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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한국 현대문학 수업 - 세계문학의 흐름으로 읽는
이현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제작년 즈음 그동안 손놓았던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하면서 우연히 알게 된 이름 '로쟈'. 온라인에서 본 그의 서평은 전문가 수준이었고 그래서 단순히 취미생활로 서평을 쓰는 분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었는데요. 어느날은 지방 도서관 강좌에서도 이름을 볼 수 있더군요. 하지만 늘 제가 만날 수 없는 시간에만 강의가 있어 아쉬워만 했던 많은 날들~ 그런데 이번에 <로쟈의 한국 현대문학 수업>이라는 책이 보여 반가운 마음에 얼른 만나보았어요.
'로쟈'라는 이름은 서평가로 활동하는 이현우 씨의 필명이에요. 그는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로쟈의 세계 문학 다시 읽기>, <로쟈와 함께 읽는 문학 속의 철학>,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 <책에 빠져 죽지 않기>, <아주 사적인 독서> 등 많은 책을 썼는데요.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이력을 보니 러시아 문학에 일각연이 있는 이유를 알겠더군요.
이십대 후반에 러시아문학과 세계문학을 강의하기 시작하여 이제 오십을 넘긴 로쟈. <로쟈의 한국 현대문학 수업>은 작가가 한국문학을 다룬 첫번째 책이기도 하고 독자로서 한국문학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과 견해를 정리한 것이기도 하여 작가 자신에게도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닌 책이라고 하는데요. 세계문학을 강의하던 관점으로 한국문학을 바라본다면 뭔가 좀더 새로운 시도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견을 밝히며, 전체적으로 반영론적인 관점에서 작품을 읽고 평가하여 작품의 시대적 맥락과 작가의 전기적 맥락에 비추어 읽어보았다고 하더군요.
먼저 로쟈는 지면 관계상 해방 이후의 현대문학 중에서도 각 시대를 대표하는 남성작가 열 명으로만 구성했다고 해요. 손창섭의 <비오는 날>, 최인훈의 <광장>, 이병주의 <관부연락선>, 김승옥의 <무진기행>,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 이인성의 <낯선 시간 속으로>, 이승우의 <생의 이면>등 각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의 가장 의미있는 작품들을 들여다보면서 작품의 의미와 작가 개인의 일생, 사회적 배경과 의미에 대해 알려주고 있는데요. 사실 작품 속 등장인물과 작가들의 이야기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다보니 지난 한국의 근현대를 다시 돌아볼 수 있었어요.
그러면서 '가치의 영도', 단편소설과 장편소설이 가지는 차이, <광장>의 수많은 판본, 소설의 사회적 역할과 의의, 부모 특히 아버지가 미치는 영향 등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는데요.
그중에서도 그동안 궁금했던 사실 하나, 한국의 많은 작가들이 단편에서 중편을 거쳐 장편으로 넘어가지 못한 이유와 장편소설이 미흡한 한국현대문학의 특징을 알 수 있었어요.
또 '가치의 영도'라는 전후 문학의 의미를 보면서는 이것이 우리 조부모님과 부모님 세대의 일생에 미친 영향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기도 했으며, <광장>편의 '아버지'라는 대타자와 주체의 탄생, 아버지 비판에 대한 글들도 인상적이더군요.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소설의 역할, 의의에 대한 것이었는데요. 유명 작가가 썼기 때문에 그 작품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제때 당시 사회의 핵심을 다루고 문제점을 짚어내는 등 당대의 역사성이 부여된 작품을 썼기 때문에 작가를 높이 평가한다며, 소설은 이야기를 꾸며내는 것보다 경험하여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며 가능하다면 그 해결책까지 제시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소설이 근대에서
가장 중요한 예술양식으로 여겨지는 것은
근대사의 핵심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핵심을 묘사하고
그 문제점을 짚어내기 때문에
중요하게 대우해주는 것이다.
소설은 근대의 발명품이다.
「로쟈의 한국 현대문학 수업」에서
시대의 핵심적인 모순과 본질을 다루고 그 문제를 파고드는 소설, 이것이 현대소설이고 소설가의 역사적 책무라고 하는데요. 이러한 비판적 리얼리즘은 단편소설에서는 불가능하며 장편소설에서만 가능하다고 해요.
그래서 역사의 흐름에 따라 부랑자 문학, 노동문학, 부르조아 문학 등 각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에서 반드시 다루어져야 하는 사회모습과 주제, 등장인물들에 대해서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고, 왜 작가가 각 시대의 대표작으로 이런 작품들을 선택했는지 알 수 있었어요.
또하나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남미문학의 경우에는 '독재자소설'이라는 양식이 있으며 하나의 장르로서 발전하였데요. 그동안 검열과 탄압, 억압으로 할 수 없었다고만 생각했는데요. 우리와 달리 남미 사람들은 과감하게 표현했다는 것이 정말 놀랍더군요.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70년대 이전 한국문학은 익숙한데 80~90년대 작품들을 잘 모른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어요. 생각해보니 그 시기에 고전과 세계문학에만 빠져있었는데요. 덕분에 읽고 싶은 책들이 더 늘었어요.
세계문학의 큰 흐름 속 한국문학의 흐름과 모습을 알 수 있었고 그동안 단편적이며 개별적으로 작품을 이해하던 것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시간. 한국작품이 세계문학과 어떤 부분에서 차이가 있으며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어서 작품과 작가를 보는데 뭔가 한 단계 성장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어요. 게다가 책을 읽기 전에는 이 책을 통해 개별 작품과 작가에 대해서만 알게 될 줄 알았는데, 이제는 소설이 역사와 별개일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개인적으로 부족한 근현대 역사에도 더 관심이 생겼어요.
이 책 <로쟈의 한국 현대문학 수업>은 제목 그대로 작가의 강의를 책으로 정리하여 엮은 것이라 해요. 그래서인지 정말 매 챕터 내용이 충실하고 재미있었는데요. 현장 강의로 듣는다면 얼마나 더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고 재미있을까라는 상상을 하게 돼요.
실제로 책 내용도 너무 어렵지 않아서 대학생이상은 물론, 고등학생 이상이라도 충분히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요. 앞으로 직접 강의를 들을 기회가 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이렇게 작가의 다른 책들을 통해 좀더 작품을 보는 눈이 성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