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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울컥하고 말았습니다 -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으면서 적당히 정의롭게 사는 법
정민지 지음 / 북라이프 / 2019년 3월
평점 :

<오늘도 울컥하고 말았습니다>라는 제목을 보며, 저는 최근 어떤 일에 울컥했던가를 생각해 보았어요.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나 잠들 무렵이면, '오늘은 왠지 참 힘들었네~'라고 생각할 때가 있는데요.
그런 날들에는 내 맘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울컥한 날들이 상당수 포함되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런데 기자생활 11년이라는 이 책의 저자 정민지 씨의 프로필을 읽으며, 저자는 울컥할 일이 더 많았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게다가 기자라는 직업으로 인해 겪은 에피소드들이 얼마나 흥미로울지 살짝 기대가 되었어요.
저자 정민지 씨는 여성이자 며느리이기 이전에 기자라는 직장인으로 살아왔어요. 때문에 이 책은 여성이기에 겪는 일이나 직장인들이 흔히 겪는 일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만, 기자라는 직업을 통해 얻은 소중한 경험을 많이 이야기하고 있어서 다른 에세이와 구분되었고, 개인적으로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어요.
저는 택시를 탈 때 좁은 공간에서 낯선 남자와 함께 있어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앞자리에 앉지 않는데요. <폭력과 직면하는 택시라는 공간>을 통해 이런 사람이 저 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강자에게 당한 폭력이 고스란히 약자에게 전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었는데요. 택시나 버스기사라는 직업의 힘듦과 함께 저또한 받은 폭력을 다른 사람에게 고스란히 준 일은 없는가 돌아보게 되었어요.
세상의 사소한 것들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배우 문근영의 인터뷰 영상을 우연히 봤다. 자신의 삶에는 너무나 많은 타인이 있었고, 그들을 미워하면 참 편했을 텐데 그걸 못해서 자꾸 자기 자신을 미워했다고. 서른 살이 된 문근영의 까만 구슬 같은 눈동자에 눈물이 맺혔다. -232쪽
<행복을 깨뜨리는 사람을 거절할 때도 용기가 필요하다>에서는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데요. 그와 관련하여 배우 문근영 씨에 대해 읽을 때는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어요. 그래서 타인에게 친절하려고만 하지 말고, 나의 행복을 깨뜨리는 사람은 만나지 않을 권리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안하지만 친절이 주 업무는 아니니까요>에서는 두 경비의 일화나 보도국과 보도서비서국이라는 명칭을 통해 도대체 어디까지 친절과 서비스를 도입해야 하나라는 의문도 가지게 하고,
<눈이 머는 순간을 지나는 남자와의 인터뷰>에서는 눈이 멀고 있는 한 남자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조차 그동안 세상의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음에 감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조금의 불편함에도 불평하던 제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어요.
또 <감정에 게으르면 휴식 선언은 몸이 한다>에서는 열심히 앞만 보고 달리던 저자가 돌연 퇴사하게 된 계기를 들려주는데요. 저 또한 비슷한 경험이 있기에 공감이 되더라고요.
이렇게 기자생활을 하며 겪은 굵직한 일들이 주를 이루지 않을까 했던 제 기대와 달리, 저자는 사소한 일상부터 굵직한 사건까지 다양하게 이야기해요. 또 기자로써 정의감을 불태우는 면보다는 자신을 파악하고 적당히 정의롭게 사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데요. 그럼에도 갖가지 사건이나 소재로부터 나름의 가치를 도출하여 결론을 내는 모습에서 역시 기자의 글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책은 하나 하나의 짧은 글들이 다들 흥미로워서 몇 가지만 이야기 하기가 오히려 더 힘들었던 에세이로 기억하게 될 듯 합니다.
대단해 보이는 인생이라도 사실은 사소한 것들이 더 먼저다. 어떤 목표와 꿈을 갖든 일단은 현실적인 것들이 먼저 해결돼야 한다. 나는 당장의 사소한 것들을 해치우느라 내가 과연 잘 살고 있는지 감이 오지 않는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도 어떤 시대인지 잘 모르겠다. 사소한 문제들이 밀린 숙제처럼 늘 내 앞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소한 걸 해결하면서 사는 것이 어쩌면 인생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인생이란 그런 거야, 생각하니 평범한 내 인생이 조금 위안을 받는다. -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