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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표류기 - 조선과 유럽의 운명적 만남, 난선제주도난파기 그리고 책 읽어드립니다
헨드릭 하멜 지음, 신동운 옮김 / 스타북스 / 2020년 2월
평점 :

요즘 눈에 띄는 TV 방송이 생겼어요. 바로 tvN의 '요즘책방 : 책 읽어드립니다'인데요. 하필이면 가족들이 각자의 중요한 일로 바쁜 시간에 방송을 하더라고요. 차라리 좀 더 늦은 시간에 방송을 하면 볼 수 있을 텐데 그렇지 않으니 아쉽지만 '다시 보기'로 종종 챙겨 보고 있어요. 한 번은 그동안 궁금했지만 미처 보지 못하고 있던 '하멜표류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더군요. 그래서 저도 이참에 읽어보았어요. '지금이 딱 읽을 때야'라면서요.
요즘책방 책 읽어드립니다 방송도서
하멜표류기
다들 잘 아시다시피 <하멜표류기>는 네덜란드 사람 '헨드릭 하멜'이 우리나라 제주에 표류하면서 겪은 일들을 엮은 책이에요. 그래서 당시 하멜의 상황과 그 여정에 대해서도 알 수 있지만 조선 사회의 풍속과 지리, 정치, 군사, 교육, 교역 등을 알 수 있는 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조선을 최초로 서양에 알린 기록으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지요. 사실 이 책을 실제로 받고 너무 얇아 놀랐어요. 하멜이 13년간 조선에서 지냈기에 두꺼운 책일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번역만 문제없다면 재밌게 빨리 볼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요. 다행히 신동운 님의 번역으로 쉽게 접할 수 있어 좋았어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소속인 하멜 일행은 1653년 1월 네덜란드 텍셀을 출발해요. 타이완의 신임 총독으로 레세르를 데려다주는 길이지요. 인도네시아에서 스페르베르호로 갈아탄 일행은 드디어 타이완에 도착하고, 이제 일본으로 가라는 동인도 회사의 새로운 명령을 받아요. 하지만 바람이 심해 타이완 해협을 빠져나오지 못하다가 폭풍우에 휩쓸리고 마는데요. 제주 해안에서 난파당하고 64명의 선원 가운데 36명 만이 육지에 오릅니다. 이렇게 제주에 오게 된 하멜과 그 일행은 한동안 제주에 억류되는데요. 작은 배로 탈출 시도도 하지만 실패하고 맙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왕의 통지. 그러나 하멜 일행은 풀려나지 못하고 서울로 올라가게 됩니다. 그리고 나라의 중요한 정보가 새어나갈 것을 염려하는 조선의 방침에 따라 무기한으로 조선에 머물게 되지요.
조선을 최초로 서양에 알린 13년의 기록
사실 우리가 보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지곤 해요. 그래서 오히려 자랑거리나 문제점을 미쳐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 책을 통해 외국인 특히 일본이나 중국이 아닌 서양인의 눈으로 본 조선의 모습을 알 수 있었으며, 그로 인해 미쳐 깨닫지 못한 조선의 모습을 볼 수 있어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어요.
먼저 <하멜표류기>는 서기인 하멜의 기록한 일지라서 날짜 순으로 기록되어 있는 짧은 일기를 보는 느낌이었어요. 네덜란드에서 인도네시아와 타이완을 거쳐 일본으로 가는 이유와 여정, 제주에 난파당해서 우리나라에서 살게 되는 초반의 과정은 굉장히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나 뒤로 갈수록 점점 1년을 열 줄 내외로 기록하는 등 짧아졌는데요. 마치 우리가 일기장을 새로 구입해서 기록하는 과정이 떠올라 웃음이 났어요.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하멜 일행이 일본으로 탈출하고 그곳에서 받은 질문에 답한 내용이었어요. '나가사키 부교의 질문과 우리들의 답변'이란 제목의 이 글은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었는데요. 우리와 달리 하멜 일행에게 마치 전쟁을 준비하기라도 하듯 제주의 위치와 제주에서 서울까지의 거리, 중국으로 가는 방법 등을 묻고 있었거든요. 사실 이 정도 정보라면 침략전쟁을 준비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느껴질 정도였는데요. 때문에 외국 문물을 빨리 받아들이기 시작한 일본과 달리 무조건 막으려고만 한 조선의 태도가 정말 안타깝게 느껴지는 대목이었어요.
또 책의 마지막에는 '조선국에 관한 기술'이라 하여 정치, 군대, 세금, 종교, 결혼, 교육 등 서양인의 눈에 비친 조선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었는데요. 과거 많은 나라들의 형벌이 현대보다 훨씬 잔혹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생각보다 훨씬 잔혹한 조선의 형벌이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그리고 여행자들이 숙박을 하는 방법도 흥미로웠는데요. 아무 집이나 찾아가서 쌀을 주며 하룻밤 묵기를 청하면 주인은 받은 쌀로 밥을 짓고 찬을 준비해 손님을 대접한다고 하더라고요. 이는 하멜 일행이 나라에서 받은 쌀로만 살아갈 수 없어 구걸로 생활을 꾸려 나가기도 하고 탈출용 배를 준비할 수 있었던 것과 함께 신기하게 다가왔어요. 안타까운 내용도 있어서 외국에서 들어온 담배를 8살 어린아이까지도 피웠다는 것이었는데요. 지금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이런 일을 과거에 했던 것처럼 어쩌면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돌아보게 돼요.
당시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서양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나라 조선. 그 때문인지 하멜이 네덜란드로 돌아가서 출간한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데요. 사실 외국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많았을 텐데 한국인인 제가 봐도 너무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어 놀라웠어요. 요즘 tv에서 외국인이 출연하여 한국의 현재를 경험하고 그들의 느낌과 생각을 전하는 프로그램이 인기 있는데요. 이들 프로그램처럼 <하멜표류기>도 외국인의 눈으로 과거의 우리를 새삼스레 돌아보고 무심코 지나친 사실을 다시 생각하고 느끼게 하는 책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