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K
돈 드릴로 지음, 황가한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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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 지긋한 분들과 지내다 보면 간혹 우리 인간은 어쩌면 모두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어느 날은 사소한 언쟁 거리가 삶에 무슨 의미가 있기에 우리는 매일을 이렇게 연연해 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싶을 때도 있어요.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불만을 표하며 싸우지 않아도 어쩌면 찰나일 지금. 죽는 순간에 다다르면 기억조차 하지 못할 순간일지도 모르지요.


​돈 드릴로의 <제로K>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감상적이면서도 우울한 느낌의 책이었습니다.


​어떠한 사건이 진행되기보다는 지속적으로 죽음의 의미를 묻는 상당히 쓸쓸한 느낌이 드는 소설이었거든요. 보통 소설을 하루 혹은 이틀이면 읽어내는 편인데, 이번에는 주말 포함 3일이 넘게 걸렸으니 꽤나 시간이 많이 걸린 편이지요. 이 소설의 키워드는 '미래예측'과 '냉동인간'인 것 같아요.


​고독, 그래요. 당신 혼자서 냉동 상태로 지하 묘지, 캡슐 안에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신기술 덕분에 뇌가 자의식이 있는 수준으로 기능하게 될까요? 이것이 당신이 직면해야 할지도 모르는 문제입니다. 깨어 있는 의식. 죽을 때의 고독. 혼자. 혼자라는 단어를 생각해보세요. 중세 영어의 다 해서 하나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인격은 던져버려요. 인격은 가면, 당신의 삶을 구성하는 뒤죽박죽 드라마에서 만들어진 성격이니까요. 가면은 벗겨지고 인격은 진정한 의미에서 당신이 됩니다. 다 해서 하나. 자아. 자아란 무엇일까요? 당신을 구성하는 모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제외한. 친구도, 낯선 이도, 연인도, 자식도, 산책할 길거리도, 먹을 음식도, 당신 얼굴을 볼 거울도 제외한. 하지만 다른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당신이 존재하긴 할까요? -74쪽


​이 소설은 일종의 모험가들에 대한 이야기에요. 그들은 "사람은 누구나 세상의 끝을 소유하고 싶어 하지."라는 소설 첫 문장처럼, 태어남을 선택할 순 없지만 자신의 끝은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하고 싶어 합니다.  그 과정에서 '삶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철학적 질문을 던지기도 해요. 


​하지만 정작 주인공의 아버지는 삶의 가치에 대한 판단보다는 의붓어머니에 대한 사랑 때문에 큰 결정을 내리는데요. 이런 모습을 보면서 인간이란 이성적이며 논리적인 척하지만, 결국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감성적인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한 가끔 뉴스를 통해 접할 수 있던 사이비종교에 빠져 무모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생각나기도 했어요. 


​사실 그동안 냉동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매스컴에 나와도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 치부하고 건성으로 들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인간을 냉동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소설을 통해 옅볼 수 있었는데요. 


​엄청난 금액을 지불해서라도 냉동인간을 자처하는 사람들. 그리고 여러가지 이유로 따로 보관하는 장기와 두뇌 등에 대해 알게되었는데요. 때문에 정말 미래에 인간을 재조립한다는 표현을 쓸만큼, 육체를 새로 만드는 기술이 있거나 혹은 기존 육체 재생, 신경 연결 기술 등이 고도로 발전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미래'가 아닌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싶더군요.


​육체 뿐만이 아니에요. 그렇게 냉동된 순간부터 그들의 영혼은 어디에 존재하는 걸까요? 그냥 잠드는 걸까요? 상상조차 되지 않는 이 상황들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게하는 소설이었어요.


​또한 이렇게 책 내용을 정리하면서 냉동인간에 더불어 드는 생각은 존엄사에요. 대부분의 나라에서 암묵적으로 허용되고 있지만, 법적으로는 네덜란드, 벨기에, 스위스 등 일부 국가에서만 허용되고 있지요. 냉동인간은 이런 것과도 연결되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개인적으로 현재의 기술로 해동할 수 없다면 그건 죽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데요.


​이렇게 <제로 K>를 통해 냉동인간과 죽음의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고, 이 주제가 사회적으로 논의가치가 있는 무거운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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