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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을 사야 해서, 퇴사는 잠시 미뤘습니다 - 우리에겐 애쓰지 않고도 사랑하며 할 수 있는 일이 필요하다
김유미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8월
평점 :

"오늘, 퇴근하고 뭐 하세요?"
요즘은 세상이 변해도 참 많이 변한 것 같아요. 인터넷이나 TV 등의 매체를 접하다 보면 직업 이외에 다른 취미생활을 하는 멋있는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제 주위 사람들을 살펴보면 또 그런 것 같지도 않아요.
그래서일까요. 직업 이외의 다른 무언가를 오롯이 즐기며 사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정말 대단해 보입니다. 식물을 잘 키우고, 꼼지락거리며 만들기를 즐기던 분은 커피를 배워서 카페를 차렸고, 살을 빼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지만 즐기게 된 친구는 운동 분야에서 여러 개의 강사 자격을 취득하기도 했어요. 이런 사람들을 접하다 보면 이런 모습이야말로 진짜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닐까 싶어 어느 날에는 저도 무언가를 해야 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운동, 독서 등 이것저것 시도해 보기는 하는데요. 하지만 아직까지 오롯이 그 자체를 즐기며 몰입할 수 있는 것을 찾지는 못한 것 같아요.
모두가 떠난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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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물감을 사야 해서, 퇴사는 잠시 미뤘습니다>의 저자 김유미 씨는 취미를 찾았답니다. 퇴근 후면 함께 시간을 보내던 같은 동네 친구와 언니가 멀리 떠나게 되자, 혼자서 즐길 거리를 찾다가 2014년 '성인 취미 미술'을 수강하기 시작했지요. 그럼 혹시 저자는 평소에도 그림 그리는 것을 즐겼고 잘 했을까요?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어떤 사정이나 핑계로 하지 못했던 것들은 무엇일까? 질문이 확실하니 답이 재빠르게 나왔다. 나는 그림을 배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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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건 아니었답니다. 학창시절 즐겁게 할 수 있었지만, 다른 이유로 포기해야 했던, 스스로 즐길 수 있는 거리를 찾은 것이지요. 그리고 지금은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의 허락도 필요치 않고, 도움을 받을 필요도 없으니 더 이상 머뭇거릴 필요가 없었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미루는 것이 참 많은 것 같아요. 어른이 되고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것 까지는 좋지만, 관성이 생긴 것인지 항상 해야 할 일을 먼저 찾곤 하는 것 같거든요. 우리도 한때 꿈을 꾸던 소년·소녀였고, 지금도 마음 한구석에 잘 찾아보면 먼지 쌓인 채 놓여있는 꿈을 발견할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게다가 생각보다 시간은 빨리 흐르고 있잖아요.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이 시간은 관계 속에서 잔뜩 움츠리고 있던 나를 적당히 풀어주었다. 가만히 엄마의 어깨에 기대어 드라마를 보던 주말 저녁처럼, 말없이 친구와 해운대를 산책하던 여름밤의 온도처럼 적당히 뜨겁고 적당히 평화로웠다. 길어진 서울살이로 잠시 잊고 살았지만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면 그날의 온도가 불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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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다른 사람의 눈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선택한 그림 그리기여서일까요. 다른 취미 생활과 달리 저자의 그림 그리기는 지속되었답니다. 게다가 평소 관계 맺기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던 저자는 다른 어떤 것에도 신경 쓰지 않고 그림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적성에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저 또한 평소 일할 때 말고는 최대한 동굴로 들어가는 스타일이어서 저자의 이런 말이 너무 와닿았고 이해가 되더라고요.
또한 화가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보니, 처음에는 소박하게 그림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를 하지만, 뒤이어 자신의 그림을 책에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그림을 배우는 데에는 연필과 목탄, 수채화, 유화의 단계를 거치는 것도 알 수도 있었는데요, 연필로 그린 아기 그림, 목탄으로 그린 유명인들의 그림, 자신이 평소 즐기는 것들을 그린 각종 수채화와 유화 등을 보면서는 그 그림들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그림들에 얽힌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솔직하고 담백하게 풀어내는 저자의 솔직함에 더욱 놀랐어요. 어찌보면 사회에서는 단점이라 여겨지는 것들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밝히고 점점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주거든요.
그리고 저자가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도 있었어요. 자신의 그림 역시 자신 있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에 책에 싣고 보여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요. 그러면서 부족한 자신도 했으니 우리에게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용기를 주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도 망설이는 모든 순간에 주문처럼 따라 외친다.
"유미 씨, 하고 싶은 대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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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자의 변화는 사실 그림을 통해서도 드러나는 듯했는데요. 그림 솜씨가 늘어서 일 수도 있지만, 저자의 그림은 꼼꼼하게 똑같이 묘사하던 것에서 특징을 묘사하는 대범한 것으로 변하고 있었지요.
사실 여기까지만 봐도 너무 부러웠어요. 그러나 저자는 멈추지 않았고, 수채화와 유화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화풍을 찾아갑니다. 제가 봐도 김유미 씨의 분홍색은 너무 아름다웠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멋졌는데요. 그러더니 어느 날 드디어 초대받아 그림을 전시하는 정식 화가가 되어버립니다. 취미가 제2의 직업이 되다니 꿈같은 일인데요. 게다가 이렇게 책까지 내었으니 작가가 되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취미는 취미로 머물러야 한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김유미 씨는 돈을 위해 취미를 직업으로 바꾼 것이 아니에요. 직업이 된 그녀의 취미는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여전히 즐거움의 수단이거든요.
이렇게 너무 흥미로웠던 김유미 씨의 이야기 <물감을 사야 해서, 퇴사는 잠시 미뤘습니다>는 '당신은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겁나요?, '용기내어 도전해 보세요~'라고 말하는 듯한 책이었는데요. 마치 제 이야기인 듯 몰입하여 볼 때는 너무 흥미로웠고, 또 한편으로는 여전히 변함없는 제 현실을 깨달을 때면 부러운 마음이 가득 들었어요. 그래서 저도 저자처럼 돈과 상관없이 오롯이 즐기며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까 궁금해졌고 계속 노력해야겠구나 싶었어요.
또 이런 즐거움을 위해서 퇴사를 미룰 수 있는, 저녁 시간이 보장되는 직장이라면 그것 또한 참 좋은 직장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요. '유미 씨 그 직장 그만두지 말아요.'라고 전하고 싶네요.
퇴근 후 저녁 일곱 시, 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진정으로 나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