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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지 않은 세상, 괜찮게 살고 있습니다 - 마음 근육 탄탄한 여자들의 경험의 말들
여성환경연대 지음 / 북센스 / 2019년 3월
평점 :

산뜻한 노란 표지의 이 책은 처음 제목만 보고는 '힘든 세상살이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잘 돌보며 살자'라는 메시지가 담긴 에세이로 추측을 해 보았지만, 저자를 확인하는 순간 환경과 여성에 대한 책이라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었습니다.
감수성에는 환경이 진짜 중요하다는 걸 느껴요. 영국에서는 굳이 채식주의자가 아니어도 고기를 먹는 것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면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함께 고민하고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한국에서는 '식물은 안 불쌍해?'라고 물어요. 같은 문제에 이렇게 반응이 다른 이유는, 어떤 고민에 대해 자신의 감정을 잘 모르고 자신을 비난하는 것으로밖에 못 듣는 사회와, 감수성을 키우고 자기 마음이 뭘 얘기하고 있는지 표현하려고 하는 사회의 차이 때문인 것 같아요. -46 (비건 셰프 린)
이 책은 다양한 분야에서 에코페미니스트로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의 인터뷰를 담고 있어요. 영화감독 임순례, 비건 셰프 린, 책방 주인 지숲, 뮤지션 요조, 정치인 고은영, 활동가 나영, 학자 이현재, 요리 연구가 문성희 등이 그들입니다.
사실 이 책을 통해 에코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는데요. 단어만 봐서는 환경과 여성이 결합된 형태여서 처음에는 그 의미를 이해하기가 힘들었어요. 다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드디어 여성문제와 환경문제를 하나의 테두리 안에서 들여다보며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시작했다는 점이었어요. 이후 책을 읽으며 에코페미니즘에 대해 이해하고 나름대로 정의 내릴 수 있었답니다.
내가 10을 하고 다른 사람이 2를 한다고 했을 때 그것을 코르셋이라고 정리해버릴게 아니라 그 사람은 지금 2를 하는 상태라고 생각을 하고, 같이 기다려주고 연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199 (여성주의철학자 이현재)
전후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생존을 위한 경제발전을 중요시해왔어요. 때문에 생산적인 일이 가치 있는 일이라 여기는 문화가 사회 전반을 지배해 왔고, 이로 인한 가부장적 위계질서와 화폐 중심의 주류 경제 속에서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상당히 제한적이었어요.
하지만 최근 한국 사회는 정치와 복지 등 많은 부분에서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데요. 그 과도기에서 서로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한 번은 거쳐야 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의 일부가 아닌가 해요.
만약 여성문제와 환경문제의 연결점을 잘 못 찾으신다면 생리대 문제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돼요. 단순히 여성 문제 만으로 국한해서 생각하는 것이 아닌 그 연장선에 있는 환경문제까지 넓힌 개념이었는데요. 인간과 자연의 관계,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서 보여주는 권력관계를 생각하면 두 단어의 결합이 더욱더 이해가 돼요. 그래서 제 나름으로는 친환경적인 삶을 지향하는 페미니즘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었답니다.
우리는 항상 나보다 훌륭하고 대단한 사람을 보고 싶어 하잖아요. 그런 사람들을 계속 밖에서 찾죠. 그런데 밖에서 찾을 일이 아니에요. 누군가를 외부에서 찾는 것보다 내가 그렇게 되는 것이 중요하고, 또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다른 이들에게도 이야기해요. 네가 그렇게 되라고. -246 (명상하는 요리사 문성희)
책 속에는 상당히 인상적인 인물들이 모두 모여있어 어느 한두 사람만 고르기가 힘들었어요.
녹색당 지역구 후보로 출마한 적이 있으며 여우책방을 공동 운영하고 있는 홍지숙 씨나 2018년 제주도 도지사 후보로 출마했던 고은영 씨의 인터뷰를 볼 때는 참 신기한 인생을 살아왔다는 느낌이 들어 재미있게 볼 수 있었어요.
그럼에도 가장 인상적인 인물을 들라 하면,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만든 임순례 감독과 쿠킹스튜디오 시옷을 운영하며 '명상하는 요리사'라는 별명을 가진 문성희 씨였어요. 이 두 분의 인터뷰에는 인생의 연륜이 묻어나 존경스러웠는데요.
먼저 임순례 감독의 인터뷰에서는 '실패를 두려워말고 하고픈 것을 해라. 의외로 실패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라는 메시지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앞으로 대한민국이 어떤 사회가 될지는 모르지만 여성들이 좀 더 주체적인 삶을 선택하고 살아가는 게 중요한 마인드가 아닐까 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페미니즘적인 관점이 본질적으로 가면 내 안의 힘을 키우고 잘 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싶어요. 여성들 안에 있는 창조적인 힘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요. -251(문성희씨)
또한 문성희 씨는 몸과 머리를 균형 있게 사용하는 것이 좋다며, 여성의 창조적인 힘과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요. 우리가 사회로부터 중요하다고 각인된 가치가 아닌, 자신에게 가치 있는 것들을 찾고 유지하고 지키기 위해 용기내어 고민할 필요가 있음을 알 수 있었어요.
가치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야 해요. 물론 너무 어렵죠. 거대한 세상의 틈바구니 안에서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유지하고 지키기가 너무 힘들거든요. 눈만 뜨면 모든 게 소비를 부추기고 경쟁을 유발하니까요. -252 (요리 연구가 문성희)
이렇게 <괜찮지 않은 세상, 괜찮게 살고 있습니다>라는 책은 아직은 우리 사회에 생소한 에코페미니즘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데요. 이를 통해 그동안 한정된 테두리안에서 바라보던 여성문제가 여성문제에만 국한하지 않고, 환경문제와 연결되었을 때 더 바람직한 해결방안이 도출될 수도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이를 딱딱한 논쟁이 아닌 흥미로운 인생을 살아온 다양한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인터뷰를 통해 친근하게 그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데요. 이를 통해 우리가 각기 조금씩은 다른 정도의 페미니즘 혹은 에코페미니즘의 과정을 경험하고 있더라도 그 변화의 흐름에 함께 한다는 것이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