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열기
가르도시 피테르 지음, 이재형 옮김 / 무소의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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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치의 병에 걸려 한 달 뒤에 죽는다는 선고를 받는다면 어떨까요?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서 워낙 많이 다뤄진 소재이기에 식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 일을 실제로 경험하였고, 이를 소설로 출간하였다면 느낌이 사뭇 달라집니다. 이것이 실화가 가진 힘이겠지요.


​이번에 만나본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남성의 실화를 담고 있는 책이 바로 헝가리 유명 영화감독 가르도시 피테르의 첫 장편소설인 <새벽의 열기>입니다. 그냥 픽션이었다면 지나쳤을 테지만, 감독의 부모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하여 만나보았지요.


​​이야기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아버지가 절망 대신 결혼이라는 희망을 선택하고 117명의 헝가리 여성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시작됩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절망이 아닌 희망을 선택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그리고 어떤 믿음이 그 과정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할 수 있도록 했을까요? 그 힘이 무척 궁금했습니다.


​또한 생면부지의 남성에게 편지를 받고 답장을 하는 여성들은 어떤 사람들일지도 궁금하기도 했는데요. 각자의 다양한 사연으로 답장을 하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소식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단지 이런 일을 가능케 하는 것은 먼저 손을 내밀고 또한 그 손을 잡는 용기와 믿음이었습니다.


​가끔 TV를 통해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암 환자의 생존기를 보곤 합니다. 몇 개월 남지 않았다는 사람들이 숲속으로 들어가 자연과 하나 되어 살아가거나 엄격한 식이요법으로 죽음을 선고받은 날보다 훨씬 오랜 세월을 살아가는 사람들 말이지요. '죽는다는데 못할게 뭐 있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럼에도 그런 이야기를 볼 때면 정말 대단하다고 여겨집니다. 절망 속에서 빠져나와 누구나 그렇게 자신의 죽음에 용기 있게 맞설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겠지요. 


​그나마 그런 불행한 상황을 혼자서 겪어내는 것이 아니라 반려와 함께 겪어내는 사람들을 보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긴 병 앞에 장사 없다고 으레 사람이라면 자신의 편안함을 우선으로 여기기 마련이니까요. 그런데 소설에서는 이미 병에 걸린 상황에서 서로를 선택합니다. 과연 의지할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일까요? 아마도 그건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서른 시간이, 서른 시간이 지나고

나의 삶은 무한한, 뜨겁게 달궈진 레일 위를 달려왔네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바라본 나는

내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를 알고 놀라네

그래, 1초, 2초, 1분, 2분이 흘러 벌써 서른 시간이 되었네

나는 1초가 지나갈 때마다 널 더욱더 사랑하네

서른 시간 전에 널 처음 만난 내 손을, 내 허약한 손을

꼭 잡아주겠다고, 절대 놓지 않겠다고 약속해줘


​우리 서로의 팔을 놓지 말고 그곳 복도의

안식처에서 짓던 미소로 역경을 헤쳐가리니

넌 나의 양심이 되어 내가 단호히 전투를

치를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어줘


​하나의 이상이 날 기다리고, 난 그걸 위해 싸워

난 수많은 사람들과 단결하여 싸워

그러면 모든 게 더 아름답고 더 간단하지 찬란하지

나를 안내해주는 두 개의 별, 네 아름다운 눈이야!

-미클로스가 릴리에게 보내는 시-


사실 감독 가르도시 피케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그의 부모님 미클로스와 릴리가 사랑을 이루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시점에 그들이 어떤 일을 겪으며 함께 하는지 알아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흥미로웠어요. 당시 사회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엿볼 수 있었는데요. 우리나라도 같은 전쟁을 겪으며 많은 사람들이 슬프고도 감동적인 사연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새삼 떠오르네요. 정말 전쟁은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이 이야기는 헝가리 영화 <새벽의 열기>로도 만들어졌고, 이번 '2019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무료 상영도 했더라고요. 혹시 기회가 되어 국내 개봉이 된다면 보고 싶네요. 읽는 내내 가족들의 사랑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고, 희망과 믿음,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가치들의 힘을 되새겨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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