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속도
엘리자베스 문 지음, 정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날, 아들이 들어와 문틀에 기대 물었어요.
"빛의 속도가 일 초에 삼십만 킬로미터라면, 어둠의 속도는 얼마예요?"
제가 일상적인 답을 했죠.
"어둠에는 속도가 없단다."
그러자 아들이 말하더군요.
"더 '빠를' 수도 있잖아요. 먼저 존재했으니까요."- 엘리자베스 문」

4월 SF봉기설이 떠도는 가운데, 핵보유국이 선전포고를 했다길래 핵전쟁인줄 알고 아침부터 잔뜩 긴장했던 <마일즈의 전쟁>은 동네 꼬마들의 칼장난에 불과했으며, 점심 식사후 오수도 즐길겸 모처럼의 휴식을 취하고자 들었던 <다윈의 라디오>는 CD판을 틀어주면서도 수시로 튀는 바람에 오후의 나른함을 망쳐 버렸는데, 오늘도 덧없이 하루를 보내는구나 싶은 마음에 쓸쓸이 바라보던 노을지는 구름 뒤편으로 소리없이 다가온 <어둠의 속도>에 놀라 부리나케 뒤쫓아가 가까스로 잡고보니 앗, 어둠을 밝혀주는 한줄기 빛과 같은 작품이었더라는...
'엘리자베스 문'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여성작가가 쓴 이 작품은 패턴 분석과 패턴 형성이라는 특수한 작업에서는 천재적일만큼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지만 일상 생활을 하기에는 그저 자폐일 뿐인 증상 때문에 '정상인'들에 의해 비정상인으로 간주되고 취급받는(당하는!) '루 애런데일'을 주인공으로 그와 함께 제약회사에서 특수업무에 종사하는 자폐인들과 비자폐인들의 소통과 갈등의 관계를 그리고 있는데, 실제 자폐아를 입양해서 키우고 있는 작가 자신의 경험과 이해가 작품 전체에 걸쳐 깊이 퍼져있어 잔잔한 감동이 여운이 되어 남으면서 자연스럽게 주인공의 감정에 동화되다보니 번역자의 말마따나 '동정'을 넘어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총 21장의 구성 중 20장까지 읽고는 빛의 속도와 어둠의 속도가 같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그 곳'으로의 도착을 앞둔 '루 애런데일'이 '그 곳'을 상상하는 동안 잠시 읽기를 멈추고 ('루'의 심정으로) 하루의 휴식을 가지기도 했다. 과연 작가는 어떤 식으로 결말을 낼 것인가? 자폐아를 키우고 있으니만큼 그 결말이 다른 자폐아 가정에도 중대한 영향을 끼치리라는 생각과 더불어 나라면 어떤 결말을 내고 싶어 할 것이며, 진정 내가 원하는 결말은 무엇일까?를 두고 머릿속에서 나름대로의 소설을 한 편 쓴 다음, 그 어떤 결말이라도 수용하겠다는 마음자세로 21장으로 넘어갔고, 그 결과는... (본문 552쪽에서 553쪽 사이에 걸쳐 나와있다~)

작품을 접한 누구나가 (필연적으로!) '다니엘 키즈'의 < Flowers for Algernon>을 떠올릴텐데 (작가는 '키즈'가 쓴 훌륭한 작품과의 비교가 칭찬이라고 생각한단다) 닮은 듯 안 닮았고, 안닮은 듯 닮은 두 작품의 차이는(확실한 공통점은 모두 '네뷸라'상을 수상했다는 점~) 아무래도 그 결론이 아닐까 싶은데, 어떤 결론이든 다 마음에 든다. '찰리'나 '루'나 본인들의 의사에 의해 결정했기 때문에...
그리고, 이 작품도 <다윈의 라디오>와 마찬가지로 '랜덤 하우스'의 주류문학 파트인 '발렌타인북스'를 통해 원서가 발표되었단다. 순문학스러운 장르문학은 어쩔수 없는 대세?(작가 자신도 이 작품이 과학소설인지 아닌지는 독자의 정의에 달려 있다며 명확한 판단을 미룸)

번역자는 이전에도 여성작가인 '케이트 윌헬름'의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를 번역출간한 적이 있고 두 작품 모두 작가와 번역자가 한 사람이 아닐까 싶을만큼 술 넘어가듯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데 특히 이 작품의 경우 사례집과 참고문헌을 살펴가면서까지 고심한 결과물이 아닌가 싶다. 비록 번역물에 불과(?)하더라도 자신의 작품을 낸다는 마음자세로 언제까지나 초심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빼앗긴 자들>을 비롯한 '르 귄'할멈의 작품들과 '테리 프래쳇 & 닐 게이먼'의 <멋진 징조들>로 이름을 날린 바 있는 '이수현'씨(요즘은 다른 분야의 번역을 하는 듯해 아쉽다는...)에 이은 신진SF번역가로서 그 앞날이 기대된다(번역자의 '바람'이 눈과 손끝을 통해 무사히 마음까지 와 닿았음을 알려 드림~)

덧, 어느 날, 아들이 들어와 문틀에 기대 물었어요.
"순문학이 일 년에 삼십만 권 팔린다면, SF는 몇 권이나 팔려요?"
제가 일상적인 답을 했죠.
"SF는 팔리지 않는단다."
그러자 아들이 말하더군요.
"더 '많이' 팔릴 수도 있잖아요. 문학보다 과학이 먼저 존재했으니까요."
('미래'에는 정상인과 비정상인이, 자폐인과 비자폐인이 같아지기를 바라는 마음 그대로 장르와 비장르, 순문학과 대중문학이 같아지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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