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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에티켓 - 나 자신과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대한 모든 것
롤란트 슐츠 지음, 노선정 옮김 / 스노우폭스북스 / 2019년 9월
평점 :

지인들의 죽음을 수차례 경험하면서 죽음에 대해 조금은 안다고 섣불리 생각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가족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그 무게의 차이가 얼마나 다른지를 경험하였고, 여러 해 동안 참 힘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지낸다고만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는데요. 그러면서 사람들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불만이 생기더군요. 그중에서도 다들 떠난 사람에 대해서 침묵하며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행동할 때가 가장 속상하고 힘들었던 것 같아요. 함께 떠나보냈지만 서로 표현하지 않는 것. 예의상 그렇게 행동한다는 것을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함께 추억하지 못하고 숨겨야 한다는 것은 여전히 슬픕니다.
그리고 이제 여러 해가 지났고, 그동안은 선뜻 만나지 못했던 주제인 죽음을 다룬 책. 오늘은 <죽음의 에티켓>을 만나보았습니다.
아마존 TOP 100 스테디셀러
독일 올해의 르포상 수상작
나이가 많거나 젊은 의사, 교수, 전문의, 호스피스 원장, 봉사자, 간호사가 겪는 수천 건의 사망 체험은 죽어가는 사람들의 체험과 그리 다르지 않아요. 그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죽음에 대해 침묵하는 일이지요. -12
독일 저널리즘상을 수상한, 독일에서 온 책인데요. 처음에는 혹여 번역이 불편하지 않을까 싶어 만나기를 망설인 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만나보니 번역이 매끄럽고 짧은 문장으로 명확하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어서 술술 읽어지더군요. 다만, 읽는 과정에서 자꾸만 눈물이 앞을 가리거나 먹먹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죽음에 대해 모른척할 수는 없겠기에 용기를 내어 끝까지 읽어보았는데요.
어쩌면 호스피스 병동의 이야기나 병마와 싸우는 내용의 책들은 흔히 접할 수 있기에 그런 책과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 책은 죽음으로 인한 슬픔보다는 오롯이 죽음의 전 과정만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느데 중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작가는 실제 죽어가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 죽음의 전 과정을 인터뷰하고 관찰하여 이 책을 썼는데요. 이를 통해 결국은 우리 자신이 맞이할 죽음의 과정에 대해 생각해 보고, 숨이 멎은 이후의 상황을 준비할 수 있는 마음을 갖도록 하고 있었어요.
검안은 완전히 알몸 상태에서 이뤄집니다. 그래서 두꺼운 옷이나 복잡한 옷으로 서둘러 갈아 입혀서는 안 됩니다. 양로원에서는 환자용 가운을 입고 있어서 벗기기 쉽습니다. 당신의 시신은 알몸 상태로 누워 있습니다. 벌거벗은 채 알몸으로. 인상 깊은 장면입니다. 가차 없으면서도 동시에 솔직한 모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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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이름과 지명을 밝히지 못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사고와 자연사, 질병과 싸우다가 죽습니다. 곧 사람들은 사인을 확인하기 위해 발가벗겨 온몸을 확인하고, 염을 하고, 시신을 관 속에 넣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그들 방식으로 장례를 진행하고, 시신은 땅속에 묻히거나 화염에 싸여 순식간에 녹아내립니다. 아직도 끝난 것은 아니어서, 사망 신고를 하고 고인의 물건을 정리하고, 남은 사람들은 여러 가지 형태로 슬픔을 겪습니다.
모든 검사가 끝났습니다. 가족 중 가장 침착해 보이는 한 사람을 불러 이 곤욕스러운 질문 하나를 마치면서 말입니다. "청구서를 어느 분께 보내면 될까요?" -129
꽤나 자세하게 전 과정을 묘사하고 있어서 어쩌면 우리는 보고 싶지 않은 것까지 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죽음의 과정을 가까이서 본 적이 없다면 무심히 지나쳤을 과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가까이서 지인이나 가족의 죽음을 지켜본 적이 있다면 이제 이 모든 과정은 바로 어제 일처럼 눈앞에 생생히 살아날 겁니다. 그리고 한 번쯤은 스쳐가듯 상상해 보았을 자신의 죽음도 책 속 주인공들이 겪는 과정에 따라 상세히 상상하게 되지요. 그리고 작가는 미쳐 준비하지 않아 당하게 되는 상술과 서투른 대처까지도 이야기해줍니다. 그 덕에 당시 저의 서툴렀던 대처들도 대책 없이 떠올라 당황스럽기도 하더군요.
어쩌면 아무도 그걸 모를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살아 있을 때 한 번도 당신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그러면 당신의 유족들은 자기 마음대로 하고 맙니다. -141
이렇게 눈물과 함께 다시 돌아본 죽음. 독일 문화권의 사람들이 죽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서 우리나라와 그들의 장례 문화를 엿볼 수도 있고, 애도의 방법에도 차이가 보였는데요. 준비되지 않은 인간의 죽음이란 전 세계 어디서나 서투르고 아파 보입니다. 그래서 더욱 자신의 죽음이든 가족의 죽음이든 간에 죽음은 마음으로만 막연하게 준비할 것은 아니라고 느꼈는데요. 가끔은 가족과 죽음에 대해 미리 대화도 하고 실질적인 준비도 할 수 있다면 미리 하는 것이 주어진 인생을 열심히 사는 것만큼이나 중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장례가 궁금하시나요? 죽음 이후 시신이 다루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궁금하신가요? 유가족이 해야 할 일들이 궁금하신가요? 누군가가 죽고 난 이후, 모든 죽음의 과정과 유가족의 해야 할 일, 슬픔까지 이 책 한 권으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