_Rorschach', 그리고 그동안 독자적인 활동을 해오던 스마일맨 '코미디언'이 다시 합세했다.

지금은 1955년, 증언을 거부하며 끝까지 버티던 코스튬히어로의 원조 후디드 저스티스는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는 종적을 감춘다. 그리고 지금은 1940년, 미팅도 할겸 단체사진도 찍을겸 미닛멘 전원이 모였다가 트로피 방에서 옷을 갈아 입던 실크 스펙터가 성폭행을 당하는 일이 발생하고 이 일로 코미디언이 강제 탈퇴 당한다. 그리고 1942년, 코미디언은 남태평양에서 전쟁영웅으로 명성을 날리며 건재를 과시한다.
지금은 1958년, '람세스 2세_Ramses II'의 그리스식 이름인 '오지맨디어스'라 불리는 청년이 거대 마약집단을 소탕하며 이름을 알린다. 그리고 지금은 1946년, 동성연애자 혐의를 받던 더 실루엣이 불명예스러운 은퇴를 하고 그로부터 6주후 애인과 함께 살해당한다. 같은 해, 은행에 고용된 달러 빌이 은행강도를 막으려다 총격사건이 발생하면서 사망하자 미닛멘을 둘러싼 상황은 점차 악화되기 시작한다.
지금은 1959년, 프린스턴에서 원자물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힐라 콤플렉스 테스트 기지에 취업한 시계방 집 아들은 연구소내 방사능 금고실에서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사고를 당하지만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재조립되며 부활한다. 그리고 지금은 1947년, 실크 스펙터가 자신의 에이전트 '로렌스 셰크스네이더_Laurence Schexnayder'와 결혼하면서 은퇴를 선언하자 미닛멘은 결정적인 타격을 받게된다.
지금은 1974년, 코스튬히어로 그룹 결성에 적극적이었던 캡틴 메트로폴리스는 교통사고로 목이 잘리고 만다. 그리고 지금은 1960년, 모든 물질을 원자구조로 재구성할 수 있는 '닥터 맨해튼'이 세상에 공개되지만, 세상은 아직 그의 존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의 영향력이 어디까지 미치는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1956년, 실종된 서커스 차력사 '롤프 뮐러_Rolf Müller'로 추정되는 변사체가 보스톤 해안에서 발견되었는데 그가 후디드 저스티스와 동일인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그 누구도 증명할 수는 없지만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으며,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완벽히 이해하고 있는 코미디언은 이 일에 어떤 식으로든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지금은 1987년, 총 열두 개 챕터의 연재가 끝났고 이제 <왓치맨>은 그래픽노블의 전설로 기억되고 기록될 것이다.

지금은 1949년, 멤버의 절반이 은퇴한 가운데 더이상 범죄와의 전쟁에 흥미를 잃고 무수한 상처만 남은 미닛멘은 해체를 선언한다. 같은 해에 '로렐 제인'이 태어나는데 똑똑하고 원기왕성한 소녀로 자라날 그녀는 훗날 어머니의 뒤를 이어 '2대 실크스펙터_Silk Spectre II'로 활동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은 1977년, 슈퍼히어로의 활약으로 설 자리를 잃은 경찰들이 "감시자는 누가 감시하는가?_Who watches the watchmen?"라는 구호와 함께 전국적인 파업에 들어가 연일 데모를 벌이며 혼돈과 공포를 조장하였고, 상원의원 '킨'의 제의에 따라 정부의 허가없이 범죄와 싸우는 것을 금지하는 킨 법령이 제정되면서 모든 슈퍼히어로가 은퇴하거나 정체를 공개하게 되었는데, 오직 로어셰크만이 연쇄강간범의 시체를 경찰서 앞에 보란듯이 떨구는 것으로 자신의 거부 의사를 명확하게 밝혔다. 그런가하면 비밀스런 외교업무를 성공적으로 해결해낸 코미디언은 이번에도 법의 간섭을 완벽하게 벗어나며 아직도 건재함을 과시한다. 지금은 1988년, <왓치맨>은 세계 최고 권위의 SF문학상인 '휴고 상_Hugo Awards'에서 Other Forms 부문을 수상했다. 그리고 지금은 2008년 5월 25일, <왓치맨>의 한국어판이 출간되었다. 제본상의 문제로 두고두고 논란이 되지만 아직은 아무도 모르거나 알더라도 신경쓰지 않는다.

지금은 1985년 10월 12일, 초대 나이트 아울은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면서 토요일 밤마다 2대 나이트 아울을 만나 맥주 한잔 마시며 지나간 얘기 나누는 것을 소일거리로 삼고 있다. 초대 실크 스펙터는 캘리포니아의 휴양지에서 여생을 편안히 보낼 궁리에 빠져있다. 모스맨은 메인 주에 있는 정신병원에 아직 갇혀있다. 닥터 맨해튼은 2대 실크 스펙터와 함께 있는 록펠러 군사연구소에서 초대칭 이론 증명에 몰두하고 있다. 오지맨디아스는 진작에 뛰어든 사업전선에서 놀라운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으며 인류와 세상을 구원할 새로운 사업구상에 여념이 없다. 로어셰크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1985년 10월 12일, 오늘 밤, 코미디언이 살해당했다......

지금은 2010년 12월 19일, 나는 '알아도 그만이고, 몰라도 그만'인 코스튬히어로의 역사를 앞뒤없이 나열하는 것으로 <왓치맨>의 서평(?)을 끝냈다. 그래픽노블의 전설로 기억되고 기록될 <왓치맨>의 진짜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그 어떤 서평을 기대했든 이제 당신은 <왓치맨>을 읽을 차례다.
그리고 또다시 2010년 12월 19일, 감히 말하노라니 <왓치맨>은, "그림이기에 만화를 넘어선 예술이며, 문자이기에 소설을 넘어선 문학"이다.
반드시 읽어보기를 바란다.





덧, 이 작품의 헤드카피는 "만약 그래픽 노블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면, Watchmen으로 시작하라."며 마치 피를 토해내듯 외치고 있는데, 이 무슨 큰일날 소리를? 당치도 않다!
'그래픽 노블의 시작'을 <왓치맨_Watchmen>으로 한다는 것은, '판타지의 시작'을 <반지의 제왕_The Lord of the Rings>으로 한다는 것과 같을 뿐 아니라, '미스터리의 시작'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_And Then There Were None>로 한다는 것과도 같으며, 심지어 '무협지의 시작'을 <영웅문_英雄門>으로 한다는 것과 같은 얘기다.(몇몇 분들이 짐작했을 것 같아 'SF의 시작'을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_2001: A Space Odyssey>로 한다는 것과 같다 라고는 차마 말 못 하겠다...)
그러나, "그리고 만약 Watchmen을 읽어본 적이 있다면, 지금이 또 다시 읽을 시간이다."라는 말은 참이요, 진리이니 믿으시길!  

덧-1,  표지는 두 가지로, 처음에 출간됐던 '스마일 버전'이 내지가 뜯겨져 나가는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제책문제를 해결한 '왓치맨 이미지 버전'이 두 번째 표지로 출간된 상태임.(교환해주면 좋을텐데...) 

덧덧,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이 이스터에그_Easter Egg처럼 숨어있는 본문 내용은 물론이거니와 읽어도 그만이고 안 읽어도 그만이지만 읽어보면 결코 후회하지 않을 재미난 내용들이 실려있는 부록(홀리스 메이슨의 자서전을 비롯한 잡지기사와 각종 서신따위 등등)에서 맛볼 수 있는 깊이와 재미 또한 만만치 않으니 빼먹지 마시기를 부탁드리되, <왓치맨>을 읽어볼까 하다가 가벼운(...) 만화가 아닌 방대한 텍스트에 겁부터 먹고 포기한 분들한테는 일단, '잭 스나이더'의 영화 [왓치맨]을 강추하니 영화가 충분히 맘에 들었다면, 원작만화도 꼭 찾아 읽으시라. 더더욱 만족하리라!
혹시라도, 영화가 별로였다면 반드시 원작을 읽으시라! 그때는 만족할 터이니. 

덧덧덧, 「만약 이것을 지금 읽고 있다면, 내가 죽었든 살았든, 당신은 진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음모의 정확한 성격이 무엇이든 그의 책임이다. (……) 이것이 당신한테 도달할 수 있을 때까지 세상이 살아남기를 바라지만 (……) 개인적으로 후회는 없다. 인생을 살았고, 타협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불평 없이 그림자 속으로 들어간다.


-'로어셰크의 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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