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 몽환도
주수자 지음 / 문학나무 / 201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새 아파트 화단에 동백이 피고 있네요. 남편을 기다리며 읽던 책을 꺼내어 한 컷 찍어봅니다. 


​이번에는 스마트소설이라는 단어가 붙은 단편집을 읽어보았어요. 글을 읽다 보면 어떤 글을 스마트소설이라고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한 편 한 편 읽어갔지만 제 눈에는 그냥 조금 특이한 단편으로만 보였어요. 그래서 책의 말미에 붙은 스마트소설에 대한 의미를 읽어보았지요. 


​황충상 소설가의 발문에 따르면, 스마트소설은 2012년에 『문학나무』에서 '스마트소설박인성문학상'을 제정하면서 등장하였다고 해요. "소설과 스마트폰의 결합을 시도하려는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짧은 분량 안에 문학의 깊은 통찰과 혜안을 보여주는 장르"라 하는데요. "보다 미래적인 발상, 이미지, 상징을 구축하고자 하는 문학 운동에 초점을 두고 있다"라고 해요. 그래서인가요? 각각의 단편들은 마치 추리소설처럼 생각할 거리를 가득 안겨주는 작품들이었어요.


보통은 단편 모음집에서 제목으로 사용된 단편을 가장 먼저 읽어보곤 하지만, 이 책은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어보았어요. 


"자기는 지금 우리에게 여러모로 부담 주고 있어요!"


주인공인 나는 줄리엣에게 소리칩니다. 줄리엣? 네, 바로 그 줄리엣.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에서 로미오가 죽자 줄리엣이 단도로 자살하기 직전, 바로 그 시간 그 장소에 있어요. 그리고 대화하죠. 고작 사랑 때문에 죽으려 하냐고요. 그러자 줄리엣이 뜻밖의 대답을 합니다. 


"우린 상징으로 남아야 하는 운명이죠. … 그리고 인간이란 그 상징을 살아가는 거고요."


​맞아요. 소설 속 주인공들은 보통 뭔가를 상징하죠. 하지만 현실 속 우리들은 자신의 인생의 상징에 대해 생각하진 않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렇게 인간이란 상징을 살아가는 거라고 정의해 버려요. 그렇다면 제 인생의 상징은 무엇이었을까요? 한 단어로 표현이 가능한 거였나요? 여러 생각이 떠오르긴 했지만 머릿속만 복잡해질 뿐 쉽진 않네요. 


​어쨌든 이 책은 이렇게 2~3장의 짧은 단편이 모인 책입니다. 그리고 그 형식도 상당히 파격적이라 이런 소설도 있나?라는 느낌이 드는 글이 많았는데요. 파격적인 내용으로 인해 오히려 생각할 거리는 많았던 것 같아요. 영화로 치면 명작을 보다가 SF를 보는 느낌 정도이려나요. 


​<부담주는 줄리엣>에서 이야기 속의 주인공과 독자가 대화를 나누었다면, <사과>에서는 어떤 단어로 사과를 정의하느냐에 따라 급변하는 상황을 보여주며 말의 힘을 보여줘요. 그러다간 <극악무도한 몽타주>에서는 극악무도하다는 용의자의 몽타주가 지극히 평범해서 아이러니에 빠지기도 하죠. 또 <동네방네 청소 비상상황>에선 그 어떤 쓰레기보다 말이 더러울 수 있음을 보여주기도 해요. 


​이렇게 단어, 말을 가지고 놀던 작가는 이제 물건에 의미를 부여해요. 가족들을 먹이기 위한 <어머니의 칼>이 무수한 죽음을 의미하여 구토감을 유발하기도 하고, <놀이동산의 무유위유>라는 작품에선 모든 것이 가짜인 세상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당황스러움을 안겨줘요. 


​그러더니 이젠 다양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데요. 책임을 미루면 어디까지 미룰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하는 <메일 오더>, 고양이와 호랑이에 대한 이야기 <거짓말이야 거짓말>, 죽어서도 종교, 학벌 등으로 파벌을 형성하는 우스운 상황을 묘사하며 현실을 조롱하는 <방문객>, 그리고 빗소리와 함께 왔다가 사라진 소설 속 인물들로 인해 더욱 외로워진 작가의 이야기 <빗소리 몽환도>까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것은 없다는 듯,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해요. 

빗소리 몽환도 연극 초연

록밴드 고구려 song

웹툰 빗소리 몽환도 연재


이렇게 세상의 모든 것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작가 주수자 씨는 제1회 스마트소설박인성문학상 수상 작가인데요. 저자의 <빗소리 몽환도>는 연극, 음악, 웹툰 등 다양한 방면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더라고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재미와 신선함, 그리고 이야기가 품은 의미에 공감한다는 뜻이 아닌가 해요. 


​차 한잔하는 짧은 시간 동안 독특한 소재의 이야기들을 한편씩 읽으며 즐거움을 느끼기 딱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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