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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실험 - 문명이 붕괴된 이후의 세상을 실험한 어느 괴짜 과학자의 이야기
딜런 에번스 지음, 나현영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그리스어 'οú(없다)'와 'τóποç(장소)'를 합성한 이 단어는 '어디에도 없는 곳(nowhere)'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유토피아란 단어는 우리는 완벽한 사회를 꿈꾸지만 그런 사회는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음을 함축한다.
이 책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문명이 붕괴된 이후의 세상을 실험한 어느 괴짜 과학자의 유토피아 실험'입니다. 유토피아라는 말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이라는 뜻인데요. 어쩌면 인간의 힘으로는 만들 수 없는 세상이라는 의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실험한 이 책의 저자는 딜런 에번스입니다. 책에 대해 알게되면서 가장 궁금했던 점은 '픽션일까 넌픽션일까'였는데요. 놀랍게도 넌픽션이었습니다. 저자는 어느 날 문명 세계의 붕괴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고 믿으며 자신의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스코틀랜드로 떠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원자들을 모아 유토피아 실험을 하지요. 모든 것을 자급자족으로 해결할 수 있는 그만의 세상을 꿈꿉니다.
책을 읽으며 무엇보다 놀란 점은 딜런의 모든 퇴로를 차단한 믿음과 추진력이었는데요. 그의 믿음이 허황된 것이든 그렇지 않던 간에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에만 올인하는 그의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 그를 보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책을 읽을 수 밖에 없었는데요. 아마도 지금의 문명 세계에 그래도 어떤 희망이 있다고 여기는 제 개인적인 믿음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컸습니다.
이 전 지구적 유대가 우리를 하나로 묶는다. 연필처럼 겉보기에 단순한 물건조차 수천명의 낯선 사람들이 협력한 결과인 것이다.
딜런의 유토피아 실험은 '워킹데드' 같은 지구 종말을 다룬 드라마나 영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러한 일부 작품에서는 생존자들이 집단을 이루고, 각기 식량문제나 생필품 보급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분업하면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어쩌면 이것은 인간이 살아남기 위한 생존 본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무자비한 자연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연약한 존재일 수 밖에 없으며, 그런 자연을 극복하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힘을 모아야 하니까요.
한편으로는 이런 일련의 과정이 인류의 역사를 또다시 되풀이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수정을 해 나가기는 하겠지만요.
딜런의 소규모 유토피아를 보면서 뭔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가치를 우리에게 보여주며 성공하기를 바랬습니다. 가끔 '인간극장' 같은 프로그램에서 홀로 살아가는 기인들을 보면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도 해 보았는데요. 저자 딜런을 위협한 가장 큰 문제가 정신적인 것이어서 조금은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현대의 편리함에 익숙해진 채 원시 인류의 삶을 되풀이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도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세상이 멸망 혹은 붕괴하게 되면 어떻게 살것인가라는 문제는 현실을 살아가는데 전혀 필요없다고 여겨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그럼에도 이런 상상을 해 보는 것은 개인적인 관점에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힘은 무엇인지 혹은 자신에게 가장 가치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개개인으로 보면 보잘 것 없어 보이는 한 개인도 우리 사회 안에서 나름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이런 과정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무기력해지기 쉬운 우리 마음의 힘을 더 키울 수 있다는데에 가치가 있어 보입니다.
가끔은 문명의 이기에만 집중하는 듯한 세상을 보면서 회의적인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인류에게 많은 메시지를 던져준 딜런의 '유토피아 실험'을 보면서 어쩌면 현대 문명 사회가 '생태계 평형이론'처럼 조금씩 나은 방향으로 협력의 힘을 발휘할 지도 모르겠다는 믿음이 생겼는데요. 문명이 붕괴된 이후의 세상이 궁금한 분들에게 픽션인 영화와는 또다른 현실적인 부분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