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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의 1cm - 너를 안으며 나를 안는 방법에 관하여
김은주 지음, 양현정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3월
평점 :

한 사람과 만나 결혼하고 산지 22년 차에 접어들면서 어느새 사랑이라는 말이 어색한 나이가 되었어요. 물론 여전히 사랑은 인생의 소중한 가치이지만 그럼에도 유독 나이 든 사람들보다는 젊은이들의 사랑이 더 풋풋하고 예쁘게 여겨지는데요. 그래서인지 사실 닭살 돋는 사랑 에세이는 개인적으로 좀 피하는 편이에요.
<너와 나의 1cm>를 처음 보았을 때도 혹시 낯간지러운 이야기가 잔뜩 담긴 에세이인가 싶어서 지나치기도 했는데요. 다시 살펴보니 김은주 작가의 책이어서 만나보게 되었습니다.
김은주 작가는 이전에 미국 사진작가와 콜라보한 <기분을 만지다>라는 책을 통해 처음 만났는데요. 작가의 삶에 대한 통찰과 따스한 시선이 꽤 인상 깊었고, 한참 마음이 힘든 시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거든요.이미 1cm 시리즈로 많은 사랑을 받아오던 김은주 작가는 4년 만에 새로운 신작 허깅에세이 <너와 나의 1cm>을 냈는데요. 이 책에는 작가만의 섬세한 시선으로 사랑의 시작과 과정, 그리고 헤어짐에 대해 이야기해요. 예쁜 글만으로도 인상적이었는데, 예쁜 갈색 곰과 하얀 곰 커플이 함께 등장하여 웃음의 요소도 많이 제공해서 더욱 미소 지으며 읽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행복이 가장 싫어하는 세 가지 단어
지금 말고 그 때.
이곳 말고 거기.
당신 말고 그 사람.-16
책을 펼침과 동시에 만난 이 글은 한참을 저를 멈칫거리게 만들었는데요. 그래요. 언제나 과거를 돌아보며 비교하고 그리워하면 우리는 현재의 행복을 발견하지 못하고 오히려 불행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과거를 살던 우리가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 현재 일 테니까요.
그를 사랑함으로써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아가는 것이
진정 '사랑'이 원하는 일이다. -22
가끔은 사랑 그 자체를 위해 사랑에 빠져드는 경우도 있고, 사랑한다는 이유로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왜 젊은 시절에는 몰랐을까요. 아낌없이 주기만 하는 사랑은 결국은 허탈함과 배신감만 남기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요.
한 사람의 외면이 사랑의 단서로 던져지더라도, 결국 내면이 서로 충족되는 관계가 아니라면 그 사랑은 오래 지속되기 힘들다. 기쁨과 슬픔에 대한 공감, 상처에 대한 이해, 내가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사람이라는, 사랑하는 사람만이 선사할 수 있는 따뜻한 자존감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첫 순간의 사랑은 그저 감정의 해프닝으로 끝날 일이 된다. -58
작가는 외모만으로 쉽게 사랑에 빠지는 것을 탓하지 않아요. 오히려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라는 말처럼 많은 사람들이 겉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며 결국 서로의 내면이 결국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계속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감정적 행패이다. 사랑의 일은 그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것이며, 사랑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위안 중 하나는 예측할 수 없는 세상에서 예측 가능한 아늑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므로, 여행지에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면, 여행은 방랑이 될 뿐이다. -82
사랑을 오래 지속하다 보면 어느새 익숙해지고 지루하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많아요. 하지만 익숙함은 지루함과 다르다며, 예측 가능한 아늑함을 주는 익숙함이 방랑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듯한 안정감을 주는 것이라 해요.그리고 이런 익숙함은 매년 돌아오는 봄이면 듣는 봄 노래가 여전히 설레는 것처럼, 따뜻한 설렘을 준다고 하지요.
나와 얼굴뿐 아니라 생각조차 다른 누군가를 만나고 그와 나 사이 '틈'을 통해 몰랐던 세상을 들여다보고, 다른 관점과 정의를 배우고, 그렇게 시선을, 나를 넓혀가는 것. 서로의 틈을 메우며, 나의 단점을 인정하고 타인의 단점을 감싸 안을 너른 사람이 되는 것. 사랑을 통해 성숙해진다는 것이 바로 그런 의미일 것이다. -258
이런 사랑을 통해 우리는 나와 다른 세상을 들여다보고 배우고 결국은 품을 수 있는 성숙된 사람이 될 수 있지요.
철새처럼 날아와 텃새처럼 머무르는 것이 사랑이다.
'그 사람'이라는 따뜻한 둥지를 찾아 수백 킬로미터를 날아와,
그곳에 머물러 봄여름가을을 나고,
인생의 차가운 겨울이 와도 결코 떠나지 않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293
그리고 안정적이고 행복할 때만 머무르는 것이 아닌 겨울처럼 인생의 차가운 시절에도 함께 하는 것이 진짜 사랑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김은주 작가는 <너와 나의 1cm>를 통해 사랑에 대한 따스함과 현명함이 잔뜩 묻어나는 글들을 보여주는데요. 덕분에 점점 더 살아가기 힘든 삭막한 세상이지만 역시 사랑만큼 큰 힘을 주는 것은 없다는 생각을 또한번 해 보았습니다. 따뜻한 봄날만큼이나 마음 깊은 곳까지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던 허깅에세이 <너와 나의 1cm>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