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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리아드 (양장, 한정판)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송경아 옮김 / 오멜라스(웅진)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자, 이것은 실없이 꾸며낸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세상에는 우화가 충분히 많이 돌아다니니까.
그렇지만 사실이 아니라 해도 이 이야기에는 분별과 교훈이 깃들어 있으며, 또한 재미있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전해질 가치가 있으리라.- 스타니스와프 렘」
우선 당신의 '먼치킨 지수'는 얼마나 되는지 테스트!
스타니스와프 렘은 누구인가? 하고 물었을 때, "<솔라리스>의 작가요." 하는 당신은 먼치킨이 아니다.
스타니스와프 렘은 누구인가?'하고 물었을 때, "<용과 싸운 컴퓨터 이야기>도 썼지요." 한다면 당신은 먼치킨일지도 모른다.
스타니스와프 렘은 누구인가? 하고 물었을 때, "<사이버리아드>야말로 그의 대표작이죠." 하는 당신은 틀림없는 먼치킨이다.
과학소설 전문 출판사 오멜라스의 첫 번째 외출 혹은 '스타니스와프 렘'이 들려주는 '가능한 한 가장 발전한 단계'의 찬란하고 묵직한 우주적 농담 퍼레이드, <사이버리아드>!
이 작품은 비영어권 과학소설 작가 가운데 프랑스의 '쥘 베른' 이후 과학소설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평가받는다는 폴란드 작가 스타니스와프 렘이 선보이는 연작단편집으로, 미개 행성 또는 왕국을 대상으로 '영구 전능 증서'에 근거한 전문지식 전파라는 우주적 사명감을 안고 우주 여행(을 빙자한 그 유명한 외출!)에 나선 두 창조자 로봇 '트루를_Trurl'과 '클라포시우스_Klapaucius'가 겪는 좌충우돌 한바탕 난리법석 소란극을 다루고 있는 일종의 '스페이스슬랩스틱코미디물'!
월간 <판타스틱> 6월호에 실린 단편 <첫 번째 외출 혹은 가르강튀아의 덫>을 통해 렘의 놀라운 재치와 유머감각, 그리고 상상력을 맛 본 독자들이(더불어 1993년 도솔에서 출간된 <세계 SF걸작선>에 실린 단편 <용과 싸운 컴퓨터 이야기>를 읽으며 그의 또 다른 작품을 읽고싶다는 욕망을 가슴속에서 조용히, 그리고 소중히 키워왔을 독자들까지 포함해서!) 단편집 <사이버리아드>에 대한 기대가 컸으리라는 것은 2+2는 결코 7이 아닌 4인 것만큼이나 자명한 일일 터, 마침내 출간된 <사이버리아드>는 국내의 과학소설 독자들한테는 두 가지 점에서 충격에 가까울 정도의 즐거움과 만족감을 주고 있다.
첫 번째로는 명품외장. 초호화 재벌영웅 [아이언 맨]의 특제수트 못지 않은 삐까뻔쩍으리으리깔끔쌈빡한 외형은 그 우아하기 짝이 없는 자태만으로도 소장하고플 정도의 예술적 가치가 느껴지는지라 기꺼이 들고 다니며 여기저기 자랑하고픈 충동을 억누르기 힘들 지경인데(행여나 표지에 손상이라도 당할까봐 들고다니기가 부담스러울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나들이 때면 반드시 지참해서 손에 쥐고 다니고 싶을정도!) 간혹 비과학소설과 비교당했을 때 내용면에서는 하등 뒤떨어짐이 없으나 외형면에서 그들중 최상위층만큼의 고급스러움이 부족했던 까닭에 도매금으로 천대(?)받던 과학소설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이번 기회에 조금은 바뀌게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결코 싸지않은 가격임에도 책 자체는 정가보다 220배, 아니 347배쯤 되는 가치가 있다.(그 사양이 호화롭기 짝이 없는 이 작품은 가격대비 탁월한 성능으로 인해 평생을 가져갈 만한 작품이기에 더 늦기전에 초판한정판 구입을 고려해 봐야할 듯~ 벌써 보급판을 준비하고 있단다!) 바야흐로 '우리'도 이제는 이정도 수준의 책을 만날 때가 된 것이다!(이 책을 유광 코팅된 종이와 초상화 제작 비용은 물론 가죽 장정을 씌워가면서까지 위대한 광채가 빛나는 책을 만드느라 사비를 탈탈 턴 끝에 마침내 유산의 씨까지 말려버린 비운의 예언자 '클로리안 테오레티쿠스'한테 바친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진품내용. <사이버리아드>는 1992년 국내에 최초로 번역출간된 렘의 작품인 청담사판 <솔라리스>를 읽으며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바다에 풍~덩! 빠졌다가 숨이 꼴딱꼴딱 넘어갈 무렵에야 겨우겨우 헤엄쳐 나와 뭍에 오른뒤 투덜투덜대며 렘이라는 작가에 대해 '나름의 정의'를 내리고 있었을 수많은 과학소설 독자들을 일순간 즐겁고 흥분되는 당혹감에 빠뜨리게 만들 정도로 놀라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은 '사이버 우화'라는 새로운 학문(!)에 대한 스타니스와프 렘식 코믹철학 강의가 시작되자마자 폭탄처럼 펑펑! 뻥뻥! 터지는 장중하고 관능적인 풍자와 해학!
"무려 8층 높이에 달하는 거대한 '생각 기계'를 만들었는데 완성하고보니 세상에서 가장 멍청할 뿐만 아니라 노새처럼 고집도 센 '강철 백치'였다. 게다가..."로 시작하는 <트루를의 기계>를 비롯해 창조자 로봇과 피조물 로봇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너무나 흥겨운(!) '사이버네틱스의 노래'에 푹 빠져 눈 감고 즐기다보면 어느 순간, 철컥!하며 反戰인 동시에 反轉이 되는 반전소설 '가르강티우스의 덫'에 걸려 꼼짝달싹 못 하게 되고 뒤이어 전자 시인의 주옥같은 소네트가 시작되면서 두 창조자 로봇의 우주 나들이 에피소드 '트루를과 클라포시우스의 일곱 가지 여행 이야기'와 마무리로 덧글처럼 달린 '키프로에로티콘 혹은 마음의 일탈, 초고착과 탈선 이야기에서'까지 쉼없이 이어지는 렘의 재기발랄함을 읽고보고먹고맡고느낄수 있는데 진정 이 명랑하고 쾌활한 <사이버리아드>의 세계가 그 암울하고 울적했던 <솔라리스>의 세계를 만들었던 작가가 창조한 것이란 말이던가?싶은 의혹이 절로 생겨날 지경이고보니 우리의 기대감을 16*5*10^24*10^42배만큼이나 만족시켜주는 <사이버리아드>의 출간이 렘의 진가를 비로소 확인함과 동시에 렘에 대한 재해석 및 재평가가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드는 것도 전혀 무리가 아니다.(다행인 것은 우리가 미처 알지못했던 렘의 우주적 상상력이 충만한 작품은 이것이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니라는 점. 트루를과 클라포시우스의 뒤를 잇는 '욘 박사'와 '피륵스'가 다음 우주 여행을 기다리고 있다~)
<사이버리아드>의 출간과 함께 그동안 코믹과학소설의 최고봉이라 불리웠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이제 그만 정상의 자리를 내주어야 할듯한데("내려왓! 어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영국식(?) 유머가 통 이해가 안 돼서 그다지 재미가 없었다는 독자들은 지역적/정치적 특정편향성이 없이 대기권을 벗어나 무한대로 마구마구 퍼져 나가는 렘의 우주적 상상력에 근거한 우주적 유머가 유감없이 빛을 발하는 <사이버리아드>를 통해 새로운 과학소설 읽기를 시작해 보길 권장한다.(어제까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참고하며 무한장대한 우주 공간을 방황하고 있던 여행자들이여, 지금 이 순간부터는 어느 행성 아래, 어느 우주 공간을 지나든 빗발처럼 퍼붓는 <사이버리아드>표 웃음폭탄을 조심하랏!)
끝으로, 위대한 현자 '폴리페이즈'의 진심어린 충고(?) 한마디를 소개한다. "창백얼굴들이여, 20세기를 살던 과거형 인류가 읽었던 여우, 늑대가 나오는 '이솝 우화'는 이제 그만 읽어라. 아니, 이제 그만 잊어라. 22세기를 인식하며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미래형 인류라면 이제부터라도 트루를과 클라포시우스가 나오는 '렘 우화'를 읽을 때이다."
덧, 이쯤에서 퀴즈!
1. '스타니스와프 렘'과 아서 클라크 중 누가 더 '하드'한가?
2. '스타니스와프 렘'과 아이작 아시모프 중 누가 더 '해박'한가?
3. '스타니스와프 렘'과 로버트 하인라인 중 누가 더 '재미'있는가?...
(참고로 렘의 위트가 여실히 드러나는 몇몇 부분을 인용해 본다.)
#1. "시를 하나 지으라고 해. 이발에 대한 시를 짓는 거야! 하지만 고상하고, 고귀하고, 비극적이고, 영원하고, 사랑에 가득 차 있고, 배신이 등장하고, 인과응보가 있고, 확실한 파멸 앞에서 보이는 묵묵한 영웅적 태도를 그려야 해! 6행으로, 완전히 운율을 맞추고, 모든 단어는 S로 시작해야 해!"
라는 클라포시우스의 명령에 대한 전자 시인의 답시.(해석은 본문을 확인할 것~)
"Seduced, shaggy Samson snored.
She scissored short. Sorely shorn,
Soon shackled slave, Samson sighed,
Silently scheming,
Sightlessly seeking
Some savage, spectacular suicide."
_<첫 번째 외출(A) 혹은 트루를의 전자 시인>에서 인용.
#2. "그들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앉아 시뮬레이션 실험에 들러붙었다. 즉 수학적으로 모든 것을 종이 위에 계산하기 시작한 것이다......중략......그 짐승은 왕의 다항 강타를 받아 맹렬하게 몸부림치고 중적분을 꿈틀거리다가, 무너져 내려 불확정항의 무한 연속이 되었다. 그러더니 다시 몸을 추슬러 n제곱까지 일어났는데, 왕이 그놈을 미분과 편미분으로 세게 내리쳐 놈의 푸리에 계수가 모두 상쇄되어 버렸다(리만의 절리를 보시라)......또 중략......이번에는 텐서 매트릭스와 대大정규 앙상블을 총동원해서 엄청난 열성으로 문제를 공략해대었더니 종이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왕은 잔인한 죄표와 중간값을 모두 끌어올려 앞으로 내달리더니 루트와 로그의 어두운 숲으로 비틀거리며 들어가, 역행해 나와야만 했다. 그러다가 무리수(F1) 들판에서 짐승과 마주치자 왕은 놈을 몹시 두들겨 팼다. 짐승은 소수점 이하 두 자리를 떨어뜨리고 입실론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짐승은 점근선 근처로 슬슬 돌아 n차원 직교상 공간에 숨어서 전개를 겪고 나오더니, 순차곱셈의 불꽃을 뿜으며 왕을 덮쳐 쓸린 상처를 입혔다. 그러나 왕은 조금도 굽히지 않고 마르코프 체인 갑옷과 불침투 매개변수들을 모두 입은 채..."
_<두 번째 외출 혹은 크룰 왕의 제안>에서 인용.
#3. "이것은 팜므파탈라트론이라는 확률론적이고 나긋나긋하고 바쿠스적이고 엄청난 피드백을 가진 에로티즘 증진장치라고 그는 왕한테 말했다......중략......시스템의 리비도적 동요가 리모트 컨트롤 애무마다 각 6유닛까지 생산되는 동안, 팜므파탈라트론은 주어진 색욕상수에서 96퍼센트의 최대 효율, 40메가모르의 힘으로 동작한다. 게다가 이 멋진 메커니즘은 가역 열정 정지기, 전 방향 결혼 증폭기, 몸섞기 필터, 음란 주변장치, 그리고 '첫눈에' 플립플롭 회로를 갖추었다. 트루를은 여기서 저명한 '첫눈네-첫키스' 이론의 창시자인 옌치쿠스 박사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온갖 종류의 보조기구들도 있었다. 고주차 찌찌 활성기, 교호 감질내기, 거기에 호색 요소와 방탕의 전 세트가 구비되어 있었다. 바깥의 특수 유리 케이스 위에는 거대한 다이얼이 있었는데, 그것으로 전체 매혹 과정이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주의깊게 관찰할 수 있었다. 통계 분석은 팜므파탈라트론이 짝사랑 강세화 100건 중 98건에 대해 영구적 양성 결과를 얻는다는 것을 밝혀냈다."
_<세 번째 외출 혹은 확률 드래곤>에서 인용.
덧덧, 책이 출간되기 전, 아직 교정도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먼저 읽어볼 기회가 생겼는데 다만 조건(?)이 하나 있었으니 하룻밤만에 읽어야 한다는 것! 글을 빨리 읽는 편이 아닌지라 다소 부담이 되긴 했으나 워낙에 재미있어 술술 넘어간다기에 일단 프린트물을 받아와 읽기 시작했는데... 우와앙~ 이렇게나 재미있다니! "딱 내 스타일이잖아!" 어느정도 예상을 했음에도 그 예상을 뛰어넘는 재미였던지라 한 쪽 한 쪽 넘기기가 너무나 아쉬웠고, 더구나 단편집은 한 편 읽고 좀 쉬면서 여운을 느끼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음 단편을 읽고해야 하는데 그러면 이틀로도 모자라기에 할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한 편 한 편의 여운을 느껴볼 사이도 없이 쉬지도 못한 채 줄줄줄 읽어야만 했으니...(이렇게 재미있는 작품을 읽게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과 야속함이 동시에 들었다나뭐라나?...ㅠ_ㅜ)
덧덧덧, 편집자는 '가능한 한 가장 발단한 단계'의 줄임말인 '가가발단'을 입속으로 여러번 되뇌어 친숙해지기를 권장하고 있는데 과연 올해 <화성의 공주> 헤어스타일과 더불어 유행예감이 드니 당장 따라 할 것. '가가발단''가가발단''가가발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