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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 플라톤의 대화편 ㅣ 현대지성 클래식 28
플라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11월
평점 :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로 유명한 소크라테스. 개인적으로는 문답법을 통해 잘못된 지식을 제거하면서 일반적인 진리에 도달한다는 '산파술'과 십여 년 전 과제를 해내느라 읽어야만 했던 <향연>을 통해 만난 '소크라테스의 에로스 예찬'이 떠오를 뿐인데요. 이번에 또 용기를 내어 <소크라테스의 변명>과 <크리톤>, <파이돈>, <향연>이 한 권에 담긴 현대지성의 책을 만나보았어요.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469년경 아테네에서 조각가인 아버지 소프로니코스와 산파인 어머니 파이나레테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어린 크산티페와 결혼하여 세 명의 자녀를 두었지요. 당시에는 많은 소피스트들이 강의를 통해 명예와 부를 누렸는데요. 이들과 달리 소크라테스는 가르침의 대가로 돈을 받지 않았으며 남루한 옷차림으로 철학적 토론을 즐겼다고 합니다. 그의 철학은 질의응답을 통해 지식을 추구하는 변증법, 스스로의 무지에 대한 자각, 덕과 앎의 일치 등이 특징인데요. 이러한 것들은 당시 정치가들에게 위협적으로 느껴졌다고 해요. 그래서 말년에는 불경죄와 청년들에게 궤변을 가르쳤다는 죄목으로 사형을 당했다고 알려져 있지요.
그런데 역시 제대로 알려면 역사도 알아야겠더군요. 당시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한 아테네에는 기존의 민주정 세력과 스파르타의 법을 새롭게 차용하고자 하는 친스파르타의 과두정 세력 간의 갈등이 있었다고 해요. 그 와중에 현실 정치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소크라테스의 가르침들은 민주정을 비난하고 과두정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였고, 민주정 세력이 과두정 세력에 경고하는 의미로 그를 처형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이런 소크라테스의 생애와 사상은 대부분 그의 제자였던 플라톤과 크세노폰의 글들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고 하는데요. 이번에 살펴보았던 4권의 책들이 모두 플라톤이 쓴 책 들이랍니다.
플라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기원전 427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는 유명 문학가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고 해요. 스무 살 무렵에는 소크라테스의 문하로 들어가 제자가 되었는데요. 이후 소크라테스의 사상에 매료되어 문학보다는 철학에 매진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스승이 처형당하자 현실 정치에 환멸을 느끼게 되고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다양한 사상을 접하다가 마흔 살이 넘어 고향 아테네로 돌아와 아카데메이아를 세워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이상국가'라는 정치 철학을 직접 실행하기 위해 시칠리아로 갔으나 결국 실패하고, 이후 고국으로 돌아와 80세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제자를 양성하고 연구에 매진하게 됩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첫 번째로 만나본 것은 <소크라테스의 변명>인데요.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의 하나로, 소크라테스 처형 후 몇 년에 걸쳐 쓴 책으로 알려져 있어요. 사실 그리스 철학 책들이 워낙에 유명하기에 학창시절에 읽기를 시도했다가 포기한 적이 있는데요. 논리를 따라가는 것만도 힘들었던 당시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이번에는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소리 내어 읽어보았지요. 덕분에 많은 부분이 기억나는 놀라운 경험도 해 봅니다.
아테네가 믿고 있는 신들이 아니라 다른 잡신들을 믿는 불법을 자행하고 있으며, 이를 청년들에게 가르침으로써 그들을 타락시키고 있다는 멜레토스의 고발로 인해 재판정에 선 소크라테스. 그는 다른 이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울며 선처를 바라지 않고 여태까지 그러했던 방식으로 자신을 변론합니다.
자신이 신의 존재를 믿으며, 자신의 가르침을 받은 청년들의 가족들이 자신을 돕고자 하는 것을 들며 청년들에게 전혀 해악을 입히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가족을 데려와 애걸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지혜와 용기, 그 밖의 미덕을 지닌 사람이 할만한 행동이 아니며, 추하고 수치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게다가 스스로를 죽음에 빠뜨린 일이 부끄럽지 않다고도 하는데요. 죽음이 두려워 신탁에 복종하지 않는 것은 정의로운 행동이나 선한 자가 할 일이 아니며 잘못된 일이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할 때와 달리 생각보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이 술술 읽어졌는데요. 생각해보니 그동안 매끄럽지 않은 번역체의 책들을 만나왔구나 싶었어요. 이번에 만나본 현대지성 책은 소크라테스의 질의응답 자체만 이해할 수 있다면 꽤나 쉽게 읽히는 편이었고, 매 페이지마다 실려있는 각주가 이해하는 데 도움을 많이 주었어요.
크리톤
두 번째로 만난 <크리톤>. 제목은 생소하지만 그 내용은 전혀 생소하지 않았는데요.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선고받고 그의 절친한 친구 크리톤이 탈옥을 권유하는 부분이에요.
크리톤은 친구들이 그를 살릴 만큼 충분한 부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살리지 않았다는 욕을 먹게 될 것이고, 그가 살 수 있는데도 죽음을 선택한다면 적들의 의도를 도와주는 셈이며, 세 명의 자식들의 양육과 교육을 책임져야 하지 않냐고 주장하는데요.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자신은 이미 오랫동안 아테네에서 살면서 그 법에 복종하기로 합의한 사람이기 때문에 탈옥하면 법을 어긴 자로 낙인찍히게 될 것이며, 나중에 저승에 가서도 정의롭지 않은 행동으로 심판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죠.
파이돈
세 번째는 <파이돈>인데요. 사실 분량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이번에 가장 인상적으로 보았던 부분이에요. 이유는 제가 살면서 가장 관심 있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던 "영혼불멸"에 대해 다루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사형 집행이 예정되어 있던 날, 평소처럼 친구들과 제자들은 소크라테스의 곁에 모여 대화를 합니다. 이 날의 주제는 처형되기 직전인 만큼 "진정으로 철학에 자기 일생을 바친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저승에서 아주 큰 복을 받게 되리라는 확신과 선한 기대를 지니게 되는 이유"인데요.
그 과정에서 영혼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존재한다는 윤회설과 영혼은 이데아(만물의 모든 원형)를 인식하고 알고 있는데 다만 태어나면서 잊어버릴 뿐이며 다시 기억해내는 상기 방식으로 지식을 되살려낼 수 있다는 말을 해요.
이에 케베스는 사람이 죽은 다음에도 영혼이 존재하는지는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고 이의를 제기하기도 하는데요. 여기에서 소크라테스는 본격적으로 이데아론을 펼치지요. 사실 이데아라는 단어의 정의만 두고 보면 이해하기 힘들 수 있는데요. 이렇게 책을 통해 접해보면 의외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기도 하답니다. 특히나 이데아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실제이기 때문에 사멸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영혼이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과정이나 지구의 참모습에 대해 말하는 부분은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마지막으로 대화를 끝내고 목욕을 한 후 독배를 마시는 소크라테스와 가족들, 친구들, 제자들의 모습은 감동적인 영화의 마지막처럼 꽤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그러니 이보게들, 우리가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이것일세. 그것은 영혼이 죽지 않는다면, 우리가 살아 있다고 부르는 이 시간만이 아니라 모든 시간 동안 영혼을 돌보아야 한다는 것이네. 누군가가 그렇게 하기를 게을리한다면, 그런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위험성을 안고 있는 일인지를 머지않아 알게 된다는 것이지.
향연
마지막으로 만나본 작품은 <향연>이었는데요. 비극 작가 아가톤이 경연에서 우승한 것을 기념하여 연회를 베풀고, 그 자리에 참석했던 소크라테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에로스'를 예찬하는 이야기를 돌아가면서 하는 내용이에요.
이미 예전에 한번 읽었던 작품이라 확실히 금세 다시 읽을 수 있었고, 처음 읽을 때처럼 당황스럽지는 않더군요. 예전에는 당시의 문화를 잘 몰라서 성인 남자들이 어린 남자를 사랑하는 문화를 어색해하며 읽었거든요. 이 책에서 말하는 '에로스'는 사랑이라는 의미보다는 '아름다움을 가지고자 하는 욕망'으로 해석하시면 되는데요. 결핍되어야 욕망하게 되고 그리워하게 된다는 논리가 나오지요.
역시 소크라테스의 발언이 가장 재미있는데요. 에로스는 신과 인간의 중간적 존재(다이몬)이며, 그래서 자신에게 결핍된 것을 욕망한다고 말해요. 그가 아름다움을 욕망하는 것은 그 안에서 신들이 가진 불멸과 불사를 획득하기 위함이라고 하죠.
또 이성에 의거한 추론과 변증을 통해 철학을 하여 이데아들에 대한 지식을 얻어 진정한 지혜에 이르면 고유한 의미에서의 에로스가 된다고 합니다.
거의 일주일 동안 조금씩 읽어내었으니 꽤나 오랫동안 읽은 셈인데요. 그래도 처음의 걱정과 달리 의외로 쉽게 읽어낸 느낌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과 <크리톤>이 예상보다 쉬웠기 때문에 용기를 내어 <파이돈>을 끝까지 읽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번에 처음 읽은 <파이돈>과 두 번째인 <향연>을 보면서 느낀 점은 역시 한번 읽는 것보다는 두 번째가 한결 쉽게 이해되고 빨리 읽어진다는 점이었네요.
혹시 그리스 철학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어렵다고 포기하거나 줄여놓은 개념만 찾아보지 말고 이렇게 직접 작품을 만나보는 것 어떨까요. 소크라테스의 친절한 설명이 그의 사상을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