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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한 세계사 - 개를 사랑하는 이를 위한 작은 개의 위대한 역사
이선필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6월
평점 :

참 재미난 제목입니다. <독한 세계사>의 '독한'이 말 그대로 '독하다'라는 뜻인 줄 알았다가 책 소개를 읽고서야 Dog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제서야 뒤늦게 책 표지의 그림이 목줄을 한 개 그림이라는 것을 알아차렸거든요. 때문에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했다는 묘한 감정도 일순간 느꼈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늦지 않게나마 개와 관련한 문화와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는 꽤나 흥미로웠던 이 책을 놓치지 않고 만나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자의 이력이 신기했는데요. 이 책의 저자 이선필 씨는 이탈리아에서 유럽 정치를 전공하고, 대학에서 10년 이상을 유럽 정치만 강의한 분이라고 합니다. 특별히 개를 사랑했던 애견인도 아니었는데, 어느 날 애견 학원을 개원하고는 반려인으로 거듭나게 되었답니다. 지금은 한국외대에서 <동물복지의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기도 하다는데요. 거꾸로 된 듯한 저자의 이력에 얼마나 재미있는 경험을 많이 했을지 자꾸 상상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책은 더 재미있습니다. 먼저 서양 편과 동양 편으로 나누고 다시 문화 및 나라별로 구분하여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개와 관련한 아주 오래전부터 최근까지의 다양하고 재미난 이야깃거리가 가득이더라고요.
개를 사랑하는 이를 위한
작은 개의 위대한 역사
인상적이었던 부분, 놀라웠던 부분은 너무 많아서 다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인데요.
최초의 애견인이라 말할 수 있는 메소포타미아인들, 성경 시대에는 그렇지 못했지만 오늘날 반려견의 천국이 되었다는 이스라엘, 개나 고양이가 죽으면 눈썹을 밀며 애도했다는 이집트의 이야기들은 개가 서양에서도 오랜 옛날부터 인간과 참 친밀한 동물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해서 내심 흐뭇했고요.
반면 정화의 월요일이 되면 끔찍한 방법으로 개 도축을 하였다는 그리스나 전쟁에서 몰로수스를 연락책 수단으로 사용하고 살육했다는 로마제국, 그리고 16~19세기까지 유럽 가정에서는 쳇바퀴 돌리는 키친 도그가 일상적인 풍경이었다는 이야기 등에서는 인간의 타 생명체에 대한 잔인함과 그 둔감함이 느껴져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더라고요.
당신의 얼굴을 핥아주는
강아지만 한 정신과 의사는 없다
벤 윌리엄스
그중 가장 놀라웠던 이야기는 650년 전 이슬람화되기 이전의 페르시아에는 당시 국교였던 조로아스터교 경전인 아베스타를 통해 개를 위해 지켜야 할 여섯 가지 규칙을 정하고 있었다는 것인데요. 그들 특유의 종교관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그 내용이 너무나도 개를 위하고 있어서, 책에서는 오늘날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동물복지법이라는 정도로 표현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저는 페르시아가 개들에게는 천국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외에 중세 유럽의 그림에 많이 등장하는 개가 사실은 정절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는 것, 19c 중반 1835년 영국에서는 동물 학대 행위가 불법이 되면서 오히려 투견이 그 대안으로 떠오르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윤회 사상 때문에 모든 동물에게는 천국과도 같다는 인도 등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이 많아서 나라마다 흥미롭지 않은 부분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서양 편이야 이렇게 거의 다 새로 알게 된 사실이 대부분이라 치더라도, 중국·일본·한국이 등장하는 동양 편조차 생각보다 몰랐던 내용이 많아서 뜻밖이었는데요. 중국의 반려견 정책이 재미있었던 반면, 하치 이야기에 숨은 일본 제국주의의 야욕을 알게 되었을 때는 경악을 금치 못했답니다.
이렇게 세계 각지에서 그리고 기나긴 역사 속에서 인간들과 함께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어온 수많은 개들. 그들은 때때로 괜찮은 대우를 받기도 하고 학대당하거나 희생당하기도 하였는데요. <독한 세계사>는 단순히 재미난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 책이라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최근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반려동물 산업이 자칫 돈벌이로만 여겨질 수 있는 현상에 살짝 제동을 걸어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우리와 함께하는 개의 삶에 대해 한 번쯤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