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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은 하면서 무시당하지 않는 기술
올가 카스타녜르 지음, 유 아가다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9년 2월
평점 :

우리의 전통적인 교육에서는 자기주장을 하는 법에 대해 별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학교 교육 또한 토론이 아닌 습득 위주여서 우리는 대화의 기술을 습득하기가 쉽지 않지요. 하지만 막상 사회에 나오면 의견을 제시하고 자신을 표현해야 할 경우가 많아서 당황스러워집니다. 그래서인지 대화법과 관련한 책인 듯한 <할 말은 하면서 무시당하지 않는 기술>이란 제목이 궁금증을 자아내더라고요.
이 권리는 다른 사람을 짓밟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같은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데 필요하다. p67
막상 책을 펼치니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 책이었어요. 이 책은 서양의 이기기 위한 자기주장과는 다른 의미의 자기주장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거든요. 다른 사람을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자신이 같은 위치에서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 대화법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싸움의 기술이라기 보다 화해의 기술, 평화를 지키는 대화법이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읽어볼 수 있었어요.
자기 행동을 정확히 관찰하게 도와주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평가지 쓰기와 자기기록이다. …… 자기기록은 종이 한 장에 자신의 문제 행동이 발생할 때마다 그 행동 요인과 주변 조건을 기록하는 것이다. …… 표준이 되는 자기기록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자기기록이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행동과 겉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는 행동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p89
자기주장 기술 과정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우선 어떤 상황에서 우리가 자기주장을 펴지 못하는지 자기관찰을 하라는 것이었어요. 유아기 때부터 형성되어온 신념을 들여다보는 것인데요. 기분이 나빠지는 상황에 우리가 어떤 잘못된 방식으로 생각을 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고 해요. 마치 일기를 적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요.
객관적으로 볼 때 심각하지 중요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당사자가 자신의 문제 행동을 심각하다고 받아들이면 생각에 영향을 미치고 결론적으로 감정과 행동에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3~4주 동안 기분이 나빠질 때마다, 규칙적으로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기억에 의존하게 되고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크다.
이렇게 3~4주 동안 기분이 나빠지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그때그때 기록을 하다 보면 스스로 자신을 사로잡는 생각을 파악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가진 잘못된 신념을 파악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 과정 자체만으로도 자신을 돌아보고 잘못된 신념을 수정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상당히 인상적이었어요.
물론 책에서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구체적으로 많은 대체 신념을 제공해주고 있어요. 그래서 3~4주 동안 각각의 상황에 효과적인 대체 신념을 반복해서 고르고 다듬어, 자신만의 대체 신념 목록을 완성해 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자신이 완성한 대체 신념을 꺼내어 생각을 좀 더 이성적이고 현실적으로 하는 연습을 해보라고 해요.
게다가 단순히 이런 인지 재구성 기술을 말로만 나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좀 더 이해하기 쉽도록 순종적인 엘레나와 자기주장이 지나치게 강한 후아나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상황에 대해 감정이입도 되어서 실감나더라고요.
자기주장이 매우 강한 어떤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가 잘 훈련된 자기주장 기술을 상대방에게 적용하려고 하는데,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고 오히려 계속 무시하고 공격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아주 분명하다. 당신은 일정한 한계까지만 다른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한계를 넘어서면 그것은 더는 당신 문제가 아니고 상대방 문제이다. €p143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상황은 우리를 찾아와요. 그래서 저는 위 글이 가장 기억에 남았는데요. 일의 특성상 수년간 수많은 롤플레잉을 해 왔고, 지금도 일을 할 때는 많은 상황을 대비해서 준비를 철저히 하는 편이에요. 그럼에도 사람에 따라 도저히 제 의견이 수용되지 않을 때가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있어요. 이럴 때는 '더 이상 내 문제가 아니라 저 사람이 문제구나'라고 생각은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뒤따르는 무능력감은 며칠 동안 저를 우울하게 만들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이 글을 읽으며 좀 더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느꼈어요. 게다가 책에 제시된 대체 신념은 읽으면 읽을수록 저에게 힘을 실어주더라고요. 또 이렇게 자기주장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거나 인간관계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힘들어하며 그냥 넘어갈 것이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변화를 시도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증오나 앙심 때문에 누군가를 비판해야 할 절박감을 느낀다면 당신의 감정이 진정되고 적당한 때가 될 때까지 그리고 확실한 비판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한다. 신학자 R. 롬바르디 p162
게다가 책이 끝나는구나 싶을 때, 저자는 자기주장 기술을 부부간의 관계에도 적용해 보라고 하는데요. 의외로 우리는 부부간에 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서 삐걱거리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이렇게 사회생활이든 부부관계든 갖가지 사례를 유심히 들여다보니 이 책의 자기주장 기술은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며, 타인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자신의 의견을 부드럽게 관철시킬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이런 기술은 읽고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큰 효과를 볼 수 없으니, 꼭 실천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